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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연주할 때 제일 행복해요”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수상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손열음(25)씨는 자신을 ‘콘서트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한다. ‘피아니스트’와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잘하는 일이 연주고, 또 하고 싶은 일도 연주뿐이라는 의지를 강력히 표현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튀는 행동을 일삼거나 어린 나이의 성공을 믿고 제멋대로인 것도 아니다. 그는 “내 연주를 들어준 고마운 팬들이 보내는 트윗에 일일이 댓글 인사를 하고 있다”거나 “몇 달씩 약속을 못 지켜 마음 쓰이던 원주시청 연주회를 드디어 열었다”며 해맑게 웃는다. 강원도 원주 토박이인 그는 열한 살 때 참가한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최연소 2위를 수상한 후 ‘천재’ 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미국·이탈리아·독일 등지에서 열린 유수의 국제콩쿠르에서 연속으로 최연소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이를 증명했다. “음악가로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그는 지난 6월 1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도전해 2위를 차지했다. 그는 “2등은 아쉽지만, 세상 모든 일이 다 마음에 들 수는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7회 분을 쓰기로 했는데, 반응이 좋았는지 계속 쓰라고 하더라고요. 오늘 아침에 마감하고 오느라 혼났다니까요(웃음). 이번 주제는 음악의 인종차별이에요. 동양인이면서 서양음악을 전공하고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죠.”

1년 전부터 그는 한 일간지에 ‘손열음 칼럼’을 쓰고 있다. 칼럼의 주제는 자유인데, 아무래도 음악 관련 이야기를 쓰게 된다고 한다. 그가 연주회 때마다 직접 프로그램 노트를 쓴 것이 칼럼을 쓰게 된 계기로, “어렸을 때 원주에서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다니는 동안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제가 눈이 나빠요. 양쪽 모두 디옵터 5.5거든요.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악보를 열심히 본 탓도 있겠지만, 차 안에서 책을 읽느라 더 나빠지지 않았나 싶어요. 만화책부터 역사책까지 내키는 대로 다 읽었어요. 엄마가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이신데, 엄마의 영향도 받았겠죠? 특별히 좋아하는 역사학자는 없고, 다양한 학설을 즐겨읽어요.”

서울 광화문의 금호아트홀에서 손열음씨를 만났다. “글도 잘 쓴다”는 기자의 인사에 그는 잠시 쑥스러워하더니 “언젠가 동화 같은 몽환적인 스타일로 에세이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는 기내용 트렁크 가방과 우산, 핸드백을 차례로 바닥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인터뷰 마치고 원주로 내려가려고요. 집에 가서 동생들이랑 놀고, 푹 쉬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워낙 연주도 많이 했지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이후 최고였어요. 부상으로 받은 연주 기회들로 무척 바빴어요. 일주일 동안 국제선을 다섯 번 탄 적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콩쿠르는 3주도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는 5월 14일 미국 연주를 마치고 독일 하노버의 집으로 돌아왔다.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열리기 약 한 달 전이었다. 이때부터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만, 콩쿠르 경력을 더 쌓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서 또다시 콩쿠르를 준비하는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고 했다.

“사실 다른 걸 할 수 없어서 콩쿠르에 나간 것 같아요. 음악은 스포츠와 달라서 잘하고 아니고를 성적으로 매기는 것 자체가 모순인데요. 콩쿠르로 뜬 연주자가 진짜 실력이 있는지, 콩쿠르 운은 없지만 대단한 내공을 가졌는지는 또 모를 일이거든요. 운도 상당히 작용하는 것 같고요. 음악계에서 잘되려면, 해야 할 복잡한 일이 무척 많아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적성에 안 맞아요. 그래서 연주만 하며 지내려고요(웃음).”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우리나라에 귀빈이나 국제적 명사가 오면 반드시 손열음씨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러한 박 회장의 노력으로 로린 마젤과 뉴욕필의 내한공연에서 손열음씨는 협연자로 나설 수 있었다.
그는 전형적인 신동의 수순을 밟은 연주자다. 어릴 때 재능을 발견했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끌어주는 스승도 만났다. 미국 오벌린 국제 콩쿠르(1999년), 독일 에틀링겐 국제 피아노 콩쿠르(2001년),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2002년)에서 최연소 1위를 차지하며 타고난 재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참가하는 콩쿠르마다 대부분 최연소 1위로 입상하는 등 누가 보아도 타고난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열다섯 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 전형에 최연소로 합격해 김대진 교수에게 사사했고, 6년 전부터는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 교수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공평한 콩쿠르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에게 제 연주를 들려 줄 수 있는 기회로 만들면 되겠다 싶었죠. 인터넷 생중계라는 문명의 혜택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제 무대를 간단히 선보일 수 있으니까요.”

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상금은 적지 않다. 2000만원에 가까운 상금은 어디에 쓸 예정일까.

“제가 콩쿠르에서 상금을 많이 받아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러시아 은행에 제 계좌를 개설해 입금해놓고 통장과 국제 현금카드를 주신거예요. 보통 수표나 계좌로 보내주거든요. 아무튼 엄마에게 드렸는데, 현금카드가 우리나라에서 읽히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러시아에 가야 하나요(웃음).”


구름보며, 하늘보며 하노버에서 더 지내고 싶어

그는 ‘어머’ ‘으하하’ ‘완전 최고’라는 표현을 좋아했다. 무슨 질문을 던져도 재미있게 대답하고, 똑 부러지게 말도 잘했다. 그 나이 또래가 가진 생기발랄한 구석도 있고, “결혼이라는 제도는 세상과 맞지 않는다”거나 “독일에서는 물보다 싼 맥주를 완전 사랑한다”는 식의 세상 철학도 뚜렷했다. 인터뷰 도중 장소를 갑자기 옮기게 되었을 때 탁자 위의 유리컵들을 직접 쟁반에 챙겨 옮기는 모습도 예의 발랐다.

하지만 그는 피아노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주문을 외듯 연주하는 중간중간에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섬세한 표정을 때때로 바꾸며 음악과 함께 숨을 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마치 피아노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노는 것 같다. 그는 객석을 압도하는 재주가 있다. 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승 무대에서 그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또 중얼중얼거리면서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다. 당시 그의 연주를 보려고 온 1000여명의 관객 전원에게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자신의 무대를 보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행복하다.

“피아노를 완전 사랑했어요. 처음 친 순간부터요. 음악가는 타고나야 해요. 노력보다 재능이죠. 저도 행운이고요. 하노버가 너무 좋아요. 창턱에 앉아서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몇 시간이고 바라봐도 질리지 않아요. 좋아하는 음반을 하루 종일 들을 때도 너무 좋고요. 지금 최고 연주자 과정 중인데 마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원주 집보다 하노버 집이 제 집 같아요.”

손열음씨는 고 박성용 명예회장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많다. 연주회가 끝난 후, 박 회장은 문 닫은 식당 문을 두드려 밥을 사주면서 “연주자는 잘 먹어야 한다”고 했고, “클래식 연주자도 예뻐야 한다”며 종종 목걸이를 선물하시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현재 독일 하노버 집에 있는 뵈젠도르퍼 그랜드 피아노는 각별하다. 박 회장이 집무실에 두고 쓰던 것을 선물한 것으로, “더 좋은 피아노를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는 지난 7월 첫째 주에 모스크바에서 귀국한 이후 올 연말까지 쉴 틈이 없다. 7월에는 부천필, 인천필, 대관령국제음악제 상주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8월에는 원주시청 연주회, 대관령국제음악제 실내악 연주, 7인의 음악가들, 광복음악회, 피스 앤 피아노 페스티벌, 9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씨와 듀오 리사이틀, 독주회까지 매달 연주 일정이 빼곡하다. 매번 무대에서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힘들지 않을까.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시간만큼은 힘들지 않아요. 하지만 연주하기 위해 어딘가로 이동하는 시간은 좀 괴로울 때도 있어요. 제가 유명인은 아니잖아요. 그저 제 연주를 좋아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감사할 뿐이에요. 생각해보면 저는 참 복이 많아요.”

스모키 화장으로 멋을 낸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새빨갛게 변한 그의 눈동자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그 누구보다 응원하고 아껴준 고 박성용 회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하노버 집에 뵈젠도르퍼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있고, 원주 집에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사주신 영창 그랜드 피아노 한 대, 서울 집에 삼익 업라이트 피아노까지 총 세 대가 있어요. 뵈젠도르퍼는 박 회장님께서 집무실에 두고 레슨도 받고 하시던 피아노예요. 그 피아노로 연주했을 때 아름다운 곡이 매우 많아요. 안 어울리는 곡도 조금 있지만요. 저도 때가 되면 후배들을 마구마구 이끌어주려고 해요. 제가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이끈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클래식 애호가였다. 그는 어린 손열음씨의 연주를 들은 후 그의 후원자로 나섰다. 손열음씨는 “연주자를 후원하고 싶어 하는 분이 많지만,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박 회장님은 누구보다 그 방법을 잘 알아서 해주신 분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 음악계는 심각한 수준인 것 같아요. 유명한 교수가 어떤 학생을 추천하면 연주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 그 학생이 진짜 실력 있는 사람으로 오해받는 일도 꽤 많죠. 제가 성공해서 후배 음악가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게끔 돕고 싶어요. 제가 받은 행운을 꼭 돌려주고 싶어요. 중국이나 일본 연주자들은 유대감이 무척 강하더라고요. 그런 걸로 치면 유대인이 최고지만요.”

그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계획과 희망은 혼자 잘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혜택받은 것들을 나누고 싶어 했다. 그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바로 지휘다. 하지만 그는 “연주처럼 지휘를 전문적으로 배울 계획은 전혀 없다. 그것은 지휘를 전문적으로 배워온 분들에게 무례한 일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몇 작품을 지휘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해보고 싶다”고 한다.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손열음씨는 지휘자 성시연씨의 지휘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연주했다. 만약 그가 지휘자로 무대에 선다면 모차르트의 <레퀴엠> 등 종교 작품을 지휘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여성 지휘자 중 성시연 선생님은 최고였어요. 아무리 대단한 명성을 가진 지휘자라도, 지휘할 때 반드시 한두 부분 엇나가기 마련이거든요. 성시연 선생님과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도 매번 틀리는 부분이 있는 작품인데, 이번 연주에서는 말끔히 지나갔어요. 완벽한 지휘였어요.”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성시연씨와 협연 무대를 마친 다음 날, 원주 집에서 휴식 중인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날 공연의 감동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듯했다.

“모든 가사를 외우고, 어떤 부분에서 어떤 악기가 등장하는지를 다 외울 정도예요. 모차르트 <레퀴엠>은 제가 열렬히 사랑하는 작품이거든요. 김대진 선생님처럼 피아노도 연주하면서 지휘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 방면에 큰 관심은 없어요. 하지만 <레퀴엠>처럼 종교 작품을 지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두 팔 다 걷어붙이고 해볼 작정이에요.”

그는 자신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좋아하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살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스물다섯, 젊은 피아니스트의 앞날은 분명 지금보다 더 환해질 것이다.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신나게 세상을 누비는 그의 열정이 음악으로 쉴 새 없이 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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