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에 오스카상을 휩쓴 사내, 클린트 이스트우드

「나도 저렇게 멋있게 늙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불러일으킨 남자

『성형수술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28세로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할리우드에서는 스물여덟 살짜리들이 성형수술을 한다.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열여덟 살짜리 모델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 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13년 만에 같은 賞 다시 받아

워렌 비티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서 작품상 트로피를 넘겨받았던 2005년 2월27일 할리우드의 일요일 밤, 이른바 「오스카 나이트」는 온전히 그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이날만큼은 허름한 중고가게 따위에서 뜻하지 않게 발견한 귀한 물건을 뜻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곧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일 수밖에 없었고, 자신이어야만 했다.

가난한 철강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벌목공과 소방관 등 직업을 轉轉(전전)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B급 영화에서 주급 75달러짜리 단역을 따내는 데 만족해야 했던 軍畢(군필)의 평범한 미국 청년은 50여 년 만에 할리우드의 모든 것을 가졌다.

그는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아카데미 작품, 감독상을 받았으며 13년 후인 올해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다시 한 번 같은 부문 수상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그 사이 2004년 베를린, 칸, 베니스 등 3대 국제영화제의 배우상을 모두 수상했지만 정작 아카데미 트로피는 한 번도 손에 넣지 못했던 주연배우 숀 펜을 마침내 「오스카 나이트」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미스틱 리버」가 있었다. 유년시절 한 성인 남자로부터 당한 성폭행 경험을 트라우마(유년기의 정신적 外傷)로 가지고 있던 세 친구의 엇갈린 비극적 운명을 그린 이 영화는 그의 카메라가 통과한 무섭고 끔찍한 생의 비밀, 어두컴컴한 터널이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미스틱 리버」에서 무겁고 어두운 색깔을 보여 줬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에서 호흡과 리듬을 유려하게 조절해 가며 관록에 걸맞은 「巨匠(거장)의 지혜와 시선」을 보여 준다. 대중을 외면하지도, 대중에 영합하지도 않으면서 때로 가볍게 때로 강렬하게 코미디와 正劇(정극)을 섞어 가는 매우 섬세한 연출력을 발휘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두 번째의 작품ㆍ감독상 동시수상을, 여배우 힐러리 스웽크에게 두 번째의 여우주연상을, 모건 프리먼에게 첫 번째 남우조연상을 안겨 준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식당 손님들이 남기고 간 고기 조각을 씹으면서도 챔피언의 꿈을 위해 샌드백을 두드리는 가난한 여성복서 매기와 선수 치료사 출신의 노장 트레이너 프랭키 간의 가족보다 진한 사랑을 그린 영화다.

실패한 트레이너와 `선수로서는 환갑이라 할 수 있는 서른한 살의 가망없는 여성복서로서 만난 두 남녀는 부녀지간보다 더 깊은 사랑을 쌓아 간다. 매기는 몰염치한 가족들이 있고 프랭키는 딸을 어디론가 떠나 보냈다. 그들은 連戰連勝(연전연승)하며 모든 것을 상실한 그 자리에서 마지막 삶의 희열을 성취한다. 만화같이 재치 넘치고 유머러스하며 통쾌한 복싱 장면이 지나가고 챔피언戰에서 매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후반 이후,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목소리와 표정처럼 낮고 건조하지만 폭풍 같은 힘으로 관객의 가슴을 치고 들어온다. 미국에서는 일부 논란을 가져왔지만 全身(전신)이 마비된 매기의 입에서 호흡기를 떼어 내는 결말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회적 주장이 아닌, 75세의 老將(노장) 영화감독이자 배우가 이른 자기 구원의 형식이다.

그가 출연하고 연출했던 영화와는 달리 실제로는 정치와 폭력, 사회적인 주제를 싫어한다는 견해를 입버릇처럼 밝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그가 연기한 프랭키처럼 관습을 존중하는 전통주의자이자 개인의 자유를 사랑하는 자유주의자이기도 하다.

오스카 트로피를 받아든 그는 객석에 모신 96세의 어머니를 향해 『내게 물려준 유전인자에 감사한다』는 농담과 함께 『공로상을 받은 시드니 러멧에 비하면 나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할 뿐이며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말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회고하며 팔짱 끼고 뒷방으로 물러앉아 있을 그 나이에 그가 왜 여전히 최고이며, 더 높은 곳에 올라갈 `미래형의 최고인지를 증명한다. 그가 남긴 말들을 들어 보자.

『내 연기 선생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서 있으라고 말하곤 했다. 게리 쿠퍼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개인을 각자 그대로 내버려 두는 자유주의자의 시각을 좋아한다.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될지 묻는 사람들을 보면 불편해진다』

『성형수술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28세로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할리우드에서는 스물여덟 살짜리들이 성형수술을 한다.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열여덟 살짜리 모델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 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할 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30년 5월 평범하고 가난한 철강 노동자의 아들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며 독일,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계의 피가 섞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LA칼리지를 중퇴했으며 군에서 제대한 후 여러 직업을 떠돌다 1955년 B급 영화의 單役(단역)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군복무 시절에 대해서는 한국전쟁에 올 뻔한 흥미로운 사연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가 참전을 위해 탔던 한국행 비행기가 태평양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체력이 좋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3마일을 헤엄쳐 살아날 수 있었다. 이 사고로 그의 한국행은 취소됐고 대신 부대에서 수영지도병으로 복무했다.

목젖이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부당하기도 했던 주급 75달러짜리 단역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얼굴을 알리게 된 작품은 CBS 長期(장기) TV 시리즈인 「로하이드」. 당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방송국을 찾아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카우보이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관계자의 눈에 띄어 이 드라마에서 실제 카우보이 역을 맡았다. 1966년까지 계속된 「로하이드」로 그는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눈에 띄어 1960년대 마카로니 웨스턴의 고전인 3부작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續(속) 석양의 무법자」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970~1980년대에는 범죄 액션물인 「더티 해리」 시리즈의 타이틀 롤을 맡아 강력한 응징자의 모습을 보여 주며 큰 인기를 누리는 한편, 1971년에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감독으로서의 그의 경력은 계속돼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삶을 그린 1988년작 「버드」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28편이 넘는 그의 연출작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로맨스 멜로물이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 같은 휴먼드라마, 범죄 스릴러 「앱솔루트 파워」, SF 「스페이스 오디세이」, 심리 스릴러 「미스틱 리버」까지 그의 출연작만큼이나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2000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23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1978년 이혼했으며 1996년 TV 앵커 출신인 디나 루이스와 재혼했다. 1986년엔 캘리포니아 카멜市의 시장으로 당선돼 2년간 역임한 이색적인 경력도 가지고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두 개의 골프장과 한 개의 호텔을 소유한 부호이기도 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최고의 자리에 섰을 때 많은 이들이 『나도 저렇게 멋있게 늙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 200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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