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LASS의 아름다운 이야기| “같은 상황이 와도 그때와 똑같이 행동할 거예요”

아이 구하고 두 다리 잃은 철도원 김행균 씨

2003년 7월 25일 오전 9시 9분. 오전 9시에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가는 새마을호가 영등포역 구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열차가 역에 진입한 순간, 대여섯 살 가량의 한 아이가 승강장 안전선 바깥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였다. 아이를 본 철도원은 호루라기를 불며 아이에게 위험을 알렸지만 아이의 위태로운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철도원은 열차를 급하게 세우기 위해 기관사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열차가 정차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철도원은 몸을 날려 아이를 안전선 안쪽으로 밀어냈다. 아이의 안전을 눈으로 확인하며 안도하는 순간, 자신의 몸은 선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중심을 잃은 그의 몸은 선로로 떨어졌다. 열차는 이미 역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피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재빨리 상행선 선로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몸이 하행선 선로에서 다 빠져 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왼쪽 발목과 오른쪽 발등에 충격이 가해졌다.

발목이 잘리고 발등이 잘린 상태에서도 철도원의 의식은 명료했다. 명료해서 더 아팠다. 달려온 동료와 공익요원에게 아이가 안전한지를 물었다. “안전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의식을 잃었다. 그 철도원은 의식을 회복한 후 사람들이 자신을 ‘아름다운 철도원’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씨. 사고 당시 영등포역 열차운용 팀장이었던 그의 현 직책은 한국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영업처 물류관제사다. 지난해 8월 17일에 복직했다.

김행균 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서부역 부근에 있는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를 찾아갔다. 6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김행균 씨가 근무하는 부서는 3층에 있었다. 필자가 3층으로 올라가겠다고 하자 김행균 씨는 자신이 내려오겠다고 했다.

좌우 폭이 넓은 계단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다. 5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까. 다리를 약간 저는 직원 한 명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김행균 씨였다. ‘아름다운 철도원’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참으로 맑은 얼굴이었다.

필자의 첫 번째 관심은 그의 다리에 쏠렸다. 사고 후 그는 왼쪽 다리는 무릎 밑부분을 절단했고 오른쪽 다리는 발등의 절반을 잃었다. 양쪽 다리를 동시에 수술한 사람으로 볼 수 없을 만큼 그의 걸음걸이는 정상인에 가까웠다. 정상인이 힘든 운동을 한 후 피로로 인해 약간씩 다리를 저는 정도로 보였다.

“생각보다 많이 절지 않으시네요.”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재활 치료를 열심히 했어요.”

“보통 다리 절단 수술을 하고 나면 키가 줄어든다고 하던데요.”

“아뇨. 오른쪽 발뒤꿈치는 그대로 있기 때문에 키는 줄지 않았어요.”

그는 또 웃었다. 천성이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후 김행균 씨는 왼쪽 발목 접합 수술을 받았다. 접합 수술 후 그는 왼쪽 다리는 온전하게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왼쪽 다리의 신경은 회복되지 않았고, 발목 관절도 쓸 수 없게 됐다. 대학병원 등 여러 병원에 자문을 구했다. 절단 후 의족을 착용하고 재활에 전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결정을 할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접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희망을 놓지 못하는 아내를 설득했어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저로서는 절단이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했거든요. 지금도 그 결정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고 후 다리 절단을 포함해 전신마취 수술만 일곱 차례나 치른 사람의 말치곤 너무 담담했다.

지난해 4월 말 퇴원을 하는 김행균 씨의 양팔에는 목발이 들려 있었다. 하루 빨리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그는 집 부근의 공원을 오가며 재활 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2~3분 걸으면 쉬고 또 걷고 하는 식으로 재활 훈련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리의 통증도 줄어들었다.

6월에는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 각 나라를 돌며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성화 봉송식’의 주자로 참여할 정도로 그의 재활 속도는 빨랐다. 10월에는 서해교전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이희완 대위와의 인연으로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제2회 전우(戰友)마라톤대회’ 중 5km 건강 달리기 코스에 도전해 완주했다. 당시 주파 시간은 50분.

“빨리 걸을 수는 있어도 뛰는 데는 무리가 있어요. 주최 측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고 해서 응했던 거고 저 역시 그 뜻에 공감해서 참석을 했는데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올 4월에는 ‘백범사상 실천운동연합’이 주관한 ‘대한독립대장정’ 행사에 참석,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국 내 이동경로를 따라 11박 12일 동안 1만 3,000리에 달하는 거리를 순례하기도 했다.

김행균 씨는 자신이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받은 만큼은 되지 않더라도 사회에 무엇인가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과분할 정도로 많이 받았어요. 정부로부터는 옥조근정훈장을 받았고 조선일보에서 청룡봉사상을 받았고…. 물론 시민들로부터 받은 칭찬과 격려는 그 이상이지만요. 사고로 인해 특별한 사람이 됐지만 제 본분은 제가 속한 직장에 충실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해요.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직장에 누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용하게 하고 싶어요. 강연 요청이 들어오곤 하는데 저와 관련된 기관을 빼고는 그때마다 정중하게 사양하고 있어요.”


연락 없는 아이의 부모

‘대한독립대장정’ 행사에 참석해 1만 3,000리를 순례하고 있는 김행균 씨(맨 왼쪽).
‘직장에 누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가 실천한 의미 있는 사회 공헌 활동이 있다. 장기(臟器)기증이다. 김행균 씨는 지난해 11월 한국생명나눔운동본부에 사후(死後) 각막과 뇌사(腦死) 시 장기 등 자신의 몸 전부를 사회에 기증하는 서약을 맺었다.

“그런데 사실 제 장기 기증은 다른 사람들의 기증보다 사회 공헌도가 엄청 떨어져요(웃음). 다친 다리를 치료하느라 독한 약을 너무 많이 복용하는 바람에 제 장기가 이식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다만 각막하고 시신은 가능하다고 하니까 그나마 다행이죠.”

김행균 씨는 사고 이전과 이후의 생활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가족도 직장도 변한 것이 없고 부천에 있는 집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나와 전철을 이용해 직장으로 출근하는 패턴도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전과 다름없이 생활하니까 동료들도 제가 사고를 당했었다는 것을 깜빡 잊기도 해요. 저는 발뒤꿈치에 몸을 의지하기 때문에 계단은 오르내릴 수 있어도 등산은 어렵거든요. 그런데 가끔 등산을 가자는 동료들이 있어요(웃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사고 이전에 할 수 있었던 것을 사고 이후에는 못하는 일들이 있다. 가족들과 찜질방을 갈 수 없게 됐고 해수욕장에 가서는 가족들의 해수욕을 지켜보는 일밖에 할 수 없다. 그에게 사고 당시와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물었다.

“솔직히 그때 그 상황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벌어진 일이에요. 같은 상황이 또 온다면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까 그때와 똑같은 행동을 하겠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깜빡 잊었던 질문을 전화로 했다.

“사고 당시 구해 준 그 아이의 부모로부터 연락이 있었습니까?”

인터뷰 내내 들었던 예의 그 ‘사람 좋은 목소리’를 또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를 수도 있잖아요?”

역시 그는 ‘아름다운 철도원’이다. 김행균 씨의 이야기는 동화로도 쓰여 읽히고 있다. ■
  • 200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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