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전통, 곰탕 名家(명가) 하동관의 1등 비결

재탕이나 중탕이 없다

서울 곰탕의 본포 하동관이 청계천 개발로 63년간 닦아 놓은 터를 잠시 접게 됐다. 정직하고 자신에 엄격했던 창업주의 최고를 추구한 정신, 궁중 수라에 버금가는 수준 높은 곰탕 맛, 가족 중심의 성실한 경영, 40~50년 단골들이 큰 자산
류씨 할머니의 손맛

손님들로 가득 차고 넘치는 하동관의 점심 시간
서울곰탕의 원조, 63년 전통의 河東館(하동관)이 청계천변 개발로 잠시 문을 닫고 옮겨 앉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납작한 한옥과 모서리가 닳아 나간 나무식탁에 등을 맞대고 앉아 훈훈한 곰탕을 즐기던 일들이 추억으로 남게 됐다.

하동관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43년, 올해로 63년째다. 창업주 金容澤(김용택ㆍ작고)씨 부부는 서울 중구 삼각동에 본적을 둔 토박이 서울 사람들이었다. 金씨는 매우 엄격한 이로 알려졌지만 고객과 자녀들에게는 무척 자상했다. 부인 류창희(작고)씨는 서울 班家(반가)와 궁중음식에 해박하고 음식솜씨가 뛰어나 탕은 물론, 어느 음식이든 손만 닿으면 각별한 맛을 냈다.

하동관 곰탕은 류씨 할머니의 손맛으로 알려져 있다. 따끈한 놋그릇에 담아내는 맑고 담백한 탕국은 은은하게 감치는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상큼하면서 단맛이 감도는 깍두기도 새우젓과 설탕이 약간 들어간 순 서울식으로 탕 맛을 유감없이 살려 준다. 놋그릇에 담아 간결하면서도 품위를 갖춘 상차림은 北村(북촌) 반가나 궁중 수라상의 격식을 옮겨 놓은 것이었다고 한다.

정갈하고 진솔한 탕 맛이 장안에 퍼지면서 서소문통의 법원, 검찰청 판검사들이 몰려왔고, 광화문과 태평로의 언론인과 공직자들, 명동파로 불리던 문인, 연예인들까지 줄줄이 찾아와 점심 시간의 하동관 골목은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후 서너 시면 문을 닫는 이유

하동관의 가장 큰 특징은 63년을 한결같이 오후 서너 시면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그날 준비한 탕국이 다 나가면 언제고 문을 닫는다. 그렇다고 탕을 더 끓이는 법이 없고, 아침에 끓인 탕이 63년을 이어 오는 동안 한 번도 남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자랑이다.

유별나게 고객이 몰리는 것을 보고, 항간에는 주인에게 불만을 품은 주방장이 작심하고 탕 속에 수육을 한 줌씩 박아 넣어 고객이 줄을 선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하동관 국솥은 남의 손에 맡기는 일이 없고, 애초부터 그날 준비한 것을 다 팔면 일찌감치 문을 닫았고, 종로통에 큰 행사가 있거나 伏(복)날이라도 겹치면 2시를 넘기지 못했다. 일찍 문을 닫았던 첫째 이유는 창업주 김씨의 자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씨는 2남 7녀인 9남매를 두었고, 저녁 시간까지 탕을 내면 불가피하게 술을 팔아야 했고 그게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1964년 평소 친분이 두텁던 張樂恒(장락항ㆍ작고)씨 가족에게 하동관을 넘겼지만, 張씨 역시 창업주와 생각을 같이했고, 하루 한 차례 그날 팔 만큼만 끓여 재탕이나 重湯(중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곰탕과 설렁탕은 본래 사촌간이라지만 성격이 뚜렷하게 구별된다. 설렁탕이 뼈 곤 국물이 기본이라면 곰탕은 수육을 삶아 낸 고깃국이 주제가 된다. 맛을 내기 위해 내장을 삶아 얹지만 양이나 기름을 말끔히 뺀 곱창을 몇 점 얹을 뿐이다. 그래서 곰탕은 설렁탕에 비해 국물이 맑고 감치는 맛이 특징이다.

하동관 곰탕에는 뼈가 들어간다. 사골과 꼬리, 우족 등 쇠뼈의 맛있는 부위들을 섞어 넣고 알맞게 삶아 건져 낸다. 뼈 삶아 낸 국물에 암소 양지머리와 깨끗이 다듬은 양을 삶아 내 맛을 돋우는데, 하동관에서는 양을 內包(내포)라 부른다. 주문할 때도 그냥 곰탕 하면 수육만 얹어 나오고 「내포」 하면 양을 한 줌 더 넣고 곰탕보다 1000원을 더 받는다.

이런 珍味(진미)를 이끌어 내는 비결이 63년이 지나도록 밖으로 새 나가지 않고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철저히 가족들에게만 전수되기 때문이다. 창업주 류씨 할머니의 손맛이 가게를 물려받은 張씨 부부로 이어져 20여 년간 이어졌고 큰아들 錫僖(석희ㆍ72)씨 부부에게 넘겨져 다시 20년, 지금은 차남인 錫喆(석철ㆍ67)씨 부부가 물려받았지만, 주방의 국솥은 아직도 큰며느리 김희영(68)씨가 지키고 있다.


姜福馨(강복형) 지배인 47년 근속

63년간 불경기를 모르고 지내 온 하동관의 여세는 수십 년씩 꾸준히 찾아 주는 두터운 단골 고객층이 뒷받침하고 있다. 40~50년 단골로 찾고 있다는 정·재계 원로급 인사들의 면모를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는 분위기는 하동관의 자부심이자 무형의 자산이다.

가장 오랜 단골로는 52년을 한결같이 찾고 있는 서울제강의 김인성(84) 회장과 李萬燮(이만섭) 전 국회의장 부부를 꼽고, 가장 열성적인 고객은 국밥을 유별나게 즐겼던 朴正熙(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재임기간 중 청와대 직원들이 수시로 알루미늄 보온 통을 들고 와 곰탕을 사 들고 갔고, 부처별 초도순시 때면 해당 부처의 관료들이 찾아와 곰탕을 주문해 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휴가차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은 곰탕을 비행기로 공수해 갈 정도로 하동관 곰탕을 깊이 알아준 열성 마니아였다고 한다.

미식가로 알려진 全斗煥(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해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 李漢東(이한동), 李會昌(이회창), 高建(고건)씨 등 전직 총리와 李海瓚(이해찬) 현 총리, 고 李秉喆(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재계와 금융계 총수들, 언론사와 법조인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두터운 고객층을 갖고 있다. 하동관 곰탕을 먹고 경기에 나가면 큰 게임도 척척 풀렸다는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박신자씨 등 체육, 연예계 인사들도 즐비하다.

하동관의 또 하나 특징은 종업원들을 각별히 대접한다는 것이다. 하동관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평생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것. 張씨 가족들은 47년을 근속한 지배인 姜福馨(강복형ㆍ65)씨와 30년을 근속해 온 주방 찬모, 10~20년을 함께해 온 직원들이 모두 가족이고 주인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동관에서 근무하다 군에 입대하는 젊은 직원들도 제대하면 당연하게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하동관 출신으로 이곳저곳 식당을 옮겨 다니는 이가 없다는 것도 직원들의 자부심이라고 한다. ■
·하동관은 아침 7시면 문을 열고, 오후 3~4시면 문을 닫는다.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은 쉰다. 100평 한옥을 개조한 80석 남짓한 홀과 20~30석 남짓한 방이 「ㄱ」 자로 이어져 있다.

·곰탕(보통) 7000원, 내포(특) 8000원. 수육(1접시) 3만 원

·탕을 보다 맛있게 즐기도록 원하는 손님에겐 깍두기 국물을 부어 주는데, 그 맛도 다른 집에선 보기 어렵다.

·문의전화 02) 776-5656
  • 200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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