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식 삼영테크놀로지 대표

모토로라의 세계적 히트상품 레이저 폰의 성공비결은 우리 손에 있습니다

레이저 폰의 성공은 기존 제품에 비해 두께를 무려 3분의 1이나 줄인 금속 키패드에서 비롯됐다. 얇은 금속판에 번호와 문자를 새긴 ‘일체형 금속 키패드’는 휴대전화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꿨을 만큼 혁신적이었다. 이 키패드를 개발한 이가 바로 서태식 삼영테크놀로지 대표다.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2005년 12월. 휴대전화 외장 부품 전문 업체 삼영테크놀로지 서태식 대표는 과로로 쓰러져 한 달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다. 이 회사가 키패드를 공급하는 모토로라의 레이저 폰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주문이 쏟아져 공장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갑자기 생산 라인을 확장하느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였다.

2004년 세계에서 가장 얇은 휴대전화로 인기를 모은 레이저 폰은 2006년 상반기까지 총 5000만 개가 팔려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출시돼 1억 개 이상 판매된 스타텍 이후 이렇다 할 대표상품 없이 고전하고 있던 모토로라로서는 레이저 폰이 오랜 가뭄 속에 만난 단비와 같은 상품이었다.

레이저 폰의 성공은 기존 제품에 비해 두께를 무려 3분의 1이나 줄인 금속 키패드에서 비롯됐다. 얇은 금속판에 번호와 문자를 새긴 ‘일체형 금속 키패드’는 휴대전화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꿨을 만큼 혁신적이었다. 이 키패드를 개발한 이가 바로 서태식 삼영테크놀로지 대표다.

삼성시계 디자이너 출신인 그는 항상 ‘휴대전화를 시계처럼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만들 수 없을까’에 대해 고민하다 이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 모델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직원 3명으로 시작했던 회사를 4년여 만에 직원 1700여 명의 중견 기업으로 키울 수 있었다. 매출액도 2004년 134억 원에서 2005년 759억 원으로 1년 만에 6배 가까이 늘었고, 2006년 매출액은 13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 11월 은탑산업 훈장을 수상한 그를 분당 삼영테크놀로지 본사에서 만났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룬 그였지만 외모나 말투는 소박하고 겸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가 어촌에서 자란 시골 출신이라 좀 촌스럽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일만 하고 살아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몰라요. 일에 젖어있다 보니 업무 외에는 사람 만날 시간도 없더군요.”

울산광역시 강동면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학으로 영남대 산업디자인과를 마친 후 1988년 삼성시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들이 삼성시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신문지에 뭉칫돈을 싸들고 오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아들이 홀로 삶을 개척해 가는 것에 대한 대견함과 안쓰러움이 배어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나왔다. 지금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뿐 특별히 뭘 해야겠다는 준비나 계획은 없었다.

“언젠가는 사업을 하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자꾸만 안주하게 되더라고요. 시계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던 때라 일단 나가서 길을 모색해 보리라는 결심으로 사표를 냈지요.”

몇 달 동안 휴식을 취한 후 시작한 일이 시계 영업이었다. 대학 졸업 후 10여 년 동안 시계 디자인만 해온 그는 그 시계를 파는 일에 도전했다.

“삼성시계 디자인실에 근무할 때 한 웨딩 잡지가 주관한 웨딩 박람회에 나가 예물 시계를 판 적이 있어요. 영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제가 자원했는데, 사흘 만에 1억여 원어치를 팔았죠. 디자이너라고 신분을 밝히고 고객의 취향과 패션 감각에 맞는 시계를 적극 추천했더니 다들 좋아하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내 안에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계 디자이너 시절의 노하우를 휴대전화 디자인에 접목

영업 현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보니, 고객들이 기능보다는 디자인을 보고 시계를 선택하는 사실을 더욱 생생히 경험할 수 있었다. 고객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을 삼성시계 쪽에 의뢰하기도 했다. 이때 한 휴대전화 업체가 시계처럼 손목에 찰 수 있는 휴대전화인 워치 폰을 디자인해 달라고 의뢰했고, 이를 계기로 휴대전화 키패드 제조업에 뛰어들게 됐다.

“워치 폰을 만들면서 휴대전화는 이제 누구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액세서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자꾸 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휴대전화를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다 시계에 많이 사용하는 메탈을 주 소재로 휴대전화 키패드를 만들었죠. 그런데 국내 휴대전화 업체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퇴직금과 집을 담보로 받은 은행 대출금으로 시작한 사업 자금은 금세 바닥이 났다. 결국 집까지 처분했고, 6개월 넘게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었는데, 알고 보니 현금 서비스로 겨우겨우 생활했다 한다. 새로운 키패드를 개발하고도 납품할 곳을 찾지 못했던 그는 각종 전자제품 디자인으로 겨우 회사를 꾸려갔다. 그 시절에는 주머니가 늘 비어있어 사람 만나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

겨우 꾸려가던 회사가 전기를 맞은 것은 2002년 초, 모토로라의 신소재 사업팀을 만나면서였다. 모토로라는 기존 제품보다 훨씬 슬림하고 감각적인 휴대전화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었고, 그가 개발한 메탈 소재의 일체형 키패드를 보자마자 반색했다. 모토로라는 이 키패드를 적극 활용한 신모델 레이저 폰을 1년 6개월 만에 개발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레이저 폰을 양산 판매하기로 한 후 당장 어마어마한 양의 키패드를 납품하라고 성화였어요. 양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은 저희 회사로서는 당장 공장 부지부터 알아봐야 할 처지였습니다. 제품 론칭까지 두 달 정도 남겨놓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다급해진 모토로라가 양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중국이나 대만 업체에 기술이전을 하라고 야단이었지요.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남의 나라에 넘겨줄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주)삼영테크놀로지 본사는 경기도 분당에 있다. 개발팀 직원들과 함께한 서 대표.
밤낮으로 뛴 그는 경남 마산에 부지를 마련해 공장을 지었다. 시판 한 달을 남겨놓고 있을 때 생산 설비 점검을 위해 현장을 방문한 모토로라의 담당 임원은 깜짝 놀랐다. 외벽 공사가 한창인 공장 안을 들여다보니 이미 생산 설비가 갖춰져 키패드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한국의 ‘빨리 빨리’ 문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마산 공장은 한 달에 50만 개 정도 키패드를 생산했는데 얼마 안 있어 주문량이 100만 개, 200만 개로 무섭게 늘어났어요. 밤샘 작업을 해도 물건 대기가 어려웠지요.”

돈이 들어오는 대로 생산 라인을 늘리는 한편 복지시설 등 작업 환경 개선에도 공을 들였다. “결과물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하는 외국 기업은 생산 설비나 품질관리 시스템은 물론 복지시설 등 작업환경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기업이어야 신뢰한다”고 설명했다. 직원 3명의 구멍가게가 초스피드로 회사 규모를 갖춰가야 하는 때였다. 현재는 중국에도 공장을 세워 하루 20만 개씩 키패드를 생산한다. 레이저 폰은 내년쯤 스타텍의 판매량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은 모토로라뿐만 아니라 국내 휴대전화 업체와도 새로운 키패드 개발을 진행 중이다. 트렌드를 읽기 위해 해외 출장 때면 명품 숍 아이쇼핑이 주요 일과 중 하나라는 그에게 성공 노하우를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은 기능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디자인에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또 새 모델이 시장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모델을 만들어 낼 정도로 속도 경쟁을 하다보니 트렌드보다 너무 앞서 나가는 면도 있어요. 소비자를 리드하는 트렌드는 반 스텝 정도만 앞서면 될 것 같아요.”

그는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 제조업을 리드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