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음반 3집 낸 김윤아

제 음악은 언제나 팬들의 기대를 배반할 겁니다

김윤아가 4월 말, 6년 만에 음반을 냈다. ‘헤이헤이헤이’ ‘밀랍천사’ ‘매직 카펫 라이드’ 등의 곡으로 유명한 록밴드 ‘자우림’의 여성 보컬로서가 아니다. 솔로 여가수 김윤아로서다. 결혼과 출산 후 처음 내놓은 그의 솔로 앨범은 어떤 빛깔일까? 고통 속에서 걸작을 끌어올리는 게 예술가의 천형일진대, 아내와 엄마로서의 일상에 젖다 보면 좋은 작품과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지만 기우였다. 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가사와 이에 어울리는 단조의 리듬은 처연하고 아름답다. 기쁨은 더 기쁘게, 슬픔은 더 슬프게, 특유의 허무는 한층 더 심오하다. 결과적으로 결혼과 출산이라는 경험이 그의 감성을 더욱 섬세하고 풍요롭게 만든 셈이다.
김윤아는 더 예뻐졌다. 우윳빛 피부와 길쭉한 팔다리를 보면 아기 엄마라는 표현이 무색하고, 그윽해진 눈망울은 원숙미를 더했다. 3집 타이틀인 <315360>은 김윤아가 살아온 시간이다. 36년×365일×24시간. 그는 “살아온 시간과 관련된 숫자를 고르고 싶었다”며 경우의 수를 시도해본 결과 가장 입에 잘 붙는 숫자를 골랐다고 한다.

그는 솔로 앨범을 낼 때마다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프로듀싱했는데, 3집도 마찬가지다. 3집 앨범도 기존 솔로 앨범처럼 테마가 변화무쌍하다. 존재의 속성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생의 고통과 환희,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타이틀곡이자 사기당한 동생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는 ‘Going Home’에서는 쓸쓸하면서도 따스함이 느껴지고, 도쿄에서의 허무와 외로움을 그린 ‘도쿄블루스’에서는 재즈풍의 나른한 섹시미가, 고양이를 통해 생명의 태어남과 죽음을 말하는 ‘Cat Song’에서는 앙증맞으면서도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사랑에 대한 테마 역시 빠지지 않았는데, 그가 말하는 사랑은 한때 지나가는 사랑이 아닌 사랑의 속성 자체다. 2집 ‘봄날은 간다’와 ‘사랑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에서도 그랬듯이 이번 앨범에 있는 ‘얼음공주’와 ‘가만히 두세요’에서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이 없는 차가운 현실과 상처받기 싫어 얼음 속에 갇혀 있는 공주를 다룬다.

“3집의 모토는 ‘아름다움’이에요. 2집 앨범이 워낙 좋았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말이에요(웃음). 그래서 최소한 2집 앨범보다 좋지 않으면 스스로 납득이 안 될 것 같았는데, 다 만들고 나서 들어봤더니 납득이 됐어요. ‘2집을 만든 김윤아보다 3집의 김윤아가 좀 더 언니가 됐구나’ 하고 느꼈죠.”

그에게 결혼 후 가장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묻자,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결혼 후 작업실을 집 안에 꾸몄다. 31개월 된 아들 민재가 잠든 틈틈이 곡을 만들었다 한다. 작업하다가도 민재가 울면 쪼르르 달려가야 했는데, 처음에는 이런 작업 환경이 힘들었지만 적응이 되니 괜찮더란다.

“결혼해서 생활이 안온해지면 음악가로서의 열정이 사그라지는 건 아니냐고요? 그런 걱정은 해본 적 없어요. 시인이나 음악가를 만드는 건 일상이 아니라 피니까요. 불행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 다 시인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일상의 변화는 크게 상관없는 것 같고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니까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걱정이에요.”

김윤아는 4년 전 VJ 경력이 있는 서울대 치대 출신의 치과의사 김형규 씨와 결혼했다. 그의 결혼 발표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혼성그룹 최초의 여성 보컬이자 실력파 싱어송 라이터인 그는 인디 음악계의 신화적인 존재였다. 여신과도 같은 아우라를 가진 동시에 결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중성적 캐릭터이기도 했다.

“저도 결혼할 줄 몰랐어요(웃음). 결혼할 계획도 없었고, 특히 아이 낳을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남편과 친구로 안 지는 오래됐어요. 남편의 전 여자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상담해줄 만큼 친했는데, 남편은 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라고요(웃음). 처음엔 믿음이 안 갔는데, 진지하게 사귄 다음에는 마음이 바뀌었어요. 저도, 남편도 선을 허락한 사람에게 보이는 얼굴이 따로 있더라고요. 그 얼굴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확신이 섰어요. 남편과 저는 닮은 점이 많아요. 서로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간혹 부부는 TV 버라이어티쇼에 동반 출연하는데, 그때마다 남편 김형규 씨는 아내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과감하고 솔직하게 드러냈다. 김윤아가 “예나 지금이나 (남편의) 애정 표현의 강도는 여전하다”고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순간 김형규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한다고.

김윤아는 스스로 “100% 자신이 없으면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그는 엄마가 되기 위한 공부를 치밀하게 했다 한다. 육아 관련 책도 많이 읽었는데, 일본인 산부인과 의사가 쓴 《아이는 전생의 일을 기억한다》는 책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아들 민재에게는 매일 자장가를 메들리로 불러주는데, 민재는 자장가를 따라 부르며 잠든다고 한다. 그는 “민재가 기타를 뚱땅거리며 제멋대로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요. 녹음을 많이 해뒀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조용조용 말했다. 감기 탓도 있었지만, 자우림의 김윤아와 솔로가수 김윤아는 완전히 딴판이다. 솔로로 활동할 때는 확실히 여성적인 자아가 된다고 한다.

“솔로로 활동할 때는 잠시 어른이 돼요. 혼자서 끌고 가야 하니까요. 팀 작업을 할 때는 서클 활동하는 것 같아요. 14년째 같은 느낌이에요. 또 솔로로 작업할 때는 제가 여자라는 의식을 하지만, 팀 작업할 때는 무성(無性) 생물이 돼요. 남성도 여성도 아니고 연령도 없는 존재 말이에요. 그리고 굉장히 하이(High)해지죠.”

김윤아의 음색은 카멜레온 같다. 다양한 테마만큼이나 다양한 음색이 나온다. 때론 몽환적인 섹시함이, 때론 중성적인 보이시함이, 때론 소녀 같은 발랄함이 발현된다. 발성법 자체도 달라 하나의 음반 안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그는 “노래하는 일은 3분 동안 연기하는 것과 같아요. 3분 동안 노래 분위기에 맞는 배역에 몰입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음악을 통해 세상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김윤아는 성신여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음대나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전공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아동심리치료사가 되고 싶어 심리학과를 택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대학 재학 중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한다. 그러던 중 영화 <꽃을 든 남자>의 주제곡 ‘헤이헤이헤이’를 만들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전문적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능숙하게 다루는 악기도 없다. 바이엘을 뗀 수준의 피아노 연주 실력이 전부다. 그는 “이적이나 동률이도 정식 음악교육을 안 받았지만 좋은 곡을 만들잖아요”라며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한다. 다만 그는 일찌감치 클래식 음악을 접했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음악 검열을 하셨어요. 클래식과 일부 팝 이외에는 못 듣게 하셨죠. 가요를 들려주는 라디오가 있다는 걸 중학교 때 처음 알았어요. 텔레비전도 뉴스와 다큐멘터리 이외에는 못 보게 하셨습니다. 어릴 때 교육 때문인지 지금도 클래식이 가장 좋아요. 8년 전부터 꽂혀 있는 곡이 있어요.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골레시의 <비탄의 성모>라는 곡인데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고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이 곡을 들으면 늘 가슴이 조여요.”

그가 곡을 처음 만든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중학교 때부터 취미 삼아 곡을 만들었고, 음악 선생님들로부터 “윤아는 꼭 음대에 가서 성악해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뮤지컬 <방황하는 별들>의 곡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당시만 해도 악보를 구하기 쉽지 않아 딱 한 곡만 악보를 구하고, 나머지 곡은 가사에 맞는 멜로디를 만들었다. 김윤아에게 음악은 일종의 구원이었다. 그는 “음악하면서 사람이 됐어요”라고 말한다.

“어릴 때 사색하기 좋은 환경에서 자랐어요. 어느 가정이나 비정상적인 면이 있잖아요. 사람에 따라서는 별것 아니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저는 그 부분이 크게 다가왔어요. 예민하고 쓸데없는 것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서 필요 이상 조숙했죠. 음악을 통해 세상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안에 품었던 앙금을 음악으로 해소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노래하면서 해방됐어요. 원천적인 갈증이 해소되다 보니 매년 가벼워지고 있어요. 몸도 마음도.”

김윤아는 대중을 의식한 노래를 만들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철저히 안으로 향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몇 안 되는 축복받은 가수다.

“이번 앨범은 전곡이 제 경험에 기초한 음악이에요. 이런 앨범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이 제 음악을 이해하고 지지해주셨기 때문이거든요. 용기를 얻어서 과감하게 제 이야기를 꺼낸 거죠.”

김윤아에게는 남성 팬보다 여성 팬이 압도적으로 많다.

“항상 느껴요. 그게 더 좋아요. 여자 분들이 저를 좋아하는 건 이성적인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라 제 음악 자체를 좋아해주시는 거니까요.”

그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음악세계가 없다. 곡도 작정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감을 열어두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음상(音像)이 재미있겠다 싶으면 작업실을 찾는다. 스스로 “뭔가 거창한 걸 이루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라며 이렇게 말한다.

“자우림이 최초로 인터뷰했던 때가 생각나요. 어떤 팀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항상 팬들을 배신하는 자우림이 되겠다. 음악적으로’라고 답했죠. 솔로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앞으로도 저는 팬들을 계속 배신하는 음악을 할 거예요. 이게 역설적으로 팬들을 기쁘게 한다는 걸 알아요.”

‘팬들을 배신하는 음악’. 이전의 음악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낯설고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해나가겠다는 의미다. 이런 음악을 위해서는 끝없는 부정과 반문, 냉혹한 자기 검열이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김윤아의 팬들은 충성도가 높다. 팬층이 두텁지 않지만 김윤아의 음악세계에 매료된 팬들은 쉽사리 배신하지 않는다. 앨범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김윤아의 솔로 앨범 1, 2집은 수십 만 장 팔렸다.

7월 중순 솔로 콘서트를 준비 중인 김윤아는 벌써 다음 솔로 앨범 구상을 끝냈다. “자우림 8집, 9집을 만든 후 솔로 앨범 4집을 낼 예정”이라며 “다음에는 좀 더 드라마틱하게 슬픈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다음 솔로 음반이 나오려면 수년이 걸리겠지만 팬들은 김윤아의 네 번째 ‘배신’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

사진 : 김선아
메이크업 : 김활란
헤어 : 김주희 부원장(김활란 뮤제네프)
스타일리스트 : 오영주
(튜브톱 원피스는 라뚤 by 조성경, 벨트는 미샤, 슈즈는 나무하나, 뱅글은 엠주)
  • 201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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