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한 여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슬픔이 내 노래의 원천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끝낸 신승훈

고백컨대 신승훈은 내 사춘기 시절, 감성의 동반자였다. 감미로운 슬픔이 가득한 신승훈의 목소리는 까닭 없이 울고 싶을 때 감정선의 뇌관을 툭 건드려서 왈칵 울음을 쏟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장미보다 아름답지 않지만 그보다 더 환한 미소”(〈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가진 그녀와 꿈처럼 사랑하다가 이별 후엔 “다시 태어나도 너만을 사랑”하고 “그대가 없다면 또 다른 세상을 기다리며 살 거야”(〈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라는 그의 노래는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초여름 연둣빛 잎새에 촉촉이 스며드는 보슬비를 닮은 신승훈의 목소리.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목소리로, 여전히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옆집에 사는 모범생 같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삼촌 같은 사람. 신승훈과 절친한 후배인 방송인 박경림이 신승훈을 두고 한 말이다. ‘완벽주의자’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신승훈은 과연 그랬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신승훈 측에서는 두 가지를 요구해왔다. 사전에 질문지를 보내줄 것과 사진 촬영 후 그가 고른 사진만 사용할 것.

“사전에 질문지를 보내는 건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저는 인터뷰의 방향이 음악 중심인지, 휴먼 스토리 중심인지에 따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고, 기자도 저에 대한 상식과 최근 이슈를 알고 왔으면 하는 바람에서죠.”

지난해 11월 데뷔 20주년을 맞은 신승훈은 전국 투어 콘서트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앞두고 있다. 17개 도시를 돌며 35차례의 콘서트를 마친 그는 6월 10일,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5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더 신승훈 쇼>의 피날레 무대에 선다. 그는 자신의 콘서트를 위해 단원을 직접 모집하고, 콘서트에서 부를 노래는 모두 신상우 음악감독과 함께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했다. 피날레 공연을 열흘 앞두고 신승훈을 만났다. 그는 MBC TV <위대한 탄생> 멘토이자 심사위원 역할까지 겹쳐 분주해 보였다.

신승훈의 이미지는 <위대한 탄생>을 통해 재조명됐다.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TV 음악 프로그램에 거의 출연하지 않고 외출도 잘 하지 않는 신승훈은 그간 음악인으로서의 이미지만 알려지면서 다소 경직된 이미지로 비춰졌다. 그런데 <위대한 탄생> 멘티들을 챙겨주는 면면에서 정 많고 다정다감한 평소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동고동락하다시피 하면서 가르친 멘티들을 자기 손으로 떨어뜨릴 때는 멘티들을 껴안고 함께 울었다. 카리스마 넘치고, 매섭게 단점을 지적하며 눈물을 쏙 빼는 여느 멘토들과 달리, 그는 시종일관 격려와 칭찬의 멘트만 날렸다.


“초반에 저는 존재감 없는 심사위원이었어요. 참가자들한테 계속 왕관(합격의 상징)을 줬으니까요. 가르치지 않은 아이들한테 면박을 주는 건 말이 안 돼요. 방식을 모르기 때문에 단점이 된 거거든요. 장점을 계속 부각시키면 단점이 커버돼요. 단점을 일단 두고 장점을 부각시켜서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가르치는 게 재미있어요. 멘토제가 없었다면 그 프로그램에 합류하지 않았을 거예요. 누군가를 가르치고, 내 가르침을 받고 발전해나가는 걸 보고 싶었죠.”

그는 멘티(셰인・조형우・황지환・윤건희)를 자신의 소속사로 편입시켜 정식으로 가르치는 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신승훈은 생각이 많다.

“저는 처음부터 음색을 보고 뽑았어요. 네 명 다 빼어난 음색을 가졌죠. 하지만 제가 직접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최상인지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어요. 신인을 길러낸 경험이 없는 데다 제가 직접 가르치면 요즘 유행하는 음악이 아니라 제 고집이 섞인 음악을 시킬 게 보이니까요. 그러면 음악성은 있겠지만 일류는 못 되잖아요. 그게 과연 아이들한테 좋은건지 모르겠어요.”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면서도 자신의 입장보다 아이들 편에 서서 고민해주는 신승훈. 자기중심이 분명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졌으면서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정평이 난 그는 후배들의 카운슬러로도 유명하다. 비와 이병헌, 고소영, 싸이, 류시원 등이 고민을 안고 그를 찾는다. 술자리에서 필름 한번 끊긴 적 없고, 인생 최대의 일탈이 “십 수년 전 미국에서의 무단횡단”이라고 농반으로 말하는 그는 뜬소문이 많다. ‘신승훈은 슈퍼에 갈 때도 정장을 차려입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정작 신승훈은 ‘바른생활 사나이’ 이미지가 내심 억울한가 보다.

“후배들이 방송에 나가면 제가 워낙 유하니까 ‘아, 승훈이 형은 이렇게 해도 뭐라고 안 할 거야’ 하면서 농담한 거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평소 청바지에 후드티 차림으로 다녀요. 매니저들이 옷차림에 신경 좀 쓰라고 할 정도예요.”

그를 멘토로 삼는 후배는 많다. 그렇다면 그의 멘토는 누구일까.

“조용필 선배님이 간접적인 멘토 역할을 해주시죠. 길을 제시해주시니까요. 하지만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아쉬워요. 유재하 선배님이나 김현식 선배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가까이에서 이끌어주는 분이 안 계셔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후배들에겐 그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그래서 후배들을 챙기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5년, 7년 걸려서 터득한 것을 6개월 만에 터득하게 하고, 나머지 시간엔 음악에 열정을 쏟으라고 해요.”

신승훈은 한국 대중가요계의 든든한 중심축이다. 그는 국내 음반시장이 활황이던 1990년대, 내놓는 음반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신기록을 써 왔다. 3집부터 7집까지의 음반이 모두 100만 장 이상 팔리면서 최다 연속 밀리언셀러 가수가 됐다. 10집까지 합산하면 1400만 장이 팔렸다. 그런가 하면 14주 연속 1위에 등극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년여 년간 1년, 2년마다 꾸준히 음반을 내놓은 그는 슬럼프 없는 가수로 유명하다. 그의 음악적 감성은 여전히 20년 전에 머물러 있다. 팬들은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그의 음악 속에서 아련한 첫사랑의 향수를 떠올리기도 하고, 설렘과 풋풋한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소녀적 감성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

그는 줄곧 한 여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노래해왔다. 6년간 절절하게 사랑한 여인, 그가 음악을 하는 것이 싫어 떠나간 여인. 첫사랑 그녀는 이별의 뼈아픈 고통과 함께 콸콸 솟구치는 음악적 영감을 안겨줬다. 이후 그는 5집까지 줄기차게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해왔다. 하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의 뮤즈는 사라졌다. 5집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의 곡을 쓰고, 부르면서 그녀를 완전히 떠나보냈다. 더 이상 그녀는 그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사랑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다시 태어나야만 만날 수 있는 존재” “전설 속에 묻혀버린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뮤즈가 사라지자, 노래도 안 써졌다. 가사가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오랜만에 〈두 번 헤어지는 일〉을 썼다. 우연히 첫사랑 그녀의 편지를 발견하고 한 호흡에 좔좔 나온 가사다. 사랑을 노래하는 신승훈에게 있어 사랑이란 뭘까, 물었다.

“진짜 모르겠어요. 음악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사랑이란 배려라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다른 사랑을 하지 않은 것도 일종의 배려였어요. 저와 관련된 스캔들 기사가 나면 혹시 그녀가 볼까 봐 아예 그런 여지를 만들지 않았죠. 그 친구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젠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되겠다’ 싶었지만 쉽지 않네요. 한 사람만 바라보던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신승훈 노래는 슬프다. 즐겁고 경쾌한 노래도 신승훈이 부르면 슬프다. 하지만 그 슬픔은 20년 전과 지금의 노래를 비교해보면 종류가 다르다. 20년 전에는 슬픔 그 자체, 혹은 꽉 찬 슬픔이었다면, 현재의 슬픔은 텅 빈 슬픔이자 투명한 슬픔이다.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를 추구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주관식 문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슬픈 발라드를 부른 가수는?’이라는 문제에 주저 없이 ‘신승훈’이라고 할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흔히 가수는 노래를 닮는다고 한다. 슬픈 노래를 부르면 인생도 슬퍼진다고도 한다. 노래에 그 사람의 인생 여정이, 굴곡이 그대로 묻어나는 가수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신승훈은 예외다. 그는 노래와 삶의 기조가 분리되는 가수다. ‘노래는 슬프게, 인생은 즐겁게’가 가능하다. 그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신승훈이 평소 성격이 밝고, 유머러스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음악을 할 때는 푹 이입됐다가 잘 빠져나온다”며 “오랜 시간이 걸려 터득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인생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평탄하게 자란 그가 인생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겠다고 한다. 스스로 경험의 한계에 옭아매는 말이 아닐까. 그는 대전에서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두 명의 누나와 남동생과 함께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대학등록금을 벌기 위해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 시절부터 그는 이미 스타였다. 6년간 라이브 카페 가수로 활동하면서 받은 팬레터가 7000여 통에 이른다. 그의 음악성은 부모에게 물려받았다. 그의 부모는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고, 누나들도 어렸을 적 동요대회를 휩쓸었다. 그의 부모는 신승훈을 보러, 손자들을 보러 2주마다 서울 나들이를 한다. 그에게 물었다. 경험의 한계에서 오는 콤플렉스는 없는지.

“간접경험을 엄청 많이 해요. 영화도 많이 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많이 듣죠. 영화는 로맨스부터 공포, 독립, 단편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봐요. 또 어떤 자리에서든 아무리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끝까지 들어요. 참고 듣다 보면 얻는 게 있죠.”

신승훈이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진정성’이다. “요즘 너무 바쁘지만 나의 ‘진정성’이 팬들에게 통하는 것 같아서 전혀 힘들지 않다” “광주 게릴라 콘서트 때 다른 가수들은 대개 서너 곡을 하는데, 내가 1시간 20분 동안 콘서트를 한 것은 팬들이 나의 ‘진정성’을 알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5집까지 첫사랑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진정성’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고. 이런 말도 했다. “데뷔 21년차의 책임감은 진정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데뷔 이후 줄곧 정상을 지켜온 신승훈. 그에게는 커다란 숙제가 남았다. ‘대중이 좋아하는 명곡’을 쓰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사랑〉이 명곡이라고 하는데, 따라 부르기 어려우면 명곡이 아니죠. 대중의 감성에 두루 호소하면서도 어느 자리에서나 어울리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처럼.”

신승훈은 묘비명도 생각해뒀다.

“노래를 할 줄 알았던 가수, 여기 묻히다.”

그는 부연 설명했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노래를 할 줄 알았던 가수’ 예요.”

사진 : 김선아
  • 2011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