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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한국야구를 휘어잡은 스무 살 청년 김광현

“아쉬운 게 있다면… 미팅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SK 김성근 감독이 2008시즌이 시작되기 전 공식석상에서 “2008년은 그의 해가 될 것”이라고 천명한 선수가 있다. 그는 2007시즌 한국시리즈에서 최고 투수였던 두산 리오스와 맞대결하면서 신들린 투구를 선보이며 승리해 각광받기 시작했고, 김 감독의 예언대로 2008시즌 다승왕과 탈삼진왕 자리를 차지하며 시즌 MVP에 올라 2008년을 그의 해로 만들었다. 프로 데뷔 2년. 벌써부터 ‘미소왕자’, ‘괴물’, ‘일본 킬러’ 등 다양한 별명을 얻으며 한국야구의 대들보로 성장하고 있는 투수 김광현을 만나봤다.
모처럼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는 훈련광

근황을 물으니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SK는 아시아시리즈가 끝난 직후 마무리 훈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광현은 “푹 쉬면서 회복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체력 회복과 그에 따른 집중력 향상이 목표”라고 밝혔다.

2007년 데뷔 후 김광현은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2007시즌 한국시리즈 이후 대스타로서의 행보는 차치하고서라도 하루 평균 150개의 공을 던지며 피칭훈련에 매진했다. 김성근 감독을 비롯해 코치진은 물론 동료선수들까지도 “김광현은 연습벌레”라고 할 정도. 키 187cm, 몸무게 83kg의 이상적인 체형과 최고구속 150km/h 이상을 던질 수 있는 강한 어깨를 타고났지만 지금의 김광현을 만든 것은 ‘꾸준한 훈련’이다.

김광현이 훈련의 달콤함을 느낀 것은 2007년 6월 1일 2군행을 통보받은 후다. 고교 시절 제22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스타로서 프로 데뷔 후 슈퍼루키로 불리던 것에 비하면 굴욕적인 2군 강등이었다. 좌절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김광현은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이 기회에 투수조련의 대가라는 감독님한테 제대로 훈련을 받아 보자’라는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 150개의 공을 끊임없이 던졌다. 김광현은 “지난 시즌 아시아시리즈까지 체력이 떨어지지 않은 데는 그때 그렇게 던지며 단련한 것이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이 자신의 몸에서 매력 포인트를 ‘엉덩이’로 밝힐 만큼 하체에 자신을 보인 것처럼 김광현 또한 하체라면 자신 있다. 미소년 이미지답게 갸름한 얼굴형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자랑하지만 하체만은 그 누구보다 튼튼하다고 강조한다. 김광현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피칭 후 왼 다리가 하늘을 향해 쭉 뻗는’ 역동적인 투구 폼을 보이면서도 중심이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것은 이런 튼튼한 하체가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러닝만은 밥 먹듯이 쉬지 않고 하고 있단다.



야구 인생의 최고 스승은 ‘부모님’

영웅의 탄생은 늘 궁금한 법이다. 대한민국 대표 좌완투수가 처음 야구를 시작한 계기는 뭘까. 이에 대해 김광현은 “야구 인생 최고 스승은 바로 부모님”이라며 야구선수가 된 것은 부모님 덕분이라고 밝혔다. 김광현은 김인갑(50) 씨와 전재향(47) 씨 사이에서 태어난 2남 1녀 중 장남이다. 김광현은 “부모님이 워낙 야구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야구장에 가는 것이 가장 큰 놀이였다”고 회상했다. 소년 김광현에게 투수의 강속구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얀 타구의 궤적은 늘 짜릿했고 결국 덕성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에게 “야구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안산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김광현의 부모는 장남의 선택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아들이 국내최고의 좌완투수로 거듭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했다.

2007년 5월 18일은 김광현의 부모에게 있어 가장 기쁜 날이었다. 슈퍼루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2007년 프로에 데뷔했지만, 초반 제구력 난조와 스피드 저하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다 개막 후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5월 13일 광주 KIA전에서 마침내 첫 승을 올리자 김인갑 씨는 “드디어 떡을 만들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아들이 첫 승을 올릴 때 SK 선수단에 특별 제작한 떡을 돌리려고 했는데, 승리가 자꾸 미뤄졌던 것. 이때 김광현은 “만약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나도 가업을 이어 떡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세 청년 김광현에게 가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제나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 왔기에 가족을 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요즘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유니폼과 공에 사인해달라고 하신다. 주변의 부탁을 받았다며. ‘아들 덕분에 이런 청탁도 받는다’고 좋아하시는데, 그런 말씀을 들으면 너무 행복하다”는 김광현. “힘들 때도 가족을 생각하면 기운이 난다. 장남인 만큼 훗날 부모님과 동생들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 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또 다른 아버지 김성근 감독

베이징올림픽 비공개 훈련 때. 맨 왼쪽이 김광현.
흔히 야구에서 감독과 선수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로 불린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과 김광현의 관계는 보통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뛰어넘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애정과 존경은 지난 2년간 한국 프로야구에서 귀감이 됐다. 김 감독은 평소 호언장담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김 감독이 실패한 신인이라던 김광현을 한국시리즈에서 리오스와 맞붙였고, 2007 아시아시리즈에서는 첫날 공식기자회견에서 “김광현을 주목하라”며 선전포고를 했다. 김광현은 그 기대에 120% 부합했다. 그만큼 김광현에 대해 작은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7년 김광현을 2군으로 내려보낸 뒤 김 감독은 그의 2군 경기 등판을 지켜보기 위해 인천 문학구장에서의 본 경기를 앞두고 2군 경기가 있는 구리까지 왕복 160km를 다녀왔을 정도다. 이런 관심과 애정, 신뢰 덕분에 김광현은 조바심 내지 않고 차근차근 잘못된 점을 고쳐 나갔고, 마침내 2008년 시즌 MVP자리에까지 올랐다.

2008년 11월 6일 데뷔 2년 만에 한국프로야구 MVP에 올라 트로피를 받고 웃는 모습.
김광현 또한 김 감독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드러낸 바 있다. 2007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승리 후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부모님보다 그동안 끝없이 조언해 주신 감독님 생각이 먼저 났다”고 말했던 것. 2008시즌 후에도 “감독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제대로 표현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재계약하신 것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광현이가 되겠습니다”라며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런 두 사람도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김광현은 일본에서 미소왕자라는 별명을 얻어 왔을 정도로 경기 중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삼진을 잡으면 펄쩍 뛰며 주먹을 불끈 쥐는 등 자신의 투구 폼만큼 액션이 크다. 이에 대해 김광현은 “승부도 좋지만 야구 자체를 즐기다 보니 생각하는 대로 공이 들어가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상대와 긴장감 넘치는 승부를 펼치고 있는 만큼 표정으로 타자를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웃으면 그런 심리싸움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미소를 지우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김광현의 미소는 생생히 살아 있다. 이 승부에서는 누가 이길까?


스무 살 청년 김광현이 좋아하는 것들

2005년 안산공고 2학년이었던 김광현.
앞서도 말했지만 김광현은 일찌감치 스타 자리에 올랐다. 고교 야구선수 시절 그가 큰 키로 내리꽂는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는 상대 타자에게 악몽이었다. 그 구위로 2006년 제22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시즌 MVP 등으로 보통의 20세는 생각하지도 못할 인기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한국야구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는 아직 20세다.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니 여느 20세와 다를 바 없었다. 김광현은 게임 마니아다. 선발등판 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게임을 하며 마인드컨트롤하는 장면이 여러 번 목격됐을 정도다.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스타크래프트’. 촘촘히 짜인 훈련 스케줄 때문에 자유 시간이 많지 않은데, 시간만 나면 컴퓨터를 켜고 스타크래프트 배틀넷에 접속한다. 김광현은 “초등학교 때 처음 접했는데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다. 그런데 좋아하는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서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며 씩 웃었다. 그에게도 올려다보는 스포츠 영웅이 있다. e스포츠인 스타크래프트 선수 박태민. “그가 하는 경기 중계를 수없이 봤지만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는지 항상 궁금하다. 직접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맛집 순례 또한 김광현의 색다른 취미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 있으면 꼭 시간을 내서 먹으러 간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짬뽕’이란다. 김광현은 “SK 입단 후 짬뽕을 맛있게 하는 중국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2년째 단골로 가는 곳이 있다”면서 반드시 가서 맛을 보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그런 그도 또래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을까?

안산중앙중학교 야구부 학생들과 함께한 김광현.
김광현은 “야구를 워낙 좋아하고 천직이라고 생각해 다른 친구를 부러워하거나 아쉽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며 머뭇거리더니 이내 “미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몇 번 밝히지 않았는가라고 확인하자 “그냥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뭘 하는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내친김에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을 물었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탤런트 박민영 씨”란다. 이유까지 술술 나온다.

“예쁘기도 하지만 극중 역할이나 방송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정말 시원시원한 성격인 것 같은데 그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김광현의 이상형이 나왔다. 예쁘면서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여성이다. 술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도 있지만, 몸 관리 때문에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고 한다. 주량은 소주 1병. 친구들과 만나도 언제나 야구 얘기를 한다고 말한다.


계속 성장 중인 미완의 그릇

2008년 8월 16일 베이징올림픽 때 우커송 구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역투하는 모습.
김광현이 야구선수 중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야생마’ 이상훈이다. “공격적인 투구로 타자를 제압하는 모습이 멋있다. 무엇보다 야구를 즐기면서 하는 점은 정말 본받고 싶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따져 보니 김광현도 이상훈 선수와 비슷한 점이 많다. 투구 수가 많아진다고 지적받으면서도 삼진을 잡기 위한 공격적인 피칭을 선호한다. 그리고 정말 야구 자체를 사랑하는 게 옆에서도 느껴진다. SK 특유의 지옥훈련을 거칠 때도 단 한 번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야구의 깊은 맛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김광현은 “야구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지, 특별한 타이틀이나 명예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08 MVP에 오른 것보다 더 기쁜 것은 “2007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박경완 선배의 사인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김광현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삶의 행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굳이 내 삶의 목표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야구를 오래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08년 8월 22일 베이징올림픽 때 우커송 구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준결승전 8회초. 일본 타자 아라키를 아웃시킨 후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김광현은 아직까지 완성형이 아니다. 2008시즌 막판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며 제구에 애를 먹었고 주자가 많이 나가면 구위가 흔들린다는 지적도 받았다. 김광현 스스로도 “한국시리즈 1차전과 아시아시리즈 1차전에서 부진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며 다시 자신을 가다듬어 업그레이드시키겠다면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국제무대에 공개된 후라 다른 나라에서도 김광현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할 것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이번 스프링캠프 동안에는 따로 인스트럭터를 붙여 업그레이드시키겠다”고 밝혔다. 2년 만에 한국야구의 대들보로 성장한 김광현. 이제 그 대들보가 10년 이상 갈 수 있기를 팬들은 바라고 있다.

사진제공 : SK와이번스
  •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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