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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실력 7~8잔, 예의 바르고 친화력 강한 삼성家의 후계자

삼성의 뉴 리더 이재용

1968년생. 한국 나이로 서른여덟. 서울대 동양사학과, 일본 게이오 대학 MBA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준재(俊才). 헌칠한 키에 어머니(홍라희 여사)를 닮아 섬세하게 잘생긴 미남형. 현직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

이건희 회장의 장남으로 삼성그룹의 차기 총수에 내정된 이재용 상무의 간략한 프로필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거대 그룹 삼성의 후계자는 이런 공식적인 이력 외에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언론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아예 피하고 있고, 본인이 근무하는 삼성전자 내에서도 그다지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는 탓에 ‘입소문’도 별로 타지 않는다. 그래서 ‘이재용’이라는 이름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삼성의 창업자이자 이재용 상무의 할아버지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은 풍류를 알았지만 술은 좋아하지 않았고, 이건희 회장도 포도주 몇 잔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 상무는 현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회식이라도 할 때면 ‘폭탄주’를 직접 제조할 뿐 아니라 예닐곱 잔은 거뜬히 마신다. 때로 어머니 홍라희 삼성미술관장이 이 상무의 술 실력을 걱정할 정도.

● 이재용 상무의 가족. 오른쪽이 부인 임세령 씨고 왼쪽이 장남 지호 군이다. 이 상무 부부는 지난해 딸 원주 양을 얻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기질적으로 ‘외로운’ 성향을 가진 것과 달리 사람들 사이에 비교적 쉽게 섞인다는 것도 이 상무의 다른 점이다. 호암은 차갑고 치밀하며, 고고한 완벽주의자였다. 그래서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수줍고 내성적이며, 혼자만의 사유의 세계가 깊은 기인(奇人)형이다. 성향은 많이 달라도 결과적으로는 호암과 이 회장이 비슷하다.

그러나 이 상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힘들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는 쪽이다. 술 실력이나 사회성만으로 보면 ‘외탁’을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삼성’을 벗어난 이 상무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장(家長)으로서의 삶이다. 이 상무는 1998년 6월 아홉 살 아래인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맏딸 임세령 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어머니와 장모 박현주 씨가 불교도 모임인 ‘불이회’에서 친하게 지낸 게 계기가 됐다. 당시 세령 씨는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이었는데, 결혼과 함께 휴학하고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남편을 따라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중이던 2000년 1월 장남 지호를 얻었고, 이듬해 3월 귀국해 현재까지 이 회장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지난해에는 딸 원주를 낳았다.

어머니들 간의 중매였지만 이 상무가 결혼 전부터 세령 씨에게 쏟아 온 정이 예사롭지 않다. 유학 시절 가까이 지낸 유학생들에게 약혼녀의 사진을 보여 주며 자랑하기도 했고 부부로 미국에서 함께 공부할 때도 아내 사랑이 지극했다.

세령 씨는 1999년 시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을 때 정성으로 간호했을 뿐 아니라 두 손주를 품에 안겨 드림으로써 시부모의 사랑도 독차지하고 있다. 지호와 원주를 얻고 나서 이건희 회장이 부쩍 웃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 세령 씨의 아버지이자 이 상무의 장인인 임창욱 회장이 요즘 비자금 문제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으니 아무래도 큰 우환일 듯하다. 밖에서야 내색하지 않지만, 나이 어린 아내의 속앓이에 이 상무 역시 마음고생이 적지 않다고 한다.

● 이재용 상무는 1998년 6월 아홉 살 아래인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맏딸 세령 씨와 결혼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는 작업을 주변의 평판 수집에서부터 시작하자면, 대개 “예의 바르고 잘 교육 받았다”는 얘기부터 듣게 된다. 이 상무는 삼성그룹의 고위 간부들을 대할 때 ‘상무’로서 대한다. 일례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앞에서 손을 포개고 무릎은 가지런히, 허리는 곧게 세워 예의 바르게 앉아 있는 이 상무의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윤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이 상무를 곁에서 가르친 가정교사와도 같은 존재다. ‘후계자’의 지위에서는 꼭 상하 관계로만 볼 수 없는 사이지만 이 상무는 변함없이 깍듯하다. 윤 부회장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삼성의 모든 선배 경영진들에게, 또 직급을 막론하고 연장자들에게는 꼬박꼬박 존대를 한다.

이렇게 ‘예의 바르다’는 평가는 ‘교육을 잘 받았다’는 얘기와도 통한다. 여기서 교육이란 가정교육을 말한다. 이 상무는 철들기 전부터 ‘겸손해야 한다’는, 엄청난 강도의 주입식 교육을 집안에서 받아 왔다.

지나친 의전(儀典)을 꺼리는 건 임원 초창기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비서들이 수행하는 걸 싫어할 뿐 아니라 불가피할 경우에도 떨어져 있으라고 손사래를 칠 정도.


동양사학도의 고단한 경영 수업

●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는 이 상무.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 상무를 ‘현장 중시형 경영자’로 키우고 있다.
‘겸손하게 잘 컸다’는 말이 삼성가의 자제에 매우 잘 어울리는 평범한 표현이라면 ‘술 잘하고 친화력 있다’는 말은 뜻밖으로 들린다. 사실 할아버지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나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비교하면 이 대목에 관한 한 이 상무는 ‘돌연변이’다.

이 상무의 집무실에는 사자성어로 된 두 개의 액자가 걸려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격물치지’(格物致知)다. 윤종용 부회장이 선물했다는 이 어구는 《대학》(大學)이 원전으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해 지식을 완전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학(理學)과 실용학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상무가 이 사자성어를 집무실 벽에 걸어 둔 데는 의미가 있다. 원래 이 상무는 인문학적 소양에 충실한 사람이다. 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개인적인 취미가 고지도(古地圖) 수집일 정도. 금석학에도 조예가 있고 한자실력도 상당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위치는 삼성전자 상무이며,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를 주력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삼성그룹의 후계자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그가 삼성전자에 입사할 때부터 최소한 공학도 이상의 전문성을 갖추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래서 이 상무는 삼성전자에 ‘상무보’로 입사한 2001년부터 집요하게 반도체와 전자산업 전반을 공부했다. 이런 측면에서 ‘격물치지’는 자신의 학습에 대한 다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또 하나의 편액은 ‘삼고초려’(三顧草廬)다. 촉의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차례 초옥을 찾아갔다는 고사를 담고 있는 만큼 인재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경구. 삼성 하면 떠오르는 게 인재경영이고, 이건희 회장은 “제대로 된 한 명의 인재가 순익 1조 원짜리 기업보다 낫다”고 강조할 정도이니 ‘삼고초려’는 삼성 경영의 근본이라 할 만하다.

이 상무가 경영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건희 회장은 “주말에 삼성전자 임원들과 골프를 칠 것, 임원들에 대한 사항을 꼼꼼히 파악할 것, 삼성전자 해외법인을 모두 돌아볼 것”을 지시했다. 명을 받은 이 상무는 3년여에 걸쳐 삼성의 최오지 사업장인 브라질 마나우스 공장을 시작으로 전 세계의 모든 사업장을 방문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후계자를 ‘현장 중시형 경영자’로 키우고 있는 셈이다. 한번은 휴일에 경기도의 한 LG전자 직영 가전대리점에 나타나 LG 제품을 둘러본 적도 있다.

그의 경영 스승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이미 고인이 된 할아버지 이병철 선대회장, 윤종용겴鎌劇?삼성 부회장, 이기태 사장을 꼽는다. 앨빈 토플러는 이 상무와 만난 후 “삼성은 복이 많은 기업이다. 삼성의 미래는 밝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 이건희 회장은 이 상무가 삼성전자에 입사할 때부터 최소한 공학도 이상의 전문성을 갖추라는 엄명을 내렸다.
퇴근해서도 일에서 손을 못 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젠가 삼성의 한 간부가 늦은 시간에 이 상무에게 이메일로 보고를 했다. 그 간부는 늦은 시간이었고 이 상무가 저녁 식사 약속으로 외부에 머물고 있어 다음 날 아침이나 돼야 확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늦은 밤에 메일함에서 수신 여부를 확인해 보니 이미 이 상무가 메일을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알고 보니 이 상무는 승용차에서 이메일을 수시로 확인해 보고 있었다. 이 상무는 자신의 승용차(현대 에쿠스) 내부를 첨단 모바일 오피스로 개조했다.

자신의 의중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이지만 가끔씩 조직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주변에 내비칠 때가 있다. 이런 얘기들을 종합해 보면 이 상무는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분출하면서도 하나의 깃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에 상당한 긍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또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인정하고 수렴해 가는 풍토를 존중하는데, “여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거나 “모두가 엘리트일 필요는 없다”는 말을 강조한다고 한다.

삼성전자 임원 5년차인 지금도 그는 경영수업 중이지만 이미 ‘차기 총수’로서 느끼는 중압감은 엄청날 것이다. ‘자연인 이재용’의 삶은 갈수록 왜소해지고 어느덧 그는 삼성을 떼어 놓고서는 얘기할 수 없는 인물이 되어 가고 있다. 그 고단한 생활을 진지하게 엿보는 순간부터 이 상무를 바라보는 눈에 동경과 연민이 뒤섞이게 됐다던 한 측근의 말이 떠올랐다. ■
  • 200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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