뮤지컬 무대가 더 좋은 영화배우 조승우

“최동원 역할에 가슴이 요동쳤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이거(선동열 역)는 무조건 양동근이다, 진짜 닮았다, 동근이가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고요. 확신이 섰죠. (나는 최동원 역을 맡는데) 부산 사투리? 에이, 공은 던질 만큼 던지겠구나, 원래 꿈도 투수였는데, 한국 최고의 투수였던 최동원 역으로 야구영화를 한다니 사투리는 문제도 되지 않았죠. 바로 영화사에 전화했죠, 한다고. 대신 양동근과 같이 하고 싶으니까 꼭 찾아달라고 했어요. 감독님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는데 1주일이 지나도록 영화사에서 양동근 연락처를 구하지 못하는 거예요. 군 입대 전에는 몇 번 술도 마시고 했는데 한참 못 만났더니 전화번호가 바뀌었어요. 제가 물어물어 간신히 휴대폰 문자를 보냈지요. 그랬더니 바로 전화가 와서 ‘워~ 조지킬, 웬일이야 맨~’ 하더군요. 그래서 ‘장난하지 말고 나랑 영화나 하자’고 했어요.”

조지킬은 조승우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얻은 별명이다. 그렇게 조승우(31)가 최동원 역을 맡고 양동근(32)이 선동열로 영화 〈퍼펙트 게임〉의 라인업이 완성됐다. 영화는 한국 프로야구사의 전설적인 투수, 고(故) 최동원과 선동열의 프로야구 현역선수 시절 라이벌전을 담았다. ‘왜 이제야 영화화됐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최동원과 선동열의 이야기는 극보다 더 극적이었다. 조승우는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영화 속으로 끌려 들어갔고, 최동원이 됐다.

“공을 한 번 던진 후에는 일단 한두 발자국 뒷걸음질을 칩니다. 발끝으로 마운드의 흙을 탁탁 내리찍죠. 그다음에는 모자를 두 번 정도 올려 씁니다. 로진백을 만진 후에 툭 털고, 안경을 고쳐 만집니다. 바지춤을 왼쪽 오른쪽 차례로 여미고서야 뒷짐을 지고 다음 투구를 위한 포수의 사인을 받습니다. 그걸 다 연기했는데 편집에선 사라졌죠. 다 담았으면 두 시간 러닝타임으로는 어림도 없었겠죠.”

영화 개봉 전 서울 한 호텔에서 인터뷰하던 중 조승우는 의자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서 최동원의 마운드 위 표정과 투구 팔 동작을 재현해 기자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역에 흠뻑 빠져 있었다. 조승우는 최동원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한번 만나뵙고 싶다”고 청했지만 고인은 생전 “일단 영화나 잘 만들어라. 할 거면 허구를 넣어도 좋으니 야구사뿐 아니라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작품을 남겨라”고 했다 한다.

조승우는 “영화 시사회 때 모셔서 칭찬받아야지, 폭포수 커브 그립을 가르쳐달라고 어리광을 부려야지 했는데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늘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영화는 최동원과 선동열이 국가대표 선후배로 만난 1981년 대륙간컵 야구 캐나다전을 시작으로 운명의 맞대결을 그려간다. 1983년 롯데에 입단한 최동원과 1985년 해태 유니폼을 입은 선동열은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을 이어가며 프로야구에서도 우열을 가늠하기 힘든 최고 투수로 쌍벽을 이룬다. 부산 태생-경남고-연세대-롯데의 최동원과 광주 태생-광주제일고-고려대-해태의 선동열. 영호남 지역 대결 구도에서 학연은 물론 프로 소속팀의 기업경쟁 구도까지 더해진 두 투수의 라이벌전은 당시 전 국민적 관심사였다. 1986년 1승 1패를 주고받았던 두 투수는 1987년 세 번째이자 마지막 선발대결을 벌인다. 당시의 시대적 풍경과 두 주인공을 둘러싼 소소한 에피소드를 그려가던 영화는 후반 40분간을 1987년 5월 16일 부산사직구장에서 열렸던 세기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 15회까지 두 주인공이 완투한 경기는 끝내 2대 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당시 최동원의 투구수 209개, 선동열 232개. 선동열의 투구수는 프로야구 사상 한 경기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양 팀 선발투수가 15회 연장까지 완투하는 것조차 앞으로 프로야구에서 불가능한 일로 꼽힌다. 영화는 득점 과정이나 일부 선수들의 이름, 이야기만 살짝 바꿔 극화했을 뿐 실제로 벌어졌던 경기와 스코어를 거의 그대로 옮겼다.


영화 촬영을 시작하기 전 고 최동원 감독에 관한 자료를 탐독했다던데요.

(박희곤) 감독님이 600페이지가 넘는 파일을 묶어서 주셨어요. 최 감독님의 연대기적인 기록과 자료는 물론이고 고교 야구선수로는 처음으로 보험에 들었다거나, 어린 시절 당시로서는 희귀했던 무테 안경을 아버지께서 구해주셨다는 뒷얘기, 프로야구 현역시절 각종 활약상을 담은 일간지 기사와 삼성 이적, 선수협의회 파동 당시의 일들까지 공부를 했죠. 그걸 읽으니까 고인께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보이더군요.


최동원 감독은 어떤 인물이었다고 생각했고, 영화에선 어떤 면모를 담으려고 했나요?

모든 것을 다 담으려고 했습니다. 시나리오상에도 최동원 감독님의 다양한 면모가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다만 두 시간으로 축약하다 보니 방대한 캐릭터를 다 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최 감독님은 유니폼을 벗었을 때는 명랑하고 쾌활하면서 장난 좋아하고 리더십도 강했습니다. 하지만 유니폼만 입으면 후배가 제 몫을 못 했을 때 엄격하게 혼내는 선배였죠. 최고의 에이스였던 현역시절, 감독님은 선수협의회를 맡으며 총대를 멨습니다.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들의 기본 생활권을 위해 나선 것이죠. 그들이 은퇴했을 때 뭐 먹고 살 거냐며 짐을 홀로 진 겁니다. 그 일로 한 시대의 별이었던 위대한 투수가 변변한 은퇴식도 없이 마운드를 떠났어요. 현역시절을 마친 후에는 사업도 하고 광역시 의원 출마(지방자치제 실시 후 치러진 1991년 첫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의 아성인 부산시에서 민주당 시의원으로 출마)도 하고 방송활동도 하셨지만 결국은 외롭고 고통스럽게 가셨습니다. 인격적으로 훌륭했고 정이 많은 분이었으며 무엇보다 진정 야구를 사랑하신 분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냉철한 승부사로서의 모습이 강조되는데 아쉬운 부분이 많겠군요.

물론 마운드에 섰을 때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배짱과 포커페이스를 가진 선수였죠. 다정다감했던 인간미도 담아내고 싶었지만 철저한 근성과 재능이 넘치는 야구인, 자신에게 엄격하고 냉정했던 승부사로서의 모습만 주로 부각돼 아쉽기도 합니다.


최동원의 독특했던 투구폼을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많이 부족하긴 하죠. 투구폼은 제가 따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감독님과 투수코치는 아마추어가 던지기에는 힘들다며 말렸습니다. 밸런스가 무너져 어깨를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었죠. 최동원 감독님은 크지 않은 체격조건을 극복하고자 수천 번 연습해서 위에서 내리꽂는 자신만의 폼을 만드셨다고 하더군요. 선수들도 제대로 따라 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투구동작이라고 합니다. 저는 다리도 무릎까지 차올리고 투구 후에 글러브를 낀 왼손을 제치는 동작까지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어요.


15회 말이 끝난 후에도 경기가 종료된 것을 모르고 다시 등판하려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눈빛과 표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나리오 그대로였습니다. “김용철의 아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런데 저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온다. 최동원이다. 김용철이 ‘야 임마 끝났어’라고 말하면 그제야 눈치 챈 최동원. 관중들도 모두 그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해태의 김응룡 감독이 다가와서 진심 어린 박수를 친다”고 말이죠. 나는 내 몫을 다한다, 팔이 빠져도 던진다는 숙명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사력을 다한 두 투수를 위해 해태 팬들은 최동원에게, 롯데 팬들은 선동열을 위해 박수를 쳐줍니다. 영화 마지막 신에서 보란 듯이 지역감정을 깨버리고 부산은 광주를 위해, 호남은 영남을 위해 응원합니다.



항상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과는 달리 영화는 관객 동원에 실패한 작품이 제법 많은데요.

제가 지금까지 열 편쯤 했는데, <타짜> <말아톤> <클래식> 정도만 잘됐죠. 그럼 3할인가요? 그 정도면 만족해요. 제가 이기적이고 고집을 부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 제가 좋은 영화를 해요.


군 제대 후에도 바로 뮤지컬로 복귀했고, 영화보다 무대 공연에 대한 애정을 더 많이 드러내왔는데요.

맞습니다. 앞으로도 안 바뀔 것 같아요. 무대가 더 좋습니다. 원래 어릴 적 꿈이 무대 예술하는 배우였어요. 그래서 타협한 것이 촬영 현장도 일종의 무대라는 것이죠. 카메라와 스태프 앞에 있는 무대. 나는 그 위에서 공연하는 배우고 말이죠. 그래도 영화는 좀 힘들어요. 시커먼 카메라가 시선에 걸려서 집중력을 깰 때가 있어요. 제가 어디로 차 타고 오래가는 것을 싫어하는데, 영화 촬영을 하면 지방 각지를 돌아다녀야 하기도 하고요. 또 영화 하면 홍보와 인터뷰도 해야 하죠. 사진 찍기가 제일 싫은데.


무대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무대는 명확합니다. 두 시간 반 혹은 세 시간 동안 모든 것을 극대화해 표현합니다. 영화에선 그렇게 하면 오버(액션)죠. 무대에선 연기를 뒷받침하는 공간이나 장치도 많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 주인공의 이중성을 보여줄 때 단지 조명 하나를 바꾸거나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표현이 돼요. 단순한 장치만으로도 극적인 요소를 바꿀 수 있다는 게 무대의 힘이죠. 몸짓과 음악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고요. 총체극이라는 사실이 무대의 매력이죠.



영화에서 최동원이 무리한 투구로 갈라진 손끝을 본드로 붙여 등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럴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나요?

음… 요즘 뮤지컬 〈조로〉를 하고 있는데, 공연 중 안전장치 없이 공중에서 밧줄을 타는 세 장면이 있습니다. 무대 위 8~9m, 아파트 4층 정도의 높이에서 객석을 가로질러 공연장 뒤편으로 착지하는 대목이죠. 원래 스턴트 대역배우가 하게 돼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주인공이 바깥으로 나갔다가 들어와야 합니다. 그 사이에 스턴트맨에서 원래 배우로 ‘바꿔치기’를 하는 거죠. 제가 원래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다리부터 후들거렸지만 관객을 속일 수 없어 트리플 캐스팅인 다른 주연배우들과 액션을 직접 하겠다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만하면 저도 욕심이 있는 것 아닐까요?


스물아홉 살의 최동원과 스물네 살 선동열의 운명적 대결이었던 1987년 경기 같은 순간이 배우 조승우에게 있었을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냥 제가 살아온 순간을 야구로 빗대 말씀드릴게요. 1루 베이스는 중학생 시절 뮤지컬 한 편을 보고 흠뻑 빠졌던 때였어요. 2루 베이스는 (계원)예고에 합격해 (뮤지컬 배우) 남경읍 선생님을 만난 때였죠. 3루 베이스가 임권택 감독님의 <춘향뎐>에 출연한 순간이었습니다. 임권택 감독님을 만나 제가 깨부숴야 할 많은 것을 깨달았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비로소 홈에 들어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늘 기도하고 바라던 순간이었으니까요. 뮤지컬을 보면서 ‘하나님, 저 위에만 서게 해주신다면 열심히 믿겠습니다. 큰 무대에서 연기하고 노래하고 싶어요’라고 늘 구하던 소망이 실현된 겁니다. 지킬이 되고서야 배우 조승우를 알리기 시작했고 부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신드롬도 경험했지만 인격적으로는 타락하기도 했던 시기입니다. 흑과 백이 동시에 있었죠. 이제 다이아몬드 한 바퀴를 돌아서 지금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연기요? 30년 후쯤에나 연기가 무엇인지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사진 : 안영민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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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숑숑키   ( 2012-03-16 )    수정   삭제 찬성 : 87 반대 : 89
정말 멋진 배우인듯하네요..
 앞으로도 좋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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