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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피겨 스케이팅계를 놀라게 한 ‘은반의 여왕’ 김연아

“지금은 올림픽 우승만 생각할래요”

2006년은 김연아(군포 수리고)의 해였다. 1990년 9월5일에 태어나 이제 만 16세 4개월인 10대 소녀가 1년 사이에 세계 피겨 스케이팅계를 들었다 놨다. 2006년 3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더니, 성인 무대로 데뷔하자마자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했다. 모두 한국 선수로는 최초였다. 그랑프리 파이널은 올림픽·세계선수권과 함께 피겨 스케이팅의 3대 메이저 대회. 2006년 12월에 열렸던 그 경기를 되돌아보면 김연아가 기량뿐 아니라 정신력에서도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김연아는 당시 규정 종목 격인 쇼트 프로그램에선 3위였다. 허리가 좋지 않아 연기가 약간 딱딱했고, 자세가 조금씩 흔들렸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에게 뒤졌다. 하지만 비중이 더 높은 프리 스케이팅에서 역전극을 펼쳤다. 진통제를 먹고 살구색 테이프를 허리에 붙이고 나오는 투혼을 발휘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 빙상경기연맹 피겨 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상위 6명에게만 출전권이 주어지는 이 대회 참가자 중 절반이 일본인이었다. ‘일본 판’인 경기장 분위기에 위축되고 컨디션도 안 좋아 떨며 앉아있던 김연아. 은반 위에 올라서자 그의 눈빛은 확연히 달라졌다. 얼굴에서 빛이 났다. 초반에 점프 하나를 놓치고도 김연아는 더 냉정하고 대담하게 경기를 펼쳐 나갔다.

예정했던 기술을 소화하지 못하면 대개 당황하게 마련. 김연아는 달랐다. 중반부에 트리플 러츠+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점프를 연달아 선보였다. 3·2·2 회전 콤비네이션은 이번 시즌 처음 선보인 고난도 기술.

“주니어 때 했고, 이번 시니어 프로그램에도 하려고 연습해 왔던 기술이었어요. 그랑프리 2차·4차 대회 땐 상황이 안 맞아 못 했죠.”

초반 점수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경기를 풀어 갔다는 뜻이다. 김연아는 이후 더블 악셀 점프의 착지가 약간 불안하자 곧바로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를 선보였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반면 김연아의 동갑내기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는 흔들렸다. 첫 트리플 악셀(3회전 반) 점프를 하다 넘어지자 당황했다. 김연아는 “아사다가 실수를 잘 안 해봐서 그런 건지 순발력 있게 대처를 못 했어요. 연기 중간에 어떻게든 콤비네이션(점프)을 붙여야 되는데 작정하고 안 뛰데요”라고 말했다. 아사다는 김연아처럼 한 번 놓친 흐름을 다시 잡겠다는 의지가 부족했고, 이 때문에 우승을 놓쳤다.

사실 아사다는 김연아보다 먼저 세계 정상에 올랐다. 2004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2005년 3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를 큰 점수 차이로 꺾고 우승했고, 2005년 12월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세계 최고의 피겨 스타였던 이리나 슬러츠카야(러시아) 등을 꺾고 우승했다. 주니어에서 성인 무대로 데뷔하자마자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1위를 하는 1호 선수의 영예를 안았다. 출전 나이 제한에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2006 세계선수권 우승도 노려볼 수 있었다. 대신 아사다는 토리노 올림픽이 끝난 뒤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다시 출전해 2연속 우승을 노렸다. 하지만 부쩍 성장한 김연아에게 덜미를 잡혔다.

김연아의 진화 과정은 놀랍다. 불과 2년여 만에 130점대에서 190점 가까이로 점수를 끌어올렸다. 김연아는 “주니어 땐 쇼트 프로그램 할 때 트리플-트리플을 해선 안 되는데 시니어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난도 높은 기술을 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으므로 점수는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국제 심판들에게 인지도를 높여 ‘브랜드 가치’와 ‘프리미엄’을 높였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김연아는 시니어 첫 대회였던 그랑프리 2차 대회 땐 좀 야박한 평가를 받았다. 첫날 쇼트 프로그램의 기술 요소 부문은 돋보였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입상자들보다 1.6~2.5점까지 점수가 높았다. 반면 안무와 해석, 전환 등 프로그램 구성 요소 점수는 예상보다 적게 나왔다. 쇼트 프로그램까지 선두였던 김연아는 프리 스케이팅에선 3위로 밀렸다. 심판들은 아직 시니어 무대에서 검증되지 않은 선수에게 예술성 부분의 점수를 후하게 매기지 않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지희 심판이사는 “심판들이 연아의 연기에 놀라워하면서도 ‘한번쯤은 잘할 수도 있지’라는 표정을 짓더군요”라고 전했다. 하지만 국제심판들도 김연아가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 다시 좋은 연기를 펼치자 눈빛이 달라졌다. 이 이사는 “김연아의 풍부한 표현력에 아낌없이 점수를 주는 분위기였습니다. 파이널에선 더 이상 신인으로 보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김연아로선 앞으로 어떤 대회에 나가더라도 ‘2006 그랑프리 파이널 챔피언’으로서의 대접을 기대해도 좋다.

항상 동행하는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 박미희 씨.
김연아의 이번 시즌 프리 스케이팅 연기는 국제무대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이 만들었다.

윌슨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김연아와 손을 잡은 뒤 랄프 본 윌리엄스(영국)의 ‘종달새의 비상(The Lark Ascending)’을 프리 스케이팅 음악으로 함께 골랐다. 본 윌리엄스가 작가 조지 메러디스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김연아는 “캐나다 전지훈련 가기 전에 윌슨이 제 취향을 묻기에 얘기해 줬더니 곡을 몇 개 추천하더군요. 그중에서 (종달새의 비상을) 골랐어요. 프리 스케이팅 음악은 지루하면 안 되거든요. 뭔가 동양적인 느낌이 묻어나 마음에 들었어요”라고 했다. 윌슨의 안무에 대해선 “몸을 쓰는 동작이 많아 어려운 편이에요. 안무를 어렵게 짜죠. 체력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연기, 표현력 연습은 어떻게 할까.

“제가 종달새라고 생각까지는 안 해요. 감정에 몰입한다기보다 음악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대로 표정을 미리 정해 놓아요. 분위기도 타는 것 같아요. 끝나고 (비디오) 다시 보면서 어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꿔보고, 어색한 부분 있으면 다르게 해보고 그래요.”

2006년 3월 세계 주니어 피겨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왼쪽은 은메달을 받은 아사다 마오, 오른쪽은 동메달의 크리스틴 주코스키.

남자 친구는 올림픽 우승 다음에나

김연아가 미셸 콴(미국)을 좋아하는 이유도 환상적인 표현력 때문이다.

“콴은 모든 피겨 팬들이 좋아하는데, 오래 기억에 남아요. 1998년 나가노(올림픽) 때 처음 봤는데 왜 1등이 아니고 2등을 했는지 이상할 정도였어요. 표현력은 아직 콴만큼 하는 선수가 안 나왔으니까요.”

김연아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지난여름 캐나다 토론토로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 은퇴를 고려할 정도였다. 가장 기본적인 스케이트가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연습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심각했어요. 부츠와 날의 중심이 안 맞아서. 스케이트 타기가 싫었어요. 보통 타기 싫을 정도는 아닌데. 9월 (현대카드가 주최한) 공연을 1주일인가 앞두고 잘돼서 날아다녔죠.”

어머니 박미희 씨도 “블레이드(날) 중심 잡는 걸 제가 맡아서 해왔는데, 1년 가까이 스케이트가 안 따라줘 서로 짜증내고 폭발하고 싸우고 했어요. 이게 생활 자체를 지배했죠. 사는 게 피곤했어요. 전지훈련에서 돌아와 날을 아예 분리해 다시 달았더니 괜찮아졌어요”라고 회상했다.

김연아는 점프할 때 발목을 강하게 받쳐주는 딱딱한 부츠를 선호한다. 1년쯤 전부터 부츠가 일찍 구겨지는 문제가 생겼다. 2006년 3월 주니어 세계선수권 때는 다른 국내 선수의 스케이트를 빌려서 나갔다. 2006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을 앞두곤 오른쪽 부츠만 새로 주문해 ‘짝짝이’로 출전했다. 김연아는 “보통 대회엔 스케이트 두 켤레를 가지고 가는데, 오른쪽 두 짝만 구겨졌어요. 왼쪽은 꽤 오래 신고 있죠”라고 말했다. 스케이트 외국 기성품 한 켤레는 항공 운송료를 포함해 보통 가격이 100만 원 안팎이다. 김연아는 1년간 스케이트 20켤레쯤을 시험했다. 비용은 둘째 치고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어머니 박씨는 “안 신는 스케이트들이 집에 박스째 쌓여 있어요. 사인을 해서 (팬들에게) 나눠 드리던지 해야지”라고 말했다.

김연아는 1월 중국 장춘에서 열리는 동계 아시안게임과 3월에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나선다. 두 대회 모두 첫 도전. 그중 세계선수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아사다 마오와의 라이벌 재대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외국 대회 나가면 일본 언론도 그렇고 다른 외국 언론도 그렇고 질문이 뻔해요. 다 마오에 대한 거예요. 나이가 같아선지. 어떤 일본 방송은 일어로 ‘우승하고 싶어요’라고 말해 달래서 싫다고 했더니 응원해 주세요’로 바꿔서 해 달래요. 해줬죠.”

김연아는 아사다가 지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했던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1등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아사다는 도쿄에서 열린 2005 그랑프리 파이널과 나가노서 치러진 2006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높은 점수로 우승했다. 2006년 12월29일 자신의 고향인 나고야에서 끝난 전 일본 선수권에선 자신의 개인 최고 점수(211.76점)로 1위를 하며 세계선수권 출전 티켓을 쥐었다.

김연아는 세계선수권이 끝나면 어머니, 물리치료사와 함께 캐나다로 떠나 앞으로 매년 10개월쯤 현지에 머물며 훈련할 계획이다. 2010밴쿠버 올림픽을 겨냥한 장기 프로젝트다. 이번 시즌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박분선 코치는 동행하지 않는다. 어머니 박 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는 전지훈련 기간이 짧아 프로그램 안무를 짜고 돌아왔는데 이젠 피트니스부터 기본 틀을 다시 짜야 합니다. 전문가들이 시간을 나눠서 연아를 지도할 예정이에요. 제가 담당했던 지상훈련 등도 점차 외국 코치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헤드 코치’는 지난여름 전지훈련에 이어 계속 브라이언 오서가 담당한다. 1984년·1988년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피겨 선수 출신인 오서는 “김연아는 내가 지금까지 본 선수들 중 가장 재능이 많다. 난 김연아가 가진 능력을 끌어내는 것만 해도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연아는 “남자친구도 2010년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나 사귀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에요”라면서 “올림픽까지 좋은 성적 나면 은퇴하고 프로로 전향, 세계를 다니며 아이스 쇼 투어를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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