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브루흐 협주곡집〉음반 내고 전국 투어 리사이틀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브람스,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난해한 음악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조은정 TOPCLASS 인턴기자

이번엔 좀 다르다. 나흘간 한 도시에 머물면 몸이 근질거릴 정도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그가 지난해 12월 <브람스, 브루흐 협주곡집> 음반을 내고 서울을 비롯, 대전・창원・전주・제주 등 10개 도시 투어 리사이틀을 가졌다. 거의 매년 빼놓지 않고 고국 무대에 서지만 대부분 대형 오케스트라 협연자로서였다. 이번엔 10년 만의 내한 리사이틀이고, 10년을 기다린 브람스 협주곡이다. 사라 장은 열여덟 살 때부터 마에스트로 쿠르트 마주어에게 “함께 브람스를 하자”고 졸랐는데, 마주어는 그때마다 “내년에” 하며 미뤄왔다. 그리고 3년 전, 마주어는 그에게 “때가 됐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23일 <톱클래스>는 사라 장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10개 도시 투어 리사이틀 일정 중 의정부・제주・서울 일정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SBS TV <김정은의 초콜릿> 대기실에서 가진 인터뷰 현장에서 그의 위상을 실감했다. 웬만한 대중스타에는 꿈쩍 않는 제작진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출연에 고조돼 있었다. 제작진의 기념 촬영 요청이 끊이지 않아 매니저 측에서 “이번이 마지막이에요”라고 못을 박았다. 사라 장이 출연한 <김정은의 초콜릿>은 1월 16일 방영될 예정이다.

네 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 여덟 살에 데뷔하고 아홉 살에 음반을 낸 ‘천재 소녀’는 어느 덧 ‘젊은 거장’ 대열에 합류했다. 폭발적인 표현력과 현란한 손놀림으로 음악계를 놀라게 했던 신동 사라 장은 이제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여인이 됐다. “사진발이 잘 안 받는다”는 음반사 측의 말대로 그는 실물이 훨씬 아름다웠다. 겸손하면서도 거침없는 당당함,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환한 미소와 반달형 눈매가 매력적이다. 긴 웨이브 헤어스타일과 볼륨감 있는 몸 라인이 바이올린의 곡선과 하나처럼 어울렸다.


10개 도시 투어 리사이틀을 절반 이상 마친 시점에서 중간평가를 한다면.
굉장히 힘들었다. 리사이틀은 2~3년에 한 번꼴로 한다. 두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혼자서 감당한다는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되어서 좋다. 대구・대전・창원・전주 등 처음 가본 도시가 많다. 한국의 전통미가 살아 있는 전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전주비빔밥도 맛있고. 창원과 광주에서는 백화점에 들러 쇼핑도 했다.

한국 무대와 외국 무대에 섰을 때 어떤 차이가 있나.
한국에서 연주하면 행복하다. 한국 분들이 너무 많이 사랑해주시니까. 이번 리사이틀을 하면서 더 느꼈다. 음악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이전에는 비발디 <사계>나 멘델스존같이 유명한 곡을 많이 연주했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곡을 많이 연주했다. 관객의 반응을 보고 얼마나 음악을 즐기고 좋아하고 수준이 높은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브람스의 단악장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작곡가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가 사라 장에게 헌정한 판타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연주했다.)

리사이틀을 앞두고 소속사 측에 서울 이외의 도시들을 많이 가보고 싶고, 생일(12월 10일)엔 공연을 잡지 말아달라고 한 것으로 안다. 생일은 어떻게 보냈나.
사촌들과 호텔에서 파티를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제주도에서 가족들과 보낼 것 같다. (들뜬 목소리로) 동생도 오늘 뉴욕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왔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기다림이 길었다. 기다림이 길면 실망할 수도 있는데, 레코딩에 만족하나.
만족한다. 레코딩 후에는 항상 다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몇 군데 다시 녹음하고 싶은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이번 음반은 아쉬움이 적다. 몇 년 동안 공부하면서 준비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연주가 끝난 후 되짚어보나.
그렇지 않다. 끝나면 훌훌 털어버리는 스타일이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녹음할 때는 프로듀서한테 넘기고 나면 끝이다. 내가 연주한 DVD나 음반도 듣지 않는다. 누군가 내 DVD를 틀면 방을 나가버리고, 레스토랑에서 내 연주가 나오면 밥을 못 먹는다.

18세부터 마주어에게 브람스 곡을 같이 하자고 졸랐다는 일화가 재미있다. 브람스 협주곡의 매력은 뭔가.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힘든 곡이랄까. 그만큼 잘하기 어렵다. 연주가 끝나면 ‘오늘 연주는 좋았다.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브람스 연주가 끝난 후에는 그런 생각이 안 든다. 늘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만큼 연주하면서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 이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곡이 없다. 이 곡과 비슷한 크기의 행복감을 주는 곡도 없다.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곡을 열여덟 살 때부터 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던 건가.
물론 자신감도 있었지만 무대에서 배우고 싶었다. 무대에서 가장 많이 배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곡일수록 도전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에 넣는다.

마주어와 작업하면서 그가 당신에게 요구한 포인트는 뭔가.
브람스 협주곡은 드라마틱하고 열정적이다. 그런 모습을 다 보여주면서도 오버하지 않는 게 중요한데, 마에스트로도 그 면을 강조했다. 아름답고 강렬한 작품이지만 독일적인 정서에 맞게 감정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2000~3000명의 관객 앞에 서면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돼서 그 조절이 쉽지만은 않다(웃음).

이 프로그램(〈김정은의 초콜릿〉) 같은 대중적인 프로그램에서 연주하는 건 오랜만이다. 스스로의 선택인가.
소속사와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한다(웃음). 대중적인 TV 프로그램에서 연주하는 건 〈이소라의 프로포즈〉 이후 처음이다. 외국에서도 가끔 〈투나잇 쇼〉 같은 데 출연한다. 이런 프로그램도 재미있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퍼프 대디 등의 팝송도 많이 듣는다고 했는데,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
음악은 음악이다. 기본은 비슷하다. 오페라・팝・재즈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존중한다. 팝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 보면 노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 클래식이 대중음악과 다른 점은 솔직하다는 거다. 클래식은 립싱크가 없다. 스모크 머신도 없고, 마이크도 없다. 준비를 많이 하고 컨디션이 좋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연주가 나온다. 그런 면에서 클래식은 공평하고 솔직한 장르다.

국내에 좋아하는 대중가수가 있나.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다. 원더걸스와 비는 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연주를 앞두면 커피도 안 마시고, 뼈가 부러졌을 때 약도 안 먹었다고 들었다.

술・커피는 좋아하는데 연주를 앞두면 삼간다. 미세한 차이가 연주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연주가 끝나면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신다. 과일마티니를 즐겨 마신다.

일찌감치 세계 무대에 데뷔해서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프로페셔널에서는 없다. 사적인 부분에서는 굉장히 많고. 소속사, 엄마 등 주위 분들이 든든하게 지원해주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사적인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친구가 그랬다. 일의 성공을 위해서 사적인 부분은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맞는 말 같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뭔가.
시간이 없는 것.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 하는 거다.

뭘 그렇게 하고 싶은가.
너무 많다. 친구들을 자주 못 보는 게 가장 아쉽다. 런던에 가도 런던에 있는 친구를 맘대로 만날 수 없다. 리허설, 연주, 인터뷰 등 빽빽한 일정 사이에 잠깐씩 만나야 하니까. 하지만 괜찮다.

어머니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다 해주는 존재? 한국에 오면 매니저 역할을 해 주신다. 많은 분들이 어머니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다. 줄리어드 음대 엄마들은 굉장히 무서운데, 우리 엄마는 나를 학교에 내려놓고 쇼핑을 가셨다. 서포트는 잘 해주되, 간섭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전화를 너무 많이 하신다. 어떤 땐 하루에 열 번도 하신다. 동생은 똑똑해서 엄마가 전화해도 잘 안 받는다(웃음).


선택의 기로에서 우선시하는 건 뭔가.
가족이다. 그 다음이 일, 그리고 사회생활이다.

가족에게서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가정을 빨리 꾸리고 싶어하는데.
언젠가는. 지금은 아니다.

이상형은.
유럽인이든 한국인이든 상관없다. 한방에 모아놓고 봤을 때 눈에 확 띄는 사람,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좋다.

점점 아름다워진다. 서양인이 생각하는 동양인의 미를 가졌다.
아시아인이 생각하는 미인과 서양인이 생각하는 미인의 기준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광고 모델만 봐도 확 차이가 난다.

콤플렉스가 있나.
물론 있다. 여자인데(웃음). 하지만 수술해서 고치고 싶을 정도로 싫지는 않다. 한국 친구 중에 쌍꺼풀 없는 사람이 나 혼자다. 성형수술을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회복되려면 최소한 1주일이 필요하다는데 시간이 나지 않는다(사라 장은 2012년 12월까지 연주 일정이 잡혀 있다). 그런데 외국 친구들이 다들 말린다. 아시아의 미와 서양의 미가 다른데 왜 하느냐고, 수술해봐야 서양인처럼 되지 않는데 왜 하느냐고 한다.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다. 연주 경력이 쌓이면서 달라지는 점은 뭔가.
연주 자체를 즐기게 된다. 음악 자체, 바이올린 자체를 과거보다 훨씬 즐긴다. 레퍼토리 선정할 때 훨씬 적극적으로 하고. 곡을 사랑하지 않으면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없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지는 걸 느낀다.

지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지금 내가 시작해서 주빈 메타, 쿠르트 마주어, 리카르도 무티 같은 분들과 경쟁할 수 없고, 경쟁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바이올린 곡 중에는 아름다운 곡이 너무 많다.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다. 바이올린 레퍼토리만 다 배워도 인생이 짧을 것 같다. 바이올린만 해도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찾고 싶지 않다.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
솔직한 음악가. ‘재즈, 크로스오버가 트렌디하다.’ 이런 유행에 빠지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을 고집스럽게 하고 싶다. 다른 음악가들이 내 음악을 100% 동의하지 않더라도 ‘음악적으로 좋은 음악가’로 남고 싶다.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EMI
  • 201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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