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놀라운 광고팀 이야기

히트작‘현대생활 백서’만든 TBWA 제작3팀

나른한 봄날 오후 시내버스 안. 느닷없는 기상나팔 소리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군인이 벌떡 일어나 관등성명과 함께 경례를 붙인다. 알고 보니 앞자리 아저씨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온 벨소리가 기상나팔 소리였다. “아무리 졸려도 군인정신은 깨어 있다”는 광고 멘트가 흐른다.

한 이동통신 업체의 TV CF 시리즈 ‘현대생활 백서’ 중 하나. ‘생활의 중심’이라는 주제로 연속 방영되고 있는 이 CF는 이동통신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를 재치 있게 그려 웃음과 감동을 준다. 핸드폰 진동벨로 피곤한 친구의 등을 안마해 주는 장면, 말 못하는 장애우가 핸드폰에 문자를 써서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사는 장면 등 공감을 사는 내용이 많았다. 이 광고는 최근 한국 광고주협회가 시상하는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현대생활 백서 CF를 제작한 광고 대행사 ‘TBWA 코리아’는 다국적 광고회사로 1998년 12월 국내에 들어왔다. 지난해 수주액이 3,580억 원으로 제일기획, LG 애드에 이어 세 번째. 대기업 계열이 아닌, 순수 광고회사로는 1위다. 직원 1인당 수주액이 20억 원대로 업계 최고다. 경쟁 프리젠테이션에서 성공하는 비율이 65%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TBWA 코리아는 현재 SK텔레콤, 현대카드, 한국타이어, 웅진코웨이, CJ(주), NHN, 풀무원, 위니아만도, 옥션, SC제일은행 등 대표적인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광고 중 “잘 자 내 꿈 꿔”(016),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현대카드) 등 당대 유행어가 된 말도 많다.

이 회사의 성공 비결은 뭘까. 서울 신사동 TBWA 코리아 사무실에서 ‘현대생활 백서’ 시리즈를 만든 제작3팀 팀원들을 만났다. 최근 이들은 ‘정말이지 놀라운 이야기 두 번째 시간이에요’(현대카드)로 시작되는 구연동화식 광고를 내놓았다. 팀장 1명과 카피라이터 3명, 아트디렉터 5명으로 총 9명이 모인 이들의 경력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김하나 차장의 경우 최근 막을 내린 아시아태평양 광고제에서 국내 광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영 로터스’상을 수상했다. 김 차장은 ‘사자가 자세를 바꾸면 밀림이 긴장한다’(벤츠)는 카피로도 유명하다.

팀장은 TBWA의 간판 카피라이터인 박웅현 전문 임원(45세). ‘히트 광고 제조기’로 불리는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KTF),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빈폴),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삼성그룹) 등 수많은 히트 카피를 썼다. 그에게 좋은 광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묻자 ‘현대생활 백서’ 시리즈 탄생 배경을 들려줬다.

“SK텔레콤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앞둔 무렵이었어요. 기존 이동통신 광고와는 전혀 다른 것을 내놓고 싶었죠. 팀원들에게 억지로 아이디어를 짜내려 하지 말고 요즘 젊은이들이 문화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각자 알아서 조사해 보라고 했습니다.”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방법으로 조사에 들어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웹 서핑을 하는 팀원도 있었고, 대학로 라이브 콘서트장으로 달려간 팀원도 있었다. 그중 서점에 갔던 팀원이 “참 재미있다”며 《학교생활 백서》라는 책을 사 들고 왔다. 학교 생활 중 생기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고등학교 3학년생 셋이서 재기발랄하게 기록한 책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반짝 불이 켜졌다.

제작3팀 광고 백서 ①아트디렉터 엄기혁(36세) 차장 “우리 팀 아이디어 회의 할 때가 가장 신나고 즐겁다.” ② 아트디렉터 이지윤(27세) “편집 디자인에 비해 훨씬 창조적이어서 지루하지 않다.”③카피라이터 김하나 차장 “소비 사회의 첨병인 것 같아 그만두려고 한 적도 있다.”
④ 카피라이터 김민철(27세) “넓고 얕은(?) 상식 덕분에 200 대 1 경쟁률 뚫었다.” ⑤ 카피라이터 이예훈 부장 “팀 하나가 이렇게 많은 캠페인을 잘하기는 힘들다.” ⑥ 팀장 박웅현 전문 임원 “광고는 개인이 아니라 팀이 만드는 것이다.”
⑦아트디렉터 남현우(31세) 대리 “누가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는지 경쟁하는 묘미가 있다.” ⑧ 아트디렉터 이문선(41세) 부장 “광고 미술은 가장 디테일하면서 파격적인 종합예술이다.” ⑨ 아트디렉터 원명진(40세) 부장 “한 달 있어도 1년 된 것처럼 호흡이 척척 잘 맞는 팀이다”
“뭔가 문화적으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학교생활 백서》를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팀원들이 박 팀장을 ‘전구 맨’으로 부르는 이유는 단지 그가 머리를 빡빡 밀어서만은 아닌 듯하다. 프리젠테이션 컨셉트가 잡히자 팀원들은 인터넷 사이트에 널려 있는 핸드폰 관련 200여 개의 스토리를 다듬어 책으로 엮었다. <현대생활 백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그대로 프리젠테이션 자료가 되었고, 광고주는 가장 과격하지만 신선하고 독특한 기획이라며 TBWA와 4대 매체(TV, 라디오, 신문, 잡지) 광고 대행 계약을 체결했다. 박 팀장은 “광고에서 중요한 것은 감각보다 판단력”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흔히 광고를 감각의 산물이라 생각해 나이가 들면 하기 힘들다고들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광고는 인문학적 소양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우리가 설득해야 하는 것은 결국 인간입니다.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은 감각보다 오히려 경험에 의한 판단력과 추진력인 것 같습니다. 감각은 젊은 친구들에게 사면 되니까요.”

제작팀에서는 수시로 아이디어 회의가 열린다. TBWA 코리아는 한 층 전부를 아이디어 방으로 꾸며 놓았다. 회의는 팀원들의 복장만큼이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브레인 스토밍으로 진행된다. 박 팀장은 “어제 뭐 하며 지냈어?” 라는 인사말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 단순명료한 것 같지만 이 말 속에는 나이와 직위 등 모든 대화의 벽을 순식간에 허무는 힘이 있다고 한다.

“회의는 되도록 짧게, 30분 정도가 평균입니다. 길게 한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거든요. 분위기가 왠지 무거워 보일 때는 ‘야, 우리 낮술이나 하러 갈까?’ 라든가, ‘이번 수요일 오후 시간 비워 놓아라’는 말로 누그러뜨리죠.”

제작3팀은 뭔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청량리에서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춘천 마라톤 코스를 자전거로 완주한 후 춘천 닭발에 호프를 마시고 청량리행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다. 광고인은 광고주와 소비자를 설득하며 시대의 트렌드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라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이 때문에 강철중 TBWA 코리아 대표는 신입사원 면접 때 스트레스 해소 능력을 평가한다고 한다. 제작3팀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야근하지 않기’와 ‘주말은 쉬기’로 집약된다.

“저희 팀은 대세에 지장을 줄 일이 아니라면 야근이나 휴일 특근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광고는 최상의 컨디션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저 같은 경우 주말에는 일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잊고 가족과 함께 보냅니다.”

서울 중계동에 사는 박웅현 팀장은 “금요일 오후 동부간선도로를 타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셔터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
  • 200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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