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전자」의 성공 비결

유럽 호텔방 轉轉하며 TV 분해「유럽형 TV」개발 성공했다

年매출 1400억 원 올려

이레전자 정보통신연구소 박재석 팀장이 이레전자가 개발한 PDP TV 앞에 섰다.
이레전자 정보통신연구소 朴在錫(박재석·32) 팀장은 2003년 유럽 「호텔 여행」을 했다고 한다. 유럽형 TV를 개발하고 있던 박 팀장의 관심은 사실 유럽 여행이 아니라 유럽 각국의 호텔방에 비치된 TV에 있었다. 박 팀장은 자신들이 개발한 유럽형 TV가 과연 현지에서 상용 가능한 것인지 유럽 현지 호텔방에 비치된 TV를 분해해서 시험했다고 한다. 박 팀장이 묵은 호텔은 20여 곳, 분해한 TV 역시 20여 대가 넘는다. 이레전자 TV 개발 책임자인 박 팀장의 말이다.

『당시 이레전자는 유럽형 TV 개발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유럽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TV 기능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필요한 TV 규격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박 팀장은 10kg이 넘는 회로분석장비와 TV세트, LCD TV,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유럽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호텔방 TV를 분해해서 호텔에서 사용하는 TV와 이레전자가 개발한 TV를 비교, 평가했다고 한다. 박 팀장은 유럽 TV의 스카트 잭(Skart Jack·유럽에서 이용하는 AV 입력단자)이 전압을 처리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그 방식이 이레전자가 개발한 TV에 적용될 수 있는지 시험했다. 박 팀장은 이레전자 TV가 유럽에 많이 나오는 문자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지 시험했다. 박 팀장은 같은 안테나에 이레전자 TV와 유럽 TV를 연결하여 같은 채널이 똑같이 나오고 있는지 비교·분석하고, 이레전자 Tv와 각 나라 TV의 동작 상태, 화면 상태를 따져 보았다고 한다. 유럽 전역을 다녔지만 박 팀장에게 유럽은 여전히 낯설다고 한다. 하루 종일 호텔방에서 TV 시험만 했다고 한다. 식사도 전부 호텔방에서 해결했다고 한다.

2003년 8월, 이레전자는 유럽형 TV를 출시했다. 현재, 영국 타퉁(Tatung)社 , 독일 타가(Targa)社, 프랑스 네오비아(Neovia)社 등에 유럽형 TV를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다. 매출액은 2000년 250억여 원, 2002년 560억여 원에서 유럽으로 수출을 시작한 2003년 1000억여 원, 2004년 1400억여 원으로 급신장했다. 이레전자는 2003년 12월 2000만불 「수출의 탑」, 2004년 11월 7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기술이 기업을 살렸다

이레전자 TV에 들어가는 메인 회로판. TV 응용기술의 핵심이 집약되어 있다.
휴대전화 충전기와 단말기 등을 대기업에 납품하던 이레전자는 대기업이 납품 물량을 줄이기 시작하던 2002년 위기를 맞았다. TV 기술이 위기의 중소기업을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낸 것이다. 이런 성과에는 연구팀의 노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박 팀장은 연신 『부끄럽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박 팀장은 『사실 저희가 개발한 기술은 TV를 연구개발, 생산하는 회사들은 당연히 알고 있는 평범한 기술이다』라고 말한다.

『저는 회로를 개발하는 연구원입니다. TV응용기술의 핵심은 회로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회로기술은 공중에 떠 다니는 TV신호와 멀티미디어 신호를 PDP, LCD 등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바꾸는 기술입니다. 메인회로의 메인칩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어 심느냐 하는 것이고요』

박 팀장은 유럽형 TV를 개발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이나 미국은 TV전송방식이 NTSC방식으로 단일합니다. 유럽은 TV전송방식이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독일은 독일대로 다릅니다. 유럽 전역에서 호환 가능한 TV를 개발하는 것이 저희 목표였습니다』

이레전자는 독일 모 회사의 주문을 받고 2002년 12월부터 유럽형 TV 개발을 시작했다. 납품 기일은 2003년 8월. 2003년 5월에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납품 받았던 칩에 불량이 있었다고 한다. 2003년 6월부터 3개월 간, 『피가 말랐다』고 한다.


올 매출 목표는 1600억 원

『마음은 조급한데 시간은 많지 않고, 후배 연구원들한테 육두문자 섞어 가면서 욕도 많이 했어요. 혹시나 납품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항상 긴장 속에 살았습니다. 처음에 TV 나오자마자 몽땅 챙겨서 유럽으로 달려간 거예요』

박 팀장은 고교 졸업 후 대기업 생산라인의 수리공으로 취업했다. 일을 하다 보니 연구, 개발 쪽에 관심이 많았고, 어깨 너머로 계속 공부를 했다고 한다. 미국에 수리 업무로 출장을 다녀온 후에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고 한다. 출장 기간,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대체 인원이 그를 대신해 수리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박 팀장은 가고 싶었던 생산기술 파트로 자리를 옮겼다. 1993년, 그는 자동제어시스템을 적용한 CRT모니터의 생산기술 담당자가 된다. 그는 야간 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계속했다.

『저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추천을 받아서 퇴근 후에는 社內(사내) 기술 전문대학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그게 끝난 후에는 다시 추천을 받아서 야간 전문대 소프트웨어과를 다니며 공부했고요.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관심이 많았어요. 재밌으니까 술 끊고 친구도 끊어 가며 공부했죠』

그는 후배 연구원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연구팀장으로 유명하다. 후배 연구원들을 밤마다 독서실에 보내 공부를 하게 한다고 한다. 그는 『관심이 있고, 끊임없이 공부하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2일,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이레전자를 찾았다. 서울 본사 건물에 연구소와 LCD TV 생산 라인이 함께 있었다. PDP TV 생산 라인은 천안 공장에 있다고 했다. 이레전자 정보통신연구소에는 54명의 연구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임직원은 총 400여 명 규모, 회사 면적은 서울과 천안, 두 개의 공장 면적을 합쳐 5700여 평이 넘는다. 이레전자는 1991년 5평짜리 지하실에 고물상에서 구입한 두 대의 압착기를 설치해 자동차 스테레오용 전선을 가공하던 업체였다. 한양공고를 졸업하고 무일푼으로 전선가공업체를 시작한 이레전자 정문식 대표는 5평짜리 지하실을 1400억 원 넘는 매출을 올리는 전자회사로 키웠다. 이레전자의 올해 목표는 매출 1600억 원 달성이다. ■
  • 200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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