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점원」으로 시작, 52년간 책방 운영한 동양서림 崔周溥 사장

1953년 장욱진 화백 부인 李舜卿씨가 시작

김광규 시인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란 詩(시)에서 4·19 혁명 이후 18년 만에 찾아온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의 달라진 모습을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란 시행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혜화동 로터리에는 4·19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은 풍경 하나가 있다. 「동양서림」이 바로 그것이다.

정말이다. 그 사이 이 일대의 수많은 가게들이 업종을 전환하고 간판을 바꾸어 달았지만 동양서림만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오래 된 느티나무처럼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간판에 작은 글씨로 새겨진 「Since 1953」이란 문구가 그 오랜 내력을 대변해 준다.

동양서림 대표 崔周溥(최주보)씨.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아홉 살인 그도 여전히 터줏대감처럼 이 유서 깊은 서점과 역사를 같이해 오고 있다. 27년간은 점원으로, 그 뒤 25년간은 주인으로. 강산이 다섯 번은 족히 바뀌었을 오랜 세월 동안을 그는 잠시도 「책의 숲」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왔다.

동양서림의 원래 주인은 故(고) 장욱진 화백의 부인인 李舜卿(이순경·85) 여사. 그녀는 1953년 9월, 혜화동 로터리에 여섯 평짜리 작은 공간을 세내어 서점 간판을 달았다.

『이 여사님은 우리 역사학계의 거목이셨던 斗溪(두계) 이병도 박사의 맏따님이십니다. 경기여고를 나와 장욱진 선생님과 연애결혼을 하셨는데, 술과 그림에 빠져 집안을 돌보지 않는 장 선생님을 대신해 가계를 꾸려 갈 부업을 생각하다가 책방을 차리셨지요. 그때만 해도 양갓집 부인이 장사를 하면 손가락질을 받던 시절이라 고심 끝에 지식을 파는 서점을 내신 겁니다』

장욱진 화백은 이중섭, 박수근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하면서 숱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간 藝人(예인)의 전형이다. 『그림은 일이고 술은 휴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酩酊(명정)의 세월을 보낸 그는 못 말리는 주벽을 갖고 있었다. 혜화동 일대 막걸리 집들의 외상 장부에는 죄다 그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지만 월급날 밀린 외상값을 갚고 나면 빈 봉투만 남기 일쑤였다.

『대낮부터 술에 잔뜩 취하신 장 선생님이 로터리에 나타나면 책방에는 비상이 걸렸어요. 책을 사러 온 손님들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네가 그걸 보면 알아? 그냥 책 덮어 놓고 가!」 하면서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시는 겁니다. 제가 싸움을 뜯어 말리거나 책방 셔터를 내린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 여사님이 숨어서 눈물도 많이 흘리셨지요. 하지만 예술가의 반려자로서 이 여사님처럼 아름답고 따뜻하게 뒷바라지를 하신 분은 아마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 상황에서 다섯 남매를 모두 훌륭히 키워 내신 것도 존경스런 점이지요』

장욱진 화백은 곡기를 끊은 채 소금을 안주 삼아 몇날 며칠을 술 속에 빠져 지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녹초가 된 상태에서 시간이 흘러 정신이 맑아지면 그는 붓을 잡고 미친 듯이 그림에 매달리곤 했다.

「眞眞妙(진진묘)」는 장 화백이 부인 이순경 여사를 위해 그린 작품. 그림 제목도 그래서 이 여사의 불교식 이름(법명)을 따서 「진진묘」라 지었다. 경기도 덕소의 화실에 틀어박혀 일주일 동안 침식을 잊고 작업에 몰두해 완성한 인물화를 들고 와 부인에게 바친 그는 탈진해 쓰러져 무려 석 달 동안이나 앓아 누웠다고 한다.


이력서를 한 번도 안 써 본 사람

동양서림 내부.
경북 문경이 고향인 최주보씨는 가정 형편이 너무나 어려워 중 3 때 공납금을 못 내 퇴학을 당하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가 친척 형의 소개로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동양서림에 점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첫 직장이 평생 직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머리가 좋았던 그는 이순경 여사의 배려로 덕수상고 야간부를 졸업한 뒤 혜화동에서 가까운 성균관대 법학과 야간학부에 입학해 배움의 길을 이어 나갔다. 말 그대로 晝耕夜讀(주경야독)하던 시절이었다.

『판사나 검사가 되려는 막연한 꿈을 안고 법대에 들어갔지만 서점 일을 하면서 고시 준비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법관의 꿈을 접고 말았지요. 대학을 졸업하고도 이력서 한 장 써 본 기억이 없습니다. 오래 점원으로 있다 보니 情(정)도 들고 이 여사님과는 한식구처럼 가까워져 감히 그만두겠다는 말을 못 꺼내겠더군요. 또 서점 일이 재미있고 체질에도 맞는 것 같았습니다』

월급은 후한 편이었다.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한 동기생들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호봉 체계는 아니었지만 해마다 월급이 인상되어 생활하는 데 큰 부족함이 없었다. 점원으로 일한 지 27년째 되던 1980년에는 월급을 80만 원 남짓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순경 여사가 그만큼 그를 아끼고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그 사이 서점도 30여 평으로 규모를 넓혔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 애들도 모두 이 여사님과 동양서림이 키워 주고 가르쳐 주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큰딸은 경희대 영문과를 나왔고, 포항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아들은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지요』

1980년 3월 어느 날, 월말 정산을 끝낸 이순경 여사는 최주보 씨를 불러 놀라운 제안을 했다. 『이제부터는 서점 일에 일체 관여하지 않을 테니 자네가 맡아서 운영해 보라』는 거였다. 점원에서 대표로 승격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5년 세월이 흘렀다. 몇 해 전부터는 맏딸 소영(36)씨가 아버지를 도와 동양서림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최 대표보다 더 오랜 시간을 서점에서 보낸다. 대물림을 한 셈이다.

최주보 대표의 기억으로는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인 1995년부터 1997년까지가 서점의 최고 전성기였다. 당시만 해도 혜화동과 동숭동 일대에 열 개 가까운 책방들이 있었지만 換亂(환란)을 겪고 난 뒤로 하나 둘씩 사라지거나 간판을 바꾸어 달기 시작하더니, 지난해에는 성균관대 입구에 자리했던 서점 「논장」마저 문을 닫음으로써 동양서림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최 대표에게도 업종 전환을 권유했지만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대신 그는 거꾸로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책 도둑 보면 가슴 떨려』

몇 해 전부터는 맏딸 소영씨(왼편)가 최 대표를 도와 동양서림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내부 수리를 위해 잠시 책방 문을 닫았는데 업종을 바꾸려는 걸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개중에는 일부러 공사 중인 가게 안으로 들어와 「책방을 없애려는 거냐? 앞으로는 책을 좀 더 열심히 사 줄 테니 제발 없애지 마라」고 호소하는 주민들도 있었지요. 그래서 부랴부랴 현수막을 만들어 가게 바깥에 내걸었습니다. 「동양서림이 새 단장을 합니다. 2월16일쯤 새 모습으로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라고 쓴…』

동양서림에는 그 연륜에 걸맞게 오랜 단골손님들이 많다. 최주보 대표가 기억하는 얼굴들만 해도 1000여 명을 헤아린다. 그 가운데는 거의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들러 꼭 한두 권씩의 책을 사 가는 「책벌레」 주부도 있다.

황금찬 시인과 이생진 시인도 동양서림의 단골손님이다. 특히 이생진 시인은 보성고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출퇴근길에 일과처럼 서점에 들러 책과 사귀다 가곤 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란 말이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책을 훔치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책 도둑을 발견하면 가슴이 얼마나 떨리는지요. 어떤 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싶어질 지경이랍니다. 간혹 책이 너무 읽고 싶은데 돈이 없어 훔치는 학생들인 경우에는 눈감아 주고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헌책방에 팔아넘길 셈으로 책을 훔치는 경우가 많았지요』

최 대표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가시고기」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처럼 동양서림에서만도 몇백 권이 팔리는 책이 드물지 않았지만, 요즘엔 베스트셀러라 해도 몇십 권 팔리는 게 고작이라고 한다. 좋은 책을 소개하는 「느낌표」란 프로가 사라진 뒤로는 단행본 하루 매상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단다.

『그래도 하루 매출액이 150만 원 안팎은 됩니다. 언제까지 동양서림을 운영할 거냐고요? 글쎄요, 건물 주인이 내쫓거나 적자를 보지 않는 한은 계속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어요?』 ■
  • 200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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