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화 뉴욕을 휩쓸다

『뉴욕은 무라카미의 세상』

「여기가 미국이야? 일본이야?」

요즘 뉴욕 맨해튼의 번화가 중 하나인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 지하철역에 간다면 이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치호 아오시마(31)라는 일본 현대미술 화가의 벽화가 지하철역 내부를 뺑 둘러 장식하고 있다. 뾰족한 턱에 눈만 동글동글 커다란 소녀, 갖가지 색깔의 연꽃 디자인,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만화에 나올 듯한 고층빌딩 그림. 한편으로는 귀엽고 한편으로는 섬뜩하기도 한 전형적 일본 애니메이션 분위기가 뉴욕 지하철역을 가득 채웠다.

이 벽화는 현재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 팝 아트 특별전 「리틀 보이(Little Boy: The Arts of Japan’s Exploding Subculture)」의 일부다. 뉴욕의 일본 문화센터인 「재팬 소사이어티(Japan Society)」와 「공공미술 재단(Public Art Fund)」이 함께 기획해 7월24일까지 하고 있다. 주된 전시장은 재팬 소사이어티 갤러리이지만, 이렇게 지하철 역사 및 차량에서도 「열린 전시」를 함께 하고 있어 뉴욕 시내 곳곳이 「일본 팝 아트」로 장식됐다.

센트럴 파크 남쪽 입구인 플라자 호텔 건너편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귀여운 코끼리 조각이 놓여 있다. 예쁜 팬티를 입은 노란 엄마 코끼리와 아기 코끼리 조각. 달콤하고 귀여운 전형적 일본 만화 캐릭터로 지나가는 사람들 눈을 바로 사로잡는다. 여름이 되면서 관광객까지 늘어 요즘 이 조각 앞은 종일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다카시 무라카미
일본 대중문화가 서구 사회를 사로잡은 것은 물론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스시, 사시미, 라면 등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패션과 디자인까지 「일본風(풍)」은 이미 서구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가 있는 상태.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어 있어서 재팬과 애니메이션을 섞은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요즘 뉴욕을 돌아다니면 뉴요커들이 얼마나 일본 대중문화에 사로잡혀 있는지 쉽게 볼 수 있다. 팬시용품점에서 「헬로 키티(Hello Kitty)」 상품을 찾는 것은 「미키 마우스」 상품을 찾는 것보다 쉽다. 어느 기념품 가게를 들어가도 헬로 키티 가방, 헬로 키티 시계가 널려 있고, 동짜몽 캐릭터 상품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여기에 일본 팝 아트 특별전인 「리틀 보이」가 가세해 뉴욕은 일본 대중문화에 강타당한 분위기다.
뉴욕의 지하철·센트럴 파크·팬시용품점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널려 있다.

「일본의 워홀」 다카시 무라카미

2003년 5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5억 7000만 원에 팔린「미스 고고」조각의 축소판 모형.
일본 대중문화는 이렇게 대중들의 일상생활과 소비용품에 스며든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 현대미술 작가들은 전형적 일본 대중문화를 소재로 미술작품을 만들고, 이 작품들은 뉴욕의 미술 경매시장인 옥션 하우스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비싼 것은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까지 한다.

뉴욕 양대 옥션 하우스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해마다 두 번씩 하는 「戰後(전후) 및 현대미술」 세일에는 다카시 무라카미, 요시토모 나라 등 주요 일본 현대미술작가의 작품이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특히 다카시 무라카미는 일본 현대미술 특별전 「리틀 보이」의 큐레이터이기도 한, 현대미술의 大(대)스타. 뉴욕 미술계에서는 무라카미를 1960년대 미국 팝 아트의 주역인 앤디 워홀에 빗대어 「일본의 워홀」이라고 부른다.

무라카미가 일본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소재로 해 만드는 미술품은 10달러 안팎의 싸구려 기념품에서부터 수억 원에 달하는 고급 작품까지 아우른다. 지난 5월 뉴욕 소더비 옥션 하우스에서는 무라카미의 지름 1m짜리 「꽃무늬 공」이 35만 2000달러(약 3억 5000만 원)에 팔렸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대표작은 「미스 고고」 조각인데,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눈 크고 섹시한 젊은 여자의 모습이다. 2003년 5월에 뉴욕 크리스티 옥션 하우스에서 56만 7500달러(약 5억 7000만 원)에 팔렸다.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서는 기념품 가게에서 팔 올해 크리스마스 카드의 디자인을 무라카미에게 맡겼다.

이렇게 일본 대중문화가 소비재 상품에서 고급 미술까지 장악하며 뉴욕이라는 「대 시장」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다카시 무라카미를 보면 알 수 있듯, 일본 팝 아트는 일본 대중문화와 고급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무라카미는 이런 미술을 「슈퍼 플랫(Super Flat)」이라는 말로 설명해 이 말을 뉴욕 전역에 유행시켰다. 직역하면 「超單純(초단순)」이라는 얘기다. 겉보기에 하나도 심각할 것 없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값싼 팬시용품으로도 만들고, 수억 원짜리 고급 미술로도 만든다.


「超單純(초단순)」에 매료

무라카미가 만든 지름 1m짜리「꽃무늬 공」.
재팬 소사이어티 갤러리에서는 바로 「단순」의 모습을 띤 일본 대중문화의 다양한 면을 한눈에 보여 주고 있다. 헬로 키티, 동짜몽, 고질라, 로봇 등 어린이 장난감을 그대로 늘어놓았고, 그 옆에 걸린 회화와 조각도 일본 애니메이션과 코믹만화에서 이미지를 따왔다. 아무 생각 없는 듯 허공에 시선을 둔 헬로 키티와 동짜몽을 보면 「초단순」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일본 팝 아트의 세계화 비결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단순함에 숨어 있는 깊은 메시지다. 겉보기에 유치하고 단순한 이미지로 이들이 전달하는 내용은 놀랍다. 이를테면 귀엽고도 괴상하게 생긴 버섯 캐릭터를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떠올리게 하는 식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인해 일본인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 이후 일본 현대사회에서 불거져 나오는 병적이고 엽기적인 행태 등을 「귀여운 팝 아트」에 포장했다. 이를 통해 자신들도 2차 세계대전 피해국가라는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재팬 소사이어티에서 하는 전시의 제목 「리틀 보이」 자체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폭탄을 가리키는 말이다.

뉴욕이 지금 일본 팝 아트로 받은 충격은 1960년대 앤디 워홀이 수프 깡통과 마릴린 먼로를 들고 당시 미국 미술계를 장악했을 때의 충격에 못지않은 듯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4월에 주말 매거진 특집으로 일본 팝 아트를 20여 쪽에 걸쳐 다루면서 『우리는 모두 무라카미의 세상에 살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는) 일본의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나아가 미국의 정신세계에는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까지 보여 준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일본 팝아트가 담고 있는 「단순 코드」는 현대 정보화시대의 특징과 잘 들어맞는다. 메시지 전달이 단순명료하고, 디지털화, 상징화되어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뉴욕이라는 세계 최대의 도시, 가장 바쁜 도시와 일본 대중문화의 「심플」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결국, 문화예술을 「세계의 도시」 특성에 들어맞게,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흡수하기 쉽게 「상품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일본 팝 아트는 뉴욕을 휩쓸 수 있었다. ■
  • 200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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