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한국참다래유통단 대표

농민들 힘 모아 수입 농산물에 맞선 독립운동가

국산 키위를 차별화하기 위해 ‘참다래’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유통망을 통일해 가격 조정을 해야겠다는 판단으로 국내 최초의 농민주식회사 참다래유통사업단을 설립했다.
‘전라남도 해남에 살고 계신 참다래 아저씨는 외국에서 수입하던 키위를 생산해 참다래라는 이름으로 발전시킨 분이다.’

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운천 한국참다래유통단 대표. 그는 1980년대 초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 묘목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국산 키위 재배에 청춘을 바친 인물이다.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던 1990년대 초에는 키위 농가와 힘을 합쳐 생산에서부터 가공, 유통 등의 전 과정을 하나로 묶은 국내 최초의 농민주식회사 한국참다래유통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조합과 주식회사의 장점을 취해 만든 이 영농조합은 현재 연 6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전남 해남으로 내려가 20여 년간 키위 재배 농민들과 동고동락해 온 그의 삶을 들여다보노라면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이 떠오른다. 성공 사례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지자체들의 요구로 몇 년째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는 그를 해남에서 만났다. 강연에는 그가 어떻게 전혀 연고도 없던 해남 땅으로 내려와 키위 농사에 몸 바쳤는지, 어떻게 농민들의 힘을 합쳐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처했는지 생생한 경험이 담긴다.

전북 고창 출신인 그가 해남으로 내려간 것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무렵이었다.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4학년이었던 그는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게 마음에 걸려 무작정 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다 정착한 곳이 해남입니다. 당시 남해안 일대에 뉴질랜드에서 들여온 키위 묘목이 막 보급되고 있었는데, 마침 친형님이 묘목 수입상 직원으로 있어서 현장 체험 겸 그 일을 거들게 되었지요.”

다래의 일종인 키위는 중국 양자강 연안이 원산지. 뉴질랜드 선교사가 자신의 나라로 가져가 토착화함으로써 뉴질랜드 특산물이 되었다. 뉴질랜드같이 해양성, 온대성 기후, 강수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기온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동사하거나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남해안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보급되던 초기에는 묘목상들이 키위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판매해 피해를 보는 농가가 많았다. 사실상 재배가 불가능한 중부 내륙지역 농가들이 다량 구입했다가 모조리 동사시키는 바람에 농민들 사이에 ‘망다래’로 불리기도 했다. 해남에서도 키위를 동사시키는 농가가 많았다.

형님 일을 돕다 서울로 올라가려 했던 그는 농민들 처지를 보고 계획을 바꿨다. 대학 3학년 때 이미 공인 감정사 시험에 합격해 뒀기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면 당장 일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피해를 입게 된 농민들을 나 몰라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는 키위와 관련된 영어 원서를 구해 읽으면서 직접 재배하기 시작했다. 고산 윤선도 종가의 땅 6000여 평을 어렵게 빌려 키위 묘목을 심은 것. 농장 한쪽에 비닐하우스를 지은 후 농민들을 모아놓고 교육도 했다. 서울에서 명문대학을 나온 청년이 자신들보다 못한 집에 살면서 밤낮으로 일하니 배타심이 강한 농민들도 그를 믿고 따랐다.

수입 묘목 대신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실생묘를 보급하는 등 그의 노력으로 ‘망다래’는 ‘꿈다래’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1990년 초 농산물시장 개방을 앞두고 그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외국산 키위가 싼 가격에 넘쳐나게 되었으니, 어렵게 재배해 온 국산 키위를 어떻게 팔아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5년여 동안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피땀 흘려온 시간이 수포로 돌아갈 순간이었다. 정 대표는 당시 상황을 “죽고만 싶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고민 고민하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지인 울둘목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두 가지 답을 얻었어요. 이순신 장군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거북선을 만들어 수백 척의 왜선을 물리친 것처럼 약점을 덮고 강점을 살리면 국산 키위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과 열세임을 알면서도 이순신 장군만 믿고 목숨 건 전투를 한 백성들처럼 한 조직의 경쟁력은 리더에 대한 신뢰감에서 나온다는 사실이었지요.”

2006년 9월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키위협회 총회 중 외국 인사를 참다래 밭으로 안내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농민 주식회사 설립

그는 외국산 키위와 정면으로 승부하겠다는 각오로 400여 명의 전남 지역 대표 농민들을 모아 수입개방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품질을 향상시키고 생산관리와 유통망을 조직화하기 위해서였다. 흩어져 있던 농민들의 힘을 모은 후 국산 키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원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시장 개방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온 1989년 말에는 전국키위농민협회도 창립했다. 키위 대량 생산국인 뉴질랜드와 미국 담당자를 만나 협상도 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뉴질랜드의 경우 출하 시기나 유통 기한이 한국과 정반대여서 상호보완하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부분이 많았다.

“나름대로 외국산 키위와 맞설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외국산 키위가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에서 키위가 재배된다는 것을 적극 알릴 필요가 있겠다 싶어 백화점 시식 행사를 대대적으로 가졌습니다. 덕분에 재배 농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었죠.”

국산 키위를 차별화하기 위해 ‘참다래’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유통망을 통일해 가격 조정을 해야겠다는 판단으로 국내 최초의 농민주식회사 참다래유통사업단을 설립했다. 농민들의 출자금과 정부 지원금으로 전남 해남군 화산면 방축리에 저온창고를 짓고 영농단지를 조성했다. 정 대표를 만나러 간 날, 1만 1000평 부지 안의 직원들은 분주했다. 11월 중순 수확을 끝낸 키위의 첫 선별 작업이 있는 날이었다. 시중에 내놓기 전 키위를 크기별로 가려 포장하는 일로, 전자동 시스템으로 이뤄졌다. 공장 한편에서는 고구마 선별 작업 및 포장도 한창이었다.

“키위가 반년 장사라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구마 가공과 유통도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 갔는데, 깨끗하게 씻어 랩으로 하나씩 싼 고구마가 일반 고구마보다 10배 넘는 가격에 팔리는 걸 보고 놀랐어요. ‘세척 고구마’의 상품화를 그때부터 고민했지요.”

물로 씻으면 금방 썩어 버리는 고구마. 물 대신 바이오 세척을 한 후 크기별로 상자와 봉지에 담아 백화점과 마트에 선을 보였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세척 고구마의 수익이 키위를 앞지를 정도다. 현재 2000억 원 규모의 고구마 시장 중 10%를 해남 고구마가 장악하고 있다. 키위와 고구마를 한데 묶은 브랜드 ‘맛젤’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기도 했다.

한국참다래유통단은 전남과 경남, 제주도 등의 조합원이 수확한 키위를 전량 사들여 가공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수익은 조합원들에게 골고루 배당된다는 것. 정 대표는 “재배 농지 3000평을 기준으로 할 때 한 농가에 돌아가는 수익은 과수 원가 4000만 원에 배당액 3000만 원으로 총 7000만 원 정도 된다”며 “2010년까지는 조합의 매출을 1000억 원대로 끌어올려 농가 수익을 더욱 증대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국산 키위가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0.8%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국내 수요를 채우기도 모자라는 양이지만, 우리 유통단은 어느 나라도 무시 못 하는 조직이 됐습니다. 그 힘으로 지난 9월에는 제25차 국제키위협회(IKO) 총회를 제주도에 유치했습니다.”

정 대표는 한국참다래유통사업단 회장 외에도 사단법인 한국신지식농업인회 회장, 한국농산물산지유통센터연합회 회장 등 40여 개의 명함을 갖고 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지만 그는 농민들 위에 군림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3불 정책’을 펴고 있다고 했다. 좋은 차를 타지 않는다, 비서나 기사를 두지 않는다, 회사에 친인척을 심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키위 재배 농민들이 그를 왜 교주처럼 따르는지 알 것 같았다.

사진 : 지호영
  • 200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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