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의 밀양연극촌 이야기| 배우에게 말을 걸고 참견하는 ‘우리동네’

현재 내 직장은 서울 남산 국립극장이지만, 내가 사는 집은 경남 밀양에 있다. 그것도 밀양 시내에서 승용차로 10분 정도 가야 하는 밀양연극촌 내에 집을 지었다. 밀양연극촌은 원래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곳으로 연희단 거리패 단원 40여 명이 집단생활을 하는 곳이다. 그곳엔 세 개의 극장이 있고, 주말마다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매년 7월 16일부터 31일까지 밀양에서는 밀양 여름공연 예술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37개의 국내외 공연 단체가 참가하고, 시인들의 시낭송 행위전, 택견 무예 발표, 밀양 백중놀이 공연, 어린이 명창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다.

밀양연극촌에는 3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가 있어서 관객과 출연자가 함께 먹고 자면서 공연을 관람하고 자유롭게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 이와는 별도로 가족이 있는 단원들이 거주하는 8채의 개인 주택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도 이 8채의 개인주택 중 한 채인데, 원래 학교 관리인이 사용하던 사택을 개조한 집이다. 올해는 밀양연극촌에서 결혼한 연극인 조인곤, 이윤주 부부의 새 생명 1호 조정명 양이 탄생함으로써 자연과 삶과 연극이 더불어 공동체를 이루는 연극 이상촌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나와 연희단 거리패 단원들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밀양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1999년 8월이었다. 연희단 거리패가 그해 연극 〈느낌, 극락 같은〉 공연으로 서울연극제 대상, 희곡상, 연출상, 무대미술상, 신인 여자연기상을 휩쓸면서 국내 연극계 최정상의 극단으로 평가받을 때였다.

서울에서 한창 공연 활동을 할 수 있는 극단이 시골로 집단 이주한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 밀양이 고향인 단원은 춤꾼 하용부 외에 한 명도 없었고, 밀양은 인구 10만 남짓한 소도시로서 지방 문예회관은커녕 소극장 공연장도 하나 없는 곳이었다.

나와 연희단 거리패의 선택은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연극을 하기 위해 서울을 떠난다”였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7년 동안 지하실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병들어 갔다. 정릉 언덕배기 지하 연립 다가구 주택에 세 들어 살면서 출근하면 지하 연습장이고, 공연장 또한 대학로 지하 소극장이 주 무대였다. 한마디로 서울에서 나와 연희단 거리패는 지하에서 잠들고 지하에서 연습하고 지하에서 공연하는 지하생활자의 삶을 감수해야 했다. 호흡기 계통의 만성질환을 앓기 일쑤였고, 운동 부족과 불규칙적인 식생활 습관으로 몸과 마음이 언제 망가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연극은‘농사’와 같다

대학로에서의 연극 작업도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관객을 찾아 길거리 호객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가두판매에 나서야 했고, 몇 줄의 신문 기사와 리뷰에 연연해야 했다. 도대체 우리가 지금 누구를 위한 연극행위를 하고 있는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위해 연극을 시작한다. 그리고 익명의 관객과 만나면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서울 대학로의 연극 환경은 우리의 본질적인 욕구보다 쓰잘 데 없는 눈치와 입방아에 시달리게 한다. 살아남기 위한 치졸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연극판에 몸담고 있느니 차라리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새로운 연극 환경을 만들어 보자. 이런 나의 생각에 동의한 일군의 연희단 거리패 단원들은 조건 없이 짐을 싸서 서울을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6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기적적으로 연극 불모지에 연극의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밀양에 내려가서 맨 먼저 시작한 일이 주말 동네연극이었다. 극장이 없기에 학교 귀퉁이 숲에 나무의자를 놓고 야외 공연을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는 연극이 자연과 함께 숨을 쉰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공연에 개입하고 모기들이 배우의 귓구녕과 입에 날아들었다. 불현듯 소나기가 내려도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기에 공연도 중단되지 않았다. 관객들은 거의 연극을 본 적이 없는 마을 주민들이었기에 오히려 어려운 관객이었다. 재미없으면 공연 도중 사정 없이 일어나 가 버리고, 극 속에 자연스럽게 몰입한 관객들은 서슴없이 공연 중인 배우들에게 말을 걸고 참견을 하기도 했다.

이런 체험을 통해 우리는 연극이 자연과 함께 어울리고 관객과 같이 만들어 가는 작업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단원들은 연극인이기 이전에 농사꾼의 습성을 익혀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논두렁을 걷고 땡볕에 일을 하고 저녁에 모여 밤늦게까지 연극 연습을 하면서 우리는 연극 또한 농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6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8쌍의 부부와 자식들이 함께 살면서 연극하는 삶의 연극 공동체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지난해부터 국립극단 예술감독직을 맡으면서도 밀양연극촌의 내 주거지를 옮기지 않았다. 고속철도를 타면 서울까지 2시간 12분 걸린다. 왕복 4시간이 넘는 시간을 열차 칸에서 보내면서도 밀양연극촌에서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기에 나는 결코 밀양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바쁜 일정 때문에 사나흘 밀양에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으면 내 얼굴은 어느새 까맣게 변하고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진다. 그러면 황급히 “나 밀양 갈게”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이런 나의 태도는 곧 나의 세상에 대한 입장이기도 하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 어느 때라도 조건 없이 참여하고 일할 수 있지만, 세상과 나의 뜻이 맞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나의 비밀스런 양지인 밀양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
  • 2005년 08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