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극계 최대 이슈〈연극열전2〉프로듀서 조재현

연극으로 돈 번다는 것 보여주겠습니다

조재현. 자신이 사창가에 팔아넘긴 여자를 사랑하는 〈나쁜 남자〉, 절절한 부성애로 “사랑한데이, 알러뷰~”를 외치던 〈피아노〉의 아버지, 카리스마 넘치는 〈뉴 하트〉의 의사….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그를 보고 있으면 그 이야기가 허구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그의 연기가 입혀지면서 인물의 진정성이 생생하게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가 요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른바 연극 살리기다. 어렵게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려도 관객이 찾지 않아 한파가 가시지 않던 연극계. 그런데 요즘, 그가 프로듀서를 맡은 <연극열전2>가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며 관객을 모으고 있다. 2007년 12월부터 2009년 1월까지 11편의 연극을 잇달아 올리는 프로젝트. 조재현은 작품의 기획부터 배우 캐스팅, 홍보, 마케팅까지 모두 관여하고 있다. 독특한 유머를 구사하는 영화감독 장진이 연출한 〈서툰 사람들〉을 시작으로 〈늘근 도둑 이야기〉 〈리타 길들이기〉〈블랙버드〉 〈라이프 인 더 씨어터〉 〈돌아온 엄사장〉 등 무대에 올리는 작품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평일 공연에도 보조석을 놓아야 할 정도. 표 팔기 어려운 연극가에서 ‘연극열전’ 때문에 “표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연극열전의 인기에 대해 “스타들을 끌어들인 마케팅 때문 아니냐?”, “연극적인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냉정한 비판도 나온다. 이제까지 ‘연극열전’에는 이순재, 홍경인, 장현성, 고수, 한채영, 박철민, 정경호, 최화정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익숙하게 보아 온 스타들이 나왔다. 조재현은 오는 8월부터 10월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민들레 바람 되어〉에 출연한다. 40대 중반 남자가 노인이 될 때까지 죽은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 넋두리처럼 이야기하는 내용. 고등학생 아들의 가방에서 콘돔이 나왔다거나 “나 재혼할 것 같다”는 말을 대답 없는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연극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조재현을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엘리베이터 문을 나서는 그를 보고 처음에는 ‘누군가?’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사는 스타 연예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영화 〈마린 보이〉를 촬영하느라 희끗희끗하게 염색한 머리에 검정색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었다. ‘전날 매니저한테 촬영 콘셉트를 이야기해 뒀는데, 저렇게 막 입고 오다니’ 난감했다. 검정 티셔츠는 곤란하겠다고 하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더니 “야, 네 옷 좀 빌려 줘”라고 한다. 배우가 옷에 대해 왜 그렇게 무신경하느냐고 하자 “배우는 옷이 많아야 돼요?”라고 묻는다. 결국 사무실에 놓고 다니는 꽃무늬 셔츠와 베이지색 재킷으로 낙찰. 여전히 옷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자 “아는 코디네이터가 옷집을 열었다고 해서 찾아갔다 산 옷인데 무지하게 비싸더라고요. 아까워서 계속 입어야 돼요”라고 항변한다.

40대 중반인 나이답지 않게 반짝반짝 윤이 나는 피부에 감탄, “피부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술로 관리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어제도 대학로에서 술을 마셨는데 편안하고 좋아요”라고 한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스타 연예인이 어떻게 저렇게 자연인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대중의 눈은 부담스럽지 않아요. 연기자는 자유로운 직업인데, 그걸 충분히 느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한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속에서 보던 날카로운 선의 얼굴이나 강렬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눈빛. 그에게 “그 눈빛은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물었다. 연기로 단련된 것인지, 타고난 눈빛인지. 밑바닥 인생을 사는 악한, 껄렁껄렁한 깡패부터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남자까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역할을 진짜 자신인 것처럼 연기하는지 비결도 물었다.

새 대통령 취임 특사로 풀려난 두 도둑이 미술관을 턴다. 알과핵소극장에서 오픈 런.

내 연기는 모두 삶에서 나온다

‘큰형님’의 선거를 위해 울릉도에서 포항으로 올라온 엄사장. 8월 3일까지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
“삶에서 나오는 거죠.”

실제 그런 다양한 삶을 경험해 보았다고 한다. 부잣집 아들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의아스러웠다.

“제가 바로 이 대학로 산동네의 판자촌에서 살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쓰던 방의 창문을 열면 다닥다닥 판잣집이 붙어 있는 우리 동네 아래쪽으로 2층 양옥집들이 보였어요. 노란색 교복을 입고 노란색 리라초등학교 스쿨버스에서 내리던 그 동네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죠.”

해가 지면 몰래 유치원 담을 넘어 들어가 시소나 미끄럼틀, 그네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창경원 담을 넘어가 빈병을 주워 모아 판 돈으로 용돈을 마련했다. 창경원에서 병 줍는 아저씨들을 만나면 얻어맞고 병을 모조리 뺏겼다. 그때 이미 “에이씨, 세상은 불공평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회 주변부를 도는, 결핍을 느끼는 인간상을 어떻게 그렇게 절절하게 표현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의 집은 판자촌 중에서는 부잣집이었다고. 아버지는 연탄 대리점을 하다 휘발유, 시멘트를 팔면서 사업규모를 불려 나갔고, 중ㆍ고등학교 시절에는 수입차를 타고 다닐 정도였다. 중ㆍ고등학교 때는 제도권 교육이 싫어 “치열하게 놀았다”고 기억한다. 술, 담배에 나이트클럽을 다니고 가출을 감행하는 등 “해볼 것은 다 해봤다”고.

“친구랑 같이 부산에 내려가 을숙도 주점에서 일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공부는 하겠다고 책을 챙겨서 가출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죠. 더 위험한 길로 빠질 수도 있었는데.”

베테랑 연극배우 ‘선배’와 신인 배우 ‘후배’가 같은 분장실을 쓴다. 8월 10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이리저리 요동치던 그의 삶에서 방향타가 되어 준 것이 연극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였다. 선생님들이 학교 게시판에 붙일 그림을 그에게 맡겼을 정도였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가 연기로 눈을 돌린 것은 중학교 때 처음 본 연극 때문이었다.

“이강백 원작의 <결혼>이란 작품이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란 덤으로 빌려 쓰는 것이니 곱게 돌려줘야 한다는 내용이 와 닿았습니다.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일. 살아 있는 동안 내 삶을 알차게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의 삶을 다잡은 것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었다. 연극 〈아일랜드〉를 하고 있던 대학 3학년 때, 머리를 빡빡 밀었다. 이제까지 ‘놀던’ 삶을 청산하기로 했다. 그때 만난 여자와 결혼도 했다. 1989년 KBS 공채로 탤런트가 된 후에도 그는 연극을 떠나지 않았다. 한때 극단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개런티 챙기고 제작비 걱정하느라 연기에 몰두할 수 없어 그만두고 연기에만 몰두했다. 연극이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나 매체 특성이 다를 뿐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는 것에서 연기는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배우 조재현’보다 ‘사업가 조재현’을 대하는 듯했다.

“영화나 방송, 광고에서 번 돈을 연극에 쏟아 붓는 분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안 합니다. 그건 ‘돈을 써도 성과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요. 내 돈을 절대 안 쓸 생각이에요. 연극도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그 이익으로 다시 연극을 만들고….”

그가 제작하는 ‘연극열전’을 “상업적이다”, “스타를 끌어들여 장사한다”, “그나마 없는 관객을 싹 쓸어 간다”는 등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연극열전 중 절반이 초연 작품입니다. 돈 벌 생각만이라면 이미 검증된 작품을 하지, 왜 그런 모험을 합니까?”

〈연극열전2〉는 2004년 동숭아트센터 씨어터컴퍼니가 1년간 올린 〈연극열전〉의 뒤를 잇는 프로젝트. 2004년 〈연극열전〉이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표작 중 15편을 골라 올렸다면 〈연극열전2〉는 기존 흥행작과 최신 번역작, 창작초연작을 함께 올려 우리 연극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보여준다. 그는 재미든, 감동이나 눈물이든, 새로운 시도든 관객들에게 무언가 안길 수 있는 작품들로 꾸몄다고 한다. 〈블랙버드〉는 연극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는 조금은 어려운 작품. 그가 직접 출연하는 〈민들레 바람 되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신인 작가 작품으로 이번이 초연이다. 이순재, 홍경인 등이 출연해 화제가 되고 있는 〈라이프 인 더 씨어터〉 역시 초연으로, “노배우를 통해 우리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연극인데, 왜 이제까지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한다. 10월에 무대에 오르는 〈웃음의 대학〉은 판권을 주지 않겠다는 일본 작가를 일본까지 찾아가 설득했다. 희극작가와 이를 검열하는 검열관의 이야기로 문성근과 황정민이 출연한다.

그동안 외면당해 온 연극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스타를 끌어들이는 ‘극약처방’을 쓴다는 비판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목표가 10단계라면 지금 1~2단계를 밟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연극을 전혀 보지 않던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필요했다고. 보통은 연극배우 출신을 캐스팅했는데, 무대 경험이 없는 후배 배우에게는 “네 연기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인기 스타 고수도 지방 공연에서 무대 세트를 옮기는 등 바닥에서부터 연극을 배우고 있다고.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목표는 뭘까? 그는 “신기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우승했다 꼴찌도 하고, 사고도 치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경주마 있잖아요?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고 싶어요.”

익숙한 것에 안주하는 삶을 경계해 온 그는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활력을 얻고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김기덕 감독의 첫 영화부터 계속 출연해 감독의 색깔을 가장 잘 표현하는 페르소나로 불렸다. 그러나 그 자리를 스스로 버렸다.

“김기독 감독과 함께 작업한 것은 제게 최선의 선택이었죠.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항상 긴장되고 위축되어 있었는데, 그가 편안하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줬습니다. 전날 분장한 채로 자다 일어나 촬영하고, 거리낌이 없었으니까요.”

그가 ‘연기파’라는 호칭을 얻은 것도 그때부터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연기 톤이 비슷해지고 ‘내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일었다. 떠나는 게 서로에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후 <목포는 항구다> <맹부삼천지교> <로망스> 등 코미디, 멜로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그에게 어떤 역할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멜로 영화를 할 때 가장 나 자신을 잘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내 마음이 제일 많이 움직이니까요.”

요즘 그의 최대 관심은 연극. 좋은 작품과 배우, 연출가가 모이면 관객을 모을 수 있다는 신념을 현장에서 실험하고 있다.

“2004년 <에쿠우스> 공연을 할 때 극단이 어려운 것 같아 제작비를 투자했고, 지난해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할 때는 ‘수익이 생기면 개런티를 달라’고 했습니다. 유료관객이 90%를 넘기면 제 개런티를 줄 수 있다고 했는데 110%에 달했죠. ‘잘만 만들면 관객이 온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요즘 세대들이 인내력이 부족한 만큼 연극도 관객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연극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연극계 안에서도 찬반이 엇갈릴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한국 연극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중학생 시절 처음 접한 연극이 그의 삶을 바꿔 놓았듯, 연극은 사람을 바꿔 놓는 힘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사진 : 이창주
  • 2008년 08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