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LASS의 아름다운 이야기| “우리 아빠는 건강만 빼면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에요”

루게릭병 걸린 아버지 돌보는 여고생 신원미 양

열일곱 살 신원미 양은 경북 영양여고 2학년 학생이다. 최신형 핸드폰을 갖는 게 꿈이고, 종종 엄마에게 투정도 부린다. 대학 심리학과에 진학하려는 그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자율학습 시간에 꼬박 학교 책상에 앉아 입시 준비를 한다. 여느 여고생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다. 원미의 일상 중 조금 특별한 일이 있다면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 걸려 투병 중인 아빠를 돌보는 것이다.

“우리 아빠는요, 완벽한 아빠예요. 건강만 빼면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에요.”

원미의 ‘완벽한’ 아빠는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몸의 모든 근육이 하나하나 파열되어 굳어 가는, 정신은 멀쩡한데 몸은 움직일 수 없는 루게릭병 때문이다. 원미 아빠 신현욱 씨(43세)는 7년 전 루게릭병 선고를 받고 의사로부터 5년밖에 못 산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엄지발가락은 움직일 수 있다. 엄지발가락으로 마우스를 클릭해 바둑도 둔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아마 4단 수준이다.

인공호흡기를 달기 시작한 이후 아빠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입 밖으로 공기를 내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입을 움직여도 성대는 울리지 않는다. 다행히 눈을 깜빡일 수 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응’, 두 번 깜빡이면 ‘아니’란 뜻이다.

“아빠 오미자차 마실래?”, ‘깜빡’, 원미는 부엌으로 달려간다. 원미는 입 모양만 보고도 아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금방 알아챈다. 원미는 말할 때 언제나 아빠와 눈을 맞추고 있다. 아빠가 눈을 몇 번 깜빡이는지, 눈빛은 무엇을 말하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입 모양을 살피다 쪽쪽 뽀뽀도 한다.

누워 있는 아빠(신현욱)를 돌보는 것이 즐겁기만 한 원미 양.
아빠 침대는 거실에 놓여 있다. 베란다 너머 작은 뒷산이 보이는 곳이다. 침대 뒤에는 인공호흡 장치가 달렸고, 침대 바로 위에는 스크린이 매달려 있다. 원미 엄마 강국자 씨(42세)는 오토바이로 영양군 구석구석을 다니며 우유를 배달한다. 이 집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한 달에 50만~60만 원 정도를 버는데, 네 식구 사는 데 큰 문제는 없다면서 웃는다. 그러면서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이지 생활이 어렵지 않다는 말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꾸려 나갈 수 있는 정도다.

중학교 2학년생인 원미 동생 민철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 네 시, 엄마는 아빠를 민철이에게 맡기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다. 100가구 이상을 돌며 배달해야 한다. 다른 일 때문에 이른 새벽에 배달을 간 날, 오토바이가 담벼락에 부딪쳐 팔이 부러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장마철에는 특히 오토바이 운전이 조심스럽다.

원미 아빠가 13대 독자라 엄마는 종갓집 맏며느리이기도 하다. 제사만 해도 1년에 열 번이 넘는다. 혼자서는 꼼짝도 못하는 남편을 돌보며, 우유 배달로 생계를 책임지면서 제사까지 떠맡고 있으니 불평이 없을까?

“제사 덕에 원미 아빠가 친척들이라도 자주 만날 수 있으니 그게 어디에요? 저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사랑이 별겁니까. 곁에 있어 주는 거지요.”

엄마는 그렇다 해도 원미와 민철이가 아빠의 병을 받아들이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신원미 양의 어머니 강국자 씨.
“원미가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원미 아빠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딸의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였나 봐요. 그런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가까이 가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제가 남편 손을 원미 볼에 대 주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원미가 신경질을 내는 거예요. 예민한 나이이긴 했죠. 나무토막처럼 움직이지 않는 손이 닿으니 기분이 나빴는지, 만지지 말라고 소리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남편 속이 얼마나 상했겠어요?”

엄마는 딸과 결판을 내기로 했다.

“너 어릴 적 아빠 보고 싶다는 말 잘 했지? 아빠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그런 소리 절대 하지 마.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원미도 엄마도 울었다. 그 후 원미 태도는 확 달라졌다. 원미 집에는 새벽에 구급차가 달려올 때가 종종 있다. 아빠 목에 끼워 둔 인공호흡장치가 말썽을 부리기 때문이다. 새로 교체한 튜브에 말썽이 생겨 며칠 전에도 새벽에 비상이 걸렸다.

혼자 힘으로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아빠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 가족 중 누군가가 붙여 놓았을까? 침대 한켠에는 황우석 박사 관련 기사가 붙어 있었다. 요즘 원미네 가족의 가장 큰 희망이다.

“황우석 박사님 덕분에 정말 난치병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믿어요. 기다리고 있고요”라고 원미는 말한다. 아빠는 발가락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관련 기사를 몽땅 찾아 읽었다. 엄마도 “신(神)의 뜻을 기다리며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원미 집을 나서면서 원미 아빠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춘 채 “감사합니다. 따님이 참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말했다.

‘오’, ‘아’, ‘으’, ‘이’, ‘아’

원미 아빠가 입을 천천히 크게 벌려 “고. 맙. 습. 니. 다”라고 했다. 목젖이 보였다. 입을 벌릴 때면 스님처럼 단정하던 얼굴이 찌푸려졌다. 원미 아빠는 대학생이 된 딸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딸이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끝내 울리지 않던 그의 성대가 내 마음을 울렸다. 딸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한들 아버지의 사랑에 비할 수는 없었다. ■


| 원미 아빠가 딸에게 보낸 편지 |

사랑하는 우리 공주, 원미에게

원미야, 정말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써 보는구나. 아빠는 지금 컴퓨터 모니터에 찍힌 자판을 따라 한 글자 한 글자 발가락으로 클릭해 우리 예쁜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단다. 아빠는 우리 딸 원미를 생각하면 딱 두 가지 마음이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아빠가 원미에게 제일 미안했던 때가 언제인 줄 아니? 엄마가 우유 배달 가고, 민철이가 학원 가고, 원미랑 단 둘이 있을 때 아빠 소변 보는 것을 원미가 도와줬잖아. 그때 참 얼마나 부끄럽고 민망했는지. 아빠가 못나서 딸에게 별일을 다 시킨다 싶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해 준 원미가 한편으로는 참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고맙다, 원미야. 아빠가 원미에게 사과할 일이 있단다.

지난봄 호흡곤란이 왔을 때 가족들 앞에서 그만 포기하겠다고 말했던 거. 그때 아빠 심정은 그랬다. 24시간 내내 가족의 도움 없이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아빠가 엄마나 민철이, 우리 원미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될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이 한시라도 편하게 자고,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자, 하는 심정이었다. 원미가 울부짖고 하는 걸 보면서, 아빠가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돈을 벌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아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아빠가 가장(家長)으로서 우리 가족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당당하게 희망을 갖고 투병하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원미가 언젠가 물었지. 아빠 행복하냐고. 그 대답을 지금 해야겠다. 원미야, 아빠는 지금 행복하단다. 비록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매일 누워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아빠는 행복하단다. 아빠는 세상에 원미 같은 딸을 보내 주신 하느님께 매일매일 감사 기도를 한단다. 원미야, 아빠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데이.

2005년 초여름 사랑하는 아빠가.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 책 중에서
  • 200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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