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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지도 밖으로 행군 중!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지난 10월 수만 명이 사망한 파키스탄 지진 피해지역에서.
한비야. 7년간 오지(奧地)만 다니며 세계 일주를 해 화제가 됐던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험한 현장만 뛰어다닌다.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 전쟁과 재난으로 삶이 송두리째 뽑힌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고,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일이다.

10월 중순 그는 대지진으로 수만 명이 사망한 파키스탄에 다녀왔다. 링거 병을 꽂은 채 다니고, 돌아오자마자 탈진해 병원 신세를 졌다지만 현장에서 그는 펄펄 날았을 것이다.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을 일요일, 그의 집을 찾았다. 내내 잠을 못 잤다는 그의 눈빛은 형형했고, 말은 빨랐다. 고통의 심장부를 지켜본 사람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직무 유기라고 했다.

그는 48시간 대기조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호출이 오면 즉시 짐을 싸서 이틀 내에 떠나야 한다. 이번에도 10월 8일 파키스탄 지진 소식이 들리자마자 내내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에게 떨어진 역할은 파키스탄 북부 지진 피해지역인 만세라에 의료팀을 이끌고 가는 것. 의사 세 명, 간호사 두 명으로 구성된 월드비전 의료팀은 길이 무너져 고립된 산골을 찾아다니며 환자 1,500여 명을 돌봤다.

이동 진료소를 차리자 두개골이 부서진 사람, 갈비뼈가 부러져 내장을 찌르고 있는 사람, 다리 힘줄이 다 드러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지진을 경험하기도 했다. 놀이기구를 탄 듯 땅이 덜컹 흔들리자 현지인들이 “잘랄라(지진)”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태연했다. “자, 여러분은 지진 현장을 생방송으로 보고 계십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여권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으세요”라고 의료진에게 일렀다.

“만약 그 자리에서 사망하면 신원 확인을 위한 것이었어요. 그런 순간에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돼요. 현장을 지휘하는 사람이 태연해야 사람들이 안심을 하거든요.”

사실 그도 매우 불안했단다. 자신이야 긴급구호팀장으로 현장에서 사망하는 게 ‘소원’이지만, 같이 간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다.

파키스탄에서 돌아온 그는 요즘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파키스탄 산골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라서다. 얼기설기 임시 집을 지어 놓고 얇은 플라스틱 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들. 겨우 응급처치로 살려 놓은 사람들이 저체온으로 사망할까 조마조마하다.

“담요 살 돈을 보내 줘야 해요.”

걸쳐 입었다 깔고 잤다 임시 거처에 덮어씌워 보온재로 쓰기에는 담요만 한 게 없다는 것이다. 3,000원이면 현지에서 담요 한 장을 살 수 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그 일을 왜 못 하겠느냐고 그는 호소한다. 내내 웃는 표정인 그의 눈도 이 말을 할 때는 물기가 고인다.

한비야 씨는 베스트셀러 저자다. 1993년부터 7년간 세계 오지여행 경험을 담은 책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 4권)이 100만 권,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을 하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쓴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가 15만 권, 한 해 동안 중국어 공부를 하며 경험한 중국 이야기인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이 50만 권 팔렸다.

지난 9월 8일 초판을 낸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는 종합 베스트셀러 1~2위를 기록하며 두 달 만에 20만 권 가까이 팔렸다.

‘바람의 딸’은 첫 책을 내기 전 만난 한 언론인이 지어 준 별명. 바람같이 떠돌아 다닌다는 뜻의 이 별명은 이제 사람들에게 ‘바람’(희망)을 전해 준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현장에서도 아이들이 그를 웃게 한다.
《지구 밖으로…》는 만 4년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서 그의 활동을 집약한 보고서다. 세계의 화약고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기근과 에이즈, 내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남아시아의 쓰나미 피해지역 등이 그의 활동 영역이었다. 4년간 80차례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인류가 겪는 가장 비참한 현장만 다녀왔다. 안온한 환경에서 마음 편히 살고 싶다면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이 불편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다니. ‘한비야 신드롬’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엄청난 이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외모도 스스로 B+라고 평할 정도로 평범하지만 그는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스타다. 그의 힘은 행동에서 나온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에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의 책은 사람들을 움직인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냈을 때는 “현실 때문에 밀쳐 놨던 오랜 꿈을 찾기로 했다”는 독자들이 많았다. 2001년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이 나온 후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가 나오자 월드비전에 후원자로 등록하는 사람이 매일 200명으로 늘었다. 그 사람의 행적에 따라 자신의 삶까지 변화시킨다는 면에서 이만큼 열렬한 팬이 없다. 한 중학생은 “급식 당번으로 면제받은 급식비를 비야 누나한테 드리고 싶다”고 했다. 분명 좋은 데 쓰일 것이라 믿기 때문이란다.


대학 낙방 후 전국 유람

몽골의 셋째 딸 엔크흐진과 그 가족들(위).
에티오피아의 큰딸 젠네부와 함께(아래).
그가 사람 냄새를 좇아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부터였다. 대학입시 실패 후 무작정 가출한 그는 완행열차로 목포까지 내려가 배로 제주도에 들어갔다. 자전거로 섬을 한 바퀴 돈 후 육지로 건너와 팔도유람을 했다. 그 후 “엉뚱한 일은 해도 허튼짓은 안 한다”고 가족들이 믿어 준 덕에 전국 유람을 계속할 수 있었다. 통겧貶? 과외, 임시 세무 공무원, 음악다방 DJ 등으로 돈을 벌면서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녔다.

대학에 들어간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5년 후. 홍익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음악다방 DJ를 하면서 만난 미국인 부부의 도움으로 미국 유타대 언론대학원에 진학해 국제 홍보학을 전공했다.

그는 귀국 후 국제 홍보회사에 다니다 직장생활 3년 만인 1993년, 오랜 꿈이던 세계 일주를 실천에 옮겼다. 그가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4남매를 모아 놓고 세계지도에서 나라와 도시, 산, 바다 찾기 놀이를 시켰다. 세계여행기를 즐겨 읽던 어린 비야는 “아빠, 나도 세계 일주를 할 거야”라고 말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떠난 세계 여행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발길이 자꾸 가난한 마을로 향하더니 일부러 난민촌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1996년 발간한 첫 책 첫 줄에 그는 ‘이 책을 아프리카와 중동에 흩어져 있는 난민 어린이들에게 바친다’고 썼다.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난민 수용소에서 만난 한 아이의 눈망울이 끝내 잊혀지지 않아서였다. 지뢰 때문에 다리 하나, 팔 하나를 잃은 여자 아이가 꼬질꼬질한 손으로 빵을 내밀었을 때, 자신의 생명과 같은 한 끼를 이방인에게 아낌없이 내주는 그 손길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이 살아남아야 할 텐데. 굶어 죽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안타까움이 내내 그를 사로잡았다. 2001년 긴급구호팀장이 된 그의 첫 파견지가 바로 그곳,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였다.

절대자가 미리 계획해 둔 듯 딱딱 아귀가 들어맞는 자신의 삶이 스스로도 놀랍다고 한다. 국제 홍보학을 공부했기에 현장을 가장 정확하게, 호소력 있게 알릴 수 있고, 세계 구석구석까지 누볐기에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 벌어진 일도 내 일같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는 특히 약자한테 마음이 기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난을 경험했고, 번역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고졸이라 해서 번역료를 대학생의 반밖에 받지 못했다. 대학 공부를 시작한 것도, 직장을 가진 것도 모두 남들보다 한참 늦었다. 그는 “내가 약자로 살아 봤기에 약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안 그랬다면 워낙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니 제멋에 사는 건달이 되지 않았겠냐고.

그는 유난히 감정 이입이 잘돼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경험해 버린다. 아버지가 신문사 정치부 기자였던 덕에 어린 시절 서울 금호동 그의 집에는 한 동네 하나밖에 없는 전화가 있었다. 누구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 누구네 딸이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이 그의 집 전화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기꺼이 그 동네 메신저가 되어 집집마다 소식을 전하며 함께 울고 웃었다. 그러면서 “나는 감정 선이 굉장히 여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비참한 현실과 직접 맞닥뜨린다는 게 얼마나 힘겨울까? 그 물음에 “어금니를 악물고 괴로움을 견딥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차가워야 한다는 게 국제 매뉴얼에도 나와 있단다. 그러나 그는 반대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무슨 일을 합니까? 내 마음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누구 마음을 움직입니까?”라고 항변한다.

온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경험한다는 게 너무 힘들어 탈진하고 말지만 어디선가 큰일이 터졌다 하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지 못해 다시 몸이 단다. 현장에 가면 그는 기운이 펄펄 난다. 평소에도 이틀에 한 번 정도 자는데, 현장에서는 더 잠을 안 잔다. 내내 조증(燥症) 상태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몽골에서 세 딸 얻어

세계 여행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은 그에게 “활기와 에너지로 주위를 밝게 만든다”고 했다. 1958년생 개띠인 그는 스스로 ‘삽살개 표 개띠’라며 어느 문화권 누구와 만나도 금방 친구가 된다. 삶의 기반을 잃고 멍해 있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활기와 친근감으로 다가설 수 있는 자원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의 책이 갖는 힘도 그런 친근함에서 온다. 40대 후반에 이르렀지만 그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는 독자는 없다. 10년 전 첫 독자도, 지금의 중고생 독자도 똑같이 “누나” 아니면 “언니”라고 부른다. 첫 독자가 선생님이 된 후 중고생 제자들에게 그의 책을 읽으라고 권해 그의 저자 사인회에는 학생들이 많이 몰려온다. 자신이 반 발짝만 앞서 나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쫓아온다고 그는 풀이했다. 225㎜도 안 되는 발과 꼬마 같은 손을 내보이며 “이 발로도 걷잖아, 이 손으로 하잖아”라고 설득한다. 독자들은 “비야 누나가 쓰면 전쟁 이야기도 재미있어요”했다가 “뭔가 나도 해야겠어요”라고 결심한다. ‘비야 언니가 가 있겠지’라는 생각에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닌 게 됐다.

4년간의 활동을 통해 그는 “먹고 먹히는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는 세계라지만, 여기에 사랑과 나눔의 법칙을 퍼뜨릴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했다. “이 일을 하면서 얼굴이 더 밝고 편안해졌다”면서 지금 자신의 얼굴이 무척 마음에 든단다.

독신인 그가 딸도 셋 얻었다. 에티오피아의 큰딸, 방글라데시의 작은딸, 몽골의 셋째 딸이다. 그가 보내는 후원금으로 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담보 노동에서 풀려나고, 구루병(영양부족으로 등이 휘는 병)에서 해방됐다. 위험한 현장일수록 자신의 옆에 딱 붙어 보호하는 절대자의 힘도 경험했다.

한비야는 이제 많은 이가 그 행보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됐다. 다시 그의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할 일은 무엇일까? “아직 이 일도 훈련 단계에 있다”지만 그는 훗날 대형 난민촌의 총책임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쟁이나 기근, 자연재해로 피신해 온 사람들을 돌보는 난민촌장, 그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다. 그 다음은? 이번 책에 그 키워드가 있을지도 모른다. ■
  • 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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