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식품서비스 부문 총괄 사장 鄭鎭九

『확신을 갖고 열심히 일하면 어떤 사업도 100% 성공한다』

『스타벅스를 맡고 나서 고문직에서 물러난 2003년 말까지 거리를 다닐 때는 한 손에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컵을 들고 다녔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했죠. 일부러 자가용을 거의 안 타고 전철이나 버스를 탔어요. 역시 한 손에는 종이컵을 들고 탔습니다. 제가 시작을 하니까 동료들이 모두 동참을 했던 거죠』

정진구
1945년 서울 출생. 서울사대부고 졸업. 서울대 농학과 졸업. 삼립식품 구매부 근무. 미국 이민. 미국 세븐 일레븐 지역 매니저, 배스킨 라빈스 코리아 총괄 이사, 파파이스 아시아 지역 총괄 CEO,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역임.

사진 : 조준우 자유기고가
「외식업계 마이더스의 손」

일반인들에게 鄭鎭九(정진구·60)라는 이름은 낯설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만 성공한 CEO로서 대학에 특강을 다닐 정도로 외식업계에서 그는 스타다. 커피 체인점「스타벅스」, 아이스크림 전문점 「배스킨 라빈스」, 프라이드 치킨 체인점 「파파이스」라는 브랜드를 한국 땅에 정착시킨 주인공 鄭鎭九 CJ 식품서비스 부문 총괄 사장.

鄭사장은 「스카이락」, 「빕스」, 한식 패밀리 레스토랑 「한쿡」 등의 체인점을 운영하는 CJ 푸드빌과 CJ의 베이커리 사업부문인 뚜레쥬르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74년 단돈 200달러를 손에 쥐고 미국으로 건너가 편의점 체인인 「세븐 일레븐」에서 점원으로 시작해 외식·프랜차이즈 사업을 배워 CJ 식품서비스 부문 총괄 사장에 올랐다.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鄭사장을 수식하는 또 다른 말은 「외식업계 마이더스의 손」이다.

鄭사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CJ 푸드빌 주식회사를 찾아간 사람들은 최소한 세 번 놀란다. 사장과 직원(사실 이 호칭은 鄭사장이 쓰는 호칭이 아니다. 그는 직원들을 동료라고 부른다) 간의 스스럼없는 분위기에 놀라고, 지난해 매출액 1200억 원을 올렸고 금년에는 1600억 원을 매출 목표치로 잡고 있는 회사의 사장실 출입문이 없다는 것에 놀라고, 사장실이 작다는 데 놀란다. 하나를 더 붙이면 금연빌딩인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려면 사장도 예외 없이 1층 입구나 옥상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길쭉한 타원형 탁자와 책상만으로도 꽉 차 보이는 사장실에서 鄭鎭九 사장을 만났다. 6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鄭사장의 얼굴은 약간 마른 편이었다.

―사장실이 좁네요.

『사장실이 넓어야 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자리에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제가 CJ의 베이커리 사업부인 「뚜레쥬르」도 맡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1주일에 세 번은 들르는데 그곳의 내 방은 한 평 반 정도입니다. 책상하고 조그만 라운드 테이블이 하나 있죠』


『사업에 실패한 적 없다』

鄭사장은 자신의 사업 성공 비결을 『긍정적인 사고와 조직에 불어넣는 열정』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한국에서의 외식산업」을 주제로 강의를 하셨는데, 그 자리에서 『엄밀히 생각하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타이밍은 없다고 봐야 된다』면서 『나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너무 이르다」라고 말할 때를 시장 진입의 시기로 고르겠다』고 하셨는데 그런 선택이 실패를 불러온 적은 없습니까.

鄭사장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업에 실패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아무도 시작을 해 보지 않은 사업은 리스크가 있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앞을 내다보고 확신이 섰을 경우에 긍정적인 사고와 열정을 가지고 한다면 100% 성공한다고 봅니다. 제가 미국의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배스킨 라빈스」를 한국에 들여온 때가 1985년입니다. 당시 국내 아이스크림 가격의 3~3.5배나 높았고 국내에는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열이면 열 명의 사람들이 다 반대했습니다. 너무 이르다고. 그런데 저는 1988년에 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에 된다고 확신했죠. 저는 동료들에게 「이건 분명히 되는 사업이고 된다.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성공시킬 것이고 모두가 파이어니어로서의 즐거움과 쾌감을 느낄 것이다」는 것을 주입시켰죠. 우리는 짧은 기간 내에 성공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업성이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의심을 하지 말고 무조건 긍정적인 사고와 조직에 열정만 불어넣으면 어떤 사업도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鄭사장의 성공 비결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것이 아이디어다.

배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이 한국에 진출한 초기, 鄭사장은 소비자들의 소비패턴 변화를 위해 직원들을 동원했다. 모든 직원에게 배스킨 라빈스 명동점에 가면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주고 퇴근도 오후 3시에 시켜 주었다. 원래의 퇴근 시간은 6시 30분. 당연히 직원들은 오후 3시면 명동점을 찾아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단, 조건은 점포 안이 아닌 밖에서 먹도록 했다. 鄭사장의 설명이다.

『직원들이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니까 명동 거리를 오가는 소비자들도 「길거리에서도 먹는 거구나」 하는 인식을 갖게 됐고, 특히 젊은층들이 많이 따라 하게 됐어요. 그게 나중에는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길거리는 물론이고 전철에서도 먹고 버스에서도 먹고 그렇게 확산됐어요. 간단히 말해 이동 중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문화가 패션화된 거죠. 광고라는 게 사실 소비자를 교육시키는 것인데 외식사업의 경우는 광고보다는 고객 서비스가 더 중요합니다. 시작부터 대중매체 등을 이용해서 고객을 교육시키려고 하면 성공적인 수익성 사업을 만들기가 어렵죠』


「테이크 아웃 문화」 유행시키다

시장 흐름에 대한 예측 역시 중요하다. 배스킨 라빈스 코리아 총괄 이사로 있으면서 鄭사장은 머지않아 아이스크림 중 가장 비싼 재료를 쓰는 하겐다즈가 한국에 상륙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하겐다즈의 강점은 천연재료만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鄭사장은 배스킨 라빈스 매장마다 「내추럴 아이스크림」이라는 문구를 걸게 했다. 鄭사장의 예측대로 하겐다즈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마케팅에서 내세운 차별점은 「천연재료」였다. 이미 「내추럴 아이스크림」배스킨 라빈스에 익숙한 소비자에게 천연재료를 사용한 하겐다즈는 새로울 게 없는 아이스크림이 된 것이다.

1994년까지 100개의 점포를 내며 배스킨 라빈스 브랜드를 안착시킨 鄭鎭九 사장은 1995년부터 프라이드 치킨 체인점인 파파이스 아시아 지역 총괄 CEO로 영입됐다. 만 5년 동안 CEO로 일하면서 鄭사장은 전국에 150개의 매장을 내며 1위 브랜드였던 KFC를 바짝 따라붙으며 다시 한 번 능력을 인정받았다.

鄭사장의 진가가 다시 드러난 것은 스타벅스 코리아 사장 시절이다. 1999년부터 2002년 말까지 스타벅스 코리아를 이끌면서 그는 한국에 「테이크 아웃」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1999년 6억 원에 불과했던 스타벅스의 매출은 2002년에는 437억 원으로 늘었고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1위를 만들었다.

커피를 들고 다니면서 마시는 「테이크 아웃」 문화를 만들기 위해 鄭사장은 배스킨 라빈스 시절과 마찬가지로 직원들을 동원했다. 동원방법은 솔선수범이었다. 鄭사장의 말이다.

『스타벅스를 맡고 나서 고문직에서 물러난 2003년 말까지 거리를 다닐 때는 한 손에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컵을 들고 다녔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했죠. 일부러 자가용을 거의 안 타고 전철이나 버스를 탔어요. 역시 한 손에는 종이컵을 들고 탔습니다. 제가 시작을 하니까 동료들이 모두 동참을 했던 거죠』

―1999년 7월 서울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을 열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트렌드 변화의 첨단을 걷는 곳이 梨大 앞입니다. 마켓 테스트를 하는 데 가장 좋은 곳이죠. 연령층이 다 있고 남녀비율도 고르고 소득층도 고르죠. 1호점을 열고 커피를 들고 다니니까 6개월도 안 돼 테이크 아웃 붐이 일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출의 반 정도가 테이크 아웃 되니까 점포의 효율성도 결국은 두 배로 늘어난 것이죠』

스타벅스의 고객을 위한 원칙 가운데 「1분 30초 준수」가 있다. 고객이 커피를 주문에서 전달받는 데까지 1분 30초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1분 30초란 시간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겁니까.

『고객이 주문을 하고 잔돈을 주고, 제조자에게 주문을 넣고 컵에다 커피를 담고 하는 데 1분 20초 걸립니다. 거기에 10초 정도를 더한 겁니다. 주문에서 전달까지의 모든 과정을 계산해서 나온 시간입니다』

―스타벅스를 떠나셨으니까 요즘은 종이컵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겠네요.

『아니죠. 뚜레쥬르에서도 커피를 시작했거든요』


나환자촌에서 뒹굴다

어렸을 적 꿈이 농사꾼이었다는 鄭鎭九 사장은 서울 사대부고를 거쳐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학군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후 1971년부터 삼립식품 구매부에서 일했다. 당시 삼립식품의 카스테라는 소비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문제는 카스테라의 주원료가 계란이고, 봄가을 소풍철이면 카스테라의 수요가 급증해 계란 파동이 일어났다. 계란 도매상들이 출하량을 조정하기 때문이었다.

신입사원이었던 鄭사장이 해결에 나섰다. 조사를 한 결과 도매상을 통해 유통되는 계란의 90% 이상이 나환자촌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鄭사장은 나환자촌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鄭사장의 설명이다.

『알아보니까 나환자촌분들이 굉장히 손해를 보고 있었어요. 도매상이 공급하는 가격의 40~50%밖에 못 받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직거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환자들이 상대를 안 해 주는 거예요. 그분들은 외부인을 믿지 않아요. 진짜로 자기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검증이 되지 않으면 상대를 안 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죠. 그래서 나환자촌에 들어가서 생활을 하기로 했죠』

鄭사장은 나환자들 목욕도 시켜 주고, 소주도 함께 마셨다. 잔돌리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鄭사장의 그런 노력으로 삼립식품은 나환자촌과 계란을 직거래할 수 있었다. 그 일로 계란 도매상들이 鄭사장에게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鄭사장은 1974년에 2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그의 이민은 돌아오기 위한 이민이었다. 군대 시절 만났던 미군들을 보면서 생각했던 「미국이 왜 잘사는지 한번 봐야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에 정착한 鄭사장은 처음 일하던 회사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24시간 편의점인 세븐 일레븐에서 일하게 된다. 시간당 3달러의 임금을 받는 점원으로 일하면서 鄭사장은 편의점 운영의 문제점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금전등록기를 들여놓을 것을 제안했고, 얼마 안 돼 금전등록기는 미국 내 세븐 일레븐 6800개 全 점포가 들여놓았다.

점원 생활 4개월여 만에 副(부)점장이 된 鄭사장은 강도 예방법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鄭사장의 매뉴얼은 미국 전역에 전파됐고 6개월 만에 점장이 됐다. 점장 생활 6년 정도가 지났을 때 세븐 일레븐 본사의 간부가 됐고, 1985년에 배스킨 라빈스 코리아 총괄 이사로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鄭사장은 2003년 말부터 CJ 식품서비스 부문 총괄 대표로 일하고 있다.

鄭사장은 체인점 사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점포의 위치 선정이라고 말한다. 鄭사장은 서울 시내에 대형 빌딩이 신축된다는 소식이 있으면 그곳으로 달려간다. 점포가 들어서기에 적당한 위치라고 생각하면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점포 입주를 위한 건물주 설득에 들어간다고 한다. 鄭사장의 말이다.

『저는 저를 사업가라 하지 않고 장사꾼이라고 합니다. 외식사업이든 장사라는 것은 다 마찬가지인데 점포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마케팅 관련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첫째도 점포 위치, 둘째도 점포 위치, 셋째도 점포 위치다, 하는 말이 있죠. 그런데 개인이 하는 점포는 바로 그곳에서 수익성이 나와야 하지만 회사가 하는 체인점포는 다릅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점포를 선택해야 합니다. 수익성이나 매출을 목표로 하는 점포 개발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정착을 위한 마케팅이 목적이 돼야 한다는 말이죠』

―현장 경영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요즘도 점포에서 살다시피 하십니까.

『지금도 제 업무의 절반 이상은 체인점 점포를 둘러보는 일입니다. 지난 설날 때도 연휴 중에 점포를 돌았습니다. 외식사업에서 고객접촉 포인트는 점포입니다. 사업의 중추가 점포죠. 각 점포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때 그 결과가 뭉쳐서 수익이 되는 거죠. 특히 설날 연휴 같은 때 고향을 가지 못하고 근무해야 하는 점포 직원들은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리더가 점포를 방문하는 것은 그분들에게 큰 힘이 되는 일이죠』

鄭사장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스킨십 경영이다. 조직의 팀워크를 위해서다.

―지방에 출장을 가실 때 직원들과 한방에서 주무신다면서요?

『서로 존경할 수 있는 팀워크는 아주 중요합니다. 배스킨 라빈스를 할 때나 스타벅스를 할 때도 지방에 점포를 연다고 하면 그곳에 내려가서 여관방을 하나만 잡고 동료들과 함께 잤습니다. 돈을 절약하는 차원도 있지만 스킨십을 위해서죠. 함께 저녁 먹고 한방에서 자면서 대화의 벽을 깨는 거죠. 그런 생활을 하다 보면 설사 잘못을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 부담 없이 할 수 있고 서로 간에 존중을 하게 되고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마련이죠. 당연히 아이디어를 말하는 데 주저함도 없어집니다』

―작년 매출을 보니까 뚜레쥬르는 매출액이 전년 대비 24.5% 증가한 1100억 원이고 CJ 푸드빌은 5개 브랜드 76개 점포에서 1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던데 두 사업 부문은 매출이 따로 잡히나 보죠?

『따로 잡힙니다. 뚜레쥬르는 CJ의 베이커리 사업 부문이고 푸드빌은 CJ의 외식사업 부문입니다』


『3년 후 CJ 푸드빌의 매출을 5000억 원까지 늘리겠다』


―매출액은 얼마까지 늘릴 계획입니까.

『뚜레쥬르는 외형보다는 고객만족 1위라는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점포 수에 관계없이 국내에서 수익성이 제일 높은 가맹점으로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푸드빌의 외식사업은 최대한 많은 브랜드를 만들고 최대한 多점포 체인화해 나갈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외식산업이 대중식당까지 다 합하면 40조 규모가 되는데 앞으로 多브랜드, 多점포 체인화가 진전되면서 몇천억, 몇조까지도 매출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대중성이 있는 외식사업을 할 경우 가능하다고 봅니다』

―CJ 푸드빌의 올해 매출 목표는 얼마입니까.

『작년보다 400억 원 정도 늘어난 1600억 원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신장률을 너무 높게 잡으신 것 아닙니까.

『아, 그 정도야… 외식사업은 좀 적극성을 띠고 할 필요가 있습니다. 푸드빌은 3년 후에 50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외식산업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외식산업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솔직히 말해 한국은 全 세계에서 가장 뒤처져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나 태국도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생활비에 비해 월급이 너무 많다』

―CJ에 식품서비스 부문 총괄 대표로 오실 때 CJ에서 일시불로 지급한 연봉을 전액 사회단체에 기부했다면서요?

『나누면서 더불어 살자,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한 군데가 아니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보육원 등 몇 곳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실은 제 자신을 위한 측면도 있어요. 제가 아들만 둘인데 그곳에 가면 딸들을 만날 수 있잖아요』

―지금도 사회단체를 후원하십니까.

『그렇죠. 여기저기 되는 대로… 제가 생활비에 비해서 월급이 너무 많아요. 저보다 잘사는 분들이 저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줍니다(웃음)』

―취미는 있습니까.

『제가 골프를 늦게 배웠는데 파파이스 시절에는 싱글 수준까지 쳤습니다. 일찍 배웠다면 프로골퍼가 됐을지도 모르지요(웃음). 그런데 사실 저는 직장생활을 취미생활로 생각했습니다. 연봉이 얼마다, 하는 것은 저에게 중요하지 않았죠. 재미가 있는 게 중요합니다. 직장을 공부방이고 취미생활이다, 하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鄭鎭九 사장은 사장실이 있는 3층에서 1층 입구까지 기자와 함께 걸어 나왔다. 입구 계단 한켠에는 기둥형으로 생긴 재떨이가 있었다. 鄭사장과 기자는 그곳에 서서 담배를 한 대씩 피우고 헤어졌다. 밖은 쌀쌀한 날씨였다. ■
  • 200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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