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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완성을 꿈꾸는 사려깊은 배우 조인성

<쌍화점>에서 왕과 왕후 모두 품은 홍림 역

영화배우 조인성(27)의 고민은 이제까지 그가 보여준 연기의 폭보다 넓고 깊었다. 미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려 깊은 자 특유의 언어를 갖고 있었다. 현란한 스타의 후광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말은 질박했고 생각은 진중했다.
186cm나 되는 키에 비해 좁은 어깨, 긴 팔다리, 껑충한 몸에 더해 고운 선의 이목구비는 그를 여전히 미성숙한 육체를 지닌 사춘기 소년으로 느끼게 했다. 다소 높은 톤의 목소리와 쑥스러운 듯 겸연쩍게 웃는 표정, 가끔은 예민하게 반응하는 눈빛도 그랬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는 TVㆍ스크린에서 익숙해진 이미지와 첫 대면이 주는 인상을 보기 좋게 배반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왔고, 예기치 않은 화제가 오갔다. 브랜드와 미디어는 ‘조인성’을 끊임없이 기호화하지만 조인성은 자신을 이미지 안에 가두려 하지 않았다. 2008년이 기다란 해그림자를 드리우며 저물어 가던 12월, 스물일곱의 청춘 스타, 7년차 배우 조인성을 만났다.
그는 한 번도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듯 수십 번을 되뇌었다. 정우성처럼 근사해지고 싶어서 배우가 됐던 소년은 이제 자기 완성을 욕망하는 사려 깊은 청년이 돼 있었다.

스타라는 화려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쇼윈도의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조인성은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 배우로서 그의 과거보다는 그의 앞날을 신뢰하는 이유다. 좋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야말로 훌륭한 배우를 향해 자신을 진전시키는 가장 큰 동력이 될 터. 그리고 유하 감독의 영화 <쌍화점>은 그가 보낸 20대의 마지막 증거가 될 것이다. 그는 오는 3월 군 입대가 예정돼 있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과 <봄날>,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년처럼 상처받고 오열하는 모습은 많은 팬들이 좋아하는 조인성 씨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봄날〉
없어 보이고 불쌍해 보여 좋아해 준 것 아닐까요? 한편으로는 우는 모습이 상품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극에 최선을 다한 결과였는데, 오히려 그 이미지만 강조돼 작품에 해가 되지않을까, 관객과 시청자들이 드라마 전체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말이죠. 배우 입장에서 울면서 감정을 폭발시킬 때 큰 쾌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렇게 격정을 터뜨리거나 ‘샤방샤방’한 모습보다는 우울함이 자연스럽게 밴, 어둡고 무겁게 내려 깔린 분위기의 연기를 보여줘야 했습니다. 사실 제가 맡은 ‘홍림’은 능동적으로 다른 이들을 이끄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동적으로 이끌려 가는 타입의 인물이죠. 리액션밖에 없는 캐릭터인 셈이죠. 말하자면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입니다. 연기로는 뭔가 안 한 것 같고 빠진 듯한데, 그런 장면들을 모으고 쌓아서 홍림이라는 인물 전체를 완성해야했습니다.
<쌍화점>은 고려 말 공민왕(주진모 분)과 그에게 사랑을 받는 남자이자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분), 원나라 출신 왕후(송지효 분) 간 애증, 배신, 음모를 그린 작품이다. 고려가 부마국(왕이 원나라 황제의 사위로 맺어져 종속된 국가)으로서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시기. 어린 시절 소년들을 모아 친위부대를 만들었던 공민왕은 그 수장인 홍림과 동성의 연인 사이다. 왕이 왕후를 멀리해 후사가 없자 조정 내에는 폐위 음모가 진행된다. 이에 공민왕은 자신을 대신해 홍림을 왕후의 방에 들여보낸다. 하지만 홍림은 왕후와 몸으로 맺어져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홍림은 왕의 총애와 왕후와의 사랑, 양성(兩性) 사이에서 갈등하고 왕은 불같은 질투에 휘말리며 조정에는 정치적 음모와 섹스 스캔들이 어우러져 피바람이 몰아친다. 왕의 신하이자 정인(情人)인 홍림 역의 조인성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복합된 인물을 보여준다. 왕에게 음식을 떠먹여 주거나 다소곳하게 앉아 머리를 빗겨 주는 대목에서 그는 소년티를 벗지 않은 얼굴과 날렵한 선의 몸매로 중성 혹은 여성적인 이미지를 전시한다. 친위부대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정치적 반대파들을 잔혹하게 숙청할 때 그는 용맹하다. 사랑하는 여인 앞에선 운명을 거는 연인이 되는, 매우 복합적인 인물이다.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폭발적입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영화 〈마들렌〉
착하게 보여서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성이 착한 놈 아니거든요. 남들 욕도 잘하고 불평과 불만도 잘 늘어놓죠. 화를 잘 다스리지도 못 해요. 그것이 겁날 때도 있어요. 대중이 실제의 나를 알면 실망하지나 않을까. 그래서 저한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남들에게는 관대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편견을 갖기 시작한다고 하잖아요? 저에게도 고집과 아집이 있습니다. 스스로 엄격해지지 않으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어요. 무엇보다 저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조인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사춘기 소년입니다. 그래서 유독 작품 속에서 연상 여인과의 로맨스를 그린 경우가 많기도 했는데요.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실제로도 그렇습니까? 그래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가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서 보고 싶은 면만을 보고, 그것 또한 그 사람의 모습이겠죠. 저를 소년으로 본다면 그것 또한 제 실재의 일부겠죠. ~하는 척, ~아닌 척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주위에서 나쁜 어른들을 많이 봐 와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동국대) 안민수 교수님이 자신이
어떤 맥락에서 살고 있는지 현재의 삶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지 않으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하셨어요.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은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죠. 우리 인생에는 돌발적이고 순간적인 상황이 많고 대처법은 누구도 일러주지 않습니다. 다만 많이 이해하고 많이 알고 많이 배우려고 노력해요. 배우는 후천적으로
배우는 게 많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게 됩니다. 이제 군대에 갔다 오면 서른이 됩니다. 어른이 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청춘이라서 용서되는 것이 줄어드는 나이, 실수와 시행착오를 줄여야 하는 때죠.

여성들에게 많은 구애를 받을 것 같은데요.

영화 〈비열한 거리〉
대시를 한 번도 못 받아 봤어요. 제가 과연 이미지가 아닌 실재로도 매력적인 인물인가, 하고 자문하면 자신 없어요. MC나 개그맨들은 대중에게 보이는 모습이 실제와 비슷하잖아요? 배우는 전혀 다르죠. 배우가 아닌 조인성 개인이 사랑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회의가 듭니다. 저는 자신감도 결여돼 있어요. 좋은 여
자는 남자의 지적인 수준이나 대화법, 능력을 먼저 보죠, 외모는 두 번째예요. 매력 있는 남자가 되기 위해선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때마다 찾아뵙고 늘 조언이나 가르침을 구하는 스승들이 있나요

예. 그분들께 실례가 될까 봐 존함을 일일이 밝힐 수는 없고요, 유하 감독님도 그중 한 분이십니다(유하 감독과는 <비열한 거리>에 이어 이번 작품으로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대부분 TV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지만 저는 활자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해요. 사람은 늘 미완성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변이나 지식이 뛰어난 분들은 제 머리 속에 뭉게구름처럼 떠다니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유하 감독님을 비롯한 저의 선생님들은 저에게 그런 쾌감을 주십니다.

지금 조인성이 가장 골몰하고 있는 생각, 조인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영화 〈쌍화점〉
좋은 어른이 되는 거죠. 아라한(불교 수행자 중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공기속을 떠다니는 것처럼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을 벗어나 있고, 세상 이치를 다 알지만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요. 그런데 너무 시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하긴 비를 맞지 않으려면 집에 가만히 있는 수밖엔
없죠. 어차피 세상에 나와 살 거라면 비를 감수해야겠죠.

이번 영화에선 주진모 씨와 농밀한 동성애 정사신도 있고, 송지효 씨와도 파격적인 베드신도 있는데요, 준비는 어떻게 했습니까.

준비라곤 헬스로 몸을 만드는 것밖에는 없었죠. 행위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한 베드신이 아니었고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지효 씨가 대단한 용기를 내 줬기 때문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왕과의 정사신은 왕 대신 왕비라고 생각하며 임했죠. 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니까요.

정우성 씨를 보며 배우로서의 꿈을 키웠다고요?

중2, 3학년 시절이었죠. 드라마 <아스팔트의 사나이>에서 정우성 선배를 보니까 근사했어요. 고2 때 MBC 아카데미 모델 1기생으로 들어갔어요. 운 좋게 한두 달 만에 오디션에 합격해서 광고에 출연하게 됐죠. 그후 2년 정도 모델 일을 하다가 지금 소속사를 만나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부모님께서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셨어요. 학원 모집 전단지도 부모님께서 갖다 주시면서 “여기를 지원해 봐라”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어머님이 키가 크신 편이에요. 외탁했죠. 초등학교 들어갈 때 이미 많이 컸고 고교 때 지금만큼 키가 컸으니까요. 그때는 지금(72㎏)보다 훨씬 더 말라서 65㎏밖에는 안 됐어요.


처음부터 배우로서 잘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던가요?

아니에요. 기가 많이 죽었죠. 모델 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 오디션에 가 보니 잘생긴 사람이 진짜 많더라고요. 오디션에 정말 많이 떨어졌죠. 드라마 <학교2>에서 떨어지고 <학교3>에 합격하면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시트콤 <점프>에 출연했다 연기 못한다고 중간에 잘렸어요. 처음에는 그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그런 일들이 계속 생기니 연기에 대해서 오히려 집착이 생기더라고요. 지금도 연기에 대해 완전히 신뢰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연기에 대한 열망은 더 강해졌어요.


공군 군악대를 지원했는데 제대 후에는 서른이 됩니다. 조인성의 30대는 어떨까요?

20대에 밑그림을 그렸다면 30대는 색을 입히는 시기가 아닐까요. 좋은 감독을 만나서 좋은 터치와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기름지지 않고 서늘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200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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