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형ㆍ장준호 인포뱅크 대표

36년지기 친구가 함께 만든 벤처기업

디지털 기술의 집적체 휴대전화에는 수많은 기능이 들어가 있다. 이 중 음성통화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기능이 문자메시지(SMS). 간단한 안부 인사부터 각종 기념일 챙기기까지 문자메시지로 대신하고 있는 시대다. 요즘은 컴퓨터에서 휴대전화로, 휴대전화에서 컴퓨터와 TV로도 문자와 사진 전송이 가능하다. 이 덕에 기업이나 단체의 홍보와 마케팅은 물론 여론조사, 요금 청구 등에도 문자메시지 서비스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국내 1위를 달리고 있는 기업이 인포뱅크다. 이 회사는 1997년 국내 최초로 문자메시지 전송 서비스를 기획했고, 1998년 우리나라 5개 이동통신사 통합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기업용 메시징 서비스 분야를 개척했다. 현재 3500여 기업에 메시징 서비스를 공급, 국내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다. 또 TV와 휴대전화끼리 메시지를 전송하는 양방향 메시징 서비스와 리모컨 조작으로 메시지 전송이 가능한 TV 메시징 기술을 개발, 특허권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양방향 메시징 서비스는 현재 케이블 TV와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에 제공돼 시청자의 방송 참여율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연매출 310억 원(2006년 기준)의 탄탄한 벤처기업인 인포뱅크는 창립 12년 동안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꾸준히 성장해 온 이 회사의 성공 비결이 궁금해 박태형겴攘沫?대표를 서울 역삼동에 있는 인포뱅크 본사에서 만났다. 각기 영업과 기술 분야를 나누어 맡고 있는 두 사람은 책상 두 개가 사이좋게 놓인 대표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영업 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박 대표에게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해 물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군대(석사장교 1기)까지 함께 다닌 36년지기 친구입니다.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많다 보니 ‘오피스 커플’이라 놀리는 분들이 많지요.”

두 사람의 이력은 화려하다. 박 대표는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자원공학과와 산업공학과 대학원 졸업 후 펜실베니아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외국계 은행인 뱅커트러스트 한국 지점에서 11년 동안 수석부지점장으로 근무했다. 장 대표 역시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기계공학과와 기계설계학과 대학원 졸업 후 스탠포드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삼성 회장비서실과 삼성SDS에서 벤처비즈니스 팀장으로 근무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탄탄한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이들이 창업을 결심한 것은 1995년, 국내에 벤처기업의 싹이 태동할 무렵이었다. 장 대표는 “박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 이 일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한다.

“36년지기지만 사실 우리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것은 얼마 안 돼요.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총각 신세를 면치 못한 친구를 위해 제가 소개팅을 주선하면서 가까워졌으니까요. 그런데 친구는 소개팅보다 창업에 더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저만 보면 사업 아이템으로 무엇이 좋은지 묻곤 했죠. 그래서 앞으로 5~6년 후에는 무선시장이 괜찮을 거라고 조언해 줬는데, 어느 날 이 친구가 덜컥 사표를 냈다지 뭡니까.”


사내 파벌 안 만들려 사무실 함께 써

당시 박태형 대표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던 유능한 금융 전문가였다. 그는 “믿을 만한 친구 몇 명만 모으면 은행처럼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생각에 창업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것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인터넷 문화가 활성화되기 전인데, 처음에는 인터넷 금융거래 시스템을 개발해 볼까, 아니면 인터넷 서점을 구축해 볼까, 이런저런 구상을 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시장으로부터 ‘교통문제 해결이 서울시의 최대 과제’라는 얘기를 듣고 서울시에 버스안내시스템 기획안을 냈죠. 버스 노선에 무선 통신망을 깔고 버스에 GPS를 달아 승객들에게 버스 도착 시간을 알려 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며 인포뱅크를 시범사업자로 선정했다. 곧 수십억 원을 들여 시범 코스에 무선 통신망을 설치했다.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되는 바람에 빚만 잔뜩 지고 말았다. 장준호 대표는 그 무렵의 회사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직원들 월급은 물론 퇴직금을 못 줘 노동청에서 회사 기물에 차압 딱지를 붙여 놓은 상태였어요. ‘안 되면 마음 비우고 시골 학교 교사나 하지 뭐’ 하는 각오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처하고 보니까 ‘내 인생이 참 시들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태형 대표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어머니, 동생 등 식구들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버스안내시스템에 적용된 통신기술로 무선데이터망이라는 돌파구를 찾아내 올인했다. 회사가 잘못되면 그야말로 온 식구가 거리로 나앉을 판이었다. 박 대표는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짓이었다”며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절대 그렇게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뭘 몰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집안의 모든 부동산을 저당 잡히고도 회사 금고에는 단돈 5만 원밖에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그 무렵은 매주 70시간 이상씩 일하고도 손에 들어오는 돈이 없었어요.”

창업 5년까지 위태위태한 가운데에서도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했더니 2000년 들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공급하기 시작한 기업용 문자메시지 서비스가 빛을 보면서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것. 박 대표는 “2002년 우리가 세운 사업 계획이 앞으로 5년 내에 매출 300억 원을 돌파하는 것이었는데, 목표를 무난히 달성한 것 같다”며 웃었다.

“앞으로도 큰 욕심 없이 꾸준하게 회사를 성장시킬 생각입니다. 저나 장 대표나 반짝 피었다 지는 기업보다는 국민들로부터 오래도록 사랑받는 기업을 일구는 것이 꿈이거든요. 그때까지는 손 꼭 붙들고 함께 가야죠.”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사실 두 사람은 종교도 다르고 라이프스타일도 정반대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박 대표는 ‘저녁형 인간’이라 오전 9시쯤 출근해 밤 12시까지 일하는 스타일이고, 불교신자인 장 대표는 ‘아침형 인간’으로 오전 7시에 나와 오후 6시면 업무를 끝낸다. 이러니 사소한 일 가지고도 티격태격하기 일쑤다. 사업 얘기로 의견 충돌이 있을 때면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서로의 약점까지 들추며 심하게 싸우기도 한단다. 그렇게 싸워 가면서 왜 사무실을 함께 쓰느냐고 물으니 장 대표로부터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사무실을 따로 쓰면 서로 비밀이 많아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사내에 파벌이 생기기 쉽습니다. 커뮤니케이션도 어려워지고요. 그리고 싸움이란 것도 사실 서로 편하니까, 금방 화해할 것을 아니까 맘놓고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어려워서 못 하죠.”

두 사람의 얘기 속에서 소통이야말로 기업을 일구는 가장 큰 자산이자 힘이라는 게 느껴졌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8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8

201908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8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