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룡의 문화 진단| 한국인은 왜 첨단기기에 열광하나?

2년 전 이맘때쯤의 일이다. 당시 핸드폰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모 통신업체 과장과 업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자 내가 통화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과장이 물었다.

“그 핸드폰 언제 사신 겁니까?”

2년 전에 산 것이라고 대답하자 과장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핸드폰 콘텐츠 사업 하시는 분이 핸드폰이 그게 뭡니까. 6개월마다 최신 핸드폰으로 교체하셔야지.”

어떤 핸드폰을 들고 다니느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 주는 시대가 됐다. 아무 치장 없는 구식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인식된다. 카메라폰이나 MP3폰이 아닌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핸드폰을 통화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구세대로 보이게 한다.

이와 비슷한 일이 일본에서 이미 1980년대에 시작됐다. 경제성장이 일단락된 시기에 20대를 맞은 신인류 세대가 등장했다. 더불어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신세대 작가들이 힘을 얻었다. 이들의 소설에는 현실에 실재하는 물건의 이름이 무척 많이 등장한다. 원로에 속하는 작가들은 이런 행태를 ‘현실의 복사에 불과할 뿐’이라고 폄하하지만 신세대 작가들은 개의치 않았다.

‘네가 소비하는 것을 말해 봐. 네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줄게.’

개성시대, 개성시대라고 하지만 고도 소비사회에서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 간편한 수단은 어떤 물건을 소비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일본의 신세대 작가들이 물건 이름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주인공이 어떤 브랜드의 맥주를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옷을 입는지가 그 사람의 개성이나 심리상태를 가장 잘 묘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못하는 것은 같은 세대에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코드이기도 하다.

우리 신세대들도 물건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중에는 과연 소비를 ‘개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 첨단 제품이나 서비스의 영역에 이르면 오히려 무개성, 몰가치적인 특성을 보인다. 자동차, 가전, 컴퓨터, 초고속 인터넷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좁은 국토라서 갈 곳이 마땅치 않고, 도로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닌데도 너도나도 ‘중형 자동차’를 사들이는 마이카 열풍이 있었다. 비디오 대여점 시장은 빠른 속도로 DVD 시장으로 대체되고 있다. 고화질 TV가 아니면 DVD로 보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데 앞을 다투어 DVD 플레이어를 산다. 중고 PC 시장에는 다른 나라 같으면 아직 첨단에 속할 PC가 고물 취급을 받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소득의 평등성에 기반한 떼거리 소비

빠른 것이 좋은 것이고 최신의 것은 무조건 사야 하는 소비 행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핸드폰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십만 원짜리 핸드폰을 척척 바꾼다. 20대에 이르면 매년 핸드폰을 바꾸는 것이 희망 사항의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과연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소비로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것은 주관적 가치의 표현이고 자기만족적인 성격이 강하다. 구닥다리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이 ‘시대를 느리게 살고 싶다’는 자기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극히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 깔린 이유는 무척 많을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초고속 인터넷과 핸드폰의 급격한 보급을 가져왔다는 설명이 있다. 국토가 좁고 아파트 단지가 많기 때문에 초고속 인터넷 망을 깔고 핸드폰 기지국을 설치하는 데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 외에도 관계를 중요시하는 문화적인 특성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끊임없이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일촌 숫자를 늘리기 위해 ‘싸이질’(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관리하는 것)을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안심을 얻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 하나를 들여다보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가 비교적 소득 분배가 불평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어느 나라보다 두터운 편이다. IMF 이후로 소득 분배 불평등이 꽤 늘었지만, 아직도 심리적으로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은 무척 많다.

분배의 불평등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의 상품에 대한 집중적인 소비가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언론인은 핸드폰 같은 첨단 제품에서 한국이 앞서 갈 수 있었던 것은 “소득의 평등성에 기반한 ‘떼거리 소비’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또한 심리적 중산층 계층은 소비에 있어서의 위화감을 참지 못한다. 할인마트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상품은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거의 같은 음식을 먹는다. 쇠고기의 등급을 상중하로 나누어 판매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부촌(富村)에 거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은 신문을 보고 같은 잡지를 읽는다. 한 병에 1만 5,000원 하는 생수가 타워 팰리스에서 많이 팔린다는 뉴스는 정보가 아니라 졸부 근성을 욕하는 비난의 성격을 담고 있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평등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다.

핸드폰이나 초고속 인터넷의 급격한 보급은 우리 사회가 아직 꿈이 충분히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누구나 자기 대에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 사람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첨단의 제품을 쉽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이용하려고 한다.

요즘 소득의 양극화가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부자는 더욱 부자로,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은 중산층의 상승 욕구에 기인한 바가 크다. 아무리 노력해도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좌절감이 사회에 팽배하면 그 역동성을 잃게 될 수 있다. ‘빨리빨리’니 ‘너도나도’니 비난도 많지만 그 역동성이야말로 짧은 시간 내에 경제성장을 일구어 낸 일등공신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 200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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