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우주인 고산

모두의 꿈을 안고 우주로 떠납니다

자료사진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헤어 : 준호
메이크업 : 한세미 Beauty Salon 0809
‘지구는 푸른빛이었다.’

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1934~1968)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29분 동안 지구 상공을 선회한 후 밝힌 첫 소감이다. 그로부터 47년이 지난 2008년 4월, 한국에서도 우주인이 탄생한다.

2007년 9월 5일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된 고산 씨가 오는 4월 8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호를 타고 우주로 떠난다. 그는 지구로부터 360km 거리에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열흘 동안 머물며 미세중력 상태에서의 신체 변화, 국제우주정거장 소음환경 측정, 망원경으로 지구 관측, 우주시대에 대비한 메모리 실증실험, 식물 및 종자 발아 실험 등 18가지 실험 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이를 위해 우주인 후보로 최종 선발된 이소연 씨와 함께 2007년 3월부터 러시아 가가린센터에서 우주 생활에 필요한 각종 훈련을 받아 왔다.

한국에서 개발한 우주식품 시식회.
우주선 발사 3개월을 남겨 놓고 그가 예비 우주인 이소연 씨와 함께 지난 12월 22일 일시 귀국했다. 우주로 떠나기 전 우주과학 홍보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수행할 과제들을 국내 전문가들과 함께 최종 점검하기 위해서다. 러시아로 떠난 지 9개월 만에 돌아온 그를 2007년 12월 24일과 27일, 2008년 1월 3일 사흘에 걸쳐 만났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 탓인지 상당히 피곤해 보였지만 묻는 말에 미소로 응대했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해 주었다. 질문이 자신에게 집중된다 싶을 때는 “지난 추석 때는 소연 씨가 송편, 콩국수 등 우리 음식을 만들어 러시아 우주인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는 식으로 오누이처럼 곁에 있는 이소연 씨에게 관심을 돌렸다.

“우주에 가면 주로 러시아에서 개발한 우주 음식을 먹게 되지만 실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우주 음식도 먹어 볼 생각입니다. 어느 나라든 우주인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만큼 저를 통해 우리 문화와 과학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항해에 그는 한국에서 우주식으로 개발한 밥, 김치, 라면, 수정과 등을 가지고 갈 예정. 그는 18가지 수행 과제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교육 실험’이라고 했다.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어린이들의 꿈의 지평을 한 차원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 “저는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가지만 미래 아이들은 우리가 직접 만든 우주선을 타고 갈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한국이 우주 탐사 로드 맵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007년 12월 27일 그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우주탐험전에 참석해 수백 명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우주와 꿈’에 관해 강연하고 사인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우주로 출발해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게 소개한 후 “가슴속에 꿈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절반밖에 못사는 것이니 큰 꿈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강연회 후 그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어 다음 스케줄을 두 시간 이상 연기해야 했다. 어림잡아 300명 넘는 아이들이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그가 사인을 해주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무언가 열심히 물어보기에 사인회가 끝난 후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어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너는 이 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이 천편일률적이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대부분 아이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 넓은 우주 속에 사는 아이들의 꿈이 너무 좁은 곳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했습니다.”

그가 타고 갈 우주선이 발사될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그는 어린 시절 어떤 꿈을 꾸었을까. 1976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를 경기도 광명에서 보냈다. 농촌과 도시의 중간쯤 되는 곳에 살아 개구리 잡으러 다니고 언 논에서 스케이트 타며 대자연 속에서 실컷 놀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형성된 정서가 어른이 된 후 많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가난이 뭔지 몰랐던 그 시절 저의 꿈은 좀 엉뚱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읽은 동화 중 ‘네 소원 하나 들어줄 테니 말해 보라’는 식의 작품이 많았잖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앞으로 제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는 게 소원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분들 많았을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소유즈 TMA우주선과 국제우주정거장. 그는 이곳에서 열흘 동안 머문다.
1남1녀 중 장남인 그는 아버지를 10세 때 여의었다. 원양어선 선장이었던 아버지에 대해 그는 “아주 남자다운 분이셨고, 한번 바다에 나가시면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오시곤 했지만 집에 계실 때는 24시간 내내 저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정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큰 어려움 모르고 자랐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게 다 어머니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양손에 저희 남매를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신 어머니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항상 열심히 사시는 어머님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불평하지 않고 견딜 수 있습니다.”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우주탐험전에 참석, 어린이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어릴 때는 문학과 철학 심취

서울 잠실에서 보낸 청소년기, 그는 수많은 책을 통해 세상이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동네 헌책방에서 구한 동서양의 고전을 읽으면 수많은 지성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배웠다는 것. 중학교 시절에는 문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도 저는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면 가슴이 뛰고 설레요. 중학교 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폐쇄된 교내 도서관이 있었는데, 저는 그곳에서 혼자 책을 읽곤 했죠. 아무도 모르게, 열려 있는 창문을 타고 넘어가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지구 귀환 시 수중으로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생존 훈련을 하는 모습.
사춘기를 그는 ‘선물처럼 주어진 삶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와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존재론적 의문에 붙들린 채 통과했다. 그 고민과 의문을 풀어 가며 그는 길을 헤쳐 왔다. 1996년 서울 한영외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이듬해 다시 입시를 치르고 서울대 자연과학부에 입학, 수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인지과학 협동과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공대에 한 학기 다녀 보니까 제 적성에 응용과학보다는 순수과학 분야가 잘 맞는다는 걸 알겠더군요. 3학년 때 전공을 수학으로 정한 것은 인지과학 쪽에 관심이 많아서였죠. 인지과학은 인간의 사고과정을 규명하는 학문입니다. 이를 위해 생물학, 철학, 심리학, 언어학, 의학, 컴퓨터 공학 등 여러 관련 학문들이 동원되죠. 우주인 선발 과정 중, 최종 후보 8명이 러시아에서 현지 테스트를 받을 때 인지과학에 대해 ‘우주인들이 지구를 넘어 저 검은 우주 속으로 탐험을 떠난다면 인지과학도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모험을 떠나는 항해사’라고 설명했던 기억이 나네요.”

소유즈호 시뮬레이터 훈련 중.
대학 시절 그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생활비를 해결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로 바쁜 대학 생활 중에도 그는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겼고, 전국 신인 아마추어 권투선수권대회에 나가 동메달을 딸 정도로 권투를 좋아하는 스포츠 마니아였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암벽등반도 좋아해 서울문리대 산악부에서 2년 동안 산악부장을 맡으며 해발 7000m의 무즈타그아타 정찰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렇듯 강인한 체력과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젊은이였기에 한국 우주인으로 선발된 것이 아닌가 싶다. 고산 씨가 한국 우주인 후보 공모에 응모한 것은 2006년 4월. 서울대 대학원에서 인지과학 전공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삼성종합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선발하는데 응모해 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인터넷에 접속해 선발 공고를 보니, 우리 세대에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더군요. 망설임 없이 바로 지원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우주인에 선발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죠.”

지구 귀환 시 타고 올 우주선.(오른쪽)
그 해 7월 14일 마감한 우주인 후보 공모에는 총 3만6206명이 응모했다. 이 중 서류전형과 단축 마라톤으로 10%를 가려 내고, 영어와 상식, 신체검사를 통해 1차로 245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다시 임무 수행능력 평가 등으로 30명을 엄선한 뒤 정밀 의학검사와 중력가속도 테스트 등 우주적성 평가로 10명을 뽑았다. 이 중 8명이 러시아 가가린센터에서 합숙평가를 받은 끝에 2006년 11월 25일 고산 씨와 이소연 씨가 최종 후보로 선발됐고, 가가린우주인센터에서 9개월 동안 우주 적응 훈련을 한 뒤 고산 씨가 우주선 탑승 우주인으로 최종 선발됐다. 이소연 씨는 고산 씨가 우주선을 타지 못하게 될 때에 대비, 예비 우주인이 되었다.

러시아 우주인들과 함께 무중력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두 사람은 가가린센터에서 각각 러시아 우주인 두 명과 짝을 이뤄 본격적인 훈련을 받아 왔는데, 훈련에 돌입한 3월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연구원 신분이라고 한다. 오는 4월 19일 고산 씨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주어진 과제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면 두 사람 다 선임 연구원으로 진급될 예정. 고산 씨는 그동안 러시아 가가린센터에서의 훈련 과정과 느낌을 뛰어난 글 솜씨와 철학적 시선으로 기록해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올려왔다. 그중 어느 눈 내리는 날 써내려간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눈이 내리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러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아름다움에 소중함을 더해준다.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면 새파란 대기층이 지구를 감싸고 있는데 그 두께가 얼마나 얇은지를 두 눈으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지구를 둘러싼 공기의 대부분은 지상에서 30km 이내에 존재한다). 지구를 사과라고 생각한다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층은 사과껍질의 두께 정도에 불과한데, 이 사과껍질의 두께 안에서 구름이 일고 바람이 불고 하얀 눈이 내리는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얇고 연약해 보이기만 하는 대기층을 지나 조금만 더 나가면 곧 우주공간이다. 보통 지표면에서 100km 이상이 되면 우주라고 말하는데, 이곳에는 이미 공기분자가 서로 충돌하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대기 농도가 매우 희박한, 거의 진공에 가까운 텅 빈 공간이 펼쳐진다. ……사과껍질의 두께 속에 살면서 가끔 흰눈이 내리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우리가 꽤나 운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홈페이지에는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까지 솔직하고 당당하게 공개해 네티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우주를 동경하고 더 넓은 세계를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최종 탑승 우주인에 선발된 후, 제가 꾸는 꿈이 결코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 듯합니다. 이번 한국 방문 중에도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제가 키워 가는 꿈속에는 우주인 선발에 도전했던 사람뿐 아니라, 우주에 대한 동경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꿈과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우주로 떠날 날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강해지는 이런 생각들이 한편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뒤에서 나를 밀어 주는 힘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고산 씨는 12월 28일까지 1차 홍보 일정을 마친 후 가족과 함께 4일 동안의 꿀맛 같은 휴가를 보냈다. 식구들과 함께 경남 양산에 있는 아버지 묘소에 다녀오고, 서울대 수학과 졸업 후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여자친구도 만났다. 여자친구와 올해 결혼할 예정. 한국 최초 우주인이 된 것에 대해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들 좋아하죠. 특히 어머님이 기뻐하셨어요. 그런데 여자친구는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도전해 보라고 권한 당사자이면서도 막상 되고 나니 삶이 커다란 물결에 휩쓸리며 제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해요.”

그는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여자친구에게 전하는 말을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우주인 고산 씨는 1월 12일, 22일간의 국내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미국 휴스턴으로 출국한다. 그는 그곳에 있는 NASA 존슨우주센터에서 일주일 동안 국제우주정거장의 미국 모듈에 대한 훈련을 수행하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갈 예정. 이후 지구 귀환 시 숲이나 늪지대 등으로 비상착륙할 것에 대비한 지상생존 훈련을 하고 우주로 항해를 떠난다. 지구 귀환 후 밝힐 그의 첫 소감이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사진 : 이창주

  • 2008년 0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8

201908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8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