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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동혁

쇼팽의 해, 쇼팽을 가장 잘 연주하는 젊은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클래식계에서 하나의 아이콘이다. 누나 부대를 몰고 다니는 스타이자, 공연 후 인기 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성을 이끌어낸다. 임동혁에게 2010년은 특별한 해다.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쇼팽 스페셜리스트’로서 쏟아지는 관심도 그렇거니와 개인적으로 가족 구성원에 큰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갑작스레 어머니를 여읜 그는 올해 6월 13일 결혼한다. 6월 말,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오닐이 이끄는 앙상블 ‘디토’ 페스티벌에서 두 차례 공연할 그를 만났다.
임동혁은 가냘프고 희었다. 무대에서 뿜어내는 섬세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는 그대로 전해졌지만, 생각보다 훨씬 깡말랐다. 47kg의 체구 어디에서 그런 괴력이 뿜어 나오는 것일까. 올해 나이 스물여섯, 미소년과 성인 남자의 경계에 서 있는 그는 태도와 표정에 따라 이 둘을 넘나들었다. 새 가족에 대한 포부나 향후 음악세계에 대한 지향점을 말할 때의 확신에 찬 말투는 그를 책임감 강한 남자로 보이게 했고, 희고 길고 앙상한 손가락은 그에게 비현실적인 아우라를 입히면서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보이게 했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에는 그가 네 살 위의 피아니스트 형 임동민과 등장하는데, 형제를 있는 그대로 그리니 말 그대로 만화 주인공이다.

임동혁은 ‘신동’의 꼬리표를 서서히 떼고 거장 반열에 오르고 있다.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심사위원의 판정에 불복해 수상 거부), 2005년 쇼팽 콩쿠르 3위, 2007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4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3대 콩쿠르를 석권한 그는 그를 길러낸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의 명교수 레프 나우모프(Lev Naumov)로부터 “황금 손을 가졌다”는 평을 들었다. 그 후 그는 2001년 EMI클래식 음반 사상 최연소 음반 발매자가 됐다. 그는 세 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쇼팽, 슈베르트, 라벨 피아노 작품집〉으로 ‘황금 디아파종상’을, 〈쇼팽 리사이틀〉로 프랑스의 ‘쇼크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냈다.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적극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인터뷰 중 임동혁은 ‘산만한 천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산만한 천재들 대부분이 그렇듯 말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말을 더듬기도 했다. 뷰티숍에 들어서자마자 가요를 흥얼거리더니 틈만 나면 두리번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가요를 즐겨 들어 한국의 대중가수를 줄줄이 꿰고, 드라마에 빠지면 잠도 안 자고 본다고 한다. 가수 이은미의 노래와 이적의 ‘다행이다’와 김범수의 ‘남과 여’를 좋아하고, 원더걸스의 ‘노바디’도 가끔 흥얼거린단다. 그의 답변은 솔직하고 거침없다. 에두르거나 숙고하는 법 없이, 그 순간 생각나는 대로 즉흥적으로 답했다.

임동혁이 걸어온 길은 전형적인 음악 신동에 가깝다. 7세에 형 임동민을 따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4개월 만에 음악 춘추 콩쿠르에 출전해 초등부 1학년 부문 2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에 형제는 같은 콩쿠르에서 나란히 1위를 했다. 형제의 재능을 알아본 그의 부모는 형제를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해주었다. 당시 삼성물산 자금부장이던 그의 아버지는 해외영업부에 지원, 모스크바에 발령받으면서 형제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다. 아버지는 형 임동민을, 어머니는 그를 따라다녔다. 그가 이 자리까지 온 데는 어머니 박현욱 씨의 공이 크다. 박씨는 형제가 각각의 방에서 연습하는 동안 거실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연주를 들었다 한다. 박씨는 형제의 쇼팽 콩쿠르 입상 후 가진 〈톱클래스〉와의 인터뷰에서 “두 아들이 피아노를 시작한 이후 한번도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제 내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임동혁에게 믿기지 않는 충격이었다.

“엄마의 뒷바라지가 없었으면 그렇게 미친 듯이 연습하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의 힘이 컸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건 잊어버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처음보다 많이 안정됐지만 지금도 사실 괜찮지 않아요. 엄마가 하루에도 열 번씩 생각나고 문득문득 떠올라요. 손자를 안고 계시는 할머니를 볼 때도 떠오르죠. ‘나도 저런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하면서. 엄마는 아이가 생기면 무조건 키워주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거든요.”


6월에 결혼해요

그는 2년마다 국내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올해 2월 말 리사이틀에서 그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어머니에게 헌정했다. 폐부 깊숙이 찌르는, 통렬한 아픔이 전해지는 연주였다. 앙코르 때 그는 같은 곡을 다시 연주한 후 눈물을 훔쳤다. “예술의전당 공연이 있을 때마다 엄마가 객석에서 지켜봐주셨는데, 처음으로 엄마가 안 계셨어요. ‘아, 진짜 안 계시는구나’ 하는 부재감이 실감 났죠”라고 말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양가감정이 있다. 자식들에게 올인한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 그리고 한편으론 지나친 집착으로 인한 부담감. 그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냉정하게 생각해도 엄마의 집착과 기대는 좀 과하신 면이 있었다”며 “엄마의 기대치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엄마의 기준에서 나는 늘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06년부터 뉴욕에서 혼자 살고 있다. 사람 좋아하고, 외로움 많이 타고, 예민하면서 불안정한 감성을 지닌 그는 혼자가 되자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더 이상 출전할 콩쿠르가 없다는 데서 오는 목표 상실감이 컸고, 관심 분야가 다양해 음악 하나로만 채워지지 않는 생에 대한 갈급 또한 컸다. 그는 “피아노를 안하고 변호사 같은 걸 했어도 잘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생활은 흐트러졌다. 4년째 하루 두 끼만 먹고 있고, 아침에 스스로 일찍 일어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혼자 살면서 자유가 주어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외박해도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편하긴 했지만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전까지는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한 여자와 어떻게 50년을 살 수 있어?’ 하면서요. 하지만 여자 친구를 만나고 마음이 바뀌었죠. 여자친구는 나의 미완성적인 부분을 완성시켜줄 수 있는 반쪽이에요.”


한 살 연하인 예비 신부 김혜전 씨는 뉴욕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 목사님의 소개로 2년 반 전에 만났는데,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특히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순수한 면이 강하게 끌렸다”고. 인터뷰 중에도 예비 신부에게 수시로 전화해 진행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 임동혁은 안정적인 가정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정상적이고 평온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자식도 두 명 정도 낳고 싶고요. 연주장에 아이들을 안고 다녀도 좋을 것 같아요. 집에 들어왔을 때 아이가 ‘아빠!’ 하면서 안기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연습인데, 생활이 안정되면 더 많은 연습을 하고, 더 좋은 연주가 나올 것 같아요.”

부부는 결혼식 다음 날 신혼여행도 못 가고 바로 뉴욕으로 간다. 살 집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시 1주일 후 귀국해 6월 말 있을 디토 페스티벌 공연에 합류한다. 현실적으로 연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연습 시간이 부족해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물론 연습을 많이 하면 건반이 빵처럼 느껴지겠죠. 친숙하게 주무르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열심히 할 때 쌓아둔 게 있어서 많이 불안하지 않아요. 그게 바로 타고난 부분이겠죠. 손이 타고났어요. 연주하기 전날 손을 대충 풀고 다음 날 연주해도 크게 지장이 없어요.”

그는 ‘재능’ ‘타고남’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그가 스스로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다. 더 채워야 할 부분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성실성’이라고 답한다. “돌이켜보면 노력보다는 재능에 의지해 온 것 같다”며 “음악에 더 미치고 싶다”고 한다. 계명대 교수로 재직 중인 형 임동민이 음악만 파고드는 성실한 스타일이라면, 임동혁은 이리저리 관심 분야가 다양하다. 최근엔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를 재미있게 봤고, 매주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와 〈개그 콘서트〉는 꼭 챙겨 본다고 한다. 요리에도 능해 친구들을 초대해 종종 요리해주는데, 아구찜을 특히 잘한다고 자랑한다.

“형은 음악에 더 푹 빠져 있어요. 항상 클래식만 듣고 음악만 생각하죠. 연습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저보다 더 완벽주의자예요. 저는 즉흥적이고 감성적이죠.”

임동혁의 연주는 꿈결처럼 부드럽고, 대가의 연주처럼 편안하다. 길고 흰 손가락으로 건반을 타는 그를 보면 피아노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선율을 타면서 때로는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내리꽂는 그의 연주는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절정의 경지를 보여준다. 특히 쇼팽을 연주하는 그는 종종 음악 애호가들에게 쇼팽의 환생설을 운운하게 한다. 임동혁 스스로도 쇼팽 곡을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자신 있다”고 한다. 그에게 쇼팽의 매력을 물었다.

“쇼팽 하면 많은 분들이 달콤하고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물론 초기의 곡을 할 때만 해도 순수하고 달콤했죠. 하지만 오프스(Opus) 60이 넘는 곡들에서는 삶의 질곡이 느껴져요.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하죠. 사람의 중추신경을 깊숙이 터치하는 매력이 있어요.”

그에게 마지막으로 “음악사에 어떤 연주자로 남고 싶은가” 물었다. 그는 짧게 답했다.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

사진 : 김선아
헤어 : 치후 원장(W 퓨리피)

‘클래식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앙상블 디토’의 시즌 2 멤버였던 임동혁은 올해로 두 번째 열리는 ‘2010 디토 페스티벌’에 디토 프렌즈로 합류한다.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숑과 듀오 공연을, 비올리니스트 리처드 용재오닐과 디토 오디세이를 공연할 예정이다. 고티에 카푸숑은 형제 연주자로, 형 르노 카푸숑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다. 이번 공연에서도 임동혁은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임동혁&고티에 카푸숑 듀오 6/26(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패밀리 콘서트 디토 오디세이 7/3(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문의 크레디아(02-318-4301)
  • 201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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