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운영하는 어부 현종과 양귀비

인터넷으로 최고 수산물 판매하는 울진 어부의 ‘漁父四時詞’

특별히 물 좋은 수산물이 필요할 때 요리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곳이 있다. 경북 울진 죽변항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현종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바다로(www.badaro.in)’. 어부 현종이 직접 바다로 나가 잡아들인 문어와 붕장어, 그리고 죽변 어판장에 나오는 수산물 중 물 좋은 ‘명품’만 골라 보내 주는 곳이다. 어부 현종이 바다와 자신이 잡은 물고기, 어판장에 나온 물고기를 촬영한 사진과 함께 매일매일 일상을 담아 올리는 일기도 인기. 빌딩숲에 갇힌 도시인들에게 툭 트인 바닷가에서의 삶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어부 현종의 아내 양귀비가 생선을 손질해 요리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 싱싱한 바닷것들이 그득 올려진 ‘어부 밥상’ 사진도 눈길을 끈다. 어부 가족은 바닷것에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는다.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리기 위해 요리라고 해야 찌거나 맑게 끓이는 정도. 홈페이지 이용자 중에는 일부러 휴가를 내고 울진까지 찾아와 ‘어부 밥상’ 한번 받아 보고 싶다며 어부 집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유명인이 된 어부를 만나러 울진군 죽변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울진까지 멀긴 멀었다.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눈 쌓인 대관령을 넘어 동해까지 갔다 삼척을 거쳐 울진까지 내려갔다. 좁은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어부 집 벽과 문은 청록의 예쁜 파스텔 색. 마당에는 깨끗하게 손질된 복어와 대구, 오징어 등속이 주렁주렁 널려 있고, 도시인에게 보낼 대게가 퍼덕퍼덕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 점심때. 어부의 아내는 대게와 문어, 골뱅이 그리고 반쯤 말린 복어를 그대로 쪄서 내왔다. 복어에 미나리를 넣고 맑은 탕도 끓였다. 하나같이 담백하면서 감칠맛이 났다. 오징어를 반쯤 말린 피데기를 마요네즈에 찍어 먹으니 졸깃졸깃 혀에 감겼다. 기름진 음식이 아니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더부룩하지 않았다.

‘바다로’가 탄생한 것도 어부 아내가 차린 밥상 덕분이었다. 어부 현종이 어부가 된 것은 1985년, 30대 중반일 때였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울진군 원남면 덕신리. 바다 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죽변항과 마주보고 있는 그곳을 가리키며 “현종이란 이름도 우리 마을 뒷산인 저 현종산에서 따왔다”고 말한다. 본명을 물으니 “뭘 그걸 알려고 하시냐?”며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아내 이름은 당 현종의 애첩인 ‘양귀비’가 됐다. 그의 조상이 18대에 걸쳐 500년 넘게 살아온 곳. 그래도 대대로 뱃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마산으로 나가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철공 일을 배우다 독학으로 기계 가공뿐 아니라 설계까지 하게 됐고, 큰 공장에 스카우트됐다. 학교는 제대로 다니지 않았지만 눈썰미가 좋은데다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끝을 보는 성격 덕분에 대졸 사원이나 하는 일을 맡았다. 혼자서 일본책을 보고, 공대 교재를 보며 주경야독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는 바다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사회에서는 능력보다 졸업장이 더 중요하더라”라고 간단하게 말한다. 작은 배를 하나 사서 고향 가까운 죽변에 자리 잡고, 바다로 나갔다.

자연은 노력하는 만큼 돌려주었다. 새벽에 바다로 나가면 저녁 무렵까지 하루 12시간 이상 꼬박 작업을 했다. 주로 통발로 문어를 잡는데, 문어가 뭘 좋아하는지 속속들이 파악해 움직이다 보니 남들보다 수확이 좋았다. 그런데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이고 작업을 하다 보니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작업을 줄여야 할 때, 그의 집을 드나들던 사진 동호회 사람들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생선을 팔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회원 몇몇이 앞장서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주었다.


좋은 수산물 골라 소비자에게 전하는 일이 ‘예술’

1995년 처음 디지털 카메라를 장만한 어부 현종이 사진 촬영을 배우기 위해 인터넷에서 찾아낸 사진 동호회에 가입하고, 그들과 함께 촬영 여행을 다니던 터였다. 동호회 회원들은 울진에 촬영 여행을 오면 어부 집에서 밥을 먹고 가곤 했다. 어부 아내는 “울진까지 왔는데, 음식점에서 먹고 가라고 하면 왠지 홀대하는 것같이 마음이 편치 않아 20명이든 30명이든 내 손으로 상을 차렸다”고 했다. 다양한 해산물이 오른 밥상을 받은 회원들은 “우리도 이렇게 먹고 살면 좋겠다”고 했고, 어부 현종이 홈페이지를 만들면 자신들부터 이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시작된 게 ‘바다로’. 특별히 알리지도 않았는데, “‘바다로’에서 파는 것은 틀림없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명품 수산물을 파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부부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주문 전화가 이어지는데,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직접 주문하는 남자도 있느냐?”라고 묻자 “많아요”라고 한다. 거래처 선물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바다로’가 이만큼 자리 잡은 데는 어부 현종 뿐 아니라 어부 아내 양귀비의 까탈스러움도 한 몫했다.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닷가에서 집으로 곧장 배달된다는 것만으로도 경쟁력이 있는데, 양귀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날 새벽에 바다로 나가 잡아 온 물고기 중 자신의 눈에 차는 게 있을 때만 경매로 사들여 소비자들에게 보낸다. 소비자가 어떠어떠한 수산물을 사달라고 심부름을 시킬 때 그는 언제까지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못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도 대게를 사려고 하루 종일 어판장을 들락거렸지만 결국 허탕만 했다”고 한다.

“봄에 나오는 쑥은 약이라 콩가루 묻혀 끓여먹으려고 촌 할머니한테서 쑥을 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집에 와 다듬어 보니 반 이상 버려야겠더라고요. 그때 우리 물건을 받는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내가 보낸 물건을 받고 그런 마음이 들면 안 되잖아요?”

경매로 사들인 것 중에서도 좋은 것만 골라 보내고, 좀 처진다 싶은 건 집에서 먹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 “소비자, 느그들은 좋은 것 먹으라” 하는 심정이라고. 그러다 보니 남는 게 없을 때도 많지만, ‘최고’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손해가 나도 바다로 나가 문어나 붕장어를 그만큼 잡아 오면 그만 아니냐는 배짱이다. 그런 면에서 부부는 이심전심이다. 어부 현종은 홈페이지에 “이 일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 규모를 얼마나 늘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성껏 품질을 유지하느냐가 이들에게는 ‘최고’의 조건. 그런 면에서 어떤 일이든 ‘예술’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술도 담배도 못 하는 사람인데, 소비자들이 올린 글을 읽을 때는 표정이 달라지죠.”

소비자들이 고마워하는 글귀를 보며 현종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면 양귀비도 피로가 가신다고. 주문이 늘어나도 양귀비는 따로 사람을 쓰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손질해 보내는 것만 못한데다 품값을 그만큼 포함해 팔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최고의 맛’을 보려면 철도 중요하다. 대게는 요즘도 많이 나지만, 2월이면 살이 꽉꽉 차서 제일 맛있다고 한다. 그러나 설 전후해서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싸져 “음력 정월 보름 전후가 가장 좋다”고 권한다. 문어는 사시사철 잡히는데, 수심에 따라 크기와 맛이 다르다. 수심이 깊은 먼 바다에서는 수십 kg짜리도 잡히지만 질기고 짜서 6kg 안쪽짜리가 좋다는 것. 어부 현종은 배를 타고 40분쯤 나가 문어를 잡는다. 꽁치 철에 잡힌다 해 ‘꽁치이까(꽁치오징어)’라 불리는 새끼 오징어는 오래전부터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별미. 야들야들한 살에 먹물과 내장까지 통째로 먹는데, 내장에선 게장 맛이 난다.

이 부부는 바다를 좋아한다. 바닷가에 살고 바다에서 일하면서도 “바다를 보면 속이 시원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말에는 택배를 이용할 수 없어 쉬는데, 그때도 이 항구 저 항구로 돌아다닌다. 그곳엔 어떤 물고기가 잡히고, 가격은 얼마인지 알아보고, 사진 촬영도 한다. “다른 곳 사정도 알아야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답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 : 문지민
  • 200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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