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한 손으로 연주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

그의 「투 핸즈」가 한국인을 울렸다

일흔일곱의 피아니스트는『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은퇴할 나이에 되찾은 두 손

지난 6월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레온 플라이셔가 무대에 섰다. 일흔일곱의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자 객석은 숨을 죽였다. 그의 존재만으로 무대는 가득 찼다. 첫 곡은 바흐 칸타타 중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젊은 시절 바흐의 꾸밈없는 활기가 가득한 곡은 老(노)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담박하고 겸허하게 재생됐다. 노년의 거장이 선택한 마지막 곡은 슈베르트가 죽음을 앞두고 작곡한 세 편의 피아노 소나타 중 마지막 곡인 「피아노 소나타 B플랫 장조」였다. 시련에 버려진 예술가는 인생 막바지에서 찾은 희망 앞에서 흥분하지 않았다.

飛翔(비상) 후의 추락은 더 쓰다. 떨어진 후의 충격은 솟아올랐던 높이에 비례한다. 삶의 공식은 레온 플라이셔에도 들어맞는 듯 보였다. 피아니스트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던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오른손 마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으로 다가왔을 터다. 레온 플라이셔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언제나 희망은 있습니다』

「왼손의 거장」 레온 플라이셔가 양손을 되찾은 후 한 말이다. 플라이셔는 최정점에 있던 37세에 오른손 마비가 찾아온 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왼손으로 피아노를 친 의지의 피아니스트다. 그는 마비 이후 지휘자, 이론가, 교육자로 더욱 왕성히 활동하며 진정한 거장으로 거듭났다. 지속적인 치료와 노력을 거듭하면서 오른손의 기능을 조금씩 회복한 플라이셔는 지난해 양손으로 연주한 음반 「투 핸즈(Two Hands)」를 발표했다. 여느 연주자라면 은퇴할 나이에 되찾은 두 손으로 새로운 음악 인생을 연 것이다.

젊은 시절 플라이셔는 승승장구했다. 192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9세에 당대의 거장 아르투르 슈나벨의 愛(애)제자가 됐고, 16세인 1944년 뉴욕필하모닉과 협연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1952년 미국인 최초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미국 피아노계를 주름잡던 피아니스트 윌리엄 카펠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후 레온 플라이셔는 혜성같이 등장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영원한 근육긴장이상증 환자」

名(명)지휘자 조지 셀과의 일화가 있다. 레온 플라이셔의 스승 아르투르 슈나벨은 협연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명지휘자 조지 셀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조지 셀이 머무는 동안 스승은 제자에게 연습을 시켰고, 조지 셀은 플라이셔의 천부적인 음악성에 매료돼 즉석에서 협연을 제의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조지 셀과 플라이셔는 음악적 동반자가 되어 브람스, 베토벤 협주곡 등 많은 名演(명연)과 名音盤(명음반)을 남겼다.

病魔(병마)가 찾아온 것은 1964∼1965년. 어느 날부터인가 오른손에 조금씩 경련이 오기 시작했다. 오른손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이 안으로 굽어져서 펴지지 않더니 급기야는 오른손 전체를 못 쓰게 된다. 근육긴장이상증(dystonia)이었다. 플라이셔는 1965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끝으로 연주생활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대탐험의 시작이었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한다. 오른손을 치료하기 위해서 아로마테라피와 참선까지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절망과 우울의 상태」는 2년 가까이 지속된다.

시련은 그러나 레온 플라이셔를 더욱 단련시켰다. 음악은 그에게 삶의 목적이었다. 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건강한 왼손으로 연주를 계속했고, 지휘를 시작했다. 오른손 마비를 극복하기 위한 연주법과 음악 이론으로도 인정받았다.

그는 오른손 회복을 위해 애를 쓰면서도 왼손 연주를 갈고 닦았다. 왼손 연주로 비평가로부터 인정받았고, 대중적인 인기도 얻었다. 왼손을 위한 솔로 작품과 라벨, 프로코피에프 협주곡을 녹음한 소니 클래식 레코드로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하였다. 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왼손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연주한 조지 펄의 「왼손을 위한 연주곡」, 커쉬너의 「왼손을 위하여」는 플라이셔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한 손만으로 커다란 피아노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손으로 나눠서 맡던 건반을 왼손으로 연주하느라 허리를 뒤트는 버릇이 생겼다.

때때로 증세가 호전될 때면 양손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1982년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프랑크의 「심포니를 위한 변주곡」은 「17년 만의 再起(재기)」로 여겨지며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심리적 압박감 탓이었는지 그의 오른손은 다시 말을 듣지 않았다. 플라이셔가 기적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보톡스로 치료를 받은 결과였다. 그렇다고 그가 병마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스스로 밝혔듯, 그는 「영원한 근육긴장이상증 환자」다.

플라이셔는 1967년 케네디센터에 「시어터 챔버 플레이어스」를 설립하고, 1970년 아나폴리스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지휘자로서 인생을 시작한다. 1970년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트벌」에서 지휘했고, 1973년 볼티모어 심포니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이후 보스턴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몬트리올 심포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객원 지휘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고전음악 명예의 전당」에 올라

교육은 그의 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취다. 제자들은 그를 「오비완 케노비」(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이상적인 스승)라고 부른다. 피바디 음대, 커티스 음악원, 토론토 왕립 음악원 등에서 가르친 그는 전 세계에 제자들이 포진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테크닉을 강의하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제자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도왔다. 앙드레 와츠, 예핌 브로프만 등 최고의 피아니스트, 한국 피아노계의 중추 신수정, 이대욱, 강충모 등이 그에게 피아노를 師事(사사)했다. 서울 공연 전 5월27일 울산에서 협연했던 울산시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 이대욱은 플라이셔의 애제자다. 그는 이번 내한을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세계 유명 음악축제와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반드시 초청되는 존경받는 음악인이다. 음악적 공로를 인정받아 줄리아드 음악원, 클리블랜드 음악원, 샌프란시스코 음악원, 타우선 대학 등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 「올해의 연주자」로 선정됐다. 2000년에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로부터 지휘 훈장(Decoration of Commander)을 받았고, 같은 해 4월 생존하는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고전음악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음반 「투 핸즈」는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새 음반에는 40년간 병마와 벌인 길고 험난한 싸움을 이겨 낸 한 인간의 숭고함이 담겨 있다. 소문 속으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플라이셔의 양손 연주를 다시 만날 수 있음에 음악팬들은 감동을 넘어 경의를 표했다. 사상 유례없는 불황이라는 음반계에서 그의 새 음반은 10만 장 이상 팔려 나갔고, 2004년 베스트 음반이 됐다. 플라이셔는 수익금 전액을 자신과 같은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부했다.

열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돌아온 플라이셔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더 이상 햇병아리가 아니다』고 밝혔다. 굽이진 인생을 지나온 황혼기의 거장이 내놓은 것은 화려한 기교와 과잉된 감정으로 넘치는 음악이 아니었다. 「더욱 평온하고 차분한 음악」이었다.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 무대에서 때로는 양손으로, 때로는 왼손만으로 하는 그의 연주에는 40년의 그리움과 아픔이 담겨 있었다. 그의 연주를 두고 기교와 표현력 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음악을 향한 예술가의 진실한 애정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
  • 200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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