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만 동화약품 중앙연구소 소장

‘부채표 활명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100년이 넘은 제조회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오는 9월 25일로 창립 110주년을 맞는 동화약품. 우리에게는 ‘부채표 가스 활명수’로 더 잘 알려진 이 회사는 4개의 한국 기네스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이자 제약회사라는 것과 ‘부채표’와 ‘활명수’가 각각 최장수 등록상표와 의약품이라는 기록이다.

활명수로 물약 소화제 시장에서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회사가 최근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골다공증 치료제 후보약물을 개발해 다국적 기업인 미국의 P&G제약에 국내 제약 역사상 최고액수인 5억1100만 달러(한화 약 4700억 원)를 받고 기술을 수출하기로 계약한 것. 이 금액은 2006년 동화약품 총매출(1528억 원)의 3.1배에 달하는 규모이며, 지금까지 투자된 연구개발비 200억 원의 23배나 된다.

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의 신약 개발 및 판권을 양도한다는 것이 계약 조건.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앞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임상 2상과 3상 시험에 돌입하게 된다. 동화약품은 이들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마다 기술 수출료를 나눠 받으며, 미국 FDA(식품의약국)로부터 시판 승인을 받으면 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 매출액에 대한 일정 비율의 로열티도 추가로 받게 된다.

이번에 개발한 신약 후보약물 ‘DW1350’은 동화약품 중앙연구소가 골다공증 치료제 연구에 들어간 지 11년 만에 얻은 성과다. 1996년부터 책임연구원으로 과제에 참여하여 DW1350후보물질 선정 및 개발 전 과정을 진두지휘해 온 유제만 소장은 “DW1350은 파골세포 억제는 물론 조골세포 촉진 효과까지 있어서 기존 치료제와 차별화된다”고 설명한다.

“골다공증은 노화된 골세포가 제거된 자리를 신생 골세포가 채우지 못해 뼈 조직이 엉성해지면서 생기는 병입니다. 기존 시장에 나와 있는 골다공증 치료제는 골세포가 제거되는 것만 억제했지 새 골세포 생성에는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해 치료에 한계가 있었지요. DW1350은 유럽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 1상 시험 결과 안정성이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골 형성이 촉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골 형성이 촉진된다는 것은 곧 질 좋은 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P&G제약이 거액의 기술료를 지불하기로 하고 특허 사용권 및 판매권을 가져간 것은 DW1350의 무한한 가능성 때문. 유 소장은 “P&G가 시판 중인 골다공증 치료제 ‘악토넬’의 특허가 조만간 만료돼 후속 제품이 필요한 시점인 것도 한 이유”라고 덧붙인다.

“지금 세계 유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은 하나같이 신약 개발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제약회사에 있어 신약은 곧 차세대 성장 동력이거든요. 신약 하나로 단박에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난 곳이 많지 않습니까. 화이자제약의 경우 고지혈증 치료제인 ‘리피토’ 하나만으로도 연 10조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죠.”

신약 개발로 인한 수익성이 이렇듯 엄청난데 동화약품은 왜 DW1350의 글로벌 특허권과 판매권을 외국 회사에 양도한 것일까. 그는 “후보약물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글로벌 신약이 탄생하고 시판되기까지는 엄청난 재원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 글로벌 신약 하나가 개발되기까지는 1조 원의 돈이 들어갑니다. 또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FDA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요. 화이자 제약회사의 경우 연구개발비만 한 해에 8조 원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한국 제약 업체들의 총매출을 합한 것과 맞먹는 액수지요. 인력이나 예산도 그렇고, 국제 제약업계에서의 신인도가 낮아 시판까지 우리 힘으로만 끌고 가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희 같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여기까지 오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신약 개발은 미래를 준비하는 성장 동력

연구과제 관련 파일들.
서울대 약대 출신의 유제만 소장이 동화약품에 입사한 것은 1981년. 당시만 해도 이 회사는 국내 제약업계 서열 5위권 안에 들었다고 한다. 입사 후 그는 경기도 안양에 있는 중앙연구소에 배치됐고, 다른 제약사 연구원들과 마찬가지로 신약 개발보다는 해외 약품 국산화 작업을 더 많이 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신약 개발 연구에 매진한 것은 국내에 물질특허권이 발효된 1987년부터다.

“국내에 물질특허권이 발효되기 전까지는 해외에서 개발된 약물이라 해도 제조법만 달리 하면 별 다른 제재 없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어요. 그 때문에 국내 제약회사들은 신약 개발의 필요성을 못 느꼈죠. 국내에 신약 개발 중심의 연구소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물질특허권이 발효된 1987년 이후입니다. 정부가 선별된 신약 개발 과제에 일정 비율의 연구비를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죠.”

초기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과제는 시장이 넓고 실험이 비교적 용이한 항생제와 항암제 분야가 대세였다. 동화약품이 처음 시도한 신약은 카놀론 계열의 항균제였으나 초기에 발굴된 후보물질의 개발은 경험이 부족해 실패했다.

“경험이 없다 보니 진행 과정이 더뎠어요. 독성 문제나 동물실험 등의 전 임상 과정만 5년이 걸렸지요. 2상, 3상 시험 과정은 빨라도 5년인데, 벌써 유사 제품이 타사에서 출시된 직후였고, 효과가 월등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해서 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약 개발의 성공률은 보통 1만분의 1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라도 아니다 싶을 때는 하루빨리 중단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한다. 신약 개발은 뒤로 갈수록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 연구를 계속할지 중단할지 빠르게 판단하는 게 연구의 중요한 경쟁력이기도 하다.

골다공증 치료제 후보물질인 DW1350을 개발한 연구원들.
2004년 연구소장인 된 그는 연구원 생활만 올해로 26년째다. 연구원 생활에 대해 그는 ‘안개 속을 달리는 마라토너’에 비유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한 발 한 발 안개를 헤치며 앞으로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100m 앞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호기심 많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람이 일에 유리하다고 한다.

“길이 보이지 않거나 막히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이런 현상이 왜 생기는지 연구하고 분석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연구하고 고민하다 보면 길이 보였거든요. 이런 저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스트레스 인자가 없는 것 아니냐’고 놀리곤 하더군요. 저라고 스트레스가 왜 없겠습니까. 다만 스트레스가 오히려 약이 되도록 노력했을 뿐입니다.”

동화약품은 외환위기 때도 전체 매출의 5%를 연구 개발에 투자했을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회사 규모나 매출만으로는 업계에서 20위권 밖이지만 연구 개발 분야만큼은 늘 10위권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이 회사 연구소 인력은 현재 80명. 유 소장은 “DW1350이 시판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관문이 남아 있고, 또 앞으로 뇌졸중과 정신과 영역의 치료제 개발에 도전할 계획이어서 연구인원을 계속 충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2001년 국내 3호 신약으로 인정받은 세계 최초의 방사선 간암 치료제 ‘밀리칸주’를 개발하기도 한 유제만 소장. 그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필요로 하는 신약 후보약물을 개발하는 것이 곧 동화약품이 세계로 뻗어가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신규철
  • 200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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