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왈가닥 공지영으로 돌아갈래요”

소설 시장 살리는 작가 공지영

사진 이창주 | 헤어 이재선메·이크업이지선(이경민포레)
물 오른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연이어 꽃망울이 터지는 봄날이었다. 작가 공지영은 화사한 재킷 안에 소매 없는 레이스 티를 받쳐 입고 나타났다. 옅은 색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늘씬했다. 그 또래 여자로는 큰 키였다. “키가 크시네요” 했더니 “네. 어릴 때부터 컸어요” 한다.

그는 속도감 있는 글처럼 말도 빨랐다. 질문에 금방금방 답이 나왔다. 요즘 그는 인터뷰에 이골이 나 있을 터였다. 화제의 중심에 서서 인터뷰를 당하는가 하면, 반대로 CBS FM에서 매일 한 사람씩 초청해 1시간 동안 집중 인터뷰하는 코너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안성기, 박범신, 전무송, 노회찬 씨 등 장르를 망라한 사람들이 그의 ‘손님’이 됐다. 3월 초 시작한 이 방송에서 공지영은 초청 손님과 함께 깔깔대고 웃다가 눈물을 흘렸다가 한다. 감정을 억누르지도 감추지도 못하는 사람, 그게 공지영이다.

사형수를 만나기 위해 함께 구치소를 찾았던 이영우 신부와.
그는 요즘 빈사 상태에 빠져 들고 있는 한국 소설 시장의 버팀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낸 그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두 권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이나영, 강동원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고, 《사랑 후에 오는 것들》도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겠다는 제의를 꾸준히 받고 있다. 문학과 영상의 크로스 오버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그는 소설 시장의 ‘보증수표’였다. 《봉순이 언니》 150만 부, 《고등어》 70만 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0만 부 등 그가 내놓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해 말 펴낸 소설《사랑 후에 오는 것들》도 3개월 만에 20만 부 이상 팔렸다. 한국 여성과 일본 남성 사이의 사랑을 그린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지난해 한일수교 40주년에 맞춰 신문에 연재한 소설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냉정과 열정 사이》를 썼던 일본 남자 작가 츠지 히토나리는 함께 소설을 쓸 한국 여성 작가를 찾고 있었다.

“파리에 사는 츠지 히토나리가 1주일에 몇 번씩 찾아가는 한국 식당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한국 여성이 ‘꼭 공지영 씨와 같이 쓰라’고 권했대요.”

두 사람은 하루에도 몇 통씩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한국 여성과 일본 남성 입장에서 사랑 이야기를 썼다. 공지영은 이 소설에 대해 “20년 가까운 작가 생활 중 남녀 간 사랑을 정면으로 다룬 첫 소설”이라고 말한다. 20대의 청초한 사랑은 그를 경쾌하게 만든 듯했다. 스스로 “요즘 참 편하고 가벼워졌다”면서 “작가는 쓰면서 변하거든요”라고 말한다.

‘연둣빛 트레이닝복을 한 벌 샀다. 거의 노랑에 가까운 그린 빛이다’로 시작하는 소설. 그는 ‘노랑에 가까운 그린’을 주조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옷차림도, 말투도, 재고 경쾌한 몸놀림도 새 봄 같은 ‘노랑에 가까운 그린’이었다. 이번 소설의 주 독자는 소설 주인공과 비슷한 20대. 40대 중반 소설가가 20대 감성에 딱 맞게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는 게 놀랍다.

“요즘 세대들은 구질구질한 것 싫어하고, 금방금방 장면 전환이 되지 않으면 덮어 버리잖아요? 내가 딱 그러니까요.”

그의 소설은 요즘 현해탄을 넘어 일본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석 달 차를 두고 최근 일본에서 출간됐는데, “한국 여성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랑하느냐?”며 관심을 보인단다. 지난 주말 일본으로 건너가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주요 언론들과 인터뷰하고 왔는데, “힘차면서도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이 새롭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더니 수십 년 만에 만난 남자 짝이 그러더라고요. ‘아니 그 왈가닥이 어떻게 소설을 써?’라고.”

왈가닥이었던 어린 공지영은 사근사근 붙임성이 좋아 동네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짐에 짓눌려 있었다는 그는 최근 ‘왈가닥 공지영’을 되찾고 있는 듯했다. 친구도, 음주가무도 좋아해 그 둘이 어우러질 때면 거의 의식을 잃은 채로 집에 돌아오곤 하는데, 고 3인 딸을 붙잡고 춤추자고 하는 게 술버릇이란다.

“엄마, 제발 술 마시고 들어와 춤추자고 좀 하지 말아요”라고 딸아이가 쯧쯧 혀를 찬다고 한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정말정말 좋아요. 어떨 때는 걔가 엄마 같다니까요”라고 반색을 한다. 그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밝고 경쾌해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남들은 다 덤덤하게 사는데 나 혼자 버라이어티 쇼를 하는 것 같고. 남들은 적당히 삭이면서 사는데, 나만 이렇게 못 견딜까, 참을성이 없을까 하고요.”

그러나 이제 “타고나길 그런 걸 어쩌겠어. 남들과 다른 특이 감성을 가졌으니 어쩔 수 없지”라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는 세 남자와 결혼했고, 또 이혼했다. 그 과정에서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 세간의 호기심 대상이 되기 십상인 이 문제도 그는 피해 가지 않았다.

“결혼하고 이혼하는 일…. 정말 힘들었어요. 고통으로 짜여진 녹즙이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았지요. 그러나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참 많구나’ 하고.”

그는 “무모해서인지 머리가 나빠 그런지 뭐든 올인하게 된다”면서 “이제는 그런 삶의 방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올인을 하고 나면 앙금이 남지 않아 홀가분해지거든요.”

최근에는 ‘나 열렬하게 사랑했고, 열렬하게 상처받았고, 열렬하게 좌절했고, 열렬하게 슬퍼했으나 모든 것을 열렬한 삶으로 받아들였다’라는 묘비명도 미리 써 뒀다.


“요리 하나를 해도 미친 듯이 해요. 누가 뒤에서 총 겨누고 있냐고 물을 정도로.”

여러 번 상처받았지만 사랑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사랑이란 상처받을 것을 허락하는 것이라면서요?”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아직도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다. 그리고 사랑만이 사람을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소설 쓰려 사형수 취재하며 내내 울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함께 쓴 츠지 히토라니와
여러 번 자살을 기도한 여자와 사형수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매주 사형수들을 만나 꼼꼼히 취재하면서 썼다. 2004년 가을, 처음 사형수들을 만나러 갈 때 그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상황이었다고 한다. 세 번째 결혼도 실패했고, 경제적으로도 불안했다. 세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그로서는 소설만이 살 길이었다. 서울 구치소에서 사형수들을 만났을 때 이상하게 가여운 마음이 앞섰다고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아졌고, 그들을 만나는 석 달 내내 울었더니 나중엔 사형수들이 “언제까지 우나 보자”며 내기를 했다고 한다.

사형수들과의 만남은 소설가에겐 보고(寶庫)를 찾은 것과 같았다.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또 천사 같아질 수 있는지 선과 악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을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자기 딸을 죽인 살인자를 위해 떡을 해 가지고 와서는 “너를 용서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할머니가 나온다. “천사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으니 “실제로는 더한 장면도 많이 봤지만, 너무 작의적이라고 할까 봐 소설에서는 뺐다”고 한다. 혈육을 죽인 살인자를 양자로 삼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공지영은 그들을 만나면서 ‘사랑의 힘’을 다시 믿게 됐다. 흉악한 살인자였던 이들이 사랑을 받음으로써 얼굴 표정이, 말투가, 행동이 변화하고, 성자(聖者)처럼 바뀌어 가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쓸 때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하찮게 여겨야 하느냐’는 생각으로 20대의 생활과 언어, 사랑을 취재하면서 썼다. 이 소설을 쓰면서 그는 ‘작가의 사회적 책무’니 하는 짐을 내려놓고 가벼워졌다고 한다. 운동권 후일담이나 여성 문제를 들고 나왔던 스스로에 대한 틀도 버렸다. 경쾌, 발랄, 명랑한 ‘왈가닥 공지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등학생 때 그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총각 선생님에게 “사랑해요. 저랑 결혼하실래요?”라고 청혼했던 당돌한 소녀였다.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까지 그려 넣어 1인 문집을 만들며 막연히 ‘앞으로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모두 방송반 아나운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그의 방송 진행은 전문가 못지않게 매끄럽다. 다른 점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 “목젖이 보일 것 같은 공지영 씨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참 인상적이다”라는 청취자 반응을 얻고 있다.

그는 요즘 폭발하듯 작업을 하고 있다. 4월 말 자신이 좋아하는 시에 에세이를 덧붙인 산문집을 내고,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소설도 계획하고 있다. 처음으로 추리 소설에도 도전한다. 학창 시절에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7년간 작품 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주부로서 일상을 살았던 그는 “그때는 그게 평안한 생활인 줄 알았는데, 지금 돌아보니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가수면 상태였던 것 같다”고 한다. 그는 글도 속도감 있게 쓴다. 쓰다 보면 다음이 궁금해져 후다닥 써 내려가게 된다고. 미래에 대해서는 그다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그때그때 내게 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빨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돌아보는….” ■
  • 2006년 05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