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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한 바람둥이 다니엘 헤니

Shall We Waltz?

글 서철인 TOP CLASS 기자 | 사진 이창주 | 사진제공 비오템코리아·빈폴·CJ홈쇼핑
아침에 일어나 상큼한 주스를 마시고 탤런트 정려원과 모닝키스를 나눈다. 가볍게 샤워한 후 다국적 브랜드의 화장품을 바르고 컴퓨터를 켜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으로 연결된 항공사에 티켓을 예약한다. 시계를 보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달려간 곳은 탤런트 이보영의 집. 그녀와 가볍게 조깅을 한 다음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홈쇼핑 업체에 주문한다.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의 기내 서빙을 받으며 도착한 곳은 영국 런던. 이곳 거리에서 할리우드 배우 기네스 펠트로와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때 운명처럼 핸드폰 벨이 울린다. 디지털 카메라 속의 전지현일까, 카메라 폰 속의 김태희일까. 잠시 후 젠틀맨으로 변신, 빨간색 승용차를 타고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여인에게로 향한다.

TV만 켜면 나오는 CF계의 황제, 다니엘 헤니의 하루를 광고 속 이미지로 구성하면 이렇게 된다. 이대로라면 그는 한국과 미국 최고의 미녀들을 거느린 행복한 바람둥이다.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해 부드러운 미소 하나로 대한민국 여성을 접수해 버린 남자. 혜성처럼 나타난 이 혼혈 청년에게 이 땅의 젊은 여성들이 순식간에 빠져 든 이유는 당시 인터넷에 등장해 화제를 모은 ‘찬 다니엘가’에 잘 나타나 있다. 향가 ‘찬 기파랑가’를 모사한 이 노래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조각 같은 얼굴이면 몸이라도 부실턴가 / 얼굴 보디 예술이면 목소리나 확 깨든가 / 아름다운 그 입술로 조근조근 영어 하니 / 웬수 같던 잉글리시 바로바로 접수되네.’


다니엘 헤니는 현재 매니저이자 통역 담당인 정용석 캣 프로덕션 팀장과 함께 지내고 있다.
왈츠 추는 바람둥이?

키 188㎝, 몸무게 72㎏의 체격에 동서양의 장점만 절묘하게 섞어 놓은 듯 신비로운 얼굴의 그에게 매료된 이는 젊은 여성들만이 아닌 듯하다. 지난 2월 28일 서울 용산 CGV 극장에서 열린 드라마 〈봄의 왈츠〉 시사회장에서 만난 윤석호 PD는 다니엘 헤니를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다니엘 헤니가 연기하는 필립은 사실 이 드라마 기획 초기에는 없었던 인물이에요. 다니엘을 위해 드라마 기획이 중간에 수정됐죠. 한국 배우에게서는 찾기 힘든 저 친구의 독특하고 풍부한 표정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눈썹의 움직임이라든가 입술의 떨림이 신선했어요. 저런 느낌을 화면에 담아 내면 참 매력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계속 뇌리에 남고 눈에 밟혀 배역을 만들어 냈습니다. 초반부를 촬영 중이지만 제가 생각했던 느낌을 잘 표현해 주고 있어요.”

지난 3월 6일부터 KBS 2TV에서 방송되고 있는 〈봄의 왈츠〉는 〈가을 동화〉, 〈겨울 연가〉, 〈여름 향기〉에 이은 윤석호 PD의 계절 시리즈 완결 편. 그는 이 작품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주인공의 친구이자 매니저로 열연하고 있다.

다니엘 헤니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호흡을 맞췄던 탤런트 정려원과 함께(위).그를 인터뷰하러 온 인도네시아 취재단(아래).
이날 시사회가 끝난 후 마련된 주요 출연진과의 기자회견장에는 국내 언론사 기자들은 물론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외신기자들이 대거 참석,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재미있는 것은 국내외를 막론한 기자들의 질문이 대부분 다니엘 헤니에게 몰렸다는 점이다.

필리핀에서 온 기자는 그가 연기하는 필립이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하다며 “실제 성격도 그런 것 아니냐”고 물었고, 일본에서 온 기자는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서 여자친구도 없고, 내게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제 연기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답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기자는 “작년에 방영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때문에 인도네시아에도 다니엘 헤니를 좋아하는 여성 팬들이 계속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유럽계 혼혈 스타가 ‘국민 배우’ 대접을 받고 있는데, 다니엘의 인기도 그에 못지않다”고 말했다.

이 기자가 다니엘에게 “모델도 훌륭한 직업인데 배우가 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 (왼쪽 위) 20여 년 전의 다니엘 헤니. 어린 시절 그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왼쪽 아래) 모델로 활동할 당시 헤니의 모습. 그는 프랑스 와 이탈리아, 싱가포르, 홍콩 등지에서 특급 모델로 활약했다.
(오른쪽) 2005년 7월 헤니의 어머니 크리스틴 헤니 씨는 아들의 초청으로 입양된 지 4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헤니는 “어머니가 색동저고리를 입은 각시인형을 늘 곁에 두고 애지중지했다”고 말했다.
“저 역시 모델이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도 있고요. 하지만 제 안에 잠재되어 있는 많은 것을 보여 주기에 모델은 한계가 있어요. 다양한 인물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기는 워킹보다 훨씬 창조적인 작업 같아요.”

그는 2002년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 재학 중 모델 일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은 물론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2003년에는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밀라노 컬렉션에 참가해 구찌, 조르지오 아르마니, 발렌티노 등의 무대에 섰다. 이 무렵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양 모델”이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다니엘 헤니의 모델로서 타고난 ‘끼’는 고교 시절부터 조금씩 드러났 다. 영국계 미국인이며 엔지니어인 그의 아버지 필립 헤니(59세)는 “고교 시절 다니엘은 아침마다 일어나 온갖 종류의 옷을 늘어놓고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느라 학교에 지각할 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다니엘은 농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후 경영학과 연기를 복수 전공했다. 그런 그가 모델로 데뷔하게 된 동기는 우연이었다고 한다.

“전 모델보다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제임스 딘의 우수 어린 표정 연기나 브래드 피트의 거칠면서도 지적인 내면 연기를 좋아했죠. 그래서 오프 브로드웨이의 연극 무대에서 실기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델 지망생이었던 친구를 따라 오디션 현장에 갔는데 한 에이전트가 제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더군요. ‘차도 낡았는데 돈 좀 벌어서 바꿔 볼 생각 없어?’라고요.”

우연히 시작한 모델 일이 그를 배우의 길로 인도했다. 그것도 어머니의 나라에서 말이다.


솔직하게 쓴 에세이 덕에 캐스팅

다니엘 헤니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국내 한 화장품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되면서부터다. 홍콩에서 활동하던 그를 발굴한 사람은 박명천 CF 감독이다. 그는 다니엘에 대해 “제품 컨셉트상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얼굴을 찾고 있었는데, 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던 다니엘 헤니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처음 출연한 CF가 인기를 끌면서 톱스타 전지현과 디지털 카메라 CF를 촬영하게 됐고, 그곳에 우연히 들른 탤런트 김선아의 매니저를 통해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한 김윤철 PD를 소개받았다. 김윤철 PD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헨리는 캐릭터상 네이티브 스피커로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어야 했어요. 마땅한 배우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다니엘 헤니를 소개받았죠. 첫 미팅하던 날 연기력을 테스트하고 싶었는데,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고 해 그의 연기력을 알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와 이제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써서 보내 달라고 했어요.”

모델 활동을 하면서 뉴욕 연극 무대에 서던 다니엘은 얼마 후 김 PD에게 자료를 보내왔다. 대학 때부터 연기 공부를 해 온 터라 연기력이 탄탄한 데다 에세이 내용도 솔직하고 진지했다고 한다. 김 PD는 “특히 에세이에서 진정성이 느껴져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고 말했다.

다니엘 헤니는 1978년 미국 미시간 주 키슨 시티에서 태어났다. ‘삼순이 신드롬’으로 뜨거웠던 지난해 여름, 그는 미국의 어머니를 초청해 함께 출연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키슨 시티 근교에서 검은 머리의 동양인은 어머니와 저 둘뿐이었어요”라고 밝혔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고, 자신의 외로움을 온전히 알아주는 이는 어머니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의 어머니 크리스틴 헤니 씨(49세)는 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한 휴대전화 CF 속에서 “다른 건 외로운 거야”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 묘한 여운이 감도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광고 제작 관계자들에 따르면 다니엘 헤니의 몸값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최소 두세 배는 뛰었다고 한다.
작년 여름 그는 펄벅 재단이 주최한 ‘혼혈아동 희망 나누기! 펄벅 여름 캠프’ 현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수많은 혼혈 어린이들에게 “혼혈은 축복”이라며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어린 시절 제가 다닌 학교에는 동양인이 저밖에 없어서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친구들은 늘 내게 한국으로 돌아가라,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소리쳤지요. 몰매를 맞아 왼쪽 다섯 손가락이 모두 골절된 적도 있어요.”

그는 정체성의 혼란과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미친 듯이 운동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하루에 8마일(약 12㎞)씩 달리고, 틈만 나면 농구를 한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차별을 스포츠로 극복한 셈이다.

미식축구의 영웅 하인스 워드 때문에 혼혈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순혈주의’가 강한 한국에서 그가 안착할 수 있을까? 우선 그가 가장 시급하게 극복해야 할 문제는 언어장벽이다.

“한국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고, 소설도 떠듬떠듬 읽고 있어요. 김종국의 ‘한 남자’, 윤도현의 ‘사랑2’ 같은 대중가요를 부르며 열심히 한국말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중반부터는 한국어 대사가 많아질 거예요.”

그는 “아직은 동료 연기자들의 말이 너무 빨라 대본 따라가기가 힘들다”며 “열심히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라는 말을 또박또박 우리말로 했다. 그가 ‘한류’를 발판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코스모폴리탄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
‘봄의 왈츠’는 이런 드라마

드라마 기획 제작사 ‘윤스칼라’(대표 윤석호)가 2004년부터 사전 기획에 돌입, 대본과 연기자 오디션 작업 및 장소 헌팅을 거쳐 지난해 봄부터 촬영에 들어간 KBS의 야심작. 〈가을 동화〉, 〈겨울 연가〉, 〈여름 향기〉에 이은 윤석호 PD의 계절 연작 완결 편으로 전작들에서 보여 준 순수하고 아름다운 남녀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가 주제다.

이전 작품들과의 차이점에 대해 윤석호 PD는 “전작들이 만남과 헤어짐 속에 사랑을 완성해 가는 이야기에 치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각자가 지닌 아픈 기억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남녀가 화해와 용서를 통해 서로를 치유해 간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고 말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윤석호 PD 특유의 영상미학이 빛을 발한다. 남도의 섬 청산도의 봄 풍경과 왈츠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설경 속에 네 남녀의 사랑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나가는 솜씨가 유려하다.

다니엘 헤니가 맡은 필립은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여주인공 은영(한효주 분)에게 첫눈에 반해 짝사랑의 아픔을 겪는 인물이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그가 연기했던 의사 헨리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이에 대해 다니엘 헤니는 “헨리처럼 부드럽고 친절한 남자이긴 하지만 성격이 좀 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바람둥이 기질도 있다”고 말했다.

윤석호 PD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모두 신인급 연기자들을 캐스팅했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봄이기 때문에 작가도 배우도 신인으로 기용했다”고 한다. 다니엘 헤니의 팬들은 새 봄에 대한 설렘으로 그의 색다른 연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 200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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