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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숙성해 가는 낭만주의자

이제는 아빠가 되고 싶다

한때 정우성은 하나의 기호였다. 그는 10대 소년들이 닮고 싶은 반영웅이었고, 20대가 꿈꾸는 육체였으며, 30대가 열망하는 완전한 남성이었다. 10대의 조인성과 권상우는 〈아스팔트의 사나이〉에서의 그 눈빛, 〈비트〉의 그 반항과 우수를 닮고 싶어 배우가 됐다. 그때 스물 몇 살쯤의 정우성이란 자신이 깃든 모든 배경을 그림 또는 뮤직비디오로 만드는 특출한 피사체였다. 30대의 정우성은 어떤가. 그가 2000년대 중반 이후 CF를 통해 각인시킨 이미지는 대체로 전문직 남성이며, 여자 친구를 위해 아낌없이 카드를 긁고, 그녀가 문득 생각나 꽃다발을 안겨 주는 낭만적인 남자였다. 자신의 여자를 위한 완벽한 경제력과 자상함, 그리고 육체를 지닌 완전한 남성.
“저의 20대란 10대가 꿈꾸는 완벽한 남성상을 재현하는 데 바쳐졌죠. 30대는, 그러니까 그 위에 배우로서 나 자신의 가치관과 일상이 녹아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우성은, 영화 〈호우시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상성을 처음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일상스러움을 잘 그려 내는 허진호 감독과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도 했다.

예를 들면 〈호우시절〉에서 중국으로 출장 간 남자 주인공 동하(정우성)가 숙소에서 회사에 경비신청서를 작성하는 장면. 동하는 주저주저하다 식대 6만 원을 9만 원으로 살짝 올려 쓴다. 한 번도 회사 생활을 한 적이 없는 정우성은 “진짜 그렇게 하느냐?”고 반문했지만 보통의 관객이라면 킥킥대고 공감할 만한 대목이다. 인상적인 것은 이제 정우성도 이러한, 어떻게 보면 꾀죄죄한 일상을 연기하는 일이 별로 어색하지 않다는 것. 정우성은 웃음 끝에 “사실 술에 취해 화장실 바닥에서 잠든 적도 여러 번 있다”며 작품이나 CF 속 판타지에 가려진 자신의 모습을 실토하기도 했다. 정우성은 그렇게 과거와는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호우시절〉은 서른 여섯 정우성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해주는 작품일지 모른다. 허진호 감독의 초기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그래서 반가운 〈호우시절(好雨時節)〉은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두보의 시구에서 빌린 제목처럼 ‘사랑의 때’에 관한 서정적인 멜로드라마다. 지진이 일어났던 중국 스촨성의 청두시 두보초당(두보의 고향에 지어진 기념 유적지)을 배경으로, 미국 유학시절 이후 몇 년 만에 재회한 한국인 남성과 중국인 여성의 애틋한 감정을 담았다. 한 사람은 중국에 출장 온 한국 기업의 회사원, 한 사람은 두보초당의 가이드가 됐다. 학생시절, 누가 누구를 좋아했었는지, 과연 연애나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현재다.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애틋한 감정. 둘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가을빛이 완연한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정우성을 만나 그의 연기, 사랑,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하는 그 순간은 늘 완벽하다고 믿는 낭만주의자

“사랑이요? ‘그래도 사랑은 아름답다’라는 말로 표현하면 될까? 관계의 연속성이 끊어진다고 해도, 사랑하던 그 순간만큼은,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완벽하고 아름다우며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연애 때문에 눈물을 흘려 본 적은 있을까.

“그럼요. 아마 연애 때 말고는 눈물 흘린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하하).”

사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도 할 뻔했다. 〈봄날은 간다〉도 출연 직전까지 갔었다. “아마 인연이라는 게 스치고 그냥 지나가는 법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정우성의 말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시나리오도 파도치듯 강렬하게 와 닿았어요. 그런데 내가 하면 왠지 그 느낌이 깨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주인공의 나이도 한석규 씨에게 더 맞았고. 아마 제가 출연했다면 한석규·심은하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나왔겠죠. 〈봄날은 간다〉는 〈무사〉를 찍으면서 무릎 연골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출연하지 못했죠.”

사실 〈호우시절〉은 스촨 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한·중 합작 옴니버스 영화 속 단편 프로젝트로 기획됐었다. 단편영화까지 할 여력이 안 돼 주저했지만 시나리오가 마음속에 남긴 잔잔한 물결 같은 여운이 멈추지 않았다. 영화는 장편으로 기획이 커졌고, 정우성과 중국의 톱스타 여배우 중 하나인 가오위안위안(高圓圓)이 호흡을 맞추게 됐다.

한국인 남자와 중국인 여자. 소통의 언어는 영어가 됐다. 정우성은 이런저런 다국적 영화 프로젝트를 검토 중이었기 때문에 지난해부터 영어 공부를 해 왔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에서 그 영어를 써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도전해 보자”고 결심했다.

“진호 형은 좀 더 한국식 영어를 원했지만, 관객은 어디 그럴까요? 정우성이 하는 영어로 보죠. 영어가 좀 이상하면 ‘쟤, 왜 그래?’ 할 텐데요. 그래서 좀 더 매끄러운 영어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영어 연기는 저한테 하나의 도전이었죠.”


영어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정우성이 〈호우시절〉에서 보여준 영어는 정확하고 자연스럽다고 한다. 수준급의 영어였다는 평이다. 영어는 낯설었지만 촬영지로서 중국은 이력이 났다. 2001년 〈무사〉로 시작돼 〈중천〉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중국과 인연이 깊다. 중국 여배우와의 호흡도 〈무사〉 때 장쯔이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청두는 큰 도시라서 오히려 갇힌 느낌이었어요. 〈무사〉나 〈놈놈놈〉을 촬영하던 사막이나 소도시가 오히려 자유로웠죠. 어쨌거나 중국은 갈 때마다 어마어마한 기회의 땅이고 가능성의 대륙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발전하는 속도도 빠르고. ‘메이드 인 차이나’가 왜 세계를 휩쓸고 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죠.”

중국 여배우와의 공연은 신선했다. 한국 여배우와는 리액션이 다르고,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의사 소통도 쉽지 않기 때문에 상대 여배우를 더 세심하게 관찰해야 했다. 이런 느낌은 영화 속 관계 설정과 자연스럽게 접목됐다.

가오위안위안은 정우성에 대해서 “〈데이지〉 〈무사〉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작품이 중국에 워낙 잘 알려져 정우성 씨는 유명하다”며 “중국의 다른 동료 배우나 지인들이 ‘정우성 씨는 어떠냐’고 많이들 물어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우성 씨는 언어에 자질이 뛰어난 것 같다”며 “중국어를 가르쳐 주면 금방 농담을 던질 정도”라고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정우성의 꿈, 아빠 그리고 감독

연인 없는 서른여섯 살의 미혼 남성인 정우성은 이제 결혼을 생각한다. 진지하다. 서른 중반을 넘어선 여느 ‘총각’들과 마찬가지로 “구석에 몰리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그렇다고 그냥저냥 대충 이 여자면 되겠지, 하면 안 되겠죠. 감정과 정서가 잘 통하고 제 연기와 표현의 세계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성을 찾고 싶어요. 물론 몸매도 예쁘면 좋고.”

국경을 넘어 아시아의 수많은 여성 팬을 거느린 한류스타, 영화가 주는 판타지와 CF의 몸값이 중요한 남자배우에게 결혼은 자칫 핸디캡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연예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일본에서 팬 미팅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벌이는 한류스타의 경우 각종 활동계약에 결혼에 대한 조건을 붙인다고 한다. 특히 일본 여성 팬들의 경우 남성 한류스타의 결혼에 꽤 민감하다고 한다.

“글쎄요. 마흔 넘어 혼자 사는 남자가 매력이 있을까요? 가정을 이루고 사는 남자의 이미지, 책임을 지는 남자의 태도가 팬들에게 더 호감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경우도 갓난 2세와 함께 있는 사진을 일부러 공개하잖아요? 저도 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가끔 그립니다. 얼마 전 허진호 감독의 2세가 태어났는데 우는 소리가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저도 제 아기를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정우성은 한때 패배한 청춘이자 들끓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반영웅이었다. 세상과 막무가내로 싸우고 부딪치고 부서지며 어른의 질서를 배우는 소년이었다. 이제 그는 책임을 진다는 것, 멋있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한다.

“예전에 찍었던 작품이 케이블TV에 나오는 걸 보면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해요. 시대와 같이 살아가는 게 잘 나이 들어가는 것이고, 그러면서 성숙해 가는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

장편 감독 데뷔는 그가 그리고 있는 계획 중 하나다. 매번 “내년에는 꼭”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배수진을 쳤다. “내년에 장편 영화를 꼭 만들겠다”는 말이 허언으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얼마 전 후배 구혜선이 내놓은 단편 영화를 보고 큰 자극을 받기도 했다. 지금 자신이 쓴 것을 포함해 세 편의 시나리오를 놓고 고민 중이다. 사랑의 복수극을 담은 액션도 있고 멜로도 있다. 막역한 친구인 이정재에겐 “개런티를 파격세일해서 봉사 활동하라”며 출연을 종용하고 있다.

차기 출연작으로는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 중인 거물급 제작자와 감독이 대작으로 기획하고 있는 다국적 합작 영화 출연을 검토 중이다. 이제 서른보다 마흔이 더 가까운 정우성은 마음이 바쁘다.

사진 : 김선아
  •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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