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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포츠 전문기자가 본 이승엽

부상 투혼 ‘승짱’

글 : 우치다 마사야 스포츠 닛폰 편집위원
번역 : 양정석
이승엽이 일본에 온 지 3년째, 올해 한국과 일본의 야구계를 통틀어 이승엽은 최고의 스타였다. 올 시즌 그는 3할대 타율, 41 홈런 등 팀을 대표하는 ‘4번 타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올렸다. 그는 한때 2위와 8개 차이로 앞서 나가며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홈런왕 후보였다. 무릎 부상으로 주춤하면서 타이론 우즈(주니치 드래곤즈)에 추월을 허용하긴 했지만, 이승엽의 올 시즌 성적표는 A+. 타율, 득점, 최다 안타, 홈런, 타점, 장타율, 출루율 등 도루를 뺀 공격 전 부문에서 모두 6위 안에 랭크됐다. 10월 5일 도쿄 돔에서 벌어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1득점을 보태 타점에 이어 득점까지 100고지에 올라섰다. 반면 홈런왕 라이벌 우즈는 타율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올해 그의 활약에는 2년간 일본에서의 와신상담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2004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한 이승엽은 첫해 2군 추락의 아픔을 겪으면서 100 경기에 나와 타율 0.240, 14 홈런, 50 타점이라는 형편없는 성적을 남겼다. 지난해에는 팀에서는 최다인 30 홈런을 기록했지만 왼손 투수가 나오면 선발에서 제외되는 등 ‘반쪽 선수’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요미우리에서는 달랐다. 70년 역사를 지닌 일본 프로야구 최고 명문 구단 요미우리는 이승엽을 4번 타자로 낙점한 뒤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손가락과 무릎 부상으로 결장한 몇 경기를 제외하고는 요미우리 라인업의 4번째 줄엔 언제나 이승엽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요미우리의 신뢰에 이승엽은 ‘팀을 위하여’ 정신으로 보답했다.

요미우리의 다키하나 다쿠오 구단주는’이승엽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할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고 한다. 이번 시즌 요미우리 경기는 말 그대로 이승엽의 고군분투였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요시노부, 고쿠보 히로키, 아베 신노스케 등 부상자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승엽은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4번 타자 자리를 지켰다. 현역 시절 ‘요미우리 4번’의 책임과 부담감을 절감했던 하라 다쓰노리 감독도 이승엽의 그런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승엽의 가장 뛰어난 점은 휴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부상에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요즘 선수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고쿠보 히로키가 4번 타자가 될 줄 알았다. 하라 감독은 그러나 이승엽 내면 속의 강한 책임감과 투쟁심을 꿰뚫어 보고 그를 발탁했다. 일본에는 ‘돌 위에서도 3년’이라는 격언이 있다.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3년간 인내를 하고나면 보상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일본에 온 지 3년째 이승엽이 ‘폭발’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인내의 결실이다.

이승엽이 삼성 라이언스에 있던 2003년, 오 사다하루의 55 홈런(1964년) 기록을 깨고 ‘아시아 신기록’인 56호 홈런을 날렸을 때, 일본에서는 그다지 화제가 되지 못했다. 한국 구장 크기나 투수 수준이 일본보다 떨어진다며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즌이 끝난 후 일본 지바 롯데로 이적한 이승엽은 한동안 고전했다. 일본 투수들의 변화구와 몸 쪽 공략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왼손 투수를 상대해야 할 때는 선발 멤버에서 제외됐다.

도쿄 돔 외부 벽에 걸린 이승엽 사진.
2004년 시즌 뒤 한국에 갔을 때 그는 모국 기자들에게 “타석에 서는 것이 무서웠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약한 모습이었다. 뭐든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본의 개인주의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고도 했다. 타국인 일본, 말하자면 ‘전쟁터’에서 한국의 국민 영웅은 괴로워했다. 그런 이승엽을 지탱해 준 것은 지난해 지바 롯데에 입단한 김성근 코치의 말이었다. 부진을 거듭하던 이승엽은 “일본 야구는 대단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재일교포 출신 김 코치는 그런 그를 나무라면서 때로는 호통도 쳤다.

“전쟁터에서는 상대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봐야 한다. 너는 싸우기도 전에 지고 있다.”

몸 쪽 공에 대해 적응하는 데는 요미우리 타자 출신인 장훈 씨(68세겱뵈胎?닛폰 평론가)의 충고가 도움이 됐다. 장 씨는 “이승엽은 특히 몸 쪽 높은 공에 약하다. 비거리를 많이 내려는 욕심 때문에 축이 되는 왼쪽 다리의 무릎이 많이 구부러진다. 공에 맞아도 좋다는 각오로 적극 대시해야 한다”고 코치했다. 스프링 캠프 때부터 이승엽의 훈련은 이 약점을 극복하는 데 포인트가 맞춰졌다. 이승엽은 스프링 캠프, 시범경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기간 중의 훈련을 통해 왼쪽 무릎이 접히는 나쁜 습관을 고쳤다. 바깥쪽 공을 밀어치는 데 능한 이승엽이 몸 쪽 공 공략법까지 익힌 후 ‘까다로운 장거리 타자’로 변신한 것. WBC는 특히 그의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WBC에서 이승엽의 활약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그는 아무래도 쫓기고 있는 것 같다. 이승엽이 홈런왕 타이틀을 의식하고 있다는 발언을 처음 한 것은 9월 15일이었다. 도쿄 돔구장에서의 훈련이 끝난 후 인터뷰를 하면서 “3일 정도 전부터 타이틀을 조금씩 의식하게 됐다”고 했다. ‘3일 전’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니 아마도 9월 12일 라이벌인 타이론 우즈와 직접 대결을 벌이면서 자극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 발언을 한 때부터 그의 홈런 페이스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칭 ‘승짱’은 친밀감과 경외심의 표현

경기장에서 이승엽을 응원하는 부인 이송정 씨와 아들 은혁 군.
이승엽이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느냐 마느냐와 관계없이 그가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 그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애칭 ‘승짱’이다. 팀 동료와 팬들이 모두 그를 ‘승짱’이라고 부른다. 승엽의 ‘승’과 일본어 호칭 중 하나인 ‘짱’을 결합한 애칭으로 사람들이 그에게 얼마나 친밀감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지바 롯데 시절 얻은 이 애칭은 이제 그의 ‘공식 호칭’이 됐다.

일본에 한류 바람을 일으킨 배용준이나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사마(樣)’를 붙여 ‘욘사마’ ‘레오사마’라고 부르면서 왜 그에겐 ‘짱’을 붙여 부를까? 사마가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짱’은 훨씬 친숙하다. 일본의 프로야구계에서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홈런왕’ 오 사다하루(현 소프트 뱅크 감독)를 ‘왕짱’이라고 불렀다. 친밀감과 경외심을 함께 담은 애칭이었다. 일본인이 이승엽을 ‘승짱’이라고 부른 데는 ‘왕짱’에 버금가는 친근감과 경외심이 담겨 있다. 이승엽은 실력과 인간성으로 일본인들을 감동시켜 ‘왕짱’이 누렸던 위치에까지 올라간 것이다.

요미우리의 기요다케 히데토시 단장은 “우리는 이승엽을 단지 팀에 도움이 되는 정도의 선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고 단언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도우미’ ‘조력자’라는 의미의 ‘스케토’라 부른다. 팀의 일원이 아닌, 성적을 올려줄 용병으로만 외국인 선수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가이진(外人)’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외국인에 대해 폐쇄적이다. 1986년과 1987년 2년 연속 3관왕에 올라 ‘사상 최강의 도우미’로 각광을 받았던 한신 타이거즈의 랜디 버스도 일본에서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그는 “왜 나를 ‘가이진’이라고 부르는가? 나는 도우미가 아닌 한신의 랜디 버스다. 그렇게 불러달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생각했기에 기요다케 단장은 일부러 “이승엽은 도우미가 아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승엽은 훈련이나 일상생활이나 ‘포 더 팀(팀을 위하여)’의 정신으로 임한다. 그는 분명 우리 가족의 일원이다”고 기요다케 단장은 말했다.

이승엽이 일본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음은 일상생활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경기장에 있을 때 이승엽은 가끔씩 일본 기자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찌개는 원래 한국에서 나베(鍋, 냄비 요리라는 뜻의 일본어)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일본에서 ‘찌개 나베’라고 말하는 게 웃겨요.”

이승엽의 일본어는 정중하고 유창하다. 비교적 친숙해진 요미우리 담당 기자들에게는 늘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온다. 일본에 온 지 3년째인 그는 일본어를 거의 마스터했다.

스포츠 닛폰의 한 요미우리 담당 기자는 “이승엽은 경기 후 취재진의 질문을 모두 이해하는 것 같지만, 혹시 오해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구단 측에서 통역을 통해 질문과 답변을 하도록 하는 듯합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일본어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라고 말한다. 팀 동료들과의 대화에는 통역이 필요 없다. 라커룸에서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올스타 게임 최종 2차전이 열렸던 지난 7월23일, 이승엽은 미야자키 시내의 한국 음식점으로 포수 아베 신노스케와 투수 우츠미 데츠야 등을 초대하기도 했다. 쉬는 날이면 그는 도쿄 시내 집 근처의 공원에서 부인 이송정 씨, 아들 은혁 군과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화목한 가정이 그가 이국 생활에 적응하고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홈런을 날린 후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이승엽.
이승엽은 태평양을 건널 것인가. 이제 최대 관심사는 이승엽의 메이저리그 도전 여부다. 물론 요미우리는 전력을 다해 그를 팀에 남기고자 할 것이다. 이승엽은 시즌 마지막까지 왼쪽 무릎 통증으로 고전하다 10월 13일 무릎 수술을 받는다. 그 후 2개월 정도 재활기간이 필요해 요미우리 잔류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승엽의 빅 리그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과 일본의 해협에 다리를 놓은 그라면 태평양에도 새로운 가교를 놓을 수 있다. 국제화 시대의 야구계에 있어 일본이나 한국은 야구 선진국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많다. 아시아 야구를 세계에 펼쳐 보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야구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더욱 성장한 이승엽의 행보를 넓은 시야를 갖고 지켜보고 싶다.
  •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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