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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바이올린과 하나가 되어 울리는 선율

바이올린이 제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연주해요.
제 소리는 바이올린 표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에요.
성악 하는 사람들처럼 배에 힘을 주면서
몸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이끌어 내거든요.
온몸으로 부르는 노래라고나 할까요.
예상밖이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얇은 드레스, 비단결 같은 긴 머리, 섬세한 선율의 이미지로 점철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옷에 묻은 먼지를 톡톡 털어 내는 공주풍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땅에 떨어진 자일리톨 껌을 주워 손으로 툭툭 털어 입에 넣었다. “떨어진 지 3초 안에 주운 건 먹어요” 하며.

리사이틀 사흘 전, 청담동의 한 뷰티숍에서 만난 김지연은 활기가 넘쳤다. 이번 리사이틀 무대는 국내에서 3년 만이다. 인터뷰와 공연 연습을 오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하루 4시간도 못 잔다면서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그는 메이크업과 헤어 손질을 받으면서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재치 있는 입담으로 주위를 즐겁게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즉석 연주를 청하자, 흔쾌히 응해 주어 뷰티숍 직원들이 일손을 놓고 감상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걸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언니들을 재밌게 해주려고 집에서 원맨쇼하는 날이 많았죠. 공연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취해서 하는 공연보다 관중이 행복해하는 공연을 하려고 노력해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13세에 도미,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는 한 샴푸 CF 모델로도 유명했다. 1993년 백악관 초청 공연 당시 빌 클린턴이 직접 무대 단상을 옮기게 해 ‘대통령을 움직인 여인’으로도 화제가 됐었다. 그가 세계 무대에 써나가는 기록이 놀랍다. 그의 나이 열다섯 살 때인 1984년 뉴욕 필하모니 오디션 우승, 1985년 아스펜 뮤직페스티벌 우승, 1989년 국제오디션 주관 영 콘서트 아티스트 1위, 1990년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 1994년 칸느 클래식상 최고의 데뷔상….


김지연은 열다섯 살 때 뉴욕 필하모니 연주회에 초청을 받아 지휘자 주빈 메타와 호흡을 맞췄고, 이후 필라델피아, 런던 필하모닉, 토론토, 휴스턴, 시애틀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스트래드>지는 그의 연주를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가다운 연주”라고 했고, <아메리칸 레코드 가이드>지는 “압도적인 기교와 음악성을 지닌 연주”라고 평했다.

그는 한 해 50개가 넘는 대형 무대에 오른다. 무대에 선 나라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 미국 50개 주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핀란드, 스페인, 헝가리 등 유럽 대부분의 나라와 세계 주요 도시 무대에 거의 다 섰다. 그런데 이번 한국 공연은 3년 만이니 국내 팬으로서는 서운한 감이 없지 않다. 그는 “외국 무대는 몇 년 전에 결정되는데, 한국은 갑자기 요청이 오는 경우가 많아 타이밍이 잘 안 맞았다”고 했다. 지난해 8월부터는 미국 댈러스의 서던 메소디스트대학교(SMU)의 교수가 되어 더 바쁠 것 같다. 그는 10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 학교 최초의 동양인 교수다. 또 이 학교의 바이올린 전공 교수 중 최연소이자, 유일한 정교수다.

김지연의 음색은 섬세하면서도 풍부하다. 그녀가 연주하는 피아졸라의 ‘망각(Oblivion)’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렇게 경쾌할 수도 있구나’ 하고. 그는 피아졸라의 구슬픈 곡조를 그녀 특유의 발랄함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들을수록 가슴을 후벼 파는 아릿한 느낌이 전해졌다. 발랄함의 옷을 입은 구슬픔의 잔 향이 더 깊었던 것. 곡 자체가 품고 있는 스토리에 자신의 감성을 얹어 연주하는 그녀의 소리는 ‘현으로 부르는 노래’ 같다.

프랑스 콜마 페스티벌 당시 작곡가 겸 지휘자 펜데레츠키와.
“제가 추구하는 바예요. 바이올린이 제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연주해요. 제 소리는 바이올린 표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에요. 성악 하는 사람들처럼 배에 힘을 주면서 몸 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이끌어 내거든요. 온몸으로 부르는 노래라고나 할까요.”

1993년 백악관 초청 공연 때.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지연. 가운데 빌 클린턴도 보인다.
새 음반 <세레나타 노투르노>는 2002년 <김지연의 프로포즈> 이후 국내에서 발매한 두 번째 음반이다. <김지연의 프로포즈>는 3만여 장이 팔린 스테디셀러이자, 연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음반으로 꼽혔다. 외국에서는 정통 클래식 음반을 내왔지만, 우리나라에서 내는 음반은 크로스오버 성격이 강하다. 이번 음반은 ‘밤의 세레나데’를 의미하는 제목이 암시하듯, 분위기 있는 밤에 듣기 좋은 아름다운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는 정통 클래식 성격이 강하지만, 시크릿 가든의 ‘봄의 세레나데’, 비제의 오페라 <퍼스의 아름다운 아가씨> 중 ‘세레나데’,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밤과 꿈’ 등 친숙한 곡들이 가득하다.

가족사진. 막내 김지연은 엄마 무릎에 안겨 있다.
“<김지연의 프로포즈>가 크로스오버에 가깝다면 이번 음반은 그곳에서 클래식으로 반쯤 돌아왔다고 할까요? 저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음악 팬들을 클래식으로 데려오는 성격이 강해요. 크로스오버 음반을 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해요. 누구나 다 아는 곡들이기 때문에 더 부담스럽거든요. 엘리베이터 배경음악처럼 흘려듣는 음악이 아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듣게 되는 그런 음반을 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5월 19~20일 리사이틀 공연 모습.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호흡을 맞췄다.


1990년, 우승을 차지한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대회. 옆에 있는 노 신사가 에이버리 피셔다.

어릴 때는 ‘샘쟁이’였어요

2007년 작고한 세계적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김지연은 어려서부터 욕심 많고 샘이 많았다. 스스로 “샘쟁이였다”고 고백한다. 엄마가 언니 칭찬을 하면 엄마를 꼬집었을 정도. 음악을 시작한 것도 엄마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엄마는 큰언니에게는 피아노를, 둘째 언니에게는 바이올린을 일찌감치 가르쳤다. 그는 여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졸려서 눈이 감길 때까지 연습하곤 했단다. 큰언니의 진도를 따라잡으려는 욕심에서였다.

바이올린도 그 무렵 시작했다. 둘째 언니가 바이올린이 싫다며 팽개치자, 그 바이올린을 물려받아 배우게 된 것. 처음엔 바이올린이 재미없었다 한다. 그의 엄마는 지기 싫어하는 그를 콩쿠르에 내보내는 작전을 짰다. 작전은 대성공.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콩쿠르 대상을 받으면서 그는 바이올린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김지연은 경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원중학교를 다니다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심사위원들은 몇 소절만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다. 공부도 잘했다. 예원중학교에서는 전교 10등 안에 들었고, 줄리어드에서는 전 과목 A학점을 받았다. 김지연에게 있어 바이올린과 삶은 하나였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물론, 연주하지 않을 때에도 그의 머릿속은 늘 바이올린 선율로 가득 찼다.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와(1993).
“저는 연습벌레는 아니에요. 직접 연주하기보다 머리로 연주를 더 많이 하죠. 악보를 생각하면서 이 부분에서는 어떤 느낌을 살려 어떤 테크닉으로 할까 고민해요. 머릿속 연주가 더 피곤하지만 효과가 크거든요. 줄리어드 다닐 때 통학 시간이 길었는데(뉴저지에서 뉴욕까지), 버스 안에서 늘 머릿속 연주를 했어요. 시간이 아깝잖아요.”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운 그에게 체력관리는 또 하나의 과제. 연주 자세 때문에 내내 팔과 목 통증에 시달렸는데, 5년 전 요가를 하면서부터 통증도 사라지고 부쩍 건강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왼쪽 턱과 쇄골 뼈에는 시커먼 멍이 있었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다 멍을 달고 다녀요” 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1708년 작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 ‘엑스 스트라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작년에 삼성에서 제공한 건데, 그전까지는 1669년 작 프란체스코 루제리 바이올린을 썼다. 바이올린의 전설적 장인 아마티의 첫 제자가 만든 작품으로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이 바이올린이 그의 품에 안기게 된 영화 같은 사연이 있다.

1989년, 그가 1위를 차지한 영 콘서트 아티스트 콩쿠르에서였다. 진행을 돕던 자원봉사자인 한 할머니와 친해졌는데, 그 할머니를 학교에서 우연히 또 만났다. 그의 이름은 바비 카젠더. <뉴욕타임스> 사주 집안이자 맨해튼에 있는 거대한 빌딩의 건물주였다.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넓은 빌딩에서 혼자 살고 있던 카젠더 여사는 활달하면서 감성이 넘치는 김지연에게 호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바이올린에 대한 김지연의 열정이 여사의 마음을 움직였다. 카젠더 여사는 “원래 바이올린 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너 때문에 좋아하게 됐다”며 김지연의 후원자로 나섰다. 딸 방을 내주고 루제리 바이올린도 사주었다. 줄리어드에 다니던 3년간 김지연은 카젠더 여사와 함께 살다시피 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지휘자 이르지 벨로흘라베크와 함께.
그는 이 바이올린을 제자들에게 빌려 주기도 한다. 햇빛 한 번만 받아도 소리가 일그러질 수 있는 민감한 악기를 선뜻 빌려 주다니, 놀라웠다.

“학생들은 제 자식이나 다름없어요. 대견하고 안타깝고 자랑스러운 감정이 다 느껴져요. 줄 수 있는 게 많아서 좋아요. 연주 경험담을 들려줄 수도 있고, 연주회를 주선해 줄 수도 있고, 음악시장의 동향이나 실내악 연주의 바뀐 풍경도 말해 줄 수 있고.”

그는 “가르치면서 음악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며 “이 부분을 꼭 써달라”며 말을 이었다.

“가르치려면 완벽하게 파악해야 하잖아요.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하게 돼요. 깊은 이해에서 나오는 연주와 테크닉만 살아 있는 연주는 정말 다르거든요. 한 음 한 음이 모여서 아름다운 연주, 완벽에 가까운 연주가 되는 것 같아요.”

김지연은 소통을 중시한다. 그에게는 촉수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대중을 향해 있고, 하나는 자기 안으로 향해 있다. 그래서 밖으로는 넓어지고 안으로는 깊어진다. 정통 클래식도 좋아하지만, 신승훈, 이상우의 대중가요도 좋아하고, TV 드라마도 즐겨 본다. 메이크업을 해주는 이경민 원장과 MBC 드라마 <달콤한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폼이 영락없는 수다쟁이 아줌마다.

“치유의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게 관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김지연. “그래서 아픔을 치료해 주는 의사한테 끌렸나 봐요”라고 덧붙인다. 그는 미국에서 의사와 결혼했다가 2년 전 이혼했다. 결혼 생활 9년 만이었다. 지향하는 삶이 달라서 한 이별이었다. 남편은 안정된 가정을 원했지만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김지연은 그의 삶에 동반자가 돼주지 못했다. 음악이냐, 결혼생활이냐 기로에서 음악을 선택한 셈이다.

김지연의 공연을 보고 있으면 바이올린이 몸의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 바이올린이 그인지, 그가 바이올린인지 혼동이 될 정도로 하나로 엉켜 체화된 연주를 한다. 이제껏 들은 최고의 찬사가 “당신은 바이올린을 위해 태어난 여자 같다”는 한 중년 부인의 말이라고.

그는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한다. 이번 리사이틀 무대에서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그리움 등 사랑에 관한 다양한 느낌을 떠올리겠다고 했다. 때론 지난 사랑을 회상하고, 때론 현재의 사랑을 음미하면서.

5월 19일, 리사이틀 무대에 선 김지연을 봤다. 그도, 소리도 아름다웠다. 몸에 꼭 붙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의 몸매가 만들어 내는 곡선은 바이올린의 허리선과 닮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내는 선율은 LG아트센터의 높은 천장에 닿았다 퍼지면서 아련한 사랑의 에너지를 흩뿌렸다. 공연 후 무대 뒤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봄밤이잖아요. 조명을 달빛이라고 상상하며 연주했어요.”


그는 11월,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과의 협연을 앞두고 있다. 정명훈이 먼저 베토벤 콘체르토를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음악만큼 인생도 무르익은 후에 도전하겠다며 김지연 스스로 조심스러워하며 피해 온 베토벤 연주, 이제 때가 됐다.

사진 : 이창주
사진제공 : 크레디아
메이크업 : 이경민
헤어 : 재선(이경민 포레)
  • 200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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