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대표

세계적인 임플란트 회사 만든 치과의사

2000년 어느 날. 최규옥 오스템 임플란트 대표가 퇴근했을 때 아내 박성화 씨(45세)는 비디오로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있었다. 치과 의사였던 그가 그 해 인수한 임플란트 제조회사가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을 때였다. 최 대표는 아내 옆에 조용히 앉아 막 침몰하기 시작한 타이타닉을 지켜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가 침몰하는 타이타닉과 뭐가 다를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꿈과 계획을 가지고 타이타닉에 몸을 실었을 텐데….’

월급만은 제때 줘야 한다는 생각에 잘 운영해 오던 병원을 팔고, 얼마 안 되는 부동산까지 처분했지만 직원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오스템 임플란트는 시장 점유율 국내 1위, 세계 6위를 달리고 있는 치과용 임플란트 전문 기업. 2003년 183억 원, 2004년 348억 원, 2005년 722억 원에 이어 지난해 11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초고속으로 성장해 왔다. 지난 2월 7일에는 코스닥에 상장,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도 마련했다. 만나자마자 영화 <타이타닉> 얘기부터 꺼낸 최규옥 대표는 “회사를 책임지는 경영자로서 집안의 한 가장으로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말한다. “치과 의사나 할 걸 괜히 사업에 뛰어든 건 아닌가 후회한 적도 많았다”고 덧붙인다.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치과 병원을 개업한 그는 일찍이 임플란트 시술을 하는 의사로 이름을 날렸다. 티타늄으로 특수제작한 인공 치아 뿌리인 임플란트는 이가 빠져 틀니나 보철 브리지를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희소식이었다. 자연 치아와 똑같아 보이면서도 씹는 힘이 강하고 수명이 반영구적이라는 게 장점. 그러나 이를 시술할 수 있는 의사가 별로 없었다.

그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임플란트 시술법을 유학파 선배에게 배웠고, 그게 경쟁력이 되어 병원은 쉽게 자리를 잡았다. 실력 있는 치과 의사로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그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치과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면서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그는 시중에 나온 치과 업무용 소프트웨어가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을 모아 새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했고, ‘D&D 시스템’이라는 회사도 설립했다. 이때 내놓은 소프트웨어가 진료 차트 정리라든가 보험 청구 등 치과 업무를 단 두 번에 처리해 주는 ‘두 번에’다. 지금도 국내 치과 병원의 60%가 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그가 임플란트 제조업체를 인수하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선 것은 2000년 초. 그는 “우연한 계기로 국내 최초의 임플란트 제조업체를 인수하게 됐다”고 말한다.

“1999년 가을, 부산 출장길에 우연히 그 회사 사장을 만났어요. 당시 많은 돈을 들여 개발한 임플란트가 안 팔려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죠. 사장이 이 제품을 팔려다가 제가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니 아예 회사를 인수해 달라고 하더군요. 좋은 품질의 국산 임플란트를 만들면 좀 더 낮은 가격에 많은 환자들을 시술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그러겠다고 했죠.”


치과 의사 교육하며 임플란트 시장 넓혀

회사를 인수해 품질 혁신을 했지만, 팔기란 쉽지 않았다. 국산은 수입품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는 의사들의 선입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임플란트 시술 의사가 드물어 시장이 너무 작다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는 임플란트를 시술할 수 있는 의사 수를 늘려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 2001년 서울 삼성동에 임플란트 연수센터(AIC)를 세웠다. 그리고 치대 교수들을 초빙해 임플란트 시술과 최신 치과 진료법 등 6개월 과정의 교육을 무료로 했다.

“당시 회사 자금 사정은 최악이었어요. 규모를 좀 키우면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사업을 확장해 놓았더니 자금 사정에 문제가 생겼다며 발을 빼더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존 투자자 중 괜히 규모만 키워 부실기업을 만들어 놓았다며 투자금을 회수해 가겠다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100여 명으로 증가한 직원들 월급 맞춰 주느라 등에서 식은땀이 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산더미처럼 빚이 불어났지만 그는 특유의 낙천성과 실험정신(?)으로 이를 극복해 나갔다. 휴일 없이 영업 현장을 누비면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품질 개선과 연구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2000년 34억 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2003년 183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부산에 있는 임플란트 생산 본부와 전문 연구소.
연구소에는 현재 40여 명의 석·박사급 연구진들이 임플란트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글로벌 영업망 구축을 위한 해외 법인 작업도 한창 진행 중이다. 현재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등 12개국에 현지 법인이 설립되어 있고, 미국 법인의 경우 올해부터 생산 공장이 가동된다. 최 대표는 “2010년까지는 세계 50개국에 현지법인을 둘 계획”이라고 말한다.

“임플란트가 시장성을 갖추려면 소득 수준이 높아야 하고, 이를 시술할 줄 아는 치과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선진국에서 유리한 사업입니다.”

해외 법인에도 현지 치과 의사들을 위한 교육장이 마련되는데, 미국 법인의 경우 지난해부터 교육이 시작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의술이 발달하면서 뿌리만 남은 이가 자라게 하는 시술법도 개발되고 있어요. 2030년 쯤에는 임플란트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르지요. 그때에 대비해 오스템의 다음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 치과 의사는 창립 30주년이 되는 2026년에는 매출액 7조 원 규모의 세계적인 의료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