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성공한 여성 기업인| 세일즈로 ‘아메리칸 드림’ 이룬 ‘`파트너스’ CEO 심진 씨

1979년 여름, 미국 세일즈계에 한 한국계 여대생이 화제 인물로 떠올랐다. 세계적인 주방업체 ‘컷코’(CUTCO)가 대학생 4만 명에게 간단한 세일즈 기법을 가르친 후 1주일간 주방 칼을 팔게 한 ‘세일즈 대회’에서 이 여대생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매년 이 행사를 열어 온 컷코는 “1만 달러어치 이상 파는 사람에게는 상금으로 1,000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역대 최고 기록은 9,000달러. 1만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리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컷코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검정 생머리를 늘어뜨린 자그마한 동양 여학생이 기록을 깨뜨리고 상금을 차지했다.

심진 씨(49세). 그때 그 여학생은 지금 연 매출 500만 달러, 직원 300명을 둔 미국의 중견기업 ‘파트너스’의 최고경영자(CEO)가 되어 있다. 미국 최상위층인 0.1% 안에 드는 부자도 됐다. 그가 미국 땅을 밟은 것은 1974년, 대구여고 2학년을 마쳤을 때였다.

선진국에 가서 더 수준 높은 공부를 하고 싶어 낯선 땅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했다고 한다. 매일 세 시간씩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면서 고 3 내내 올 A학점을 받았다. 장학금으로 대학에 들어가서도 유대인 할머니 집 도우미, 햄버거 집 아르바이트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지난 6월 ‘세계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訪韓)한 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어 자생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환경 덕”이라고 말한다.

주방 칼을 팔기 전까지 그녀는 교수가 될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미국에서도 공무원이 된 그의 아버지나 가족들 모두 그가 세일즈로 성공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주방 칼 세일즈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흘쯤 팔다 보니 3,000달러어치가 됐다. 남아 있는 나흘 동안 7,000달러어치를 팔면 상금을 탈 수 있었다. 목표가 생겼다. 정신없이 매진했고, 결국 이뤘다. 현금 1,000달러를 죽 늘어놓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짜릿했다. 그때 그 성공을 그는 ‘열정과 집중의 힘’으로 풀이한다.

이민 5년째인 자그마한 동양계 여학생이 어떻게 단번에 ‘세일즈의 여왕’에 등극할 수 있었을까?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는 말에 그녀는 “특별한 노하우도 기술도 없었다”고 한다. 그저 정직하게 상품을 소개하고, 자신의 목표를 솔직하게 알렸을 뿐이라고 한다. 진실은 통했다. 그의 열정에 탄복해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속출했다. 새벽 한두 시까지 그를 만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주방 칼 사용법 시범을 보이다 손을 베었을 때도 그는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얼른 티슈로 둘둘 감아 뒤로 감췄다. 성공의 첫째 조건은 ‘단순하고 강렬한 목표의식’이었다. “확실한 목표를 가진 사람은 주위를 내편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1980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뉴욕에 ‘엘레강스’라는 식기 유통업체를 설립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리걸 웨어’의 무공해 건강냄비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그에게 세일즈 첫 번째 원칙은 ‘신뢰받을 수 있는 상품을 판다’였다. 상품에 확신을 갖고 있는 만큼 고객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공해 건강냄비는 조리과정에서 식품의 영양, 맛, 향이 파괴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중금속이 녹아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팔고 싶은 상품이었다. 많은 판매고를 올리던 그는 2년 후 미련 없이 ‘엘레강스’의 문을 닫았다.

말 잘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세일즈를 잘한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성공의 첫째 조건은 단순하고
강렬한 목표의식이었습니다.
1982년 그는 ‘퍼마 라이프 건강냄비’의 세일즈 매니저로 들어갔다. 건강냄비는 어떤 재료로 만드느냐가 중요한데, 그 회사 제품이 최고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도 눈부신 판매실적을 보인 그는 1985년 부사장에 올랐고, 1986년 LA에 ‘퍼마 라이프 서부 법인’을 설립해 독립했다. 2002년에는 동부 법인까지 흡수해 24년 된 회사를 완전히 인수했다. 직원으로 들어간 회사를 20년 만에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이때 회사 이름도 ‘파트너스’로 바꿨다. 그녀는 요즘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건강관련 제품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새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한다는 계획이다. 회사가 커지면서 요즘 그의 관심은 ‘리더 만들기’에 집중되고 있다. “나보다 훌륭한 CEO들을 배출하는 게 목표가 됐다”고 한다.

세일즈 분야의 화려한 이력만 보고 그를 공격적인 성격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 만난 그의 모습은 너무나 여성적이었다. 자그마한 체구로 조용조용 이야기했다. ‘세일즈 천재’가 자신에 대해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말하는 것도 의외였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그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미국 서부 사막으로 차를 몰고 가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심진 씨는 “말 잘하고 활달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세일즈를 잘한다는 것은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좋은 상품을 선택해 정직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목표에 열정적으로 몰입했던 게 성공 비결이라고 한다. 엉터리 같은 상품을 말로 때워 팔려 한다면 누가 그를 신뢰하겠는가? 후배들에게도 그는 “세일즈 비결이나 기술을 찾지 말라”고 조언한다. 얄팍한 상술은 상대도 금방 꿰뚫어 보기 때문이다. 세일즈의 세계에서도 정직과 성실, 진실만이 통한다면서 그는 ‘기본 태도’를 무엇보다 강조한다.

그녀는 세일즈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여성이다. “미국 내 소수민족 여성으로서 이만큼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타나는 세일즈에 투신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한국계 주부사원들을 많이 발탁해 세일즈 전문요원으로 키웠다. ‘파트너스’ 부사장도 주부 판매사원에서 시작해 15년간 그와 호흡을 맞춰 온 40대 후반의 한국계 여성이다. ■
  • 200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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