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어머니 타샤 튜더| 1,000평 정원 가꾸며 자급자족하는 삶

나의 시어머니 타샤 튜더는 미국의 유명한 그림책 삽화가이자, 화가, 동화작가이다. 올해 91세인 시어머니는 미국 뉴잉글랜드 버몬트주(州) 브래틀보로에서 1,000평이 넘는 정원을 가꾸며 홀로 사신다. 직접 양젖을 짜고 감자를 캐고 뜨개질을 하면서 자급자족하는 그의 모습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동화 같은 삶’으로 화제가 되었다. 시어머니의 독특한 생활과 아름다운 정원은 지난해 《맘 먹은 대로 살아요》라는 제목(종이나라 출간)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됐다.

내가 타샤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2남 2녀 중 차남인 남편과 1994년 결혼하면서였다. 미국 공군 자문변호사인 남편과 결혼한 후 시어머니께 인사드리기 위해 브래틀보로로 찾아갔다. 서울을 출발, 열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보스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이국(異國) 사람인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었다. 자동차로 보스턴 교외를 빠져나갈 때는 불안감이 서서히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세 시간쯤 달리자 울창한 침엽수림이 나타났다. 가로등도 없는 비포장도로에 이르자 “이 길은 우리 가족들 사이 비밀의 오솔길”이라며 남편이 내려서 걷자고 했다. 이때 나는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앞으로 계속해서 경이로운 경험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출간된 타샤 튜더의 책.
남편과 나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자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검은 숲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은 달빛을 받아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올빼미가 등 뒤에서 가르릉거리며 적막을 깨뜨려 혼비백산케 했다. 흠칫흠칫 놀라는 내게 남편은 “올빼미들이 당신을 반기는 소리”라고 했다. 그 다음엔 승냥이 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 사립문이 나왔다. 휘영청 밝은 달빛과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빛 아래 거무스름한 집의 윤곽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물가물한 호박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곳이 시어머니의 집이란다.

종이 달린 작은 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2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현재의 삶이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웨일스산(産) 작은 개인 귀여운 코기(corgi) 두 마리와 함께 앉아 차를 마시고 계셨다. 집 안은 초가을 숲 속 냉기를 몰아낼 만큼 훈훈했다. 화덕에는 구수한 닭고기 수프가 끓고 있었고, 향긋한 옥수수 빵 냄새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시어머니의 집과 생활, 그리고 정원 손질법을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금방 그곳 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시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손수 키우는 닭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먹이를 주고, 양젖을 짜서 버터나 치즈,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드셨다.

낮에는 정원을 거닐며 꽃에 물을 주고, 잡초를 일일이 뽑으셨다. 그러면서 꽃들의 색깔, 높낮이의 조화를 살피셨다. 정원은 시어머니가 마음 가는 대로 채색하는 캔버스였다. 처음 만났을 때 시어머니는 내게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느냐?” “잘하는 요리가 무엇이냐?” “영국 문학작품 중 즐겨 읽는 게 있느냐?” “집에는 어떤 꽃들을 심었느냐?” “어떤 애완동물을 키우느냐?”고 물으셨다. 한국 부모님들과는 삶의 의미와 중심을 전혀 다른 곳에 두고 계셔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타샤 튜더의 아들 톰 튜더와 김은임 씨 가족. 김은임 씨는 성심여대 불문과 졸업 후 미국 오클라호마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시어머니는 대표적인 외유내강 인물이셨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호흡하며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고 계획을 세운 시어머니는 돈이 생길 때마다 동물을 사들여 농장생활을 준비하셨다. 시어머니는 화가 어머니와 수학자이자 발명가 아버지로부터 감수성과 창의력을 물려받았다. 8학년밖에 마치지 못했지만 자신의 글과 그림을 출판하며 독립된 삶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시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모두 독립을 이룬 분이다. 시어머니의 식량 창고에는 직접 재배하고 가공한 야채와 과일 통조림이 겨우내 먹을 수 있을 만큼 쌓여 있다.

해가 긴 여름이면 낮에 화초를 가꾸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며 책을 읽으신다. 친구들과 함께 자신이 키운 양털로 천을 짜고 정원의 화초로 천연염색을 한 후 담요와 셔츠를 만들기도 하신다. 남편이 어릴 때 시어머니는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각본을 쓰고 무대를 꾸며 아이들과 인형극 공연을 다니셨다고 한다. 남편의 형제들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요리와 바느질을 잘한다. 한 인간으로서 어디에서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릴 적부터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백발, 주름진 얼굴인 시어머니는 여전히 지적이고 우아한 자태를 지니고 계시다. 일 때문에 거칠어진 손과 발조차도 멋스러워 보인다. 그분의 요리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때면 10인분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뚝딱 만들어 내곤 하신다. 음식이나 옷,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데 그분은 아주 까다롭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고수하신다. 시어머니가 매일 입는 드레스는 1980년대 초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외화 <초원의 집> 배우들과 같다. 오스트리아산(産) 옷감으로 전통의상 전문가인 친구들이 만들어 준다고 했다. 정원 가꾸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 시어머니는 화초를 구하러 네덜란드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그 외에는 모두 자급자족하는 게 원칙인데, 자급자족이 안 되는 식료품의 경우 농장에서 생산한 무공해 달걀이나 사과 주스 등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웰빙 열풍에 휩싸여 있지만, 시어머니는 훨씬 전부터 이런 생활을 해 오셨다.

한국인 김은임 씨의 시어머니 타샤 투더. 문명의 힘 대신 자연의 품 속에서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진제공 | 도서출판 ‘종이나라’)
시어머니의 섬세하고 예술가적 기질은 자녀들에게 골고루 전해진 것 같다. 남편 역시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 요리 솜씨와 식탁 차림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남편이 들려주는 유년 시절 이야기는 너무 색달라 동화책을 읽고 있는 듯 착각할 때가 많다.

그중 생일파티 이야기는 정말 이채로웠다. 어린 시절 남편이 살던 집에는 작은 시내가 하나 있었다. 생일파티가 열리는 밤, 아이들은 시냇물이 끝나는 지점에서 기다렸다. 시어머니가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드신 후 나무판과 이끼 위에 올려놓고 촛불을 붙여 시냇물에 띄우셨기 때문이다.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오는 케이크를 보며 친구들과 함께 환호하던 순간을 남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함께 동화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인형극 순회공연을 했던 것이 자신의 삶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남편은 말하곤 한다.

남편이 그동안 한국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서울에서 살던 우리 부부는 남편이 미국 국방부에서 근무하게 돼 다시 미국으로 가게 됐다. 미국에 가면 시어머니부터 찾아뵐 생각이다. 이번에는 시어머니를 위해 내가 맛있는 옥수수 빵을 만들어 볼 참이다. ■
  • 200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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