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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험한 상견례〉여주인공 이시영

복싱 챔피언요? 연기하면서 기른 오기와 끈기 덕분이지요

“촬영 중간에 시합이 잡혔어요. 만약 알았다면 다들 막았지. 촬영 중에 ‘눈탱이 밤탱이’ 되면 못하잖아. 그러니까 숨기고 나갔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타나 ‘선배님! 오빠!’ 부르며 불러 모았지. 박수치고 어찌나 신나하던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탄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매력 있던지. 이 여인이 만만한 여인이 아니구나. 독특한, 누구도 막고 붙들 수 없는 면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했죠. 누가 보면 ‘미친년’일 수도 있지, 영화 흥행 전망이 아슬아슬한데 말이에요. 결과적으로는 수억 원 이상의 홍보효과가 있었지만 말이죠.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불 지르고 싶은 거 하다 보면 작은 바람들도 채워지지 않을까 해요. 시영이도 안티(팬)들 다 없어졌잖아요. 일부러 없애려고 했으면 없어졌겠냐고요.”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 함께 출연한 선배 배우 박철민이 전한 말이다. 촬영장에 메달을 목에 걸고 나타나 뛸 듯 했다던 그 여인이 바로 배우 이시영(29)이다. 이시영은 전국단위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우승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사회인 복싱대회인 KBI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 48㎏급에 출전해 우승했으며, 지난 2월 서울지역 아마복싱대회인 제47회 신인아마추어복싱전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지난 3월 17일 폐막한 제7회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며 깜짝 우승컵을 차지했다. 20대의 젊은 미녀배우가 부상의 위험이 큰 사각의 정글에 오른 것만으로도 깜짝 놀랄 일인데 출전하는 대회마다 승승장구하니 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여기에 더해 송새벽과 남녀 주연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영화 〈위험한 상견례〉는 지난 4월 1일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렸다. 겹경사다. 그런데 복싱대회 우승 직후 만난 이시영은 걱정부터 앞세웠다.


“겁나고 무섭고 조심스러워요. 어제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팬들의 폭발적인 관심이) 사실 적응도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요. 대회는 지난해부터 몇 번 나갔는데 갑작스레 반응이 오니 너무 놀랐거든요. 좋게 말씀들 해주시니까 기분 좋은데 창피해요. 많은 분들이 칭찬해주시는 것은 (복싱을) 몇 달 한 것 치고는 잘한다는 거지 절대적인 기준으로 딱 놓고 봤을 때는 잘하는 게 아니거든요. 너무 부풀려지는 것 같아 기존 선수들한테 너무 죄송해요. 경기 경험 없는 신인일 뿐이고 직업이 배우인데. ‘초짜’선수인데 배우라고 전국체전이다 런던올림픽이다 이런 기사 나오니까 선수들이 볼 때는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이시영은 특히 소속 체육관 관장 홍수환 씨가 우승 직후 “전국체전은 물론, 런던올림픽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면구스러워했다. 영화 개봉 직전 가진 일련의 인터뷰에서 작품보다 복싱에 대해 질문이 쇄도하자 이시영은 일부 일정을 취소할 정도로 부담스러워했다. 이시영이 복싱에 입문한 것은 드라마 때문이었다. 여성 복서를 주인공으로 한 TV 단막극에 캐스팅돼 한창 준비하던 중 작품은 무산됐지만 이시영은 글러브를 벗지 않았다.

“처음 체육관에 갔을 때는 몸살을 앓았어요. 아프고 힘들어 연습에 가지 않은 날도 있었죠. 줄넘기 3분 하는 것도 싫었죠. 그러다가 문득 제 자신에게 회의가 들더라고요. 이런 것도 못하나. 이런 것도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겠다. 이걸 이겨내면 다른 것도 잘할 수 있겠지. 어떤 운동이든 힘든 기간 지나면 재미있잖아요? 적응이 되니 복싱이 좋아졌죠.”

어릴 적에는 힘들면 금방 관두곤 했는데 연기하면서 생긴 오기와 끈기도 복싱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아닌 게 아니라 이시영은 연예계 입문 뒤 비교적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발을 들여놓기까지가 힘들었다. ‘4전5기’의 근성으로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릴 적부터 연예인의 꿈을 키워왔던 이시영은 대학 (동덕여대 의상디자인) 졸업 후 몇 년간 줄기차게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광고든 기획사든 족족 낙방의 쓴잔을 마셨다. 안 된다고 할수록 배우에 대한 꿈은 간절해져만 갔다.


‘4전5기’ 근성으로 끊임없이 도전해 만 스물 여섯에 데뷔

이시영은 만 스물 여섯이던 2008년에야 케이블TV의 한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처음 내밀었으며 이듬해에야 KBS 〈바람의 나라〉로 지상파에 데뷔했다. MBC 오락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 중리얼리티 쇼인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전진과 가상 부부를 연기한 것이 도약대가 됐고,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주목받았다. KBS 드라마 〈부자의 탄생〉에서는 힐튼가의 상속인이자 할리우드의 가십 걸인 패리스 힐튼을 방불케 하는 천방지축 안하무인 재벌집 딸 역을 맡아 연기 폭을 넓혔다. 영화로는 옴니버스 영화인 〈오감도〉와 〈홍길동의 후예〉에서의 이범수 상대역을 거쳐 〈위험한 상견례〉로 2년여 만에 주연급 여배우로 떴다. 차기작은 김주혁·이윤지와 공연하는 〈커플즈〉다. 그 한편으로는 KBS 연예정보 프로그램 〈연예가중계〉에서 신현준과 함께 근 1년간 진행하고 있다. 출발선에 서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견뎠지만 트랙 위에서의 속도는 남보다 빨랐다.

“하다가 말면 마음이 안 편해요. 연기도 복싱도 이왕 시작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만큼 성취감도 더 크고요. 다른 사람들은 보통 데뷔 후 무명기간이 길지만 전 스물 한둘에 시작해서 4~5년간 준비했고 스물 일곱에서야 본격적으로 데뷔했지만 작품 많이 했고 쉬지 않았어요. 운이 좋았죠. 무명시절이 많아도 다 연기 경력이고 차근차근 올라가서 큰 역할을 맡게 된 배우의 연기력과는 다르겠죠. 전 단시간에 주연까지 맡게 됐으니. 그래서 짧은 경력에서 오는 연기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큰 숙제예요. 몇 년 지나고 작품 계속하면 연기가 좋아지겠지만 그 기간을 최소화하는 게 목표죠. 더 욕심내야겠죠. 연기력 논란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제 스스로 감수하고 해결해가야 하리라고 생각해요.”

영화 〈위험한 상견례〉는 지역감정을 소재로 한 코미디영화. 1980년대 말을 배경으로 전라도 사윗감만은 절대 안 된다는 고루한 경상도 집안의 금지옥엽 막내딸을 신부로 맞기 위한 전라도 청년의 결혼 대작전을 그린 작품이다. 〈방자전〉 〈부당거래〉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에서 어눌한 말투의 개성적인 희극 연기를 보여준 송새벽이 남자주인공으로 출연했고, 이시영은 그를 사랑하는 밝고 씩씩한 ‘경상도 아가씨’ 역을 맡았다. 고향은 충북 청원이지만 가수 메이비를 선생님 삼아 두 달여간 열심히 경상도 사투리를 배웠다. 영화에서 구사한 사투리는 ‘초보’티가 나지 않고, 그늘 없는 경쾌한 여성역할도 썩 잘 해냈다. 김수미·백윤식·김응수 등 연배가 한참 높아 ‘선생님’급인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발랄한 세대의 표정을 보여준다. “‘다홍’(극중 여주인공)은 순수해서 대담할 수 있는 캐릭터지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밝은 친구예요. 김진영 감독님이 제가 실제로도 밝고 건강할 것 같다며 출연을 제안해주셨어요.”


이시영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컸고 이모 삼촌이 9명, 어머니까지 10남매인 외가를 보면서 자랐다. 1남1녀로 오빠와는 여덟 살 차이. 유복한 가정, 대가족과 함께 막내딸로 큰 이시영은 감독 말마따나 실제로도 영화에서처럼 씩씩하고 건강하다. 복싱대회 우승으로 한층 치솟은 이시영의 인기는 누가 뭐라 하든 하고 싶은 일은 즐겁게 도전하는 젊은 세대에 보내는 환호일 것이다.

이시영은 “복싱대회에 나간 것은 다만 이기거나 우승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며 “승패를 떠난 성취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복싱은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이고 그 순간만큼은 철저하게 나를 이겨내야 하는 시간”이라고 의젓하게 덧붙였다. 카메라 앞이라고,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이라고 다를까.

사진 : 김선아
  • 201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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