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탄생 200주년 기념 리사이틀 여는 피아니스트 김정원

연주하면서 리스트의 삶을 느껴요

리스트 탄생 200주년 기념
피아니스트 김정원 전국 리사이틀

12/9(금) 대구 수성아트피아 용지홀
12/10(토) 부산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12/18(일) 광주 빛고을 시민문화관
12/23(금)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국내에서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최초로 시도한 피아니스트,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출연한 피아니스트, ‘김정원과 친구들’이라는 타이틀로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뮤지션들과 이색적인 공연을 해온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활동에는 클래식의 엄숙주의를 한 겹 벗겨내고 대중에게 한발 다가가려는 움직임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년의 리스트다. 화려한 기교와 테크닉의 정점을 구사하는 젊은 시절의 리스트가 아니라, 인생의 쓴맛·단맛을 알아버린 말년의 리스트를 연주한다. 서른여섯 살 김정원은 말년의 리스트를 어떤 깊이로 풀어낼까. 리스트 탄생 200주년 기념 4개 도시 투어 공연을 1주일 앞두고 그의 경희대 교수실에 마주 앉았다.

피아니스트 김정원. 만 14세의 나이에 빈 국립음대에 최연소 수석 입학해 최우수 졸업, 롬브로 스테파노프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뵈젠도르퍼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마리아 카날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 금메달 등을 수상하면서 주로 해외 무대에서 활동해온 피아니스트. 2000년대 들어서는 국내 활동도 꽤 늘었지만, 그가 대중에게 존재감을 안긴 건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통해서다. 성인이 된 주인공으로 등장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마지막 신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모범생 같은 깔끔한 외모에 연주와 하나가 된 아름다운 몸동작,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 어린 열정은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클래식을 잘 모르던 관객 상당수가 그의 팬이 되면서 클래식에 빠졌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꿈꾸던 전국 투어 콘서트를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는 2006년, 국내 피아니스트 최초로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시도했다. 12개 도시 투어로 시작한 콘서트는 이듬해에도, 그 이듬해에도 성황리에 이어갔다.

“클래식이 소수 특정 계층의 전유물처럼 비치는 것, 소위 배부른 음악처럼 비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사실 클래식 음악은 온갖 가난과 역경과 싸우면서 만들어진 곡들인데. 음악가들은 대부분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장애를 가졌었잖아요. 빈에서 목격한 장면이 지워지지 않아요. 허름한 지하철역에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가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내 공연 일정을 적는 거예요. 클래식 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김정원은 팬층이 넓다. 이날 두른 회색 머플러도, 그의 사진으로 꾸민 2011년 달력도, ‘1818’로 끝나는, 다소 의외의 휴대전화 번호도 팬들이 보낸 선물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역술가 팬이 기존의 전화번호는 좋은 수가 아니라면서 좋은 번호를 골라 휴대전화까지 선물했다고 한다. 그는 “3년 전 받은 번호인데, 그분 말씀대로 그때부터 일이 더 잘 풀린 것 같다”며 웃었다.

그가 이번에는 리스트 곡으로 청중을 만난다. “리스트는 기교적이고 화려해서 겉멋에 치중한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면서 “그런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에서 곡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연주하는 곡 중 마지막을 장식할 ‘소나타 b단조’는 그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리스트의 후기 작품 중에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작품이 많아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소나타 b단조는 마지막까지 한 악장으로 돼 있어서 보여주기 위한 멋이 완벽하게 배제돼 있죠. 이 곡이야말로 제대로만 표현한다면 마음속 묵은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어요. 이 곡을 처음 연주한 건 15세 때 빈에서였어요. 처음에는 참 지루한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주할수록 새로운 무언가가 발견되면서 곡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콩쿠르 파이널에서 이 곡을 연주하면서 펑펑 울었어요. 원래 연주자는 감정 절제를 잘해야 하는데, 잡고 있던 끈을 탁 놓치면서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 같아요. 유일무이한 경험이었어요.”

콩쿠르 결과는 우승이었다. 19세기의 리스트와 21세기의 김정원. 리스트 탄생 200주년인 2011년, 리스트는 피아니스트들의 단골 테마였다. 2011년 리스트 연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는 종종 리스트와 닮은꼴 연주자로 거론된다. 요즘 유행하는 ‘평행이론’으로 둘을 비교해보자.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피아니스트, 수려한 외모를 갖춘 피아니스트, 공연이 끝난 후 선물공세를 받는 인기 피아니스트. 클래식의 엄숙주의를 한 겹 벗겨내고 대중에게 한발 다가가고자 한 피아니스트, 그에게 리스트와 어떤 점이 닮은 것 같으냐고 물었다.

“리스트가 저보다 훨씬 쇼맨십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옆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피아노를 옆으로 돌려놓는 구도까지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그 정도 자신감은 없고요, 다만 ‘등을 보이는 것보다 옆모습이 낫지’ 하는 느낌은 들어요. 저는 쇼맨십이나 스타의식이 없어요. 리스트는 그걸 굉장히 일찍 알아서 즐겼고, 즐긴 만큼 즐긴 후에 해탈한 거죠. 고루하고 심각하게 평생을 사는 것보다 멋진 인생 같아요. 모든 것을 다 맛봤으니까요. 리스트는 제가 감히 닮았다고 얘기할 대상은 아니고, 닮고 싶은 사람이죠.”

그는 “리스트 소나타처럼 인생을 살고 싶다”며 말을 이어갔다.

“30분간의 화려한 연주가 끝난 후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고요한 부분을 2분 정도 들려준 후에 관객이 ‘끝난 거 맞아?’ 의문이 들 때 끝나요. 다른 리스트 곡은 대부분 화려하게 ‘빰~’ 하고 끝내서 환호를 받고 박수를 받는데 말이에요. ‘저 거대한 곡을 왜 저렇게 초라하게 끝냈을까?’ 생각해봤어요. 시작과 중간, 엔딩의 모든 부분에 리스트의 인생과 철학이 담긴 것 같아요. 화려함도 알고 인생의 모든 것을 알지만 마지막에는 빈 몸으로,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그는 극과 극의 두 가지 표정을 가졌다. 미소는 더없이 따뜻하지만 미소를 거두고 진지한 말을 이어갈 때는 차디차다. 스스로도 “극단적으로 이성적이고, 극단적으로 감성적”이라며 “어떤 순간에는 내가 이 정도의 감정 컨트롤도 못하나 싶을 정도로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어떤 순간에는 소름끼칠 정도로 냉혈한처럼 된다”고 했다.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무엇을 하든 매 순간 완벽을 추구하는 것 같다”)을 이야기했더니, “정확히 봤다”며 “꼼꼼함을 넘어 완벽주의가 있다”고 말했다.

“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사람들, 저와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은 좋아하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은 힘들어할 수 있죠. 아내(피아니스트 김지애)도 힘들어해요. 아내는 저와 정반대 성격이라 편안하고 털털하고 낙관주의거든요. 아내는 큰 문제가 닥쳐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스타일인데, 저는 일어나지도 않은 문제를 미리 걱정해요. 그래서 듀오 리사이틀을 딱 한 번 하고 다시는 안 해요(웃음). 음악적으로도 저는 쉼표 하나라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못 견디고 괴로워하는데, 아내는 다 놓고 가는 스타일이거든요(웃음).”

그의 이런 완벽주의 성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드라마 〈옛날의 금잔디〉 〈푸른 안개〉 〈은실이〉 등을 집필한 이금림 작가(그의 아버지는 전남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고,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아 문학과 철학에 심취했던 형은 방송기자가 됐다). 그는 “어머니는 일일 드라마를 시간에 맞춰 쓰기도 힘드실 텐데 써놓고 읽고 또 읽고 신을 뺐다 넣다 계속하신다”며 “제가 보기엔 거의 병적인 수준인데, 제가 피아노 앞에서 그러고 있네요”라며 말을 이었다.

“‘조금 편안해지자’ ‘이 부분은 그냥 맡기자’ 하며 노력 중이에요. 그런 면에서 배우자를 잘 만난 것 같아요. 아내가 그 놓는 방법을 가르쳐줘요. 제가 연주하기 전에 불안한 부분을 떠올리면서 초조해하면 아내가 그래요. ‘당신이 무대에서 다른 음을 짚는다고 해서 청중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아요. 편안하게 맡겨요’라고요. 음악은 스포츠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결 편안해졌어요. 체조는 사소한 동작이라도 실수하면 감점을 당하지만 무용에서는 손동작 하나로 감점당하지 않잖아요. 무대에 오르면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는 쪽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어요. 많이 편안해졌어요.”

그는 연습벌레다. 피아노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피아노 연습을 빼먹은 날이 없다. 이 부분은 무서우리만큼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장시간 비행 후에도 공항에서 연습실로 직행한다. 단 한 번, 한 달간 피아노를 만지지 못한 적이 있다. 바로 신병 훈련을 받을 때였다.

“피아노와 멀어지면 불안해서 못 견뎌요. ‘아, 편하다’가 아니라 피폐해지죠. 고강도 훈련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체력도 있고 운동도 못하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피아노를 못 치는 것 때문에 미칠 것 같았죠. 간절한 소망은 꿈으로 나타나잖아요? 동료 훈련병은 시원한 음료수 마시는 꿈, 초코파이 먹는 꿈, 애인 만나는 꿈을 꾸었다는데, 저는 매일 피아노 치는 꿈을 꾸었어요. 깨고 나서 피아노가 없으면 서럽고 눈물이 났죠.”

그에게 피아니스트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천직’이다. “서른 넘어 가보지 않은 다른 길을 처음으로 상상해봤다”며 본인도 신기한 듯 웃는다. 완벽한 소리를 추구하는 그는 현악기가 내는 소리를 동경한다.

“20대까지는 피아노가 아니라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했으면 어땠을까 많이 상상했어요. 피아노는 가장 기계적인 악기잖아요. 해머가 두드려 내는 타악기여서 나오는 소리가 정해져 있죠. 현악기를 들으면서 피아노로 저렇게 연주하고 싶다는 갈망을 많이 해요. 쇼팽같이 선율적인 곡을 연주할 때에는 바이올린, 사람 목소리같이 다양하면서도 섬세한 선율을 낼 줄 아는 소리를 상상하면서 모방해요.”

그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5번 음반 발매를 앞두고 있다.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세계적인 대가들과의 레코딩 작업을 마친 상태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5번’ 하면 놀란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은 4번까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그의 사후 러시아의 유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알렉산더 워렌버그가 피아노협주곡 형태로 편곡한 것이 바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5번’이다. 이 협주곡은 2009년에야 완성됐는데, 김정원은 이 협주곡을 2010년 5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세계 최초로 초연했다. 그는 이 곡에 대해 “라흐마니노프의 전형적인 정열과 우수가 다 들어 있으면서도 교향곡적인 느낌과 피아노의 타악기적인 느낌이 잘 살아 있어서 굉장히 파워풀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최근 한국의 클래식 시장에 주목한다.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나 음악가들과 협연하면서 그들의 한국 무대에 대한 평을 듣고 짜릿할 때가 많다.

“2010년에 피터 야블론스키와 듀오 공연을 했는데, 한국 무대를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예전에는 일본에 왔다가 잠깐 들르는 무대로 인식됐는데, 이젠 한국 무대 자체를 동경해요. 우리나라 청중은 층이 젊고 반응이 즉각적이죠. 일본인들은 아무리 감동을 받고 감정이 북받쳐도 조용히 앉아서 박수만 칠 뿐이에요. 음악가가 나오면 소리도 질러주고, 감동받으면 환호하고 기립하는 등 이런 뜨거운 리액션이 연주자에게 주는 에너지는 대단합니다.”

그는 인터뷰 중에 “시간이 없다” “상처와 치유”라는 말을 많이 썼다. 최근 6개월간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케줄이 빼곡하다고 했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2주 정도 빈둥대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 두 시간씩만 연습하면서”라는 단서를 달고. 그는 음악의 여러 기능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위로’라고 생각한다. 그의 공연을 통해 위로받는 팬이 많지만, 그는 그런 팬들의 고백을 통해 더 큰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팬들의 편지를 받고 운 적도 있어요. 상처가 깊어서 삶의 의욕을 상실했다가 제 연주를 듣고 위로받고 치유되는 느낌이 들면서 더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는 내용이었죠. 피아니스트로서 제 인생이 늘 좋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하고 싶은 것을 많이 참아야 하고, 긴장의 연속이고, 고통이 수반되는 작업이죠. 팬들의 이런 편지를 받으면 그런 제 삶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에요.”

그에겐 한때 ‘젊은 피아니스트’ ‘차세대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서른여섯 살 그에겐 어느덧 무색한 표현이 됐다. 젊은 에너지는 사그라들고, 대가다운 연주는 아직 무르익지 않은 애매한 시기. 그는 이 과도기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피아니스트에게 테크닉의 최절정은 10대 말에서 20대 초반 같아요. 그 이후에는 유지 혹은 퇴보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노력하죠. 몸은 물리적으로 퇴화하니까요. 그러나 대가들을 보면 스케일이 고르지 않아도, 손놀림이 빠르거나 파워풀하지 않아도 마음을 녹이는 연주를 해요. 저는 그 가운데 있는 애매함을 느껴요. 10년 전 은사님이 ‘넌 어떻게 그 곡을 그렇게 쉽게 치니?’ 하셨던 곡을 지금 치면 왜 어려운지를 알겠어요. 그걸 모르고 겁 없이 피아노를 쳤던 게 부끄럽고요, 발가벗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가 깨달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그 두 가지를 다 가진 시기잖아요. 젊음과 에너지를 가졌으면서 음악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이도 가진. 어쩌면 내 생에 가장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해서 이렇게 무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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