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사월 초파일 하루만 공개하는 경북 문경 봉암사

향 냄새도, 불경 소리도 없지만 수행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전국 각지에서 禪수행을 위한 최고의 선승들이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 수행을 정진하기 위해 찾는 절로 지금도 6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하루 세 번의 공양, 세 번의 예불, 14시간 이상의 좌선, 그리고 결사의 뜻을 이은 울력(공동노동)은 모든 수행자에게 해당된다.
한국 불교 조계종의 정신적「코어」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 위치한 鳳巖寺(봉암사). 1년 중 단 하루 사월 초파일을 제외하고, 364일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심지어 봉암사가 위치한 曦陽山(희양산)까지도 일반인의 발걸음을 막는다. 휴전선 지역(DMZ)을 제외하면 우리 땅 안에서 이런 금역이 있는가.

불교 조계종단의 조직표를 보면, 叢林(총림)선원 5곳, 일반선원 87곳으로 전국에 산재되어 있다. 그리고 별도로 조계종단의 직할 사찰인 특별선원 한 곳이 떨어져 나와 있다. 바로 봉암사가 그 유일한 宗立(종립)특별선원이다. 전국 각지에서 禪(선)수행을 위한 최고의 선승들이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 수행을 정진하기 위해 찾는 절이다. 봉암사는 가톨릭의 바티칸처럼 불교 조계종의 상징적, 정신적 「코어(Core)」인 셈이다.

봉암사로 향하는 희양산 입구에서 처음 마주친 것은 출입 통제소였다. 수도승이 나와 신분을 확인하고 미리 약속이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야 차단기를 열어 주었다. 마른 흙먼지를 일으키는 비포장 도로를 거쳐 도착한 봉암사 경내에 들어서자 고요하다 못해 스산했다. 뭇 절에서 풍기는 향냄새도 없고 불경소리도 없고 어떤 움직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대웅전에 들어가자 그 때서야 靜中動(정중동)이랄까 정좌를 한 수도승들이 사시예불을 드리고 있는 모습에서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신라 헌강왕 5년(879) 지증국사가 창건한 봉암사는 九山禪門(구산선문)의 하나인 曦陽山門(희양산문)의 본산이다. 후삼국 갈등으로 극락전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타 폐허가 되었지만 고려 태조 18년(935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여 3000여 수행 대중이 대웅전을 중심으로 선원을 동방장과 서방장 두 군데로 나뉘어 정진을 할 정도로 선풍을 떨쳤다. 구한 말 다시 戰禍(전화)를 입고 중창하는 등 1126년의 세월 동안 성쇠를 거듭하며 지금까지 선맥을 이어오고 있다.


희양산 국립공원化, 승려들이 저지

이 유서 깊은 禪寺(선사)가 근대 선원으로 부흥하게 된 것은 1947년 성철 스님 등이 바로 여기서 청정한 수행을 지키려는 「봉암사 결사」를 하면서부터다. 『이익관계를 떠나 오직 부처님의 법대로 살아보자』며 수행자들이 함께 거주하며 지킬 약속인 「共住(공주)규약」을 제정해 수행도량의 면모로 일신한 것이다. 1982년부터는 조계종 종립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되어 선승들만 사는 곳으로, 일반인의 출입은 희양산 입구부터 통제됐다.

평일 하루 2명, 주말에는 6명의 수도승이 희양산(998m)을 순찰한다. 오전 8시에 나가 오후 3시까지 산 전체를 돌며 감독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초기에는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하는 희양산을 거쳐 봉암사로 내려오겠다는 등산객들도 있었지만, 철저한 통제로 외부인들이 경내지로 들어오는 일은 이제는 없다. 호기심에서 봉암사가 보고 싶다며 내려온 등산객들 중에는 『왜 대한민국 땅인데 못 가게 하냐』며 언쟁을 벌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때 희양산이 국립공원 예정지로 정해져 관광객들에게 개방될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관광 수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주변 마을의 이장, 문경의 시의원 등 관계자들이 주민들의 불만을 모아 봉암사를 찾아왔다. 갈등과 불화는 심화됐다. 이에 봉암사 스님들은 정부와 관계자를 상대로 설득을 시작했다. 수행하던 스님들이 선방에서 나와 세속인처럼 데모도 벌였다. 20여 명의 봉암사 스님들은 전국 각지를 다니며 희양산 국립공원화를 반대하는 50만 서명날인을 받아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희양산의 국립공원 계획은 저지되었다.


완벽한 공동체 생활

안에서 본 봉암사는 외부를 향한 폐쇄보다 더 엄격하고 빈틈이 없었다. 모든 수행자들은 엄격한 수행청규를 따르고 있었다. 개인 공간도 개인 시간도 없고 갓 들어온 사미승이건 30여 년을 이 곳에서 수행해 온 선원장 스님이건 모두 완벽한 공동체 생활을 한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난다. 단, 특별정진은 오전 1시 기상, 오후 11시 취침(2시간 수면), 加行(가행) 정진은 오전 2시 기상, 오후 10시 취침(4시간 수면), 일반정진은 오전 3시 기상, 오후 9시 취침(6시간 수면)으로 수면시간이 다르다. 용맹정진은 한시도 눈과 허리를 붙이지 않고 끊임없이 좌선과 보행을 하는 수행으로 수면시간이 없다.

하루 세 번의 공양, 세 번의 예불, 14시간 이상의 좌선, 그리고 결사의 뜻을 이은 울력(공동노동)은 모든 수행자에게 해당된다. 철이 바뀌면 씨를 뿌리고 수확하고 채소를 가꾸고 메주·김장을 담그고 도량의 보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한다. 특별 정진자 5명, 가행 정진자 20명, 일반 정진자 40명, 수행자들의 생활을 돕고 후원을 하며 8시간 수행을 하는 외호대중 30명으로 봉암사에는 현재 1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렇게 수행여건이 갖춰진 선원도 드물기에 찾아오는 선승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2004년 하안거에는 88명, 동안거에는 83명의 대중이 이 곳을 거쳐갔다. 늘어가는 수행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도량 한 구석에서는 새로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봉암사 선원의 대표와 감독을 맡은 선원장 淨光(정광·63) 스님은 18세에 출가해 참선 이력이 40년을 넘었고 봉암사에 출입하기 시작한 年數(연수)까지 합하면 30년이 넘게 이 곳에서 수행을 해오고 있다.

『게으름이나 꾀가 나면 못 있었을 겁니다. 이 곳은 똑같이 공부하고 대중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되었다고 편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고생을 하고 싶어 하는 거니까 앞장서서 하게 되지요. 이 곳에서는 매일 수행하는 마음이 불같이 올라옵니다』


『목숨 걸고 봉암사를 지킨다』

햇빛 희, 볕 양. 희양산은 글자 그대로 수행자들의 정진에 뜨거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이 곳을 거쳐간 고승들 사이에서 『우리도 옛날에 봉암사에서 힘 얻었지』라는 말이 희양산의 풍수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 곳의 주지였던 원타 스님은 『희양산을 보면 가슴에 솟아오르는 불길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예전에 차도 다니지 않던 시절에 마을 입구부터 봉암사로 걸어오다 희양산을 보면 희열을 느끼고 불끈 솟아오르는 힘을 느꼈지요』라고 회상한다.

봉암사는 이처럼 바위산인 희양산의 氣(기) 덕분에 잠을 적게 자도 공부에 정진할 수 있고, 외부와 단절된 청정한 자연 속에서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천혜의 공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구산산문의 산실로 한국불교의 흐름 속에서 숱한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고고한 선풍을 유지한 역사적 전통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곳은 수행자들의 「자존심」이다. 법회를 열 필요도 없고 신자들을 맞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오직 禪을 이루는 데만 전념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종단에서는 연간 1억 5000만 원의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조계종의 정신적 핵, 한국의 스님들이 평생에 꼭 한 번 찾으려는 정신적 고향인 봉암사는 10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위협과 시련을 거치며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언제나 놓치지 않았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그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2005년 4월까지 이 곳의 주지였던 원타 스님(현재 주지는 함현 스님)은 봉암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순교자 정신으로 뭉쳐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희생을 해서라도 봉암사를 지킵니다.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의 청정한 정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 2005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11

201911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1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