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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인터뷰 | 중국의 떠오르는 CEO (17) 스지앤샹 콰이루그룹(上海快鹿投資集團) 회장

파산한 국유기업을 알짜 민영기업으로

거대한 땅덩이만큼 회사도 많은 중국. 국유기업에 민영기업, 외국인 투자기업에 개인 사업체까지, 무려 4200만 개나 된다. 기업 이름도 별난 것이 많다. ‘하늘을 나는 비둘기 회사’(飛領集團有限公司), ‘흰 코끼리 회사’(白象集團有限公司), ‘흰 고양이 회사’(白猫集團有限公司)…. ‘빠른(快) 사슴(鹿)’이란 이름을 가진 기업도 있다. 부동산 개발과 광케이블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상하이 콰이루(빠른 사슴) 투자그룹(上海快鹿投資集團). 이 회사 스지앤샹(施建祥?4세) 회장을 만났다.

“회사 이름이 재미있죠? 그 속에 경영철학이 담겨 있답니다. 사슴은 사색에 잠겨 있다가도 움직여야 할 땐 빠른 속도를 냅니다. 기업도 그래야 합니다. 투자 대상을 찾을 때는 신중해야 하지만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빠르게 움직여야죠.”

영어 관용구에 ‘하룻밤 자면서 생각하다’는 의미로 ‘sleep on it’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상응하는 중국어 표현은 ‘츠꺼예판(吃隔夜飯)’이다. 밥을 해서 당장 먹지 않고 하루 지나서 먹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스 회장은 결코 하루 지난 밥을 먹는 법이 없다고 한다. 방침이 정해지면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철칙인 이른바 ‘사슴 경영’이다. 지난해 초부터 중국의 내로라하는 CEO들을 스무 명 가까이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온갖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심오한 경영철학을 접해 왔지만 ‘사슴경영’은 처음 듣는 이야기다. 콰이루는 1954년 설립돼 45년을 국영기업으로 지내다 1999년 파산한 회사였다. 콰이루가 이름에 걸맞게 사슴 경영을 도입한 것은 스 회장이 파산한 국영기업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중국의 많은 CEO들처럼 스 회장도 가난에 찌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

“엄마, 고기가 먹고 싶어요.”

필자에게 회사의 역사적 장면을 소개하는 스지앤샹 회장 (오른쪽).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집안 형편에도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성화를 뿌리치지 못해 왼쪽 주머니에서 몇 십전, 오른쪽 주머니에서 몇 십전, 이렇게 탈탈 털어 주었다.

“1원 60전을 받아 길거리에서 고기를 사먹고 기뻤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맛있는 고기를 매일 먹으려면 제 스스로 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했습니다. 성어사전 한 권을 모조리 외웠죠.”

23세 되던 1987년, 그는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인쇄소를 하면 돈이 된다는 말에 상하이인쇄기계학원 원장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첫날, 원장은 시간이 없다며 내일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보름 동안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청년 스지앤샹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원장을 감동시켰다. 원장은 인쇄업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기계는 어디 가서 사야 하는지 꼼꼼하게 설명하면서 창업경비까지 쥐어 주었다.

“원장을 찾아갈 때 신었던 그 낡은 신발은 지금도 보물처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 해진 신발을 볼 때마다 용기가 불끈불끈 솟습니다.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어요.”


목표를 정하면 재빨리 움직이는 ‘빠른 사슴 경영’

1995년 그는 인쇄소 문을 닫은 후 그동안 모은 4만 위안으로 창업 준비에 나선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연히 세계 500대 기업 중 하나인 미국 석유회사 옥시덴탈이 상하이에 와서 중국 내 대리상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면접장에 갔더니 일본 마쓰시타, 중국석유화학(시노펙), 태국 정다(正大)그룹 등 막강한 회사들이 옥시덴탈의 대리상 자격을 따겠다며 모여들었더라고요. 저는 영어 한 마디 못 하고 외국 기업의 대리상 경험도 없었으니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죠. 그런 가운데서도 미국사람들을 감동시키면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첫날은 만나 주지도 않았다. 둘째 날 다시 찾아가 겨우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

“이제 막 설립한 작은 회사입니다. 제대로 쌓은 경험도 없고 자금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실한 자세가 재산입니다.”

옥시덴탈 간부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연락처를 남겨 두고 가라고 했다. 보름쯤 지났을까. 옥시덴탈이 응모한 기업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들 값비싼 선물 하나씩을 들고 온 게 아닌가. 돈이 없었던 스 회장은 그 길로 바로 회의장을 빠져 나와 인근 상점에서 47위안짜리 빨간색 목도리를 11개 사왔다.

“오늘 제가 가져온 선물은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목도리에 제 진심을 담았으니 중국과 미국의 우정을 이어 줄 것입니다.”

콰이루그룹이 조성 중인 쩐장(鎭江)산업공단 조감도.



그의 ‘감동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옥시덴탈의 중국 화둥(華東)지역 총대리권을 따낸 것이다. 이후 3년 동안 그는 발군의 판매실적을 보이며 중국 전역의 판매왕에 선정됐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에 초청돼 세계석유회의(WPC)에 참석하는 행운도 얻었다. 옥시덴탈 총대리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다소 여유가 생겼고 명성도 얻었지만 언제나 남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기 사업을 해야 한다고 결심하고 1998년 옥시덴탈을 떠나 의류 공장을 차렸습니다. 처음엔 좀 되는 듯싶더니 하루가 다르게 이윤 폭이 줄어들었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완전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실패 원인을 냉정하게 따져 보았다. 그리고 시장과 기업을 나름대로 세 가지 분류에 따라 평가해 보기도 했다.

“시장점유율과 이윤 모두 낮은 사업은 ‘마른 강아지’로 정의했습니다. 이런 사업은 망하는 것이 시간문제죠. 시장은 좋지만 이윤이 높지 않거나 이윤이 높아도 시장이 좋지 않다면 ‘살찐 양’입니다. 이런 사업은 혼자 해선 안 됩니다. 다른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시장과 이윤이 모두 좋은 경우는 ‘살찐 소’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금과 기술, 인력을 집중 투자하면 성장 가능성이 무한합니다.”

1999년 ‘살찐 소’가 찾아왔다. 상하이 콰이루전선케이블(上海快鹿電線電纜 有限公司) 등 4개 국유기업이 파산하면서 매물로 나온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인수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을 때 스 회장은 곧바로 인수 의사를 밝혔다. 회사를 인수하고 보니 종업원들의 심리 상태가 이만저만 복잡한 게 아니었다. 국유기업에서 민영기업이 됐다는 것 자체에 불만을 품은 직원이 적지 않았고, 언제 정리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만연해 있었다. 그는 직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소유권이 바뀌었을 뿐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설득했습니다. 떠날 사람은 떠나지만 남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과급 제도를 도입해 1인당 최고 1만8000위안의 인센티브를 일시에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감동경영은 위력을 발휘했다. 현재 500여 명의 그룹 직원들은 대부분 국유기업 시절부터 일해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스 회장은 3년 전부터 또 하나의 감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상하이 인근 도시인 쩐장(鎭江)에 조성 중인 공단개발사업이다.

“지방도시에서 공단개발사업을 하면 큰 이익을 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투자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지방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는 쩐장시 고위 공무원들을 찾아갔다. 9㎢의 토지를 무상으로 주면 현대식 친환경 공단을 개발하고 외국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정부 세수(稅收)와 실업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며 설득했다. 쩐장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공단조성사업은 지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이 입주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넓은 토지가 유리한 가격에 나온다면 한국에 가서 중국기업 전용공단을 조성해 볼 생각도 있습니다.”

그는 “한국 측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겠다”며 사슴 경영의 달인다운 면모를 내보였다.
글쓴이 박한진님은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정치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復旦)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10년 후 중국》, 《박한진의 차이나 포커스》 등을 썼다.
  • 200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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