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오 청도와인 대표

대통령 취임연회에 나온 세계 최초 감 와인, 드셔 보실래요?

사진 문지민
이명박 17대 대통령 취임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황금빛 와인 한 잔씩이 건네졌다. 새롭게 시작하는 정부를 위한 건배주로 오른 이 와인은 감으로 만든 와인. 경상북도 청도에서 대통령 취임 건배주로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감 와인을 만든 하상오 청도와인 대표(48세)를 만났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청도 풍각면에 자리 잡은 아담한 와인공장 옆에 딸린 연구실 겸 사무실. 연구실에서 흘러나오는 달달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하 대표의 첫마디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만 찾아다니며 했더니 사람들이 이제 조금 알아주는 것 같다”였다.

“마흔이 넘어 감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나이에 새로운 것을 한다는 거, 그것도 이제껏 누구도 하지 않은 것을 한다는 건 모험이고 도전이죠. 그래서 더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2001년 잘나가던 사업을 접고 감 와인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된다”며 말렸다고 한다. 감 와인을 만들기 전 그는 전통 음료인 식혜를 캔으로 만들어 대중화에 성공한 인물이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음료시장에 식혜 바람을 일으킨 숨은 주인공.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식혜의 원료인 ‘엿기름’을 규격화해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함께 일하자는 기업들의 요청이 쇄도했는데, 그중 비락과 손을 잡고 식혜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박. 시골 할머니 집에서 맛보던 식혜가 간편한 캔 음료로 나오면서 식혜시장이 형성됐고, 비락은 이 부문의 1위 기업으로 연 9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식혜를 만든다고 할 때 사람들이 ‘그거 노인네들이나 먹는 거다’ ‘대기업이 먼저 할 거다’ ‘어차피 안 될 텐데 차라리 청량음료를 만들지’ 라는 말을 했어요. 그런데 하니까 되더군요.”

2001년 그는 다시 엉뚱하게도 포도가 아닌 감으로 와인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식혜 공장을 처음 세운 청도가 제겐 두 번째 고향입니다. 이곳 청도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았어요. 청도 명물 중 다른 사람이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추렸죠. 청도의 특산물인 반시는 납작하면서 씨가 없고, 당도가 높은 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술로 만들기 적당하리라 생각했죠. 처음엔 ‘코냑’을 만들까 고심하다 우연히 감식초를 접했습니다. 그때 와인이 떠올랐죠. 감을 식초가 아닌 술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어요.”

그의 아이디어에 주변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뿐이었다.

|청도 화양읍에 위치한 와인 터널. / 청도 감 와인.
“감으로 와인을 만들겠다니까 ‘미쳤냐. 포도 와인도 제대로 못 만들어 대부분 수입하는 나라에서 감으로 와인을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원색적인 말부터 ‘먹고살기 어렵냐’는 동정, ‘감으로는 와인 말고 전통주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충고까지 해주더군요. ‘잘해봐. 잘될 거야’라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그런 반응을 보이니까 더 하고 싶어지더군요. 솔직히 제가 봐도 조금 무모했죠. 제 버릇 중 하나가 남이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겁니다. 정말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와인 제조에 대한 지식이 없던 그는 와인 전문가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대구지역 대학(경북대, 계명대)의 미생물과 식품학 관련 교수들을 무작정 찾아가 감 와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하 대표 스스로 와인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경북대 대학원 식품공학과에 입학했다.

“와인을 만들려면 재료인 감을 어떻게 재배해 발효.가공.숙성.보관 과정을 거치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여러 가지 학문적 배경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또 최고의 제품을 만들려면 저보다 많이 아는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했죠. 제 말을 듣고 흔쾌히 조언해 준 교수들은 제게 구세주 같은 존재였습니다.”

와인은 맥주나 소주, 막걸리나 전통주처럼 바로 맛볼 수 있는 술이 아니다. 최소 2~3년은 숙성시켜야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는 첫 병이 나오기까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잖아요? 저도 똑같더군요. 속이 새까맣게 탔어요. 기업은 시간이 돈인데 비용은 계속 나가고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으니 몹시 갑갑했어요.”

| 청도 풍각면에 위치한 감 와인 공장.
3년째 되던 2003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와인 3000병이 그의 눈앞에 놓였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첫 병을 따서 마시는 순간 ‘이젠 됐다’는 느낌이 왔다.

“첫 병을 마시고 확신을 가졌죠. 함께 시음한 사람들도 ‘요것 봐라. 뭔가가 있긴 있구나’ 하며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세계 최초로 감 와인을 세상에 내놓은 그는 이제 와인을 어떻게 팔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그는 수입 와인 위주로 형성되어 있는 와인시장에 파고들려면 “우리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무기를 보러 가자”며 기자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이 있는 청도 풍각면에서 차로 10분쯤 거리에 있는 청도 화양읍. 온통 감나무로 뒤덮인 길을 따라 도착한 나지막한 언덕에 터널 입구가 나타났다.

하 대표는 “100년도 넘은 이 터널이 세계에서 유일한 터널 와인 바이자 와인 70만 병을 한 번에 저장, 숙성시킬 수 있는 최고의 물류기지”라고 소개했다. 1896년 착공해 1904년 완성, 1905년부터 한성(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열차가 다녔던 1015m 길이의 이 터널을 발견한 하 대표는 “프랑스의 보르도 포도밭처럼 이 터널을 한국 와인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터널 초입에 자리 잡은 와인 바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200m쯤 들어가자 터널 벽면을 가득 채운 숙성 중인 감 와인들이 보였다.

“이곳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언제나 15℃를 유지합니다. 습도도 60~70%에서 벗어나지 않죠. 와인을 숙성시키는 데 최고의 조건입니다.”

|연구원과 함께 실험 중인 하상오 대표(왼쪽).
터널을 나오며 그가 이곳을 감 와인의 상징으로 만든 이유를 말했다.

“감 와인을 그냥 매장에 내놓고 팔아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브랜드, 가격, 인지도에서 이미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와인들과 상대가 안 돼요. 이색적이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터널을 알려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감 와인. 이걸 하나의 문화로 만드는 거지요. 그래야만 우리 같은 신생 업체도 기존 시장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군데군데 조명이 비치는 곳과 어둠이 드리운 곳이 공존하는 터널 안 여행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흥미로웠다. 터널을 둘러본 후 입구의 와인 바에서 감 와인을 시식했다. 특별히 품질이 좋은 반시를 골라 만든 ‘감그린 스페셜’과 ‘감그린 레귤러’ 그리고 ‘아이스 와인’이었다. 황금빛이 도는 화이트 와인 ‘아이스 와인’은 초겨울에 서리 맞은 과숙한 감을 언 상태에서 착즙.농축해 10℃ 이하에서 저온 발효.숙성시킨것으로, 매우 달고 향기로웠다. 과일이나 치즈, 구운 과자와 잘 어울리는 디저트 와인이라고. 감 와인에는 심장병이나 노화 방지에 좋은 타닌이 포도로 만든 레드 와인보다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지난해 감 와인은 약 15만 병을 생산했다. 하 대표는 이제 시행착오 기간은 끝났다며 “우리가 만든 세계 최초의 감 와인을 세계에 선보이는 게 남은 과제”라고 말한다.
  • 200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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