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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김창완

인생을 달관한 도인? 정신적 쾌락주의자?

그의 마음에는 피터 팬이 사는 게 아닐까? 세상의 이치를 두루 꿰뚫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소년 도인 같은. 겹겹의 생을 살아 낸 존재가 전생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채 환생한 것 같은. 그게 아니라면 김창완의 세상을 달관한 듯한 텅 빈 미소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준익 감독은 차기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그를 캐스팅하면서 “세상 사람 같지 않다”는 표현을 했다.
김창완이 대중문화계에서 점하는 위상은 가히 독보적이다. 싱어송라이터로, TV와 영화를 넘나드는 연기자로, 30여 년 동안 라디오방송을 진행하는 DJ로 어느 하나 처짐 없이 꽉 찬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탈하고 편안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 때문에 ‘연예인 같지 않은 연예인’으로 비쳐지는 그는, 사실 한 번도 존재감을 잃지 않은 흔치 않는 스타다. 그것도 33년째.

그가 이번엔 소설집을 냈다. 환상 스토리 《사일런트 머신 길자》. 2005년 코끝이 찡해지는 수필집 《이제야 보이네》에 이어 내는 책이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이 스위치만 켜면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리는 기계 ‘사일런트 머신’을 발명한 이야기를 비롯해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짤막한 소설 여섯 편을 담았다. 그는 무거운 진실을 가볍게 드러내는 데 소위 ‘선수’다. 미세한 신경세포로 감지되는 희미한 사인을 툭툭 던지는데, 그 사인을 따라가면 묵직하고 어두운 현실에 맞닥뜨린다. 그는 무한대로 확산되는 암흑천지의 세상을 가볍고 귀여운 톤으로 풀어 나가는 데 묘한 재주를 지녔다.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방송을 끝낸 김창완을 홍대 근처 뷰티숍에서 만났다. ‘부릉부릉’ 할리 데이비슨의 요란한 시동 소리와 함께 가죽 재킷 차림의 그가 나타났다. 헬멧을 벗은 얼굴은 촬영을 위한 메이크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말갛다. 메이크업을 받는 그의 옆에서 질문을 꺼냈다. 가끔 허공을 바라보고 한참 침묵하다, 느릿느릿 이어 나가는 그의 말투를 가급적 그대로 옮긴다.


《사일런트 머신 길자》와 《이제야 보이네》를 읽으며 100세 넘은 도인이 임종을 앞두고 하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이 차오르려면 마음을 비울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언제 그런 생각을 하나요?
“(긴 침묵) 50년 넘게 죽 해 오던 거예요. 여유가 있어서 생각이 차는 건 아니고, 늘 깨어 있으려고 해요. 그런데 깨어 있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자기가 자기라고 판단하는 거예요. 《우연한 걸작》이라는 책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어요. 어떤 행위예술가가 망망대해를 헤엄쳐 가요. 처음엔 죠스(상어)가 나타나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자기가 없어지더래요. 자기가 없어지면 두려움도 없지요. 바다와 하나가 되는 거죠.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침엽수림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내가 숲이 됐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뮤지션으로, 연기자로, 라디오 DJ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언제 가장 ‘나답다’고 느끼나요?
“이 순간이 절정이에요. 절정이 이 순간이고. 어느 것 하나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어요. 지금은 밴드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것도 나를 놔 주는 것이지, 나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에요. 나답지 않은 일에 매달려 있을 때에는 아무리 바빠도 사람들이 나에 대한 존재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다운 건 뭔가요.
“노는 것(웃음). 자전거 타는 게 제일 좋아요. 자전거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게 가장 좋아요.”

이번에 발매된 김창완밴드 1집 앨범 ‘길’-“열세 살 이후로 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에도, 김창완밴드 EP앨범 타이틀곡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에도 나이에 대한 노래가 있어요. 나이를 많이 의식하나요?
“흐흐흐흐, 환갑이나 열세 살이나 다 거기서 거기야. 열세 살 이후로 젊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고 했잖아요. 그때보다 지금 세상이 더 잘 보이거나 하지도 않아요. 진짜.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보이던 게 안 보이는 게 더 많아요. 눈도 잘 안 보이고, 사물을 판단하는 것도 흐려지고.”

올해 우리 나이로 56세인데 실감 나세요?
“실감 나지요. 56이 어떻게 생겨 먹어야 된다는 콘셉트는 없어요. 건강 상태는 늘 환갑이라. 마음 상태는 15세. 얼마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여든 살도 어리다, 열다섯도 늙었다’. 80세가 되어도 모르면 애죠.”

친구 사귀기 힘들지 않았나요?
“친구들이 진짜 상대를 안 해 줬어요. 누구하고 소통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이 관찰했으면 저거 자폐다, 그랬을 거예요.”

어려서 신동, 애어른 같다는 소리 많이 들었지요?
“만 세 살 때부터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난 다 알아, 다 알아’ 만날 그랬대요. 동네마다 신동 하나씩은 있잖아요. 그런 동네 신동이었죠 뭐. 몇 천 명 중에서 1등도 하고 그랬어요.”

동석한 매니저 지주현 실장은 김창완 씨의 놀라운 기억력을 언급했다. 몇 년 전 대화한 내용도 신기할 정도로 정확히 기억해 낸다고. 사진 촬영 때 그는 3분 분량의 당일 아침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줄줄 외웠다.


빈둥빈둥, 여유롭게 사는 게 어울릴 것 같은데,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이유가 뭔가요? 내가 보고 느끼는 걸 다른 사람들도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사명감이 있나요?
“나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아요. 제 동기 부여는 간단해요. 즐거우면 해요. 글쓰기가 재밌으면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싶으면 노래 만들고 그럴 뿐이지, 제가 무슨 사명감이 있겠어요? 그냥 편안하게 살아요. 어느 날은 이거 하고 싶다, 어느 날은 또 갑자기 저거하고 싶다 하는데, 늘 하고 싶은 건 빨리 끝내고 술 먹어야겠다, 자전거 타야겠다는 거예요.”

술이 왜 좋으세요?
“술이 왜 좋냐고? 술 먹으면 얼마나 좋은데, 흐흐흐. 왜 좋으냐니.”

애주가로 유명해서 같이 한잔하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저녁 약속이 있으시다니.
“진짜? 저녁 약속은 저녁 약속이고 낮에 마시면 되지.”

할리는요?
“‘오빠 달려’ 하면 되지.”

낮술 인터뷰가 이어졌다. 750cc 맥주잔을 앞에 둔 그는 훨씬 더 편안한 표정이었다. 1977년 ‘산울림’으로 데뷔한 김창완은 2008년 1월까지 ‘산울림’이었다. 나이가 두 살씩 차이 나는 삼형제 창완, 창훈, 창익으로 결성된 트리오 ‘산울림’은 31년 동안 우리 곁에 존재했다. ‘산울림’의 음악은 생활의 음악이었다. 인생을 노래했고, 일상을 노래했다. 멜로디가 현란하거나 격정적이지 않아 어찌 보면 음유시인의 낮은 읊조림 같은 노래들, 그리고 연주들. 드러머였던 막내 창익 씨가 캐나다에서 사고로 사망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형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끼면 ‘산울림’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김창완은 ‘산울림’을 해체했다. 그리고 몇 달 후 5인조 그룹 ‘김창완밴드’를 조직했다. ‘산울림’에서 세컨드 기타, 베이스, 건반을 맡았던 동생 창훈 씨는 얼마 전 솔로 음반 <더 러브>를 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CJ푸드 미국지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음악, 글, 대화 등 소통 수단이 다양한데, 어떤 수단이 가장 편한가요?
“(천천히 다가와 손을 꼭 잡으며) 이거요, 정말. 사람들이 기호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원래 가지고 있는 엄청난 소통 방법을 잊어버렸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누구라도 손을 잡아 줘요.”

《사일런트 머신 길자》를 읽으며 언어라는 수단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새삼 느꼈어요.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언어 때문에 오히려 더 소통에 장애가 발생하는.
“소통의 어려움이 주는 안도감이 있어요. 외국 여행을 갔는데, 전 세계가 말이 다 통해서 소통의 불편이 없으면 여행의 맛이 반감될 거예요. 불통이야말로 여행의 필수조건이자 즐거움이 아닌가 싶어요. 사람은 워낙 불완전한 존재니까 마음 쉴 곳을 찾게 마련 아니에요? 그래서 생겨나는 나약함이나 불안 이런 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불안은 불안으로 견뎌 낼 일이죠. 수없는 슬픔을 겪었지만 슬픔을 치료해 주는 건 시간이더라고.”


슬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김창익 씨가 세상을 뜬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그 슬픔도 치료해 주던가요?
“어느 정도. 더 이상 덜 슬퍼지지는 않던데요? 그 순간이 딱 있어요. 슬픔 덩어리가 작아지다가 더 이상 작아지지 않아요. 그냥 꿀꺽하고 삼켜야지.”

창익 씨를 잃고 가장 달라진 건 뭔가요?
“달라진 거? 옛날에는 철딱서니 없이 코발트색 같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집착도 많이 없어졌고. 워낙 바라는 게 많지 않았는데,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어졌고.”

음악적 색채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산울림’의 소박한 정서는 살아 있으면서 음악적 스케일이 커졌다고 할까요? EP 앨범 <더 해피스트>는 마음이 붕 뜬 상태에서 듣게 되는데, 1집 앨범 는 한층 안정된 느낌이에요. 마음에 착착 감긴다고 할까요? 노래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더군요.
“흐흐. 어떻게들 그걸 알까? 참 신기해요. 1월에 그런 변고를 당하고 한 반년 고생하다가 6~7개월 만에 ‘이거 해야겠다’고 팀을 결성한 지 3개월이 지났지. 이름도 ‘더 해피스트’라고 무조건 정했지. 행복에 대한 강박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 행복하려고 악을 쓰는 거예요. 한 1년이 지나니 안정이 되고 차분한 음반이 나왔어요.”

30여년이 지나도 늙지 않는 소년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데요.
“정말? 에잇, 안 남아 있죠. 목소리도 너무 달라요. 그건 비가역적이에요. 다시는 옛날 목소리가 안 나와요. 어떻게 보면 핸디캡인데,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 너무 싫어하던 목소리를 버리고 내가 흠모하던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린 시절 내 목소리는 까랑까랑하니 듣기 싫어요. 애 목소리는 싫어. 멋있는 목소리가 좋다니까. 흐흐흐.”

음악은 왜 하세요?
“음악을 할 때 소리가 주는 행복감이 있어요. 민우가 치는 둥둥 드럼 소리가 내 마음을 꽉 집는 느낌이 와요. 그건 행위를 해봐야 알아요. 그 즐거움이 있어요.”

그럼 연기는 왜 하세요?
“그냥 감독이 하라고 하니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감독은 대중의 니즈를 파악해서 캐스팅하는 사람이에요. 무슨 기준으로 작품을 고르느냐는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 고른 적 없어요. 제가 무슨. 오는 대로 다 하는 거죠.”

<커피프린스 1호점>의 푸근한 동네 아저씨, <하얀 거탑>의 야비한 의사처럼 극과 극의 역할을 다 잘 소화하는데, 평소에도 그런 양면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아니에요. 못돼 처먹은 임금(<일지매>의 인조 역)을 하잖아요? 속으로는 ‘낄낄낄’ 그래요. 재미있어서, 흐흐흐. 그 대목에서 섬뜩하게만 했다면 연기가 오히려 얕아 보일 거예요. 그 키득거림이 주는 깊이가 있어요. 수석(壽石)은 물질과 기름질을 해야 안의 색이 싹 배어 나오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진짜 드라이해지면 오히려 감상 포인트를 놓치죠.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했던 날건달 역할이 생각나네요. 승용차 옆에서 무언가를 훔칠 것 같은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데 되게 맛있어 보였어요. 어쨌든 저는 ‘연기는 연기다’라고 생각해요.”

캐릭터에 몰입되어 일상에서도 캐릭터 기조로 사는 사람도 많은데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럼 연기는 연기, 나는 나, 철저히 분리가 되나요?
“그래서 지적을 많이 받아요. 연기에 몰입을 안 하는 게 감독 눈에 보이는 거지. 어떤 감독은 마무리가 없대. 연기를 흘린다고도 하고. 더 들어가는 건 제 스스로 굉장히 거북해요.”

<하얀거탑> 때 김명민 씨 연기 스타일과 반대네요. 한쪽은 매우 진지, 한쪽은 설렁설렁.
“그 친구는 나 때문에 굉장히 속상했을 거예요. 그 캐릭터에서 못 빠져나오는 걸 이해 못했으니까.”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간절한 대상이 있나요.
“있지.(3분 침묵) 아니 없는 것 같아요(일동 웃음). 매사를 자기한테 귀속시켜 버리면 아주 묘한 메커니즘에 걸려요. 나를 놔 버리려고 노력해요.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걸 생각하다 보면 자가당착에 빠지게 돼요. 1집 중 <내가 갖고 싶은 건>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알랭 드 보통의 책 <기쁜 우리 젊은 날>에 있는 쾌락주의자들의 이야기에서 착안한 노래예요. 그 생각이 너무 좋았어요.”(휴대전화를 열어 보인다. 액정 화면에 ‘epicurean(에피큐리언, 쾌락주의자) life’라고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알랭 드 보통과 닮은 점이 많네요. 무거움을 가볍게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자신만의 언어와 기호로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방식도 그렇고.
“에잇, 비교가 안 되죠. 알랭 드 보통은 아는 게 너무 많잖아요. 보통 책이요? 많이는 못 읽었어요.”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당부의 말을 했다.

“인터뷰 기사가 다 비슷해요. 김창완은 가수도 하고 연기도 하고, DJ도 한다. 오토바이도 좋아하고 자전거도 좋아한다. 끝. 그래서 어땠는데요?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제 행동과 사고방식이 젊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좀 발견해 주세요. 젊은 세대들과 진짜 소통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내 글이나 내 노래를 듣고 감수성이 확 넓어지길 바라는 거거든. 내가 봐 온 세상이 애들이 봐도 괜찮은 세상일 수 있어요. 내가 갖고 싶은 세상은 가난의 향기예요. 가난이 주는 노스탤지어가 분명히 있거든요.”

지난 10월 말, 충무아트홀에서 김창완밴드 신보 발매 기념 콘서트가 열렸다. 중극장 무대에 선 김창완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넘치지 않는 표정과 목소리로 갖고 싶은 것을 노래했고, 버스 안에서 본 그녀를 노래했고, 청년 실업자들의 마음을 노래했고, 술에 취한 친구를 업던 기억을 노래했다. 때로는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면서.

그는 어떤 것도 규정 지으려 하지 않고, 어떤 틀에도 매이지 않았다. 그 유연함과 자유로움은 ‘젊음’을 유지한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게 아닐까? 20대 초반의 인턴기자는 이런 말을 했다. “김창완 노래가 너무 좋다”고.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했는데, 들을수록 마음이 편해지면서 가슴속에 깊이 박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사진 : 김선아
메이크업 : 백소영 이경민포레 홍대점
장소협찬 : 곱창전골 02-3143-2284
  •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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