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조로〉로 돌아온 박건형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듯 사력을 다하는 배우

박건형은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그를 만난 11월 1일은 그의 생일이자, 그가 주역을 맡은 뮤지컬 〈조로〉 개막 3일 전이었다. 기자 일행이 준비한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는 어색해하며 “적응이 안 된다”더니 카메라 앞에 서자 점점 몸이 풀리면서 눈빛이 살아났다.

이글거리는 야성미와 여심을 녹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동시에 가진 그는 남성성이 강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뮤지컬(〈햄릿〉 〈삼총사〉 〈그리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연극 무대(〈풀포러브〉), TV(〈바람의 나라〉 〈꽃피는 봄이 오면〉)와 스크린(〈댄서의 순정〉 〈뚝방전설〉)을 종횡무진 누비던 그가 뮤지컬 〈조로〉로 돌아왔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평생 오지 않을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박건형 팬카페 이름은, 그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그는 매 작품을 다시 없을 마지막 기회인 듯 최선을 다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주도면밀하다, 완벽주의자”라는 표현을 쓴다.

인터뷰하기 전에 헤어와 메이크업의 콘셉트, 인터뷰 내용, 촬영 시안, 스튜디오 위치 등을 아주 꼼꼼하게 체크하더군요.

“성격 같아요. 담당 기자, 헤어, 메이크업, 카메라 기자 모두 합의가 되어 인터뷰를 진행하니까요. 무대에서는 세트와 음향, 배우가 하나가 돼야 좋은 작품이 나오잖아요. 관객 앞에서 리허설을 할 수 없으니 미리 다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인데, 남들은 완벽주의자라고 해요. ‘열심히 한다, 잘해야 한다’는 기준이 매우 높다는 걸 깨달았어요. 열심히 주도면밀하게 하면서도 남들 눈에는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게 새로운 목표예요.”

개막 3일 전입니다. 심정이 어떤가요.

“심장이 쫄깃쫄깃해진다고 할까요? 예민한 것과는 다른데요, 설레면서도 두려워요. 오디션을 볼 때부터 작품을 연습하고 땀 흘리던 시간들이 응축되는 느낌이에요.”

〈조로〉의 한국 초연이라 관객의 기대감이 워낙 큰 데다 ‘<조로>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 1위에 뽑혔지요. 또 그간 조승우씨와 많이 비교됐는데 조승우씨와 처음 같은 역할로 만났으니 부담감이 클 것 같습니다.

“누구와 함께 해서, 어떤 작품이어서 부담스러운 건 없어요. 이전의 박건형보다 지금의 박건형이 변화했는가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거죠. 승우와 같이 하게 된 건 저에게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영광이고.”

위험한 검투신이 많아 10억짜리 상해보험에 가입한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기사까지 나서 창피해요. 그런 걸 이슈화하는게 어색해요. 좀전에 기자님이 생일 케이크를 주실 때에도 그랬어요. ‘내가 과연 이런 것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검술 전문 배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뮤지컬 〈삼총사〉에서도 그랬고, 특히 〈햄릿〉에서는 실제로 불꽃이 튈 정도로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연기를 펼치다 상대방의 검에 찔려서 배우의 생명인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흉터가 안 남았나요?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손가락으로 오른쪽 눈 부위를 가리키는데, 눈 위아래로 5㎝ 정도 흉터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레어티즈와 결투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공연이 다 끝나려면 커튼콜까지 15분 정도 남아 있었어요. 얼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배우들은 놀라서 어쩔줄 몰라 했죠. 무대감독님은 공연을 중단하라는 사인을 보냈는데, 저는 감독님께 괜찮다고, 그대로 하겠다는 답 사인을 보냈어요. 앞이 안 보여서 눈알이 터진 줄 알았어요. 나중에 피가 눈에 들어가서 안 보였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 오만 생각이 스쳐갔어요. ‘이제 배우를 못하는 건가? 배우라는 게, 연기라는게 이제야 뭔지 알았고, 재미있다는 걸 알았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여느 때 같으면 박수를 받고 내려가는데 그 자리에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어요. 마지막 무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90% 이상이었으니까요.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그 박수 소리, 그 순간의 충만감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어요. 고음 부분을 부를 때 압력 때문에 눈에서 피가 막 뿜어져 나오는데 무섭지 않았어요. ‘난 이제 뭘 하지? 스티비 원더도 장님인데 음악을 했으니 나도 음악을 하자’ 했죠. 그런데 해결되지 않는 게 하나 있었어요. 엄마요. 저는 한쪽 눈이 안보여도 괜찮은데 자식이 눈이 하나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한 인터뷰에서 “부모님은 박건형씨가 무조건 우선이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박건형씨가 배우가 되는 걸 지지하셨나요?

“두 분 다 평범한 분이세요. 집안 형편이 여유 있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연이 닿는 사람도 없고’ 라고요.”

연기자의 끼는 누구한테 물려받았나요.

“잘 모르겠어요. 몇 년 전 아버지가 술을 드시더니 ‘사실 난 트럼펫이 너무 배우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하고 싶은 것 참아가며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시다가 작년에 정년퇴직하셨어요. 퇴직 후 요리학원에 다니세요. 제가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됐을까, 너무 신기해요. 어렸을 때 어른들이 노래해보라고 하면 도망가고, 중학교 음악시간에 제 차례가 되면 노래를 두 소절만 불러도 얼굴 빨개지던 소년이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배우가 됐습니까.

“고등학교 때 중창반이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어요. 축제 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느꼈죠. 고등학교 이전에는 제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부모님의 아들, 친구들의 친구라는 관계 속에서 제 존재를 느꼈죠. 무대에 서니 나라는 존재가 느껴졌어요. 이 세상에 박건형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 ‘어? 이 느낌은 뭐지? 이 새로운 나는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학교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삶에 적극적이 됐어요.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소통에 대해 생각하고, 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죠. 전교 1등과도 친구가 되고 전교 꼴등하고도 친구가 되면서 그들의 세계를 다 들여다봤어요. 고등학교 때 담배도 피워보고 소위 문제아들과도 어울렸지만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나를 객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 이렇게 빠지면 안 되겠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죠. 그때 성격이 바뀌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아무리 제가 활기차고 장난기 많은 모습을 보여도 제 안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면이 있죠. 그래서 다양한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요. 오늘은 좀 차분한 모습이네요.”

삶 자체가 연기 같습니다. 상황에 맞는 캐릭터로 살아가니 말입니다.

“군대에서 관등성명이 ‘액션’이었어요. 유격하고 훈련받으면서 ‘돌격 앞으로!’ 하면 선임이 ‘야, 그냥해! 연기하지 말고’ 했어요. 하하. 군대에서는 군인 연기에 충실한 거죠.”

2001년 뮤지컬 〈더 플레이〉로 데뷔했으니 배우생활 11년차입니다. 지금은 박건형씨 연기 인생에서 어떤 지점인가요.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 <고고비치〉를 하면서 회의가 들었어요. ‘이렇게 열심히들 하는데 왜 뮤지컬 배우는 인정받지 못할까?’ 하는. 유명해져서 뮤지컬 배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유명해지면 많은 사람이 내 뮤지컬을 보러 올 테니까요. 그전에는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노크해도 외면했거든요. 그런데 문을 열었죠. 영화와 드라마를 거의 쉴 새 없이 이어 했어요. 그런데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다시 회의감이 밀려왔어요. ‘난 뭐지? 영화인도 아니고 무대인도 아니고, 난 도대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배들은 ‘넌 결국 유명해지고 싶어서 영화와 드라마를 한 거구나’ 하면서 비난했어요. 유명해져서 뮤지컬에 불을 밝히고 싶었는데, 금의환향을 꿈꾸었으나 부러진 날개로 돌아왔어요. 3년 8개월 만에 뮤지컬 〈뷰티풀 게임〉으로 돌아왔는데 잘 안 됐어요.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영화도 안 되고, 드라마도 안 되고, 뮤지컬마저 안 되는구나.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했죠.

〈햄릿〉을 만나면서 부러진 날개가 다시 붙은 겁니까.

“글쎄요. 그 날개가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햄릿〉이 큰 힘이 된 것만은 사실이에요. 〈햄릿〉은 술자리에서 10년 만에 대학 선배를 만나면서 하게 됐어요. 그때 전 삭발까지 하고 방황하고 있었죠. 그 선배가 〈햄릿〉을 만들고 있는데, 오디션 보러오라고 제안했을 때, ‘배우를 때려치우더라도 남자배우로서 〈햄릿〉은 한번 해보자’ 결심하고 오디션에 응했죠. 운 좋게도 주인공에 캐스팅됐고, 〈햄릿〉을 하면서 매일 햄릿과 대화했어요. ‘넌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네 아버지는 왕이잖아. 우리 아버지는 회사 다녀. 넌 그것 때문에 화가 나? 난 이것 때문에 화가 나’하면서요. 그러다 보니 가라앉았던, 죽어 있던 감정들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죠. 만화 〈슬램덩크〉 보셨어요? 강백호는 오로지 소연이한테 잘 보이기 위해 농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럽니다. ‘이젠 정말 농구가 좋아졌다’고. 〈햄릿〉을 하면서 눈을 다쳤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이제 연기가 정말 좋아졌고, 다시 힘을 얻어서 달려보려는데 왜 하필 지금 이런 시련이 닥치나’ 하면서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렸죠.”

배역을 맡으면 그 캐릭터에 푹 빠져서 지내는 스타일인가 봅니다.

“캐릭터와 삶을 분리하는 분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말 그대로 헤어나지 못해요. 그 캐릭터의 느낌을 현실에서도 가져가고 싶어요. 어느 날 꿈을 꿨는데, 달콤한 꿈이라면 그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은 느낌? 지금 이 순간 나를 관통하고 있는 이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열어두고 있는 것뿐이에요.”

지금은 ‘조로’에 젖어 있겠군요. 조로는 박건형씨와 어떤 점이 닮았습니까.

“조로 캐릭터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가면을 쓴 사람은 왜 가면을 쓸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두려운 거죠. 가면을 쓰지 않고는 하지 못하는 일을 가면을 쓰고 하는 거죠. 마스크 속에 숨어서 벗은 나와 점점 괴리감이 커지고.”

조로처럼 가면을 쓰고 이전의 박건형씨와는 다른 캐릭터로 산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3~4년 전부터 ‘내가 배우가 아니었다면 뭘 했을까’ 생각해봤는데, 방랑했을 것 같아요. 방황과 방랑은 다르죠. 방랑은 내가 떠도는 것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고, 방황은 모르고 헤매는 거니까요.”

조로 역을 맡은 세 사람(박건형・조승우・김준현)은 저마다 워낙 캐릭터가 달라서 3인 3색이 기대됩니다. 서로 어떻게 다른가요.

“준현이는 멋있으면서 느끼해요. 승우는 쾌활하고 약간 능글맞으면서도 귀엽고요. 저는 제 인터뷰니까 굉장히 매력적이에요(일동 웃음).”

뮤지컬과 연극, 영화와 드라마를 두루 거쳤지만 뮤지컬로 데뷔했고, 뮤지컬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뮤지컬이 마음의 고향 같은가요.

“그런 것도 아니에요. 연기의 표현방식에 따라 장르를 나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힙합・펑키・록 등 여러 가지 있지만 통칭해서 그냥 음악이라고 하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어느 장르가 가장 좋으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그건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 것과 같아요. 다만 한 가지, 무대가 좋은 이유는 명확해요. 제가 온전히 어떠한 여과장치 없이 내 몸뚱이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앞으로의 길에 대한 방향설정을 했나요.

“한 바퀴 돌고 왔잖아요. 어느 구간 어느 코스를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가 보여요. 물론 그 중간에는 변수가 있죠. 예능이라는 분야가 새롭게 침투했고, 예능이라는 분야의 비중이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습니까.”

“중요한 건 이전의 박건형보다 얼마나 변화했느냐”라고 했습니다. 변화의 방향성을 잘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이 세상은 변한다는 거겠죠. 그렇다면 ‘나는 진화하는 것인가, 변질되는 것인가, 아니면 퇴화하는 것일까’ 했을 때 가장 위험한 건 변질이에요. 변질이 발전해버리면 걷잡을 수 없죠. 변화를 두려워하진 않아요. 하지만 변화는 끝이 없잖아요. 변화에 적응하면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니까.”

생각이 복잡하십니다. 방황하는 사춘기 같은 면도 있고.

“서른 다섯에 느끼는 사회 속의 사춘기 같아요. 어렸을 때에는 사회를 느끼지 못하잖아요. 내가 어떻게 마음먹는가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참 무서워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전 그냥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지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관객 또는 시청자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길 바랍니까.

“어떤 배우라고 기억되고 싶지 않아요. 그냥 ‘박건형이 있었다’면 족해요. 배우든 뭐든 간에. 이 역시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질문을 바꾸죠. 연기를 왜 하나요.

“그것도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해요. 그건 왜 사느냐는 질문과 같은 거예요. ‘나’라는 사람을 언제 느끼세요? 거울을 볼 때? 아니면 누가 날 불러줄 때? 그 외에 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나요? 기자님은 아들이 ‘엄마!’ 부르면 나를 느끼나요? 그 아이의 엄마를 느끼는 거죠. 연기는요, 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에요.”

사진 : 김선아

[인터뷰 후기]

박건형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슨 질문이든 그는 명쾌하게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정답을 찾아가는 생각의 사슬을 일일이 서술식으로 풀어냈고, 확신 없는 답은 생각의 과정만 잔뜩 늘어놓고 미제로 남겨두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그래서 문답식으로 풀었다. 기자의 필터를 통해 섣불리 정답에 가까운 해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풀이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배우 박건형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박건형은 사소한 질문에도 모든 뇌세포를 동원하는 듯 최선을 다해 답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에게 “인터뷰마다 이렇게 성실하게 답하는지” 물었다. 그는 네, 아니오 대신 또다시 길게 서술했다.

“제가 신인일 때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 사람 뭐지? 아주 잘하는 건 아닌데 굉장히 열심히 하고 풋풋해’라고. 저는 노련해지는 게 싫어요. 인터뷰하면서도 마찬가지예요. 정제되어서 노련해 보이는 답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기자님은 저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이 시간이 굉장히 소중해요. 세상과의 통로가 되는 시간 말이에요. 그게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술작품을 연기를 통해 볼 수 있게끔 하는 통로가 되는 사람이에요. 그게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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