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 세계 1위 넘보는 도요타를 만든 사람들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와 오쿠다 히로시 회장, 조 후지오 부회장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
국내 기업들이 고유가와 환율 하락으로 위기경영을 선포하는 요즘 일본 도요타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성장세가 더욱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연비가 뛰어난 하이브리드 차량이 대박을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7일 도요타는 2005년 4분기(지난해 10~12월) 동안 5조 3,333억 엔의 매출과 4,822억 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4.8%와 14%가 증가한 규모다. 순이익도 3,975억 엔(3조 4,000억 원)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1%나 급증했다. 2005년 연간 순이익은 1조 3,000억 엔으로, 3년 연속 1조 엔을 상회하고, 4년 연속으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도요타는 올해 900만 대 이상을 생산해 70년 동안 ‘자동차 업계 1위’ 라는 아성을 지켜 온 GM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를 전망이다. GM과 포드의 끝없는 추락 속에 도요타는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어 더욱 돋보인다. 어려울 때 더 강한 면을 보여 주는 도요타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필자는 일본 자동차 산업을 연구하기 위해 나고야 대학에 1년간 연수를 다녀왔다. 그때 만난 10여 명의 도요타 경영진에게 “도요타의 성공 원인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도요타의 유전자인 끝없는 혁신정신, ‘카이젠’(改善)을 성공 요인으로 들었다. 이는 창업 이후 70여 년간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 ‘카이젠’ 유전자를 만든 사람이 창업자인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朗)다. 유명한 발명가로 도요타 자동직기를 창업한 도요다 사키치의 장남인 기이치로는 일찌감치 자동차 시대가 올 것이라 확신했다. 35세 때인 1929년 아버지 회사의 한 사업부로 자동차 연구소를 개설했고, 이게 도요타 자동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패전 뒤 심각한 디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던 도요타는 1949년 도산지경에 몰렸다. 은행은 전체 직원의 20%에 달하는 1,500명을 감원해야 융자를 해 주겠다고 했다. “사람을 해고하지 않는 것이 경영자의 도리”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기이치로는 해고를 단행한 대신 스스로 사장직을 내놨다. 그의 뒤를 이은 전문경영인이 도요타를 회생시킨 후 사장으로 복귀하기로 되어 있던 그는 1952년 뇌일혈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지금도 도요타를 떠받치고 있다.

56년간 무파업이라는 ‘기록’도 도요타의 이런 독특한 문화에서 나온다. 기이치로는 납품업체에 대한 철학도 남달랐다. 좀 더 싼 가격에 공급받기 위해 이리저리 납품업체를 바꾸지 않았다. 그곳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각 부품업체들이 전문화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결국 도요타의 ‘힘’이 됐다.

도요타의 바탕을 만든 사람이 창업자인 도요다 기이치로라면 지금의 영광을 만든 사람으로는 1990년대 이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낸 현 도요타 회장 오쿠다 히로시(奧田碩)와 부회장인 조 후지오(張富士夫)를 들 수 있다. 도요타의 오늘날 영광은 1997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하이브리카’의 덕이 크다. 하이브리드카는 연비와 유해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환경친화적, 미래지향적 모델이다. 하이브리드카는 도요타의 경쟁업체인 혼다가 먼저 개발 중이었다. 당시 도요타의 사장을 맡고 있던 오쿠다 히로시는 “혼다에 선수를 빼앗길 수 없다”며 연구개발 부서를 채찍질했다. 오쿠다의 닦달 속에 도요타는 혼다보다 7개월 빠른 1997년 12월 하이브리드카를 세계 최초로 발표할 수 있었다. 올해 하이브리드카 판매 시장은 50만 대로 추산되는데, 이 중 도요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매년 30% 이상 급신장하고 있는 차세대 성장 동력에 도요타가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세계 최강 도요타를 만든 데는 오쿠다의 힘이 컸다. 카리스마 경영자로 대표되는 그는 입사 40년 만인 1995년 8월 사장에 올랐다.

“사람 자르는 것은 경영자가 아니다.”

오쿠다 역시 창업자인 도요다 기이치로의 뜻을 이어 ‘종신고용에 따른 고용안정이야말로 생산성과 품질의 원천적인 경쟁력’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종업원을 쉽게 자르는 기업에서 어떤 근로자가 애사심을 갖고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는 카이젠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경영 철학은 ‘빚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와 ‘본업 충실주의’다. 버블경제가 한창이던 1980년대, 그는 재무담당 전무를 맡고 있었다. 다른 기업들이 부동산, 주식에 투자하는 동안 그는 곁눈질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될 때 도요타는 타격을 받지 않았다.

사장에 취임한 그는 “도요타와 같은 제조업은 현장 작업자의 땀으로 일궈 낸 기업입니다. 냉방이 잘된 사무실에 근무하는 재무담당자들이 사업 확장을 이유로 빚을 내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라고 했다. 도요타는 지금도 대부분 자산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 현금 자산 80조 원은 한 달 이내 현금화할 수 있는 국채 등 가장 안전한 곳에 투자하고 있다. ‘자동차 잘 만들기라는 본업에 충실하라’는 그의 경영철학은 오늘날 도요타 재무의 기본이 되고 있다.


도요타의 전성기를 연 ‘조 후지오’

하이브리드카로 도요타 전성기를 연 데는 조 후지오 부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조 부회장은 도쿄대 법학부 출신의 생산 전문가다. 입사 직후 총무부에 배치된 그는 자동차 공장으로 가겠다고 자원했다. 그곳에서 18년간 근로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오늘날 자동차 생산방식을 지배하고 있는 도요타 생산방식(TPS)을 완성했다,

조 부회장은 TPS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노 다이이치(작고) 부사장의 완결판 제자로 꼽힌다. 그는 비용 절감과 고객 지상주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도요타의 체질을 정확히 알고 있다. “경영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를 땐 현장으로 가라”고 외치는 그에게는 “마른 수건도 다시 쥐어짜는 비용 절감을 앞세운 도요타 사풍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평이 쫓아다닌다.

조 사장은 매년 미국, 유럽, 아시아의 현지 공장을 순방한다. 단순한 공장 시찰이 아니다. 도요타 생산방식이 완전히 접목됐는지 전문가의 눈으로 확인하고 부족한 점을 찾아내 보완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기업의 비용 절감과 생산은 언제나 현장에서 나온다”며 철저한 현장주의를 강조해 왔다.

그는 자동차 업계의 미래가 환경문제에 달렸다는 것을 일찌감치 내다보고 준비해 왔고, 미래에 대한 그의 철학은 하이브리드카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는 항상 “아직도 목표는 멀었다”고 외친다. 어떻게 하면 종업원들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카이젠을 이어 갈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서 그는 도요다 기이치로 정신의 계승자이기도 하다.

그의 종업원에 대한 철학은 2001년 출판된 《도요타웨이》에서 잘 나타난다.

“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이는 일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하고, 이에 합당한 평가와 보수를 받는 것, 그리고 불필요한 업무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업무를 하지 않는 것이다.”
글 김태진 중앙일보 기자 (경제부문 자동차팀장)
  • 200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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