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CEO 朴正熙 경영학 강좌 ( 9 ) / 朴대통령과 국가 설계

왜, 한국에서만 5개년 계획이 성공했는가?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4월 초, 사단법인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가 펴낸 회보 「朴正熙 제3호」 중 金龍煥(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의 글 「朴正熙 대통령, 그분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계한 지도자였다」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비판들

1968년 6월1일 서울시가 한강개발의 기초작업으로 착수한 여의도 윤중재 공사가 완공되었다.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한강개발」이라는 자필 휘호가 새겨진 40만3001장째 화강암 블록을 내려다보고 있다.
요즘 개발연대(1960~1970년대)의 역사에 대하여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 호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첫째, 정치의 민주화나 이념을 제쳐놓고 경제건설을 앞세운 경제 우선주의 철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정부가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관치 경제와 정경유착을 결과했다는 것이다. 셋째, 시장과 경제를 너무 서둘러 개방하고 외자도입을 강행하여 경제를 買辦(매판)과 從屬(종속)으로 전락케 하고, 富(부)의 편중을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발전의 지연은 물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의 양극화나 불공정성 그리고 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등 병폐가 모두 朴대통령과 개발연대의 잘못에서 연유했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흠모하는 여론을 의식하여 불편하고 불안하게 생각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경제제일주의(경제우선주의)를 택했나?

이에 대하여 朴대통령은 먼저 절대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법과 질서의 회복은 물론, 분배나 복지 등 민주주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으로 안다.

둘째, 그분은 경제 역량의 향상 없이는 안보나 자주국방의 물적 토대가 마련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한미군의 抑止力(억지력)에 의존한다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최소한의 국방비 예산(GNP의 5% 수준)도 마련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자주국방을 논할 수 있으며 어떻게 UN과 미국에 대하여 떳떳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해 보아야 한다.

셋째, 그분은 세계 경제의 무한경쟁하에서 발 빠른 경제건설이 없다면 우리 경제는 영원히 낙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인권에 대한 침해도 있었고 또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지식인이나 일부 정치인에게 탄압이 가해졌던 것을 우리는 잊지 않고 또 시인하고 있다. 그러나 朴대통령은 후일 하버드大 배러 교수나 그 밖의 많은 학자들이 『경제성장을 우선한 국가는 경제는 물론 민주화의 토대를 구축한 반면, 생활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민주화를 앞세우거나 병행한 나라는 시간이 갈수록 국민은 자유를 잃고 독재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갈파한 실증적 연구를 미리 터득하고 실천한 선각자였음이 틀림없다.


왜, 정부가 시장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당시 한국 경제의 실상은 오늘의 잣대로 볼 때 시장다운 시장이 없었고, 기업다운 기업이나 기업가가 거의 없는 황무지였다. 또한 2차 세계대전에서 패퇴한 日帝(일제)가 철수하고 그나마 일부 남아 있던 시설이나 제도가 김일성의 6·25 남침으로 송두리째 잿더미가 된 공백 속에서, 200년이나 걸린 영국의 산업화 혁명, 100년이 걸린 일본의 근대화 혁명과 같이 민간의 자생력만 믿고 성장과 발전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는 절박한 시점이었다. 더욱이 앞서 내닫는 선진국을 조금이라도 빨리 따라잡기 위해서 초기에는 정부가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서라도 시장 메커니즘을 만들고, 순차적으로 기업인을 이끌고 뒷받침하여 압축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우리는 이해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주도 경제(이른바 관치 경제)가 목적이었나, 수단이었나?

개발연대의 정부는 시장에 뛰어들어 참여했으면서도 정부를 市場主義的(시장주의적)으로 운영하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또한 정부의 비대화(정부기구 및 공기업의 증설, 특히 청와대의 내각 간섭 등)를 항상 경계하고 朴대통령은 내각과 경제 각료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특히, 그분은 軍을 배경으로 집권했으면서도 군의 요구와 과잉정치를 견제하고 차단하면서 질서와 안정을 유지했으며, 기업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기업인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항상 그들을 격려하였다. 1970년대 초 방위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할 때 이를 직접 담당하겠다는 군의 집요한 요구를 물리치고 민간 기업에게 맡기고 중화학공업 건설의 테두리 안에서 추진하게 한 것은 민간 기업의 창의와 효율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가 높이 평가할 만한 결단이었다.

정부는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에서와 같이 당시 민간 기업의 힘으로는 감당키 어렵지만 전후방 효과가 큰 몇 가지 대표적 국책사업을 성취시킴으로써 경제적 효과는 물론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도 하면 된다, 해낼 수 있다」는 국민적 자각을 일깨우고 국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점에 관하여 朴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1985년 4월 초 「신동아」 잡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당시의) 朴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민족적 자각을 깨우쳐 준 지도자였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던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한국 경제가 매판과 종속경제였는가?

부존자원과 축적된 자본이 全無(전무)한 나라에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 첫째, 수출 주도형의 개방경제 체제를 선택한 것은 최적의 선택이었다. 둘째, 높은 교육수준과 성취욕에 충만한 국민적 에너지에 자본과 선진기술을 접목시키기 위해서는 과감한 외자도입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피했었다.
반면, 자립경제의 토대가 어느 정도 마련될 때까지는 주요 기간산업과 금융의 개방을 미루고, 내국인에 의한 51% 지분 소유 원칙(外資기업에 대하여)을 지키게 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농어업에 대한 강력한 지원정책과 중소기업 육성정책의 전개로 수출 주도형 경제정책을 꾸준하게 보완했었다.

다만, 압축성장과 특히 1970년대 초 중화학공업의 추진 과정에서 이른바 재벌 또는 그룹이 형성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선택과 집중 정책의 추진과 투자의 효율화에 의한 성장 동력 메커니즘의 구축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감안하여 이를 감수하는 입장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의 도입을 비롯한 복지정책의 확충과 함께 1974년부터 시작된 대기업의 기업공개 정책과 근로자재산형성저축 제도 등의 채택으로 경제성장의 成果配分(성과배분)과 富의 과도집중 억제를 위한 또 하나의 정책수단을 병행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 한국에서만 5개년 계획(경제개발계획)이 성공했는가?

2차 세계대전 후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가가 5개년 계획 또는 7개년 계획 등 경제개발 계획 체제를 채택 추진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으며, 학계의 실증적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이론과 철학, 이념에만 치우쳐 개발계획을 마치 장식물같이 선반에 얹어 놓기만 하지 않고 강력한 실천의지를 통하여 선두에서 이끌었던 지도자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가 시장에 뛰어들었으면서도 정부를 시장주의적으로 운영하고 기업인의 창의와 모험정신을 앞세웠던 지도자의 慧眼(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하면 된다,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국민적 의지를 일깨우고 그것을 국민적 에너지로 결집해 낸(새마을운동과 연계하여) 지도자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중흥의 꿈을 믿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신바람 나게 일하고 또 일한 우리 국민의 단합된 힘과 참을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개발연대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올바르게 평가하자

뭐라 해도 朴正熙 대통령은 민주화된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 경제의 토대와 기초를 쌓아 올린 위대한 지도자였다. 개발연대의 역사, 특히 당시의 경제여건과 정책을 오늘의 잣대로만 재단하고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 시대에 대한 국민적 평가와 흠모가 부담스럽다면, 국민들이 그때를 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국가 경영과 정책을 그 시대보다 더 잘하면 되지 않겠는가. 역사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내고 그 시대보다 더 나은 역사를 창조하여 이어 나가는 것이지 한 시대의 역사를 지우려 해서는 안 된다. ■
  • 200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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