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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류 열풍 일으키는 젊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올해 스물셋,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는 전형적인 음악 신동의 수순을 밟았다. 어린 시절 특별한 재능을 발견했고, 영재 전형으로 열일곱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으며, 순수 국내파로 세계 유명 콩쿠르를 휩쓸며 당당히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재능에만 의지한 유형이 아니다. 죽을 만큼 힘들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노력파다. 부러진 손가락의 깁스를 잘라내고 콩쿠르에 참가한 적도 있고, 눈만 뜨면 연습을 거듭하며 몇 날 며칠을 보냈는지도 모르게 지낸 적도 많았다. 힘들게 차곡차곡 쌓아나간 그의 실력은 마치 폭죽이 터지듯 지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참가한 8개의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분출됐다. 현재 그는 연간 50회 이상 공연을 하는 일본을 비롯해 유럽・미주・아시아의 크고 작은 무대에 선다. 때문에 고국 무대에는 자주 오르지 못한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호암아트홀에서 첫 독주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났다. 그 후에도 그의 행보는 바쁘다. 중국 광저우에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 폐막 연주회에 아시아의 클래식 연주자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았고, 내년 초에는 일본에서 데뷔 앨범이 발매된다. 음악을 시작한 이후 어느 때보다 열정에 차 있는 그의 목표는 바이올린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가 되는 것이다.
신현수는 왼쪽 어깨에 바이올린을 메고, 기자와 만나기로 한 서울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늦은 시간이었는데, 아직 저녁을 못 먹었다고 한다. 그의 한국 일정을 돕는 김소연 씨가 미리 준비해둔 초콜릿 빵을 건네자 그는 아이처럼 반기며 요기를 했다. 갑작스레 날씨가 추워져 실내에 히터를 틀고 있었는데, “잠시 창문을 열어도 괜찮습니까?”라고 양해를 구한다. 바이올린을 두기에 너무 덥기 때문이란다. 연주할 때나 연주하지 않을 때나 그는 악기를 가장 먼저 챙기는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날 그가 가져온 악기는 1794년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서 만들어진 주세페 과다니니로, ‘남성적인 소리’를 낸다는 그의 보물 중 하나다.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다니니 같은 악기를 스스로 구입하는 연주자는 드뭅니다. 몇 십억 원을 훌쩍 넘기는 악기를 살 수 있는 연주자는 몇 안 되니까요. 저는 정말 운이 좋아요. 과다니니뿐 아니라 얼마 전 스트라디바리우스도 후원받게 되었거든요.”

지금까지 그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후원으로 과다니니를 연주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중 음량이 가장 풍부하다는 1710년산 캄포펠리체를 한국인 최초로 니폰뮤직파운데이션으로부터 후원받았다. 두 개의 명기(名器)를 모두 후원받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음악가가 된 것이다. 연주자로서 그의 실력과 가능성을 증명해주는 예다.

“지난 10월에는 니폰뮤직파운데이션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후원받은 연주자들끼리 연주회를 했어요.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작은 홀에서 열대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한자리에 모이는 일도 흔하지 않지만, 그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음색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었어요.”

현악기 연주자에게 악기는 연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신현수는 “어릴 때 좋은 악기를 접할 길이 없어 어려운 적이 많았어요.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이에 덧붙여 그는 연주자로서의 책임감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한다.

그가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잡은 것은 언니 때문이었다. 언니가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하겠다고 엄마를 졸랐다는 것. 언니 신아라(27) 씨도 바이올리니스트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김남윤 교수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루마니아 국제 음악 콩쿠르 2위(2009년), 일본 센다이 국제 콩쿠르 3위(2007년),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 콩쿠르 2위(2006년) 등 국제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언니는 실내악에 뜻이 있는데 저는 독주가 더 좋아요”라고 신현수는 말한다. 서로 음악적 취향은 다르지만, 그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더없이 든든하다고 한다. 집에 머무를 때는 언니와 음악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다고. 서로가 연습하는 소리를 듣고 “그 부분은 다른 방법으로 해석해보라” 또는 “음색을 조금 바꿔보라” 등 툭툭 내던지는 식이란다. 하지만 늘 붙어 지내는 가족의 조언만큼 날카로운 시선도 없는 것 같다는 그는 언니 신아라 씨와 실내악 연주를 할 때도 무척 즐겁다고 한다.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저희 집안에 유명한 음악가나 예술가가 있느냐는 것이에요. 사실은 언니와 제가 집안 최초의 음악인이거든요.”


콩쿠르 스타가 되기까지

신현수는 전주 출신이다. 유치원에서 배우기 시작한 바이올린을 계속 연마, 열 살 때 한국일보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1년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으며 대한민국 청소년 콩쿠르 1위와 대상을 받았다. 이후 전주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곧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전형으로 입학해 그가 ‘두 번째 어머니’라 부르는 김남윤 교수의 제자가 된다. 김남윤 교수는 학생들에게 굉장히 무섭고 호되게 가르치기로 유명한데, 그 또한 김 교수에게 수없이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걸음걸이와 웃음소리, 화장법에서부터 음악과 무대 매너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지도받았다.

“선생님은 제가 정말 닮고 싶은 분이세요. 음악에 대한 열정, 또 그것을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전해주시려는 모습은 누구라도 존경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는 김남윤 교수의 지도로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고, 국제 콩쿠르에 나갈 때마다 상을 거머쥐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국내파로서 거둔 성과이기에 더 주목을 받았다. 영국 예후디 메뉴인 국제 콩쿠르 주니어 부문 2위(2001년), 미국 요한슨 국제 청소년 현악 콩쿠르 1위(2002년), 이탈리아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3위(2004년), 스위스 티보바가 콩쿠르 3위(2005년), 핀란드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 3위(2005년), 독일 하노버 국제 콩쿠르 2위 및 청중상(2006년),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5위(2007년),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우승 및 4관왕(2008년)을 차지했다. 그는 8년 동안 매년 국제 콩쿠르에 참가해 연이어 수상했다. 이는 누가 보아도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얻기 힘든 결과다. 그에게 콩쿠르는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더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렸을 때 공놀이를 하다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깁스를 했어요. 당시 열심히 준비했던 콩쿠르가 있었는데,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죠. 그때 엄마가 의사 선생님에게 깁스를 풀어도 되느냐고 물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지금 깁스를 풀면 손가락이 휠 수도 있다며 말리셨어요. 하지만 엄마와 저는 깁스를 풀고 콩쿠르에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문에 네 번째 손가락은 조금 휘었고요.”

콩쿠르를 앞두고 있을 때 그는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밥 먹을 때만 빼고 연습을 거듭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내며 다듬어진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는 게 무척 매력적이라고 한다. 롱티보 콩쿠르 이후에는 특별히 다른 콩쿠르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도전해보고 싶은 콩쿠르가 생기면 참가할 생각”이라고 한다.

“보통 콩쿠르에서 1등은 맨 마지막에 발표하는데, 제가 우승한 해 롱티보 콩쿠르는 1등을 제일 먼저 불렀어요. 저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 ‘마지막 등수를 했구나’ 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통역을 해줘서 우승 사실을 알았죠. 수상자로 제 이름이 불릴 때는 정말 기쁘고, 흥분돼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미국에서도 한류 열풍 일으키고 싶어

신현수의 키는 174cm다. 기자를 만난 날 그는 10cm 정도 굽의 소위 킬힐을 신었는데, 그 때문에 더 크고 늘씬해 보였다. 외모도 패션모델이나 배우못지않다. 연주 실력에 외모까지 출중한 그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먼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롱티보 콩쿠르 우승 직후 일본 활동에 가속도가 붙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클래식 스타를 굉장히 좋아하는 분위기예요.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일본 언론과 가장 많은 인터뷰를 했을 정도니까요. 10년 전부터 일본 이시카와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해왔는데, 그때부터 저를 눈여겨보셨던 일본 아스펜 기획사 대표님의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어요.”

아스펜 기획사는 “신현수는 지금까지 일본 연주자들에게서 보지 못한 열정을 가진 연주자다. 그 모습이 일본 관객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줄 것”이라며 그와 3년 계약을 맺었다. 신현수는 도쿄・오사카 등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연주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매번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하고 긴장이 된다”고 말한다. 그의 연주는 대부분 매진될 정도로 인기몰이 중.

“연주회마다 찾아오는 남성팬들 중 제가 좋아하는 쿠키도 사다 주시고, 힘내라는 메시지도 주시고, 제 사진을 크게 현상해 주시기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감사할 따름이지요.”

서울에서 이번 독주회는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세계 각국을 돌며 연주하는데도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독주 무대를 선보인 적이 없어 항상 마음에 걸렸다 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그가 좋아하는 작품인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제2번〉, 비에니아프스키의 〈화려한 폴로네즈 제1번〉,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9번〉 ‘크로이처’를 연주했다. 비에니아프스키는 연말 발매되는 일본 데뷔 앨범에도 담았다.

“평소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데요,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는 엷은 아메리카노 반 잔 정도를 꼭 마셔요. 이번 연주회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지만, 보통 연주회를 앞두고는 함께 연주하는 사람과 밥을 자주 먹으려고 해요. 서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려고요.”

그의 이번 데뷔 앨범은 일본의 대형 기획사인 에이벡스에서 맡았다. 보아・슈퍼주니어・동방신기 등의 일본 활동도 담당하는 곳이다. 그는 “앨범 재킷 촬영하는 날 깜짝 놀랐어요. 메이크업을 담당한 사람은 일본의 유명 연예인인 아무로 나미에의 전속 아티스트였고, 의상 또한 일본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 착용한 보석은 55억 원 상당의 고가 브랜드 제품이었어요”라며 신기해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사진 촬영을 시작하자 신현수는 좀 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돌아가 강렬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바이올린을 들고 포즈를 잡는 동안에도, 그는 지속적으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실내 온도를 세심하게 조절했다. 그는 기자에게 “미국에서도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싶다”고 소원을 말하며 언제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1년, 아니 2년이요. 지금은 제가 완벽히 준비된 상태는 아니라서요. 2년 정도 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세계를 매혹시킨 한국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인 정경화, 김지연, 사라장의 뒤를 그가 잇지 않을까? 기자의 생각을 말했더니 그가 손을 꽉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게요”

사진 : 김선아
  • 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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