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풍산개〉주역 윤계상

나는 지금 연기도 연애도 목마르다

남성 보컬 그룹 지오디가 결성돼 활동을 시작한 것이 1999년, 〈발레교습소〉의 주연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것이 2004년이다. 군 복무 2년여를 빼면 윤계상(33)에게 이제 연기 경력은 지오디 멤버로서 활동한 기간을 막 넘어섰다. 배우로 불린 시간이 가수로 호명된 시간보다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윤계상에게 의미심장하다. 때맞춘 듯 그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을 통해 팬들에게 기대 이상의 사랑을 받았고, 영화 〈풍산개〉에선 배우로서 과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진지한 면모를 평가받았다. MBC 미니시리즈 〈최고의 사랑〉이 종영하고 영화 〈풍산개〉가 개봉한 첫날인 지난 6월 23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윤계상을 만났다. 드라마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영화가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은 까닭인지 윤계상은 환한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가수 윤계상은 잊히고 배우의 이미지가 짙어졌다”는 말에 “너무 고맙다”며 “요새 부쩍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지금 꼬마들은 내가 가수였다는 것도 모른다”고도 덧붙였다.
대중의 사랑 고파서 들어간 드라마. 연기의 갈증으로 선택한 영화

“독고진(〈최고의 사랑〉 중 차승원 분)이 워낙 강한 캐릭터라 윤필주(윤계상 분)는 묻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하고 싶었기에 〈최고의 사랑〉에 출연했어요. 영화에서는 조연이 빛날 수도 있지만 드라마에선 주인공 외의 인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가 드물어요. 특히 홍 자매(〈최고의 사랑〉 각본을 쓴 홍정은-미란 자매)는 확연히 남녀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요. 어떻게 연기를 보여줄까 고민을 많이 했죠. 독고진에 비교했을 때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체적인 극 전개에 맞춰 튀지 않고 균형을 잘 맞춰가겠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인 〈최고의 사랑〉에서 윤계상이 맡은 윤필주는 자상한 성격의 한의사다. 그는 아이돌스타 출신의 몰락한 연예인 구애정(공효진 분)의 사랑을 두고 당대의 톱스타인 영화배우 독고진과 경쟁을 벌인다. 독특한 말투, 까다로운 성격의 독고진이 원색처럼 화려하고 돋보이는 인물이라면, 윤필주는 파스텔 톤의 은은함과 부드러움을 가진 남자다. 사랑하는 여인을 결국 연적에게 보내주면서도 상대를 지키는 배려심과 자상함에 열광한 여성 팬들은 ‘필주앓이’라는 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윤계상에게 환호를 보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컸고, 욕심이 많았던 때에 영화 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김기덕 감독이 썼고, 연출은 다른 감독이 하는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한번 읽어봐라’ 해서 보게 됐어요. 그리고는 완전히 반했죠. 그걸 놓치면 바보라고 생각했어요. 무조건 (출연)한다고 했어요. 전재홍 감독을 만났는데, 다짜고짜 하는 말이 ‘합시다’였어요. 저는 ‘예’ 했죠.”

전재홍 감독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연출부를 거쳐 데뷔(〈아름답다〉)한 김기덕 감독의 제자이자 후배다. 전재홍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풍산개〉는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까지 맡은 영화다. 김기덕 감독은 외부의 투자를 일절 거부한 채 자신의 영화사인 ‘김기덕필름’의 제작비 2억원으로만 영화를 만들었다. 주연배우와 스태프는 사전 계약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흥행 결과에 따라 수익을 배분받는 방식으로 참여했다. 고등학교 때 도미해 해외에서 대학까지 마친 전재홍 감독은 “지오디 때의 윤계상은 전혀 몰랐다”며 “영화 〈비스티 보이즈〉를 보고 〈풍산개〉의 주인공은 무조건 윤계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풍산개〉는 윤계상이 없었으면 절대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라고 말했다.


“배우로서는 진짜 시작인 것 같아요. 이제까지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 갈망하고 욕심 부리고 조바심을 내왔다면 지금부터는 길게 보고 긴 호흡으로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는 여유와 혜안이 생겼다는 생각이 듭니다.”

〈풍산개〉에서 윤계상은 휴전선을 넘나들며 사람과 물건을 남북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수수께끼의 남자 풍산 역을 맡았다. 국정원의 협박성 의뢰를 받은 풍산은 남측으로 망명한 북측 고위간부의 애인(김규리)을 남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죽을 고비를 함께 겪는 과정에서 남녀 간 애틋한 호감이 생긴다. 그러나 남북의 엇갈린 이해는 이들의 사랑을 비극으로 몰아간다. 극중 대사 한마디 없고 남측인지 북측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풍산은 세상의 질서에 길들여지지 않은 유령 같은 남자다. 윤계상은 사랑하는 여자와 자기만의 세계를 위해서 세상과 맞서는 한 남자의 순수한 내면을 다양한 표정과 액션으로 보여줬다.



요새 아이돌이 부럽다

“지오디는 우연처럼 찾아왔고, 정신 차리고 보니 3집을 냈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당시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르고 한 시절을 보냈다는 게 후회가 돼요. 요새 후배 가수들, 아이돌스타들을 보면 기가 막히게 잘해요. 우리때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됐어요. 우리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요새 아이돌스타들은 다 갖추고 시작하잖아요?”

윤계상은 “요새 후배 아이돌스타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춤과 노래뿐 아니라 체계적으로 영어・일본어 등 외국어 가르쳐주지, 연기 선생님 붙여주지, 예능 프로그램 출연시켜주지… 시스템이 정말 좋아졌어요. 저희 때는 그런 거 없었어요. 예능 프로그램 한 번 출연하려고 해도 PD님 앞에서 꼬박 기다려야 했죠. 김밥 먹으면서도 노래 연습할 시간이나 대기실도 없었다니까요.”

윤계상에게 ‘한류’ 나 해외에서의 ‘케이 팝(K-POP) 열풍’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가끔 팬미팅이나 행사가 있어서 외국에 나가보면 아이돌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며 “제가 활동하던 당시만 해도 가수가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는 것이 윤계상의 말이다. 이어 “지금 다시 시작한다면 처음부터 노래와 연기를 같이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친한 후배들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아이돌스타들은 있다”며 빅뱅・2NE1・비스트・씨스타 등을 꼽았다.


연기도 연애도 지금이 타이밍. 승산 없는 게임은 안 한다

〈최고의 사랑〉에서 부드러운 남자, 〈풍산개〉에서 강한 남자. 실제의 윤계상은 어느 쪽일까.

“굳이 따지자면 강한 남자 쪽이죠. 저는 절대로 남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양보하지는 않을 거예요. 드라마에서 윤필주를 연기하면서는 정말 답답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의 저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었을 거예요. 집념이 센 편이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도전하고 부딪치지만, “그렇다고 확률 제로의 게임은 안 한다”는 것이 윤계상의 말이다. 연기도 연애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보면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윤계상의 승부수는 맞아떨어진 셈이다. 출연작마다 흥행에 고전하다가 이번 드라마에선 인기를 얻었고, 영화에선 ‘배우로서 재발견’이라는 평을 들었으니 말이다.

“윤필주같이 모든 것을 갖춘 남자뿐 아니라 거지 역할을 해도 되고 한심한 ‘찌질이’도 어울리죠. 사실적인 얼굴과 사실적인 외모. 이게 배우로서의 제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윤계상은 연기에 대한 열망이 그랬듯이, 지금은 연애도 ‘바로 그때’라고 생각한다.

“연애를 안 한 지 몇 년 됐어요. 한번은 누나가 일반인을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상대는 연예인인 제가 부담스러웠나 봐요. 아무튼 빨리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연기하려면 누군가 옆에서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집에 가면 늘 썰렁한 느낌이 싫어요. 연기하면서 속상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누군가를 잡고 얘기하고 싶거든요. 친구라면 ‘그게 뭐 고민이라고 하느냐?’고 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힘들겠다’고 해주지 않겠어요? 또 지금 결혼하지 않으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위기감도 듭니다. 마음 맞는 사람 만나면 바로 결혼하고 싶어요. 제가 아이돌스타도 아니고 말이죠. 술 먹고 휘청거리던 형이나 선배들이 결혼해서 안정을 찾고 일에 대한 열정이 더 커지는 것을 보면서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죠. 지금이 저에겐 연애 타이밍이에요.”

윤계상은 오는 9월부터 MBC 시트콤 〈하이킥3-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다시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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