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의 TOP 스타 박지성| 그를 키운 건 아버지의 훈계와 어머니의 정성

세계적인 명문 구단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 이적하면서 박지성(24세)의 인기와 몸값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한국 축구사의 가장 큰 경사”라고 치하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의 말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한국 축구 100년 사상 꿈으로만 여겨지던 세계 최고의 무대에 마침내 한국 선수가 뛰어든 것이다.

박지성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톱스타답지 않은 겸손과 순수함, 그리고 성실함에 놀란다. ‘떴다’는 스타에게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박지성이 지금까지 거친 팀의 지도자들이나 동료들이 한결같이 그를 칭찬하고 아끼는 것도 이 같은 성격이 큰 작용을 하고 있다. 한결같은 성실함이 그라운드 위에서의 플레이로도 이어져 쉴 새 없이 공수를 오가며 팀 플레이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그라운드 밖에서는 겸손한 품행으로 동료들과 어울렸다.

박지성의 부모 박성종(왼쪽), 장명자 씨.
박지성의 이런 몸가짐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정상인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정교육에서 비롯됐다. 박지성의 부모인 박성종, 장명자 부부는 교육수준이 높지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았다. 전남 고흥 출신인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수원으로 올라와 정육점과 반찬가게 등을 했다.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결혼한 그는 박지성을 낳은 후 “우리 형편에 자식이 많으면 제대로 가르치기 힘드니 얘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키우자”고 아내와 합의했다.

어린 시절 박지성은 마음이 여리고 내성적이었다. 갓난아기 때는 어머니 품이 아니면 단 5분도 잠이 들지 않을 정도로 예민했고, 대여섯 살이 지나도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어머니 치마 뒤에 숨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다. 축구를 포함해 운동에 만능이고 성격이 활달했던 아버지는 아들의 성격을 고쳐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내성적인 박지성의 성격이 바뀐 것은 수원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또래보다 체구가 작은 박지성은 그 전에 이미 동네 축구의 스타였다. 축구부에 들어가 기량을 연마하면서 장래 프리미어 리거가 될 잠재력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박지성 부모는 아들이 축구부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운동선수가 되기에는 체구가 작아서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크게 성공한 운동선수를 보기 어려워 아들이 공부로 승부를 보기 바랐던 것이다. 축구부에 들어간 박지성은 작은 몸으로 이리저리 넘어지고 부딪히면서도 축구공을 좇는 것에 열광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축구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공을 차면서 집 주위를 수십 바퀴씩 돌았다.


대학 입학 후 처음 마셔 본 맥주

박지성의 열성에 부모도 결국 아들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몇 가지 약속을 받아 냈다. 쉽게 포기하지 말 것과 자기관리는 알아서 할 것, 숙소에서 생활하지 않는 기간에는 무조건 저녁 9시까지 귀가할 것 등 바른 몸가짐을 요구했다. 이 약속은 지켜졌다.

박지성은 지금까지 10년 넘게 축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몸 관리에도 누구보다 성실했고, 명지대에 진학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통금 시간인 9시를 넘긴 적이 없었다. 대학 입학 후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아버지 허락을 받아 처음으로 새벽 2시에 귀가했는데, 이때 처음 맥주를 입에 대 봤다고 한다.

박지성은 “아버지가 학창 시절 엄하게 대하지 않으셨다면 나 역시 놀러도 가고 술도 마셨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시절 맥주 한잔 마시지 못했던 것을 보면 아버지가 무섭기는 무서웠나 보다”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엄부’(嚴父)라면 어머니는 그야말로 자애로운 한국의 어머니였다. 축구를 하겠다는 아들이 또래보다 키가 작다는 게 어머니는 늘 마음이 쓰였다. 축구선수는 농구나 배구선수처럼 무조건 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선수들과 헤딩 볼을 다투고, 몸싸움을 할 만큼의 체격조건은 갖춰야 하는데 박지성은 학창 시절 내내 유달리 작았다. 수원공고 1학년 때 박지성의 키는 158cm밖에 안 됐다. 그의 경기를 본 축구 지도자들은 “플레이는 마음에 들지만 너무 키가 작아서…”라고 말꼬리를 흐리곤 했다.


아들의 몸을 축구하기 적합하게 만들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장어, 뱀, 개소주 등 몸에 좋다는 보양식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고 사 먹였다. 그러나 박지성은 입이 짧아 보양식을 들이댈 때마다 손사래를 치게 마련이었고, 어머니는 까다로운 식성에 맞추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유럽이 깜짝 놀란 자신의 체력에 대해 박지성은 “내 체력의 절반은 어머니 정성으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맨유 행이 결정되자 아버지는 박지성에게 또다시 엄하게 훈계했다.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내 아들은 항상 처음하고 똑같았으면 한다. 축구를 처음 시작하던 때를 잊지 말아라.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유명 브랜드 축구화를 신을 수 있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을 잊는다면 네가 이룬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축구 톱스타 박지성이 반듯한 행동으로 좋은 평을 얻는 비결이 여기에 숨어 있다. ■
  • 200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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